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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72화 (872/1,021)

#872.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그게 쉽게 될 리가 없어. 블룸버그가 뭐가 아쉬워서 협력 사업을 한다고, 하, 아니다. 너라면 좀 다르겠구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쉽게 일이 풀려가다니."

최용욱 회장은 혼자 중얼거리면서 자책하고 말았다. KM 그룹은 나름 막힌 매출 절벽을 돌파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케이블 TV 사업은 당연히 후보자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콘텐츠 자체 벽에 부딪힌 터라 더 나아가지 못했다.

사업 제휴 업체를 찾아봐도 마땅한 업체도 없었고 말이다.

있다면 대부분 한국 대기업이 이미 선점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손자 최민혁은 그 일을 그저 한 번의 협상만으로 이권을 얻어냈으니.

최용욱 회장은 혀를 내두른 채 최민혁 실장 주장에 반기를 들지 못했다.

최두진 사장조차 눈을 반짝이면서 주판을 튕겼다.

두 사람이 그 정도였으니.

"……."

김여정은 모른 척하면서도 최민혁 실장이 말하는 내용을 되새겼다. 그녀는 이 정보가 생각보다 귀중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가만, 블룸버그라면 그 블룸버그를 말하는 거잖아. 맙소사 이런 정보를 듣게 되다니!!'

최민혁은 김여정의 모습에 의미심장하게 웃고 말았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

***

모든 일이 그렇지만 양면이 있다.

세계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했지만 계속될 것이라 믿지 않았다.

KM 그룹 기획 조정실 역시 비슷하다.

이와 관련된 정보를 받은 최문경 부회장 역시 이런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도 요즘 오락가락하는 개정 X 리포트보다는 오히려 기획 조정실 보고를 다시 검토했다.

그는 물론 국내 샐로먼 브러더스의 동향 역시 빼놓지 않고 살폈다.

그 자신이 넘긴 정보를 가지고 새로 먼 브러더스 한국 지사가 정신없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 결과를 받지 못했다.

권재홍 비서실장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샐로먼 브러더스 측 내부 사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쓰게 웃었다.

"자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무리수를 던지면서 일이 엉클어진 것이니까."

그 역시 최민혁 실장에게 대응하면서 샐로먼 브러더스를 너무 찬밥 취급했다. 덕분에 자신이 누릴 혜택도 이제는 받지 못했다.

다만 굳이 이 일에 집착하지 않았다.

자신과 샐로먼 브러더스는 쉽게 떨어질 수가 없는 관계였다.

'어차피 내 자금을 운용하는 이상 단기에 어떤 움직임을 보이기는 힘들지.'

최문경 부회장은 물론 이런 시기에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를 자극할 행동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계기가 있다면 서로 좋아질 테니, 말이다.

'병문이 그 녀석이 이런 방식은 참 잘했지.'

최병문 상무는 인종차별을 받으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노력이 결국 샐로먼 브러더스를 감동하게 했고 말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하루 단위로 이일을 생각하다 보면, 최민혁 실장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는 덕분에 차가운 이성을 다시 회복했고, 최민수가 KD 통신 지분을 증여받는 것을 보면서 확신했다.

'아직 기회는 있어. 아버지 성격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최용욱 회장의 가족 사랑은 한국 재벌 중에도 유니크했다.

그런 그라면 아무리 최민혁 실장이 능력이 있어도 재산을 모두 최민혁 실장에게 상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그 재산이 오히려 많이 늘어났다.

"…아버지 재산이 얼마 정도 늘어난 것인지 확인이 끝났어?"

권재홍 비서실장은 최문경 부회장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최용욱 회장님은 미국 경기와 세계 경제 성장에 베팅했습니다. 덕분에 많게는 1,000%, 작게는 200% 이상 이익을 얻었습니다."

실제로는 그 이상도 있었다. 특히 에플 주식을 최민혁 실장의 조언에 따라서 팔았다 샀다를 반복하면서 시세차익도 챙겼다.

