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문경 부회장 역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도 제임스 러너 이사에게 상세한 이야기와 자료를 받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최민혁 그놈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도대체 이놈이 왜 이렇게 미친 짓을 한 것일까?’
그로서는 이 상황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록히드마틴의 힘은 그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가만, 설마 내가 록히드마틴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서 이 일을 저지른 것 아냐? 에이, 말이 안 되잖아!’
석연치 않은 점.
그런데 그도 막상 생각해 보면, 샐로먼 브러더스, 밀리아머는 전부 다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회사였다.
심지어 록히드마틴도 말이다.
“뭐, 제가 굳이 더 말해봐야 아버지에게 찍힐 것 같아서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직접 한번 조사해 보세요. 민혁이 이놈이 위험한 불장난을 하는 중이니까.”
“…….”
최용욱 회장은 황당한 표정을 한 채 입을 다물고 말았다.
CNN 뉴스에서 카일리 로엔 박사 이야기도 나왔기 때문이었다.
‘정말 민혁이 이놈이 저 일을 벌였다는 말이야?’
* * *
최용욱 회장은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등 뒤로 ‘최민혁’, ‘사드’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최씨 일가도 이번 일만큼은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특히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각오를 한 최민수가 받은 충격이 컸다.
[처, 첫째 크, 큰아버지, 이게 정말입니까?!]
최문경 부회장 역시 패닉에 빠진 최민수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이다. 어쩌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더 있을지도 몰라.]
[하, 하지만 록히드마틴은 이야기가 좀 다르지 않습니까? 도대체 민혁이가 무슨 수로 그들을 상대로 압박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그게 사실인데.]
최민수도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최민혁이 했으니, 자신도 밑바닥부터 하나씩 쌓아 올라간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민혁은 무려 록히드마틴이랑 대립 중이었다.
한국 10대 재벌도 최민혁처럼 날뛸 수는 없었다.
어지간한 일에 나서지 않던 최동영 상무가 결국 나섰다.
[형, 정말 민혁이가 록히드마틴의 사드를 건드린 것은 다른 꼼수가 있다는 소리 아냐?]
[그렇겠지. 지금 봐서는 사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더라.]
[하지만 이번 테스트 발사에서 사드 실패했잖아. 사드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가 많아.]
[민혁이 그 녀석이 그 틈을 노린 거야. 딱 시기도 좋았잖아.]
[맙소사.]
그제야 최씨 일가 분위기는 바뀌었다.
최민혁 실장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일을 저질렀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
최민혁 어머니 정미선은 충격에 빠져서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하다가 그제야 안도하고 말았다. 그녀는 최민혁에게 당장 전화라도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그녀는 다른 것보다 제임스 감독을 통해서 몇 가지를 단편적으로 들었다. 아들 최민혁의 미국 내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이다.
‘별일이 아니어야 할 텐데…….’
최훈열 전무 아내 김여정이 정미선의 그런 모습을 봤다.
[막내 동서는 혹시 아는 바가 없어요?]
정미선은 자신에게 시선이 모이자 크게 당황했다.
[아, 저는 잘 몰라요. 민혁이가 그런 건 잘 말하지 않거든요.]
의심쩍은 구석이 있는 말이지만 정미선에게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정미선의 눈치만 봤다.
최문경 부회장 딴에는 최용욱 회장에게 고자질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사실이 알려지자 최민혁에 대한 평가가 다시 달라진 것이었다.
“…….”
최문경 부회장은 그게 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젠장 되는 일이 없네. 그래도 아버지라면, 상황을 좀 다르게 판단하겠지.’
* * *
최용욱 회장은 서재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최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단한 인사.
그리고 최문경 부회장이 한 이야기를 넌지시 해보았다.
제발 최민혁이 부인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최민혁 반응은 예상과는 달랐다.
[맞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이 그렇게 말을 했다고요? 참 빠르네요. 고자질도 그 정도면 예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네요.]
[미, 민혁아, 이번 일은 문경이만을 탓할 일이 아니야. 너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 거냐?]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에요. 이왕 방산업체에 뛰어들었으니, 영향력을 좀 넓히는 것뿐이니까. 저도 얼마 전에 안 사실인데, 메이런 프로젝트에 숟가락을 올린 세력 중의 하나가 록히드마틴입니다.]
[…그게 정말이야?]
[네. 메이런 프로젝트, 아니, 이지수 박사와 관련된 연혁이 꽤 복잡해요. 사전에 미리 침 발라서 작업해 둔 거죠.]
[설마 사드 청문회는 그 보복이란 소리야?]
[아, 그건 아닙니다. 그쪽에서 사람을 호구로 보는 것 같아서 따끔한 맛을 보여준 것에 불과해요. 일은 잘 해결될 겁니다.]
[지금 사드 청문회 때문에 난리가 났잖아?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는 소리야?]
[그야 기존 사드보다 더 발전된 사드 솔루션을 보여주면 되니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애초에 사드 시스템은 장기적인 미국 전략 솔루션의 일환 중의 하나입니다. 그 프로젝트 결과가 좋지는 않았고요. 거기에 대한 보험 성격의 프로젝트가 메이런 프로젝트였죠. 네, 맞습니다. 이지수 박사님은 과거가 아주 복잡한 거죠.]
[…말장난은 그만해!]
[죄송합니다. 웃자고 한 소리였습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만 아시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약간 갈등이 표출되었을 뿐입니다.]
[…정말 문제가 없는 거냐?]
