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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모건 이사는 마쿨라 이사를 이용한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은 것을 보고받았다.
스티븐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쪽 연락을 아예 받지 않았다.
정확히는 송도연 로봇 때문에 충격을 받아서 외부 연락을 끊은 것이다.
이걸 오해한 것이었다.
그가 전혀 예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는 이 상황에 크게 당황했다.
지금은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사드 관련 사태를 어떻게 해서라도 진정시켜야 할 시간이 말이다.
그는 다시 답을 찾을 수 없는 벽에 부딪히자 도움이 필요했다.
다시 데니스 샐로먼 이사와, 제임스 러너 이사 두 사람을 떠올렸다.
그런데 역시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껄끄러웠다.
그는 결국 한국에 도착해서 제임스 러너 이사만 몰래 호출했다.
“…스티븐은 자존심이 강해서 우리 입맛대로 굴릴 수는 없을 겁니다.”
“압니다. 하지만 그걸 고려해서 일을 만들었는데, 상황이 꼬였어요. 더욱이 에플 직원에 대한 수사도 생각처럼 굴러가지 않고.”
이건 최민혁 실장이 미국 국무부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를 이용해서 사전에 손을 쓴 덕분이다. 마쿨라 이사와 관련된 범죄 행위라서 정상 참작의 여지가 많았던 점을 노린 것이었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이보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왜 부르지 않은 것인지 그게 의아했다.
“데니스 이사에게 연락을…….”
“아, 그분은 됐습니다. 지금 일은 시간을 끌기만 하면 되는 일입니다.”
“네?”
데릭 모건 이사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도 일을 이렇게 풀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록히드 마틴의 미국 상원 압박이 생각처럼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기존에 쓴 예산에 대한 감사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 상원은 이번 기회에 사드 프로젝트를 아예 강제로 접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가장 큰 욕을 먹은 사람은 이번 일을 배후에서 지시한 데릭 모건 이사였다. 아, 물론 외부에서는 이 일을 알지 못한다.
샐로먼 브러더스, 밀리아머, 록히드마틴과 관련이 있는 내부 세력이 모두 데릭 모건 이사에게 책임을 묻는 중이었다.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손을 써야 합니다. 아니, 최소한 최민혁 실장이 뒤에서 수작 부리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설마 최민혁 실장이 미국 상원을 압박한다는 말입니까?”
“하아, 그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요. 자료만 던져도 이 꼴이 났으니까.”
“하.”
제임스 러너 이사는 혀를 찼다. 하지만 그는 데릭 모건 이사를 비웃지 않았다. 그 자신도 최민혁 실장에게 뜨거운 맛을 봤다.
그가 그 싫어하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와 손을 잡은 것도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릭 모건 이사마저 이 정도라니.’
그는 새삼 최민혁 실장의 위험성을 깨달았다.
결국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거듭했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마침내 괜찮은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최문경 부회장을 이용하는 것은 어떨까요?”
“…어떻게 말입니까? 최문경 부회장도 KM 그룹 내의 위치가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요?”
“그렇기는 합니다. 다만 최문경 부회장은 최용욱 회장에게 의견을 제안할 수 있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아는 최용욱 회장이라면 최민혁 실장의 지금 행동을 알면 절대로 지켜보지만은 않을 겁니다.”
“무슨 뜻입니까?”
“최민혁 실장이 한 일 말입니다. 록히드마틴의 사드에 재를 뿌린 일. 최용욱 회장이 그 일을 알면 그냥 두고만 보겠습니까?”
“아.”
데릭 모건 이사는 그제야 감탄하고 말았다. 사실 최민혁 실장이 아닌 보통 사람이라면 사드 사업에 재를 뿌리기 어려웠다.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당장 미국 정부가 이 일에서 손을 뗐다.
미국 국방성은 아예 이쪽 연락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덕분에 가장 크게 당황한 세력이 밀리아머였다. 그들은 손해를 보면서 메이런 프로젝트를 포기했는데, 오히려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은 자신들을 상대로 보복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 사드가 대표적이었다.
그런데 제삼자는 이런 사실을 잘 모른다.
