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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그제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슬쩍 꺼냈다.
“어차피 그쪽에서 메이런 프로젝트를 미는 이유가 사드와의 연계성 때문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 일을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는 그제야 최민혁 실장이 국방성의 초특급 기밀 중의 하나인 전자전 통합 시스템을 언급한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그리고 이 일은 자신이 먼저 최민혁 실장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왠지 거절할 것 같아서 말하지 않은 내용이었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최민혁도 이제 상황을 안 만큼 이대로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제 조건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미 일본 방위성에 도움을 청한 것으로 압니다. 예산 때문이겠죠? 그 규모가 8억 달러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압니다.”
“헉? 그, 그걸 어떻게 안 겁니까?!”
최민혁 실장은 경악하는 자레드 해리스 대령의 의문을 무시했다.
“저도 이번 일 때문에 이쪽저쪽에 많이 알아봤습니다. 만약 일본 방위성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이쪽에서 적극 사드 개발을 돕겠습니다. 아마 그쪽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뭐, 제가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드 보고서의 가치는 잘 알죠?”
그리고 한 가지 더.
“자금이 필요하면 제가 내놓겠습니다. 다만 그만한 이권을 내놓아야 할 겁니다. 대신에 사드 개발 성공을 약속하겠습니다!”
물론 그 성과에 대한 보상은 별개고 말이다.
최민혁은 딱 이 말만 하고 나서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나가 버렸다.
“…….”
자레드 해리스 대령은 최민혁 실장의 충격적인 반응에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일본 방위성까지 걸고넘어지면서 말이다.
‘이거 큰일이네.’
* * *
자레드 해리스 대령은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안 그래도 사드 개발 관련해서 추가 예산이 최소한 5억 달러 가까이 필요했다.
일본 방위성은 이런 점을 노려서 제안한 것이다.
다만 미국 국방성과 일본 방위청 사이의 일은 동맹국 간의 일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기술 협력이 가능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원칙적으로 거절해야 할 일이었다.
문제는 그럴 수가 없다는 점이다.
‘설마 최민혁 실장이 요격 미사일 시스템에 대해서도 잘 안다는 말인가?’
이지수 박사라면 그럴 수가 있다.
그런데 이지수 박사도 신은 아니었다.
사드와 관련된 핵심 기술은 그녀도 잘 몰랐다.
사드 관련해서 협력할 때 사드 기술 일부분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말하는 태도를 봐서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때문에 이 문제를 가지고 다시 윗선에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반응은 아주 명확했다.
무반응.
일본 방위청의 제안은 단순히 그냥 하는 제안이 아니었다.
일본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군사 기술을 어느 정도 고려해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니 최민혁 실장이 한 제안은 이런 일본 방위청 제안과 동격이라는 의미였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아마 다른 사람이거나 한국 방산업체가 이런 제안을 했다면 오히려 비웃고 남았을 일이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그렇게 무시할 수가 없었다.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이전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지수 박사에 대해서 그 어떤 행보도 보이지 말라는 내부 지침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최민혁은 이런 분위기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가 보기에 당분간은 미국 국방성도 헛짓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번 일은 이 정도에서 끝내죠. 일본 방위성이 끼어드는 것은 곤란하니까. 추후 문제가 복잡해질 수가 있습니다.”
“일본 방위청이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그것보단 메이런 프로젝트 실무진이 잘 모른다는 게 문제죠. 심지어 사드 관련된 부분은 더하죠. 지금보다 사태가 악화하도록 둘 수는 없어요.”
“…그렇군요.”
“잘 생각해 봐야 할 일은 일본 애들이 끼어들면, 여러 가지 수작을 부릴 겁니다. 데릭 모건 이사라면 이걸 명분 삼아서 수작을 부릴지도 모릅니다.”
“…사전에 작업해 두는 것이 좋겠군요.”
조성돈 팀장도 만약 작년이었다면 최민혁 실장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역시 미국에 와서 이런저런 압력을 받고서야 내막을 알았다.
미국 자본 세력은 여러 가지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 서로 반목하기도 하고, 협조하기도 했다.