[록히드마틴이 걱정하는 것은 사드 청문회 따위가 아닙니다. 그들한테 중요한 건 사드를 어떻게 해서라도 성공하게 해야 한다는 거죠. 그건 미국 국방성 역시 다르지 않고, 미국 상원도 같습니다. 이번 일이 잘 풀려야 다음 선거에서 유리하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문경이 녀석이 걱정하는 것도 일리가 있어. 이건 너무 위험…….]
[위험한 것은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할 때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곳 상황은 돈 놓고, 돈 먹기 형국입니다. 언론에서 외부로 보이는 것과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끙.]
최용욱 회장은 결국 신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는 손자 최민혁 실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제야 의미를 깨달았다.
[미국 정부 압박 때문이냐?]
[아니라고 말을 못 하겠습니다. 아마 제가 손을 쓴 덕분에 KM 그룹 미국 수출 물량도 꽤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다 그런 거죠.]
[…알았다. 그리고 몸조심해라.]
최용욱 회장도 결국 이 정도에서 통화를 끝내고 말았다.
그도 자세한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손자 최민혁 실장이 하는 행동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결국 미국 재무부에 당한 것에 대한 보복인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국 정부를 상대로…….’
그는 쓰게 웃고 말았다.
손자 최민혁 성정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다만 그가 이해가 되지 않은 점은 손자 최민혁이 최문경 부회장을 상대로 싸우기 위해서 모든 여력을 집중해왔다는 점이다.
‘도대체 이게 문경이 그놈하고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사드 사태가 문경이 그 녀석하고 연관이 있다는 것일까?’
그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 * *
데릭 모건 이사는 제임스 러너 이사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최용욱 회장을 이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성과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이 이제 사실을 알았기에 스스로 손을 쓴다고 하는데, 성과가 없었다.
시간이라도 끌어주기만을 바랐는데, 그것도 전혀 없었다.
최용욱 회장은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그 어떤 행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KM 건설을 쥐 잡듯이 잡으면서 개혁과 혁신을 말했다.
애니 아파트에 선택과 집중을 한 것이었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아니, 당신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최문경 부회장이 문제가 있는 거죠.”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도 이번 일은 진지하게 노력한 것 같습니다.”
“노력만 하면 뭐 합니까? 계속 깨지기만 하는데. 이번 사드 청문회 때문에 제 입장도 난처해졌습니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 데릭 모건 이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이런 일은 또 처음이었다.
데릭 모건 이사는 결국 다른 대안이 없어서 데니스 샐로먼 이사에게 연락했다.
“카일리 로엔 박사 일은 어떻게 되어가는 중입니까?”
“다른 문제가 생겨서 그 부분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미국 일은 데릭 모건 이사가 오히려 잘 처리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랐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일이 좀 생겼다고만 알아주십시오.”
평소에 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데릭 모건 이사답지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데니스 샐로먼 이사 역시 이전과는 다르게 반응했다. 정확히는 예상치 못한 정보에 오히려 흥미를 느꼈다.
“이번 일은 데릭 이사님 지시에 따라서 진행하는 일입니다. 저도 꼭 알아야겠습니다.”
데릭 모건 이사는 순간 멈칫했다. 록히드마틴 관련 일은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업무를 벗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도 따지고 보면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아이디어를 낸 일이었다.
“휴우, 으음,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는 없습니다. 록히드마틴 일 때문이라고 해두죠. 그쪽에서 개발하는 사드에 문제가 생겼어요.”
“…록히드마틴이라. 청문회에서 나온 인물이니, 그렇다고 하죠. 그런데 카일리 로엔 박사와 이번 일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까?”
“네?”
“모르고 있습니까? 카일리 로엔 박사가 최근 사드 발사의 원인 분석 보고서를 미국 상원에 넘겼어요. 그걸 받은 상원이 록히드마틴을 질책했고, 추가 예산 6억 달러를 보류해 버렸습니다. 지금 사드 청문회가 시작된 것도 그 일 때문입니다.”
언론에도 자세히 나오지 않는 이야기였다.
물론 증거는 없고 말이다.
그저 최민혁 실장이 연루되어 있다고 가정해서 한 말이었다.
“…….”
데릭 모건 이사의 활동을 잘 모르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순간 황당해서 그 어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도 눈치는 있었다. 데릭 모건 이사가 록히드마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록히드 마틴에 투자했을 수도 있어.’
그러면 대충 돌아가는 상황이 파악이 된다.
하지만 그는 데릭 모건 이사와는 달리 최민혁 실장의 수작을 꽤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이었다.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다고 믿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하는 질문인데, 최민혁 실장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까?”
“그거야…….”
데릭 모건 이사는 선뜻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카일리 로엔 박사가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다고 어느 정도 짐작만 했을 뿐이다.
막상 말을 하려니, 정작 합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최민혁 실장 짓이 맞아!’
사실 이 애매한 사태 때문에 데릭 모건 이사 역시 더 큰 타격을 받았다.
최민혁 실장 이름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변해가는 데릭 모건 이사의 모습을 보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 짓이네요. 아니, 최민혁 실장이 주도적으로 일을 풀어갔을 겁니다.”
“네?”
“데릭 이사님이 그렇게 당황한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그게 최민혁 실장의 능력입니다.”
데릭 모건 이사도 최민혁 실장이 배후에 있다고 짐작하기는 했다. 다만 그도 최민혁 실장이 이 일을 직접 벌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테면 이지수 박사를 최대한 이용했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말은 달랐다. 최민혁 실장이 직접 사드 기술을 파고들었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최민혁 실장이 사드 시스템에 대해서 안다는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