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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MP3 음원 서비스 업체는 더 심각했다.
소니 뮤직이 갑자기 국내 온라인 서비스를 할 것이라는 소식 때문이다.
그것도 디지털 웨이라는 국내 업체와 손을 잡고 말이다.
여기에 디지털 웨이는 일본 시장을 공략해서 성과를 거둔 덕분에 국내에서도 제법 알려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LC 전자와 HY 전자의 인사가 자신을 찾아왔다.
심지어 최문경 부회장이 중재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최용욱 회장도 이 상황이 왜 이루어졌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차라리 최두진 사장이 옆에서 거들어주기를 원했다.
‘이것 참 난감하군.’
* * *
옆에 같이 자리한 최두진 사장은 피식 웃으면서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이미 최민혁 실장이 보통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이미 성과가 그걸 증명하니까.
실제로 에플 주식으로 계속 재미를 보는 중이었다.
최근 에플 주가가 조정장을 끝내고, 이유 없는 폭등 중이었다.
50달러 돌파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60달러, 70달러 선을 돌파했다.
황당한 것은 누적되어서 쌓이는 에플 공매도 물량이었다.
공매도 물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주가가 계속 폭등한 것이었다.
실로 아쉬웠다.
최근 에플 주식은 다 정리하고 얼마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남겨둔 주식 이익이 대박을 쳤던 것이다.
‘이것도 민혁이 때문이겠지?’
최두진 사장은 그 이유가 최민혁 실장의 애니 솔루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지난주에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에플 주가가 폭등했다.
바로 MP3 애니 솔루션이 비공식적으로 말이 나온 이후였다.
‘하, 정말 아쉽네. 그냥 계속 주식을 들고 있어야 했어. 민혁이 그놈을 믿어야 했어.’
하지만 그는 이 못지않게 산삼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
최용욱 회장 역시 HY일가 내에서도 주목받는 박용혁 전무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전경련 모임에 가면 요즘 간혹 얼굴을 내밀고는 하는 이였다.
“자네는 요즘 안색이 좋아. 일이 재미있나 봐.”
“다 어르신이 걱정해 준 덕분입니다.”
“그런 소리는 마. 우리 KM 그룹은 HY 그룹과 비빌 수준도 안 되니까.”
“에이, 말도 안 됩니다. KM 그룹 성장세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KM 센서에 대한 기대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가?”
실상 사실이었다.
KM 그룹이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도 그건 중견 기업 수준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KM 전자를 빼면, HY 그룹과 비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박용혁 전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KM 전자만 해도 우리 HY 그룹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덩치입니다. 거기에 KM 전자 계열사를 다 합치면, 오히려 우리보다 더 잠재 가치가 높습니다.”
“아닐세. 그렇지 않아.”
박용혁 전무는 MP3 플레이어 산업의 성장을 간접적으로 지켜봤다.
그는 때문에 다른 사람과는 달리 최민혁 실장을 더 높이 평가했다.
정확히는 최근 최민혁 실장을 만나본 이후로 이런 마음을 가진 것이었다.
“전 과거 MP3 개발 시에 최민혁 실장이 왜 그렇게 대용량 낸드에 욕심내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그것도 부족했다는 것을.”
실제로 128MB 낸드 메모리 개발은 최민혁 실장 전생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HY 전자 역시 도시바와 손을 잡아서 이 사업에 투자 규모를 대폭 늘렸고 말이다.
최용욱 회장은 잠깐 침묵했다. 그조차 박용혁 전무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박용혁 전무는 다른 재벌 3세와는 달리 꾸준하게 성장을 거듭했다.
재벌 3세의 정석과 같은 인물이 바로 박용혁 전무였다.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지. 자네 같은 친구가 이 늙은이를 그냥 찾았을 리는 없을 것 같고.”
그는 힐끗 옆에 동행한 이를 쳐다보았다.
“이 친구는 LC 전자 기획실장인 한병수 실장입니다.”
“아, 자네에 대해서 들어본 것 같아. 가만, 얼굴도 안면이 있어.”
“전경련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인사를 몇 번 드렸습니다.”
“그런가?”