‘최 실장님은 아군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이권을 나눠주고, 적에게는 오히려 견제와 압력을 가하는 수단을 썼어.’
얼핏 봐서는 쉬워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 하나하나가 수백억 달러 자산을 가진 세력이었다.
투자자도 있지만, 헤지펀드도 있다.
거기에 정치 세력도 포함되고 말이다.
그는 새삼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실감하고 그를 질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최민혁 실장은 이지수 박사 문제에 대해 가벼운 보복을 한 터라 기분이 좋았다.
“아, 그리고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도 자기 지인을 동원해서 에플 주식 매입에 한창인 것으로 파악했다고 했죠?”
“네.”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왠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가까워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대로 스티븐을 둘 수는 없었다.
“제임스 감독에게 이야기해서 스티븐에게 송도연 로봇을 한번 보여주세요. 아, 물론 자세한 내부까지는 곤란해요. 이런 기술이 있다는 정도가 좋습니다. 그래야 스티븐이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 * *
스티븐은 새삼 최민혁 실장의 저력을 느끼자 오히려 에플 공매도 현황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는 저들이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짜릿했다.
그는 당연히 기조연설에서도 자신의 역할 이외의 것에도 관심을 뒀다.
굳이 리허설 현장에 나오지 않아도 슬그머니 관람객으로 나섰다.
덕분에 송도연과의 무대 연습에서 좀 껴 보기도 했었다.
그는 이보다 조성돈 팀장을 통해서 들은 내용 때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무대 리허설을 살펴보라니, 무슨 뜻으로 한 것일까?’
원래 기조연설에서는 스티븐 자신이 주인공이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연설할 때 이야기였다.
그 외의 무대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잘 몰랐다.
제임스 감독과 핵심 스텝이 보안을 문제 삼아서 보여주지 않은 것이었다.
다만 이제 기조연설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은 이야기가 달랐다.
“오셨습니까?”
“네, 일 진행은 잘되어 갑니까?”
“최민혁 실장님이 빵빵하게 밀어주는데, 안 될 리가 없습니다.”
“역시 최 실장님이군요. 이런 일에도 꼼꼼하게 일 처리 하다니.”
“아마 스티븐도 깜짝 놀랄 겁니다.”
“네?”
“아, 내막을 잘 모르시죠.”
“…무슨 말입니까?”
“곧 아시게 될 겁니다.”
“……?”
제임스 감독은 힐끗 스티븐을 쳐다보았다. 원래라면 스티븐도 알아야 할 일이었다. 다만 워낙에 변수가 많아서 지금까지 쉬쉬했다.
하지만 굳이 스티븐에게도 숨길 일은 아니었다.
* * *
스티븐은 덕분에 습관적으로 기조연설 리허설을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화면 속의 송도연이 스티븐에게 같은 타이밍에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 손이 디지털 세상과 현실 세상을 경계로 마주했다.
송도연은 무대 장치 덕분에 밑으로 내려갔고 말이다.
그사이에 튀어나온 것은 놀랍게도 송도연이었다.
“어?!”
스티븐은 화들짝 놀랐다. 그 역시 무대에 있기에 이게 특수 효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전까지는 그냥 손만 잡았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송도연이 화면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었다.
아니,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나, 날았어?!]
그랬다.
송도연은 스티븐 손에 끌려서 현실 세상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허공을 날아올랐다.
송도연은 마치 천사처럼 허공을 날면서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I believe I can steer!]
노래가 함축하는 것처럼 송도연은 무대 허공 위를 날아서 관람석 허공 위쪽으로 쭉 뻗어 갔다.
그녀는 허공에서 빙글빙글 도는 묘기까지 보여주었다.
[……!!!]
이미 송도연의 정체를 아는 제임스 감독은 팔짱을 낀 채 그 광경을 봤다.
하지만 스티븐을 비롯한 이 광경을 처음 보는 이들은 다들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지, 진짜 날잖아? 맙소사 특수효과가 아냐!]
당연히 특수효과 따위는 아니었다.
제임스 감독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저 송도연 연출 효과를 주기 위해서 자신이 아는 모든 특수효과를 다 동원했다.
