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26화 (926/1,021)

#

“지금 시기가 어렵다는 것은 너도 알 거다. 내가 상무에서 사장으로 진급한 것도, 네가 기획실장으로 승진한 것도 말이다. 그게 다 최민혁 실장을 잘 관리한 덕분에 얻은 성과야.”

“알고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최민혁 실장과 잘 지낸 것에 대한 보상이 아니야. 최민혁 실장과 KM 전자에 관한 철저한 조사 결과 역시 한몫했다.”

최민혁 실장에 대한 대응책.

LC 전자, 아니, LC 그룹은 최민혁 실장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들 역시 최민혁 실장의 성향을 분석했고, 자칫하면 LC 그룹과 대립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사실 생각 같아서는 다른 중견기업처럼 최민혁 실장을 흔들 생각마저 했다.

하지만 2조 6천억, 15억 달러와 같은 실적이 터져 나오자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LC 그룹이라도 최민혁 실장을 건드리기에는 부담이 컸던 것이었다.

LC 그룹 차원에서 갈피를 못 잡을 때.

한병수 실장이 현실적인 차선책을 내놓은 것이었다.

과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MP3 애니 관련 기술 수준이 이렇게 높을 줄은 몰랐습니다.”

“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회장님이 그딴 소리를 하면 알았다고 할 것 같아?!”

“그건 아닙니다.”

“회장님도 요즘 최민혁 실장의 조부인 최용욱 회장에게 불만이 많아. 그건 단순한 일이 아니다.”

정확히는 최용욱 회장의 주가가 손자 최민혁 실장 때문에 고공 행진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재벌 3세 중에는 최민혁 실장만큼 실적을 쌓은 이가 없었다.

그 대단하다는 오성 그룹이나 HY 그룹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배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대로 회장님에게 보고하란 소리는 아니겠지?”

“그, 그건 아닙니다. 플랜B를 당겨서 일단 실행하겠습니다.”

“플랜B라면 저작권 갈등을 부추기는 것 말이야? 그게 과연 효과가 있겠어?”

“대신 MP3 열기가 그나마 줄어들 겁니다. 지금 이대로 놔두면 MP3 광기가 폭발해서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달라질 겁니다.”

“…그래. 이미 검토한 계획이니, 한번 진행해 봐. 난 회장님에게 보고할 테니까. 다만 이 일이 꽤 중요하다는 것 명심해.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고 하잖아. 위로 쉽게 올라갈 기회다!”

“…네.”

한병수 실장은 자신이 계획을 제안하고도 아차 싶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조심해야겠어. 최민혁 실장과 엮여 있는 것이 너무 많으니.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지금이 아니면 최민혁 실장의 상승세를 꺾을 수가 없어.’

* * *

한병수 실장의 계획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는 이미 MP3 음원과 관련이 있는 작곡가, 작사가 쪽과 협상을 진행했다.

이대로 해적 MP3 때문에 저작권료를 도둑맞게 둘 수 없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말이 많았다.

다만 작사, 작곡가와 같은 개인이 이슈를 만들 수는 없었다.

그들은 MP3 서비스 업체의 압박에 그냥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LC 전자가 나서서 이들에 대한 자금 지원을 해준 것이었다.

심지어 대형 로펌에도 다리를 놔주고 말이다.

결국 이들이 나서서 PC 통신뿐만 아니라 MP3 음원이 올라가는 모든 게시판을 가진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전격적인 소송에 언론조차 이를 이슈로 다루었다.

이게 불과 삼일 남짓한 사이에 일어났다.

MP3 산업 빅뱅에 환호하던 이들조차 다들 움찔 몸을 떨었다.

대형 로펌이 나서면서 경찰이나 검찰 역시 다들 움직였다.

이건 단순히 대형 로펌만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다.

LC 전자가 자신의 검찰, 경찰 세력을 총동원한 결과였다.

최민혁 실장은 작사, 작곡 모임 대표가 나서서 서울 광화문에서 시위하는 모습이 나오는 뉴스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저게 한병수 실장의 작품이라고요?”