최용욱 회장은 입에 미소를 띤 채 느긋하게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그는 이 자리가 잘 믿기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재벌 3세라고 해도 다른 재벌 3세와는 격이 달랐다.
그들이 굳이 자신에게 이런 저자세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마치 자신을 집안 어르신처럼 대했다.
그게 정말 신기한 것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스스로 자부심을 느꼈다.
박용혁 전무는 힐끗 옆에 같이 자리한 최두진 사장을 쳐다보았다.
최용욱 회장이 설명해 줬다.
“우리 회사 대주주인 최두진 사장이네. 자네도 이름은 들어봤을 거야.”
박용혁 전무는 화들짝 놀랐다. HY 그룹 주식 일부를 가진 대주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 어르신, 안녕하세요. 늘 뵙고 싶었는데, 이제야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나 같은 늙은이 봐서 뭐 하게? 그냥 젊은 친구들끼리 노는 게 좋지.”
실제로 최두진 사장을 대리하는 민기식 고문 변호사가 주로 나섰다.
박용혁 전무는 민기식 고문 변호사의 얼굴은 알고 있었다.
그는 눈치를 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사실 이렇게 어르신을 직접 찾아뵈게 된 것은 지능형 아파트 때문입니다.”
최용욱 회장은 이제까지 좋았던 표정을 굳힌 채 결국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 역시 이 일 때문에 여러 곳에서 연락을 받았다. 그 당사자 중에는 건설부 장관도 있었다.
그는 이 일이 손자 최민혁 실장이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자신의 동선을 밝히지 않은 것 때문이라는 것 잘 알았다.
“미리 말해두지만, 그 일은 나도 잘 모르네.”
“사실 최민혁 실장을 이미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하는데, 막상 실제로 행동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실무진 쪽에 연락하면 제대로 만남이 이루어지도 않고요.”
이건 엄밀히 말해서 최민혁 실장과 KM 전자가 정말 바빠서다.
더욱이 LC 전자와 HY 전자 양쪽은 정치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니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최용욱 회장은 손자 최민혁에게서 간혹 그런 상황을 들었다.
“…그렇겠지.”
“최민혁 실장에게 우리 두 기업에 대해서 신경을 써 달라 얘기를 좀 드렸으면 해서 이렇게 어르신을 찾아뵈었습니다. 정말 급해서 그렇습니다.”
“왜, HY 그룹의 박 회장이 자네를 괴롭히기라도 하는 건가?”
“…네.”
박용혁 전무는 순순히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과 안면도 있는 인물이고, 딱히 최민혁 실장에게 반감을 품을 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일은 HY 그룹에서도 익히 잘 아는 사실이었다.
최용욱 회장 역시 최근 애니 아파트를 둘러싸고 나오는 이야기를 안다. 안 회장과 박 회장 사이의 갈등 말이다.
자존심 싸움.
별것 아닌 일 같지만 그게 또 그렇지 않았다.
“…자네 말은 잘 알겠어. 내가 민혁 그 녀석이랑 한번 이야기를 해보지.”
“가, 감사합니다.”
한병수 실장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잘 모르는 것이 있었다.
최용욱 회장은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다.
KM 그룹의 행보가 이제까지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KM 그룹의 매출이 늘어나서 시장 영역을 점점 넓혀갔다.
결국 LC 전자를 비롯한 다른 10대 재벌 기업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수도 없는 일인데…….’
* * *
소니 뮤직 이슈는 그저 간단한 일로 끝나지 않았다.
소니 뮤직은 한국 MP3 온라인 서비스 시장에 뛰어들지 않는다고 부정했다.
그런데 이 말을 믿는 이는 별로 없었다.
황당한 것은 전혀 다른 쪽에서 사건이 터졌다는 것이다. 국제 음원 산업 연맹에서 서울대를 비롯한 한국 대학에 MP3 파일을 모두 삭제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소니 뮤직의 행보에 열을 받은 메이저 음반업체가 사전에 손을 쓴 것이었다.
덕분에 한국 대학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이들은 부랴부랴 공개 자료실에 있는 MP3 파일을 다 삭제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PC 통신에도 영향을 줬다.