옆에서 봤을 때는 최민혁 실장의 행동이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최용욱 회장이 최민혁 실장을 견제할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최민혁 실장은 최용욱 회장의 말에는 이상할 정도로 소극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최용욱 회장이 최민혁 실장에게 해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분도 주고, 성장할 수 있는 자금도 대주고 했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KM 전자의 기획실장이 된 것도 실상 최용욱 회장이 배려해서였다. 실제로 종잣돈을 모을 수 있었던 것도, 비록 직접적인 관련이 떨어져도 지분을 넘긴 것 역시 마찬가지다.
“좋습니다. 그 계획을 한번 밀어붙여 보세요. 최문경 부회장에게 이번 일만 잘 끝내면, 지난 실수를 잊을 수 있다고 해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 * *
최문경 부회장은 갑작스러운 제임스 러너 이사의 호출에 영문을 잘 몰랐다. 하지만 지금 그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 의문을 가지고 말고가 없었다.
그런데 제임스 러너는 자신을 보자마자 용건만 꺼냈다.
바로 최민혁 실장이 사드 프로젝트에 재를 뿌린 일 말이다.
“이 미친놈이!”
그는 경악했다.
그 역시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에서 사드 사태를 집중 조명하는 것을 봤다.
미국 상원이 사드 관련 책임자를 줄줄이 소환해서 청문회까지 여는 것도 말이다.
물론 이 일을 다 벌인 것은 최민혁 실장이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이 한 일은 이미 사드와 관련해서 나온 청문회에 방아쇠를 당긴 것에 불과했다.
다만 이것도 명확히 그가 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카일리 로엔 박사는 KMBOOK 직원으로, 이지수 박사의 측근 중의 한 명입니다. 그 이지수 박사의 보스는 최민혁 실장이고요.”
정황 증거는 너무도 분명했다.
카일리 로엔 박사가 천재이기는 해도 아직 실무 경험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그가 사드 사태를 키웠다기보다는 이지수 박사가 했다는 것이 더 그럴듯했다.
그런데 이지수 박사가 사드 테스트 과정에 태클을 걸 수 있을까는 조금 의문이다.
다만 최민혁 실장이라면 좀 다르다. 과거 특이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더욱이 이번 일만 잘 처리하면, 과거 일을 다 잊겠다고 약속했다.
최문경 부회장 처지에서는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는 굳이 따로 무슨 계획을 잡을 필요가 없었다.
당장 내일이 가족 모임이 있는 자리였다.
최문경 부회장은 평소와는 달리 가족 식사 시간 30분 전에 도착해서 최용욱 회장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계획을 짰다.
그의 인상이 얼마나 험악한지 아무도 말 거는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가족 식사 시간 전까지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최용욱 회장도 그런 분위기까지 트집을 잡지는 않았다.
그가 대신 타깃으로 삼은 사람은 셋째인 최동영 상무였다.
“재건축 사업을 이제 완전히 결정한 거냐?”
최동영 상무는 흠칫 놀랐다. 그는 굳이 나서고 싶지 않아서였다.
“네.”
“의정부, 서울, 부산, 원주라고 했지?”
“맞습니다. 수주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이미 실무진 선에서 확인이 끝난 작업입니다.”
의정부 시금오동 재건축 사업은 1,800가구 아파트 건립이었다.
서울 명륜동 역시 마찬가지다.
KM 건설에서 충분히 검토를 거쳐서 진행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이 사업에 딴죽을 걸었다.
“애니 아파트 분위기는 어때?”
“아, 그거야 언론에서 연일 광고를 해주는 터라 크게 문젯거리가 될 것은 없습니다. 다만 애니 솔루션 때문에 아파트 내부 설계를 변경하는 데,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이미 디자인 설계가 끝난 모델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만 다른 모델이 문제였다.
기존 모델과 동일한 형태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아파트를 공장 양산품처럼 찍어 내야 하게 된 셈이었다.
KM 건설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KMBOOK 쪽에 수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KMBOOK으로서는 그 제안을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인력 부족 때문이었다.