KM 센서 지분 가치는 빼고 말이다.

"액수가 얼마야?"

"그건 아직 확정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 쪽 비자금은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권재홍 비서실장은 최문경 부회장이 물러나자 한 가지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최민혁 실장이 하는 일은 늘 계획이 있습니다. 이번에 최민수 군에게 증여한 지분도 따지고 보면, 매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KD 통신, KD LCD는 막대한 부채가 있고, 더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런 점도 좀 의심스럽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의도했다고 전 판단합니다."

"…그렇겠지."

최문경 부회장이 그 점을 잘 알기에 이번 증여는 딱히 막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최동영 상무에게도 나서지 말라고 조언했다.

차라리 이번 일이 일어나야 재산 증여가 더 쉽게 일어날 것이라 봤다.

더욱이 지금 세계 경제 상황이 좀 애매했다.

권재홍 비서실장이 그 점을 지적했다.

"개정판 X 리포트에 따르면, 작년 해외 투자 자체가 너무 컸습니다. 주식, 채권과 같은 금융 상품은 너무 거품이 많이 꼈습니다. 멕시코 페소 사태 때문에 중남미 경제가 무너지면서 그 대안으로 동아시아 쪽으로 몰렸고요."

동아시아 경제 성장은 거품을 생각보다 많이 키웠다.

아니, 오히려 거품을 의도적으로 키운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개정 X 리포트에는 이런 구체적인 점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지적했다.

"…설마 중국을 말하는 건가?"

"네. 너무 안정적입니다. 때문에 이 흐름대로 두지 않을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중국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투자자 처지에서도 곤란하니까요."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고집을 부린 적은 없잖아?"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자존심뿐입니다. 불협화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우존스지수는 서서히 둔화될 기미가 보입니다. 미국이 자국 상황 때문에 중국을 건드릴 수도 있습니다."

"글쎄, 자네 예측은 알겠어. 하지만 경제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하지만 바트화 사태를 보더라도 뭔가 일이 진행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최민혁 실장이 우려한 부분이 이것과 관련이……."

"…그건 너무 나간 생각이야. 자네가 민혁이……."

그때 비서가 후다닥 들어와서 한 사람이 왔다는 것을 밝혔다.

"김여정이 왔다고? 흠."

고민은 길지 않았다.

김여정이 이렇게 직접 자신을 찾아온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들어오라고 해."

***

김여정은 세계 경제가 어떤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미국이 인플레 때문에 금리를 올릴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말이다.

그녀는 그래서 자신이 들은 내용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말했다.

"…블룸버그 TV라니."

최문경 부회장은 생뚱맞은 표정을 한 채 얼굴을 와락 굳히고 말았다.

갑툭튀로 튀어나온 블룸버그 TV는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한 일은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 최민혁과 관련된 정보를 흘린 것뿐이었다.

'설마 그 일과 관련이 있다고?'

"정말 민혁이 그놈이 블룸버그와의 협상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말했습니까?"

"제가 바로 옆에서 들었습니다!"

권재홍 비서실장 역시 혀를 내둘렀다.

"최 실장은 지금 CES 전시회 준비막바지에 정신이 없을 텐데, 한국에 와서 뜬금없는 케이블 TV 사업 이야기를 최용욱 회장님과 나누었다니. 좀 이상하군요."

"아니, 난 그보다 그놈이 왜 갑자기 블룸버그 TV를 이야기하는 줄 모르겠어요."

"아, 그것도 그렇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이성을 꽤 회복한 덕분에 이전처럼 흥분하지 않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 '블룸버그' 연관성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 맞다, 기획 조정실에서 블룸버그측과 사업 제안을 하지 않았어?!"

권재홍 비서실장도 뒤늦게야 한 가지 사건을 떠올렸다.

"그 프로젝트는 블룸버그 측에서 거절해서 끝난 것으로 압니다."

"그 일은 장승일 실장이 처리했잖아. 그런데도 실패한 거야?"

