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18화 (918/1,021)

#

그도 소위 말하는 HY 일가의 재벌 3세였다.

다만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의 악명에 대해서는 익히 알았다. 김광현 사장과는 달리 최민혁 실장과 계속 거래를 해왔기 때문이다.

‘잘만 풀어가면 될 것 같은데…….’

다만 확인은 필요했다.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켜만 봤지만, 이제는 그냥 제삼자가 되어서는 곤란했다.

“한병수 실장에게 전화해서 약속을 잡아.”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다만 비공식적인 채널로 연락해. 괜히 말이 나오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 * *

박용혁 전무는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최민혁 실장은 LC 전자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봤다.

LCD 사업도 있지만 아이컴 OEM 생산 때문이었다.

아이컴 OEM 생산은 오성 전자에게도 동일하게 생산을 줬다.

물론 에플을 통해서 말이다.

최민혁은 물론 에플을 통해서 이 일을 히든 보스처럼 총괄 지휘했다.

겉으로 봐서는 그의 의사 결정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실무적으로 봤을 때는 좀 다르다.

게다가 LC 전자의 특이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았다.

한병수 실장은 또한 이런 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예민하지는 않았다.

특허료와 관련해서 LC 전자가 몰래 꿍쳐 먹을 수도 있으니까.

물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두라는 격언.

바로 그 점을 지킨 것이었다.

“HY 전자 측에서 LC 전자 측 실무진을 만나서 협상 중이라고요?”

조성돈 팀장 역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실장님의 지시가 아니었다면 놓쳤을 정보입니다. 다만 그 일이 우리와 관련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며칠 더 지나야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최민혁 실장의 생각은 좀 달랐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한국에 온 이후에 생긴 일이네요.”

“네? 설마 이 일에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손길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모르죠. 하지만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에요.”

그는 순간 고민했다. LC 전자, 오성 전자는 이미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다. DL 그룹도 이젠 걱정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다른 대기업이라면 어떨까.

일테면 HY 그룹이나 대운 그룹 말이다. 한국에는 오성 전자와 LC 전자를 제외하고라도 아직 대기업이 무려 8개나 더 있었다.

최민혁은 순간 고민했다.

조성돈 팀장 역시 최민혁 실장 옆에 있으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혹시 HY 그룹이 우리를 적대시하는 것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HY 그룹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특히 오성 전자와는 달리 그자들은 아직 뜨거운 맛을 보지 않았으니까요.”

HY 그룹이 KM 전자를 만만하게 보고 덤빌 수가 있었다.

누가 그걸 부추긴다면 말이다.

최민혁 실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전생에서 최문경 부회장이 쓴 수법 중에는 이런 방식도 있었다. 차도살인지계 말이다.

‘그래서 오성 그룹과 LC 그룹에 목줄을 걸어둔 건데, 그걸 다른 기업은 모르는 것일까? 아니, 웬만하면 다들 알음알음 들었을 텐데. 하지만 모르는 대기업도 나올 수는 있으니.’

문득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판에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이들이 끼어들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겉으로 봐서는 오성 그룹이 KM 전자에 침을 발라놓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HY 그룹이라도 섣불리 자신을 건드리기는 어려웠다.

최민혁 실장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하지 않나. 굳이 이렇게 손가락만 빨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는 잠시 고민했다.

한국 대기업에 손을 쓰기 전에 밑 작업이 필요했다.

추세가 바뀌었다고 해도 증거는 있어야 했다.

그는 잠시 전생의 기억을 살폈다. MP3 산업과 관련해서 국내 대기업만이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의 상황 역시 조사했다.

가장 발 빠른 기업.

‘소니인가?’

최민혁은 소니와 관련된 정보를 우선 조성돈 팀장에게 받았다.

다행히 전생과는 똑같은 사건이 아니어도 변화가 일어났다.

‘이것 역시 나비 효과겠지?’

“…소니 측에 연락해서 미팅을 주선해 보세요.”

“소니 말입니까?”

“아마 제 이름을 잘 알 겁니다. 지난 유럽 IFA 기조연설에서 뒤통수를 맞은 사람이니까.”

“오다 히로 소니 부사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쪽에서 MP3 산업에 관심이 많은 것 같으니까. 연락하면 당장 만나자고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 * *

일본 소니는 최민혁의 전생과는 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소니의 오다 히로 부사장 때문이다.

그는 과거 IFA 기조연설 자리를 뺏기는 수모를 당했다.

그런 오다 히로가 최민혁 실장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도 처음에는 최민혁 실장에게 복수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일본 내에 한국 MP3 플레이어 업체가 마치 진주만을 공격하는 일본군처럼 몰려드는 모습을 보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음반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다른 메이저 음반업체는 MP3와 맹렬하게 저항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원칙적으로 MP3 분야에서만큼은 이들 유니버설, EMI와 같은 대형 음반 회사와 같이 손을 잡아야 했다.

실제로 소니 내부에서는 그런 목소리가 나왔다.

아니, 미국 음반산업협회와 같이 힘을 합쳐서 MP3 산업을 죽여야 했다.

하지만 오다 히로 부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오히려 이들 메이저 음반 업체의 뒤통수를 칠 계획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최민혁 실장호에 탑승한 것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한국 내의 MP3 플레이어 판매 숫자.

최근 일본 내수 워크맨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한 MP3 플레이어 판매 대수.

도저히 한국 MP3 플레이어 업체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오다 히로 부사장이 이런 차에 들은 것은 에플의 CES 전시회 출품 작품인 아이팟에 대한 것이었다.

그도 자세한 제품 제원까지는 몰랐지만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는 결국 차선책으로 소니 내의 차세대 프로젝트로 MP3 개발을 지시했다.