“단 하나의 내부 디자인만 바꾸어도 애니 솔루션 안정성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게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애니 아파트 솔루션은 아직은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 솔루션이었다.
특히 음성 인식은 아파트 내부 모형에 따라서 오류 편차가 심했다.
딱 정해진 디자인 내에서만 그 오류를 바로잡았다.
따라서 정해진 디자인 모양을 벗어나서는 곤란했다.
심지어 오성 전자가 공급한 전자 제품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 제품이 디자인이 바뀌어도 추가 테스트를 진행해야 한다.
물론 이 사안은 애니 아파트를 실제로 만들고 난 후에야 안 일이었다.
일종의 아파트 버그인 셈이다.
최용욱 회장은 혀를 찼다.
“어째 좀 유니크한 기술이다 싶었는데, 그런 한계가 있어?”
“네. 애니 솔루션은 겉보기와는 많이 다릅니다. 아직 문제가 많습니다.”
“음.”
최용욱 회장은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는 자기 견해를 바꾸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이 없어. 아직 준공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있잖아. 그 기간이면, 애니 솔루션 안정성도 올라갈 거야. 재건축은 일단 정지하고, 애니 솔루션에 집중해. 굳이 불필요하게 자금을 쓰지는 마.”
“네? 재, 재건축을 다시 검토하란 말입니까?”
“아니, 내 말은 애니 아파트를 밀어 넣을 수 있도록 손을 써보란 이야기야!”
“…알겠습니다.”
이게 모두 다 최민혁 실장 때문이라는 것은 다들 알아서인지 아무도 의견을 내지 않았다.
최용욱 회장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도 있지만,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이 너무 커진 것도 있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이런 분위기가 정말 싫었다. 그도 평소라면 최용욱 회장에게 반발하지 않겠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아버지, 민혁이 그 녀석을 너무 믿지 마세요.”
최용욱 회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냐?”
“하, 제가 무슨 꼼수를 부렸다고 그러세요. 민혁이 그놈이 지금 미국에서 무슨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지 아세요?!!”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데?”
최문경 부회장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직접 일어나서 식당 벽에 붙어 있는 대형 TV를 켰다.
굳이 채널을 몇 번 돌리지 않아도 뉴스가 나왔다.
해외 특종으로 나온 그 뉴스는 다름 아닌 미국 상원에서 진행하는 록히드마틴 청문회였다.
[냉전 이후에 제3세대 국가의 전략 무기 개발이 급증했습니다. 심지어 중국은 ICBM 개발을 추진 중이고, 북한은 노동 미사일을 배치 중입니다. 이런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사드 개발 결과는 우리의 기대치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제까지 퍼부은 자금은…….]
청문회를 주도하는 미국 상원 의원의 표정은 바위처럼 단단하기만 했다.
반면 록히드마틴 직원은 창백하게 굳은 얼굴을 한 채 눈치만 보는 중이었다.
미국 상원이 카일리 로엔 박사의 사드 보고서를 받아서 분석할 때와 비교하면 지금 상원 청문회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최씨 일가는 다들 멍하니 해외 뉴스 특종 화면을 쳐다보았다.
다들 불구경하듯이 화면을 쳐다보았다.
사실 미국 상원에서 청문회를 하든 말든 자신과는 관련이 없었다.
심지어 그 업종이 방산업이다.
그게 KM 그룹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눈빛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화가 나서 소리치려고 했다.
그러자 최문경 부회장이 불쑥 말했다.
[저 상원 청문회를 촉발한 이가 카일리 로엔 박사입니다. 바로 KMBOOK의 이지수 박사 최측근 중에 한 명이고요.]
최용욱 회장은 막 소리치려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너 또 무슨… 뭐? 그, 그게 무슨 말이야?”
“간단합니다. 이지수 박사의 보스가 바로 최민혁 그 녀석이고요. 결국, 저 상원 청문회를 만든 배후가 민혁이 그놈이죠.”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록히드마틴이 어떤 회사인데 민혁이 그놈이 수작을 부려?!!!”
최용욱 회장의 격한 반응은 아무래도 미국 방산업체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