권재홍 비서실장은 '장승일 실장'이 름에 흠칫하기는 했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장 실장이라고 해서 모든 일을 다한 것은 아닙니다. 블룸버그는 그만큼 우리 회사에 관심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래? 그런데 민혁 이놈은 이 일을 가볍게 처리했다는 건가?"

최문경 부회장은 혀를 찼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권재홍 비서실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마주한 채 최민혁 실장의 최근 동향 정보를 떠올렸다. 하지만 블룸버그와 관련된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그런 김여정의 얼굴을 보면서 혼자 독백하듯이 말했다.

그는 김여정이 이 중요한 정보를 알았다는 것을 의심했다.

'민혁이 이놈 행동이 이상하잖아.'

"사실일까? 민혁 이놈이 거짓으로 수작 부린 것이 아닐까?"

김여정은 자신이 전한 정보가 오히려 거짓일 수 있다는 말에 크게 당황했다. 그는 최용욱 회장과 최민혁 실장대화를 듣고 말했기 때문이다.

"저, 정말이에요. 불과 몇 시간 전에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바로 찾아왔습니다. 설마 제가 아주버님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말입니까?!!"

"아,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그냥 너무 갑작스러워서 하는 말입니다. 지금 민혁이는 CES 전시회 준비로 바쁠……."

"아, 맞다, 그 CES 전시회를 케이블 TV 통해서 중계한다고 했어요. 블룸버그 TV와 손을 잡고, 국내에 합작 회사도 설립한다고 했고요. 아버님께서 최민혁 실장의 제안에 아주 넋을 잃었어요."

"……!"

최문경 부회장은 그제야 경악했다.

권재홍 비서실장 역시 기가 막혀서 소리쳤다.

"…CES 전시회를 블룸버그와 손을 잡아서 만든 케이블 TV로 중계한다는 말입니까?"

"네!!"

"……."

최문경 부회장은 한동안 입을 열수가 없었다. 블룸버그 TV가 CES 전시회와 관련이 있다면 이야기는 아주 많이 달라진다.

KM 그룹 계열사 중에는 케이블 TV와 관련된 전문 인력, 기기가 어느 정도 다 갖추어져 있는 곳이 있었다.

물론 매각을 검토 중이기는 하지만 다른 계열사와는 달리 바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최용욱 회장의 집착 때문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최용욱 회장의 미련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더욱이 지금은 최용욱 회장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다만 그는 조카 최민혁의 의도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민혁은 지금 미국에서 진행하는 큰 일이 있는데, 고작 케이블 TV에 손을 대려는 의도 말이다.

권재홍 비서실장이 고민하다가 불쑥 한 가지를 추론했다.

"혹시 경영권 승계 때문이 아닐까요?"

"아니, 그건 더 말이 안 되잖아. 미국에서의 실적이 오히려 경영권 승계에 큰 도움이 되잖아."

"그거야 일반인이 보면 그럴 겁니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님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분은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직원도 똑같이 생각합니다."

"아니, 그것과 이것이 무슨 관계가……."

"구조조정 말입니다. KM 그룹은 일단 구조조정이 잘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갈려 나간 직원이 꽤 많습니다. 최용욱 회장님도 그런 점을 많이 우려했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불과 지난주에 있었던 사장단 회의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런 말은 했군. 하지만 난 그냥 구조조정에 대한 반대급부로 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민수군에 대한 증여도 있고, 아마 마음이 복잡할 겁니다. 그렇다면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하지 않을까요?"

"흠."

최문경 부회장은 전혀 예상도 못 한 지적에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권재홍비서실장은 딱 최용욱 회장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서 판단했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는 김여정을 쳐다보았다. 김여정은 분위기를 파악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민혁에 대한 복수를 은근히 부탁했고 말이다.

"말해봐."

권재홍 비서실장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이미 우리가 최민혁 실장에게 열세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른 방법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최용욱 회장님의 인간적인 면을 공략하는 겁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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