저 송도연은 완전히 로봇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속은 진짜 로봇이니까. 특히 인공지능 기능은 죽여주지.’
진짜 로봇을 가짜 안드로이드로 만들고, 다시 그 가짜 인공 기기를 진짜 로봇으로 만든 것이었다.
제임스 감독은 허겁지겁 자신을 향해서 뛰어오는 스티븐을 쳐다보았다.
“감독님,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제임스 감독은 힐끗 스티븐을 쳐다본 후에 다시 허공에서 노래를 부르는 송도연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옆자리에 놓은 노트북을 다시 확인했다.
‘55분이라, 괜찮네.’
저 송도연 로봇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배터리 소모였다.
그 부분을 줄이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해야만 했다.
거기에 표정과 동작 부분도 문제였다.
무리하게 팔, 얼굴 모터를 동작시키게 되면 배터리 소모가 너무 빨라진다.
따라서 그런 부분도 신경을 써야 했다.
이런 부분은 SF 영화 속의 한 장면이나 마찬가지다.
즉, 제임스 감독은 마치 SF 영화를 찍는 것처럼 지금 무대를 만들었다.
“감독님!!!”
제임스 감독은 단단히 굳은 스티븐 얼굴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보는 그대로입니다.”
“아니, 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게 어떻게 하늘을 난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저 표정은 뭐고, 저 동작은 또 뭡니까?!”
스티븐은 보는 눈이 있었다. 그는 저게 결코 영화 CG 효과가 아니라고 장담했다. 자기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이다.
“일종의 안드로이드라서 가능하죠.”
“네? 하, 하면 정말 저게 로봇이라는 말입니까?!”
제임스 감독은 난감한 얼굴이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에게서 저 로봇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저도 보안 때문에 자세한 것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미니 드론을 응용해서 만든 것으로 압니다. 거기에 제가 좀 손을 썼습니다.”
“설마 영화 특수효과를 말하는 겁니까?”
하지만 스티븐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말도 안 돼!’라는 소리를 반복했다. 그 어떤 특수 효과라도 저렇게 극적일 수는 없었다.
제임스 감독 역시 순순히 수긍했다.
“자세한 정보는 최민혁 실장님에게 확인하기 바랍니다. 다만 저건 다른 쪽으로 응용하기 힘듭니다. 저거 하나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만 해도 100억이 넘는다고 하니까.”
“…음.”
스티븐은 그제야 허공을 나는 송도연에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그는 설사 그렇다고 해도 저 기술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 최 실장에게 부탁해야 하나.’
하지만 아무리 최민혁 실장이라고 해도 저것과 관련된 어떤 정보를 흘린 것 같지는 않았다.
스티븐은 ‘보안’ 이슈가 떠오르자 힐끗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제야 곳곳에 배치된 경비원을 볼 수가 있었다.
다들 실전을 거친 베테랑 용병이었다.
다만 그들 역시 멍하니 허공을 날아다니는 송도연을 쳐다보기에 급급했다. 그는 아무리 자신의 상식 범위 내의 기술을 떠올려 봐도 저렇게 구현할 수가 없었다. 컴퓨터 CG 효과라도 저럴 수는 없었다.
‘맙소사.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아무리 영화 효과를 줬다고 해도 저럴 수가 있는 건가? 설마 사드 사태도 저 기술을 덮기 위해서 한 것인가?’
그렇다면 말이 된다.
최민혁 실장이 굳이 사드 사태를 부추겨서 혼란을 일으킨 것 말이다.
만약 공매도 세력이 저 기술에 대해서 알았다면, 테러를 저지르고도 남았다.
‘가만, 인공지능 기술이 사용된 애니 아파트도 있잖아. 맙소사, 이미 저 안에 사용된 기술을 상업적으로 이용이 가능한 건가? 아, 아이팟과 아이컴이 있었구나. 공매도 세력은 이 정보를 모르겠지.’
스티븐은 그제야 에플이 세계 최초로 애니 인공 지능 관련된 제품을 곧 출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이 지금 봐서는 뭔가 다른 계획을 꾸미는 것 같았다.
‘이번 기조연설과 CES 전시회는 시작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