안 그래도 불법 MP3 파일 소동 때문에 불과 얼마 전에 난리가 났는데, 게시판 공지란에 MP3 파일 삭제와 관련된 공지가 다시 뜬 것이었다.
물론 이에 저항해서 강제로 아이디가 삭제되는 이도 있었고 말이다.
최용욱 회장도 이런 상황을 뒤늦게 확인한 후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손자 최민혁을 호출해서 이 사안을 협의해야 하나 고민했다.
요즘은 손자 최민혁을 부르는 것조차 부담스럽기만 했다.
최두진 사장 생각은 좀 달랐다.
“왜? 내가 부를까?”
“내가 괜히 끼어드는 것 같아서.”
“그렇지 않아. 차라리 잘된 것일 수 있어.”
“뭐가?”
“생각을 해봐. 민혁이 그놈은 자기 성질 때문에 시작한 일을 멈추지 않아. 그럴 때 차라리 자네가 나서면 그걸 명분 삼아서 멈출 거야.”
“그러지 않을 것 같은데.”
“민혁이 그놈이 아무리 잘나도 자네 손자란 사실은 변치 않아.”
최용욱 회장은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그도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최민혁이 얼마 전에 미국으로 잠시 가 있는 동안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나도 민혁 그놈에게 손을 쓸 입장이 아니야.”
“아니, 내 생각은 달라. 다른 것을 떠나서 민혁이는 아직 나이가 어리잖아.”
“민혁이 그놈 실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네가 그런 말을 해?”
“물론 그 녀석 때문에 나도 돈을 많이 벌었어.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냐.”
“흠.”
최두진 사장은 이미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 확신했다.
“어차피 이런 일이 터질 수밖에 없었어. 이미 KM 전자의 덩치가 너무 커졌어. 지금까지는 에플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잘 빠져나갔지만 지금 받는 특허료 수입만으로도 그렇게 안 될 거야.”
“하긴 그것도 문제네.”
“소니 뮤직과 디지털 웨이를 이용한 방법이 나쁘지는 않았어. 그런데 HY 전자나 LC 전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
“자네는 지금 민혁 그 녀석에게 HY 전자에게 고개 숙이라고 지시하란 말이야?”
최두진 사장은 피식 웃었다.
“그 녀석이 과연 지시하면, 따를 것 같아? 내 생각은 좀 달라. 다만 이제까지 행적을 보면, 일방적이지만은 않잖아. 그러니 불러서 한번 이야기를 해봐. 이왕이면 가족 식사 시간을 좀 당겨서.”
“흠.”
최용욱 회장은 확실히 최두진 사장의 조언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가 굳이 가족 식사 모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였다.
가족끼리도 사업을 하다 보면 트러블이 생겨서 불편해질 수가 있었다.
그럴 때는 같이 식사하는 것만큼 좋은 솔루션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 사정이 심상치가 않아. 일단 장 실장에게 한번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
* * *
장승일 실장은 갑작스러운 최용욱 회장의 지시를 받고 나서는 최근 최민혁 실장의 동선을 다시 한번 처음부터 살펴봤다.
그중에는 HY 전자가 도시바에게서 낸드 메모리 라이선스를 얻은 것까지 고려했다.
그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이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여서 문제를 꼬아버린 것일까?’
HY 전자가 낸드 메모리의 라이선스를 얻는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었다.
최민혁 실장과 오성 전자의 관계가 그만큼 친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최민혁 실장의 행동을 보면 또 그래 보이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은 늘 오성 전자와 LC 전자 사이를 저울질했다.
구길모 차장은 이 부분에는 오히려 최민혁 실장을 옹호했다.
“솔직히 LC 전자를 믿을 수가 있을까요? 최근 그들의 행보를 보면, 꽤 오랫 동안 속으로 칼을 갈아오고 있었습니다. 그 칼날이 향한 바는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님이었고요.”
“그 칼을 휘두르지는 않았잖아. 그러니 그걸 문제 삼을 수는 없어.”
“미수에 그쳤다고 그냥 넘어가자는 말입니까?”
장승일 실장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도 LC 전자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연 LC 전자만이 그럴까.
“그럼 오성 전자는 늘 우군이라고 생각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