조성돈 팀장 역시 혀를 찼다.

“정확히는 LC 전자 법무 팀이 배후에 있습니다. 대형 로펌을 끌어들인 것은 LC 전자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가 없군요. 저런 일이 단기간에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 둔 것 같습니다. 언론, 경찰, 검찰, 사회단체, 저작권 협회 쪽에 모두 다 손을 써둔 것 같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 자신이 바꾼 미래 덕분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알았어도 정확한 시점은 몰랐다.

“그건 더 이상하잖아요. MP3 산업 빅뱅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하, 설마 LC 전자에서 그걸 사전에 예측이라도 한 겁니까?”

“…비공식 통로로 확인한 바로는 이미 LC 전자, 아니, LC 그룹 차원에서 검토한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는 개정된 X 리포트를 토대로 문제가 될 만한 계열사도 정리했고요.”

“흠, 그래요? 그건 제법 놀랍네요.”

최민혁 실장은 설마 LC 그룹이 자신이 쓴 개정 X 리포트를 참조할 줄은 몰랐다. 그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처럼 기업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조성돈 팀장의 생각은 좀 달랐다.

“아무래도 최 실장님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최 실장님이 한 실적이 있기 때문에 그 사안을 무시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당장 국가 부도설이 그 증거입니다. 정부에서도 유언비어를 유포했다고 압박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재정경제원 때문이었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을 상대하면서 한국 외환 시장에 대해 검토에 검토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의 주장은 마냥 근거가 없지는 않았다.

물론 윗선의 꼰대가 이걸 무마해서 덮으려고 했다.

그 덕분에 외부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실무진들 입장은 좀 달랐다. 특히 외환 시장과 엮여 있는 정부 기관 말이다. 그들은 자칫하면 감방에 갈 수도 있는 사안이라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분위기는 곧 한국 대기업에도 조금씩 영향을 주었다.

오성 그룹이 그 선두에 나섰고 말이다.

LC 전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은 그제야 자신이 뿌린 번데기가 나비로 성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마음에 든 것도 아니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전생 지식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 부분에 대해 우려하지는 않았다.

그가 이지수 박사와 그녀의 신뢰 얻은 이상 이제 무서워할 것은 없었다.

‘애니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니까. 시간이 갈수록 애니 인공지능 레벨은 올라갈 거야.’

조성돈 팀장은 인상을 굳힌 최민혁 실장 눈치를 봤다.

“어떻게 할까요?”

“…그냥 둡시다.”

“네?”

최민혁은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사실 지금까지는 무리가 따랐습니다. 운도 좋았고요. 속도를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과를 보니,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네요.”

정확히는 MP3 빅뱅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나비효과로 미래가 바뀐 덕분에 이제는 전생 지식으로 재미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시점에서 MP3 열기가 너무 과한 것도 문제였다.

“완급 조절이 중요하죠. 어디 LC 전자, 아니, 한병수 실장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봅시다. 솔직히 한병수 실장은 다른 재벌 3세와는 달리 튀는 행동을 잘하지 않아서 내심을 알기 어려웠거든요. 이번 시즈벨 일도 있고 하니 그 속내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겁니다.”

“LC 전자를 더 크게 흔들 생각이십니까?”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굳이 제가 LC 전자를 더 심각하게 흔들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LC 전자는 흔들릴 테니까. 다만 사전에 미리 준비해 두는 것도 좋겠죠.”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도 얼핏 ‘개정 X 리포트’를 떠올렸다. 그 리포트대로라면 LC 전자, 아니, LC 그룹도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정말 그렇게 될까?’

잠깐 의문이 다시 치솟았다.

하지만 자신만만한 최민혁 실장의 얼굴을 보자 혀를 차고 말았다.

‘아직 멀었구나. 이미 이런 일을 수십 차례나 경험하고도 최 실장님을 의심하다니.’

다만 최민혁 실장은 뒤끝이 확실한 이였다.