KM 전자와 로열티 협상을 하고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KM 전자에서 소니를 따로 차별하지는 않았다.

오다 히로 부사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일시 계약금 500억을 내놓은 대신에 300만 대 수량까지는 로열티를 면제하기로 했다.

그는 때문에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하루 단위로 조사했다.

소니 비서실은 이런 오다 히로 부사장의 요구가 황당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의 판단이 옳았다.

최민혁 실장이 최근 6개월 동안 한 행보는 황당 그 자체였다.

그런 차에 최민혁 실장이 갑자기 일본으로 오면서 만나자는 제안을 걸어오자 오히려 당황했다.

다만 최민혁 실장을 피할 이유는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오다 히로 부사장을 보자 악수를 청하면서 사과부터 했다.

“IFA 기조연설 일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괜찮습니다.”

오다 히로 부사장은 최민혁 실장과 악수하면서도 내심 감탄했다.

유창한 최민혁 실장의 일본어에.

“…혹시 일본에서 사신 적이 있습니까?”

“아뇨.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했다기에는 발음이 너무…….”

‘유창합니다’란 말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은 유들유들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서로 소통할 수 있어야 비즈니스 하기가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 언어를 네이티브 수준으로 하지는 않는다.

최민혁 실장은 전생 경험 덕분에 일본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 그는 살기 위해서 미국, 일본, 동아시아, 유럽을 돌아다녔다.

그는 그 과정에서 일본어와 같이 꼭 필요한 언어는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익혔다.

오다 히로 부사장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는 한편으로 최민혁 실장이 왜 갑자기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씩 웃었다.

“소니 쪽이 음반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MP3 산업이 급격히 팽창한 덕분에 이쪽에 이미 손을 쓴 것도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다 히로 부사장은 내심 화들짝 놀랐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소니, 정확히는 자신이 진행하는 일을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 정보가 샌 것일까? 히타치 공작소가 IPS LCD 원천기술을 빼앗긴 것도 이런 방법을 써서였을까?’

그는 자신의 막내아들 나이뻘인 최민혁 실장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긴장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그런 눈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소니 뮤직이 MP3 음원 파일 판매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이미 내부적으로 세팅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소니 뮤직이 걱정하는 것은 유니버설 같은 메이저 음반업체와의 협상이죠?”

“그건 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오다 히로 부사장은 최민혁 실장의 말을 일축했다. 아직 내부적으로도 민감한 일이라서 더 자세한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으면서 MP3 애니 솔루션을 꺼냈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KM 전자의 차세대 MP3 플레이어도 같이 꺼냈다는 것이다.

“이건 MP3 인공지능 솔루션이고, 이건 에플 제품과 거의 같은 날에 출시한 MP3 플레이어입니다. 말보다는 직접 사용해 보세요.”

“……?”

오다 히로 부사장은 의아한 눈으로 MP3 애니 솔루션을 확인해 봤다. 그는 최민혁 실장과 동행한 엔지니어 도움을 얻어서 일일이 그 기능을 확인했다.

물론 오디 히로 부사장의 입은 서서히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가장 매우 놀란 것은 역시 KMP-02A였다.

특히 기존 모델에서 애니가 추가된 모델 말이다.

“……!”

오다 히로 부사장은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은 씩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차 때문에 좀 피곤하네요. 오다 부사장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으니, 다시 약속을 잡죠. 내일이면 괜찮겠죠?”

“아, 무, 물론입니다.”

오다 히로 부사장은 크게 당황해서 말을 더듬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은 MP3 애니 솔루션과 담당 엔지니어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조성돈 팀장은 갑작스러운 최민혁 실장의 행보에 혀를 내둘렀다.

그 역시 오다 히로 부사장을 알기는 하지만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 황당하게 일 처리를 할 줄은 몰랐다.

소니란 기업은 절대 간단하지 않았다.

의사 결정 과정도 복잡하고 말이다.

이렇게 그냥 들이밀어서 상대가 자신의 제안을 수긍할 리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호텔 뷔페를 즐기면서도 조성돈 팀장의 표정을 읽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될 테니까.”

“하지만 이런 일은 적어도 몇 개월, 아니, 몇 년은 걸릴 일입니다. 소니 내부 경영진은 생각이 전혀 다를 수가 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그렇죠. 그런데 지금 일본 소니 내부 사정은 다릅니다. 그쪽에서는 미국 메이저 음반업체 뒤통수를 칠 궁리까지 하고 있으니까.”

“저, 정말입니까?”

최민혁 실장은 초밥 하나를 맛있게 먹으면서 툴툴거렸다.

“일본 애들 심리란 게 있잖아요. 남 뒤통수치는 거. 그거 정말입니다. 소니라고 해서 다르지 않아요. 저는 그런 점을 노린 거고.”

“하지만 미국 내에서 일어나는 냅스트 소송만 해도 쉽게 끝날 상황이 아닙니다. 적어도 몇 년은 소송이 더 갈 것이라 이야기가 파다합니다.”

“그렇겠죠. 정확히는 그 냅스트 소송 때문에 소니 내부에도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오다 히로 부사장은 그 리스크를 고려해서 일을 벌이는 거고요.”

“…….”

최민혁 실장은 포도주를 음미하면서 히죽 웃었다.

“MP3 산업이라는 수레바퀴는 이미 구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누구도 못 막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MP3 산업을 이용해서 누가 가장 잘 살아남느냐 하는 부분만 남은 겁니다. 오다 히로 부사장은 그런 점을 잘 활용할 사람입니다.”

“…오다 히로 부사장은 최민혁 실장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시는군요.”

“네. 오다 히로 부사장의 결정은 한국 대기업에도 영향을 줄 겁니다.”

“…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