“다만 그냥 구경만 하는 것은 좀 그렇죠. 피해를 본 네티즌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일과 관련해서 LC 그룹이 뒤에서 진행한 일을 PC 통신에 슬쩍 흘리세요.”

“…네.”

‘역시 최 실장님.’

* * *

저작권자를 이용해서 MP3 음원에 대한 단속을 한 것은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언론에서는 검찰과 경찰이 죄도 없는 네티즌을 소환했다는 이야기로 말이 많았다.

MP3 음원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경찰과 검찰에 끌려가서 조서를 작성했다.

너무 오버 아닌가 하는 사설이 줄을 이었다.

다만 PC 통신망 게시판에는 이번 일을 둘러싸고, 그 배후로 LC 전자를 지목했다.

[LC 그룹이 작곡가 협회에 자금을 대서 대형 로펌을 동원해서 네티즌을 고소했다!]

게시판에는 구체적인 내용도 언급되었다.

정확히 어떤 대형 로펌인지, 그 인물도 말이다.

PC 통신은 난리가 났다.

LC 전자 법무 팀은 부랴부랴 허위사실을 유포할 시에 모든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한병수 실장은 이 사태가 그나마 더 악화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새삼 이번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 실장 이 새끼 짓이겠지?’

다만 확인은 어려웠다.

지금 최민혁 실장과 하는 일은 서로 겉으로 드러내서는 곤란한 일이었다.

한병수 실장은 결국 차선책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차라리 박용혁 전무에게 넘길까?’

이번 일만큼은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더욱이 박용혁 전무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도 있고 말이다.

* * *

결국 박용혁 전무에게 연락해서 다시 만났다.

“사실 이건 지난번에 말하지 않은 사실인데,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는 우리 LC 그룹 차원에서 이미 조사를 진행했어.”

“…….”

박용혁 전무는 황당했다. 그는 뒤늦게 한병수 실장에게서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주로 확인한 것은 MP3 애니 솔루션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그로서는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도 수상쩍은 시선으로 한병수 실장을 쳐다보았다.

한병수 실장은 흠칫했다.

“설마 날 못 믿는 거야?”

“아니, 그런 것은 아닌데.”

“나도 고민을 많이 했어. 우리 LC 전자 내부적으로 다시 추가 조사를 해야 했어. 그 덕분에 시간도 제법 걸렸으니까. 결국 그 과정에서 문제가 좀 생겼어. 그 일을 도와줬으면 해.”

박용혁 전무는 PC 통신 게시판을 타고 도는 LC 전자의 루머에 대해서는 굳이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다만 이 일을 쉽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내가 확인해 보고, 다시 만나도 될까?”

“그거 좋지.”

* * *

결국 박용혁 전무는 HY 전자로 돌아가서 실무진을 불러 모아 이야기를 하고서야 LC 전자가 저지른 일을 확인했다.

그는 어이가 없었다.

한편으로 이 일이 KM 전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결국 한병수 실장을 다시 만났다.

“그 PC 통신 이야기가 사실이었어?”

“아니, 좀 오해가 있어. 다만 그 문제를 급하게 해결하기는 해야 해.”

박용혁 전무는 굳이 자세한 내막을 묻지 않았다.

“도움을 달라는 소리야?”

“어, 우리 회사 이미지가 너무 나빠져서.”

“…알겠어.”

박용혁 전무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알자 LC 전자가 싸지른 똥을 치우는 데 도움을 줬다. PC 통신에 법무 팀을 총동원한 것이었다.

LC 전자와 HY 전자가 손을 잡자 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정리되었다.

* * *

최민혁은 갑자기 HY 전자가 나서서 LC 전자를 도와주는 일을 보면서 혀를 찼다.

‘설마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이야.’

그는 내심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다.

PC 통신의 네티즌을 이용하면 LC 전자에게 큰 피해를 줄 것이라 기대했다.

결과는 그의 기대 이상이었다.

‘이건 예상 밖이네.’

그런데 그 사이에 HY 전자가 끼어든 것이었다.

두 회사는 마치 손을 잡은 조직처럼 움직였다.

HY 전자와는 낸드 메모리 공급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