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4.
바트화 사태.
최민혁 실장이 모건 스탠리를 괴롭힌 일은 처음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뒤늦게 최민혁 실장에게 당한 감정 때문에 이 사실을 아는 지인에게 알렸다. 최민혁실장에게 당하지 말라는 경고를 한 셈이다.
복수심 때문이었다.
댄 스티븐 보좌관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역시 데릭 모건 이사에게 이 정보를 들었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그건 좀 더 확인해 봐야 할 사안입니다. 그 이야기를 꺼낸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믿을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데릭 모건 이사도 멈칫했다. 생각해 보면 그 여우 같은 양반이 이런 사실을 말한 것 자체가 다분히 의도가 있어 보였다.
"…최민혁 실장과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전 그렇게 봅니다. 오히려 물타기라고 봅니다. 그 일 때문에 우리 측도 괜히 최민혁 실장을 잘못 판단해서 모건 스탠리에 시간 낭비만 했습니다."
"글쎄."
데릭 모건 이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결과적으로 맞는 이야기였다. 태국 바트화 플랜에 대해 최민혁 실장은 스토커처럼 매달리더니 정작 나중에 가서는 그냥 손을 떼버렸다.
이게 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이 일은 쉽게 끝날 일이 아니었다.
이해 관계 문제를 떠나서 자존심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모건 스탠리가 어떤 집단인데, 협박을 당하고서 그냥 넘어가겠나.
최소한 모건 스탠리는 최민혁 실장을 한 방 먹일 것으로 생각했다.
놀라운 것은 그 결과.
둘은 오히려 손을 잡았다.
'이게 말이 되나?'
그가 아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절대로 일을 이렇게 처리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자기 자존심을 접을 정도로 최민혁 실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데릭 모건 이사는 뒤늦게 모건 스탠리 쪽에 알아보고 나서는 한동안 웃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이 실로 교묘하게 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동기 자체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태국 쪽 작업을 노린 것일까?'
이게 참 애매했다.
최민혁 실장이 한국을 생각하는 애국자라면 그럴 수가 있다.
한국을 위해서 정보를 알려고 했을 테니까.
'다만 그 플랜은 한참 뒷순위로 밀려있어. 가능성도 별로 없는 일이야. 설마 최민혁 실장은 그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는 것일까?'
그건 더 이상했다.
그래서 최민혁 실장에 대해 고민할수록 블랙홀처럼 그 밑바닥을 알 수가 없었다.
데릭 모건 이사는 답이 없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이 엮여 있는 일은 도통 끝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일 하나하나는 결코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냥 넘어갔다간 쓰라린 고통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에플이 그랬고, ARN이 그랬으면, 퀄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최민혁 실장 말이야. 일단 가용한 모든 인원을 다 동원해서 최민혁실장 정보를 다 확인해 봐. 관련이 없는 부서라도 상관이 없어. 최민혁 실장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다 파봐!"
"…알겠습니다."
***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는 갑작스러운 윗선의 지시에 당황했다.
각 투자 부서에 가용 인력이 있다면 지금 하는 일을 홀딩하고, 최민혁 실장 관련 정보를 파보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 일에 크게 반발하는 이는 없었다.
최민혁 실장의 명성이 자자해서가 아니었다.
최근 중국에서 진행하는 투자 중에 많은 부분이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조사는 중국,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쪽으로도 사업 영역을 넓혔다.
그 과정에서 애플, ARN, 컬컴과 같은 회사가 타깃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정보는 크게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미 어느 정도 다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만 그 정보를 소홀히 한 곳도 있었다.
최민혁 실장이 의도적으로 매출 자체를 줄였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구골과 KMBOOK이었다.
구골은 야후 때문이었다.
야후 상장 이슈와 관련되면서 정보가 잘 부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KMBOOK 역시 무시할 수가 없었다.
AOL이 KMBOOK의 메신저 서비스에 눈독을 들이는 중이었다. 이들은 메시전 서비스 사업부 인수에 무려 8억 달러 제안을 내밀었다.
"……."
데릭 모건 이사는 충격에 빠져서 이 보고서를 수십 차례나 읽었다. 그는 왜 이 정보를 이제야 안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최민혁 실장의 그림자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바트화, 주식, 애플 공매도와 같은 사태를 가지고 계속 시선을 돌린 것이었다.
그래도 샐로먼 브러더스라는 조직이 무능하지는 않았다.
알고 보니, 이미 관련 부서에서 이 두 회사에 손을 써 놨다.
"…구골이나 KMBOOK 쪽은 어때? 우리 쪽 사람을 집어넣기로 한 것 말이야."
"일단 어렵게 넣기는 했지만, 아직 핵심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더욱이 내부 보안이 너무 철저해서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습니다."
"설마 최민혁 실장 그 인간이 벌써 눈치를 챈 거야?"
"그게 문제가 아니라 KM DVR 시스템이 문제입니다. 보안 테스트라는 명분으로 본사 건물 안에 이 시스템을 설치했는데, 인공지능이 영상 데이터를 자동으로 분석해서 관리합니다. 심지어 연방 정부에 그 솔루션을 팔아먹기도 했습니다."
KM DVR 시스템, 특히 메인 시스템과 연결되는 경우에는 굳이 KM DVR만이 아니라 PC와 같이 연동해서 사용한다.
따라서 애니의 지능 수준은 폭발적으로 올라갔다.
심지어 최상위 서버 시스템까지 응용하는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음성, 영상 인식 기능이 더 올라가기 때문이다.
데릭 모건 이사도 너무 놀라서 한동안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도 KM DVR 사업을 모르지 않았다. 아니, 너무 잘 알았다. 미국 연방 정부를 광고 모델로 사용해 먹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일 밑바닥에도 뭔가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것은 몰랐다.
"…그런 것도 가능해?"
"KM DVR에 사용된 인공지능 시스템을 꼭 거기에서만 쓸 필요가 없습니다. 더 상위 시스템에 이식도 가능합니다. 다만 그 일은 KM 센서가 아니라 KMBOOK에서 따로 처리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직 상업적인 솔루션이 아니라 주먹구구식 판매 단계였다.
'설마 이것도 최민혁 실장 수작이야? 와, 정말 너무하는구나.'
"하."
데릭 모건 이사는 마치 해머로 한 대맞은 사람처럼 정신이 멍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과 대립하면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는 다시 댄 스티븐 부장이 뒤늦게 슬쩍 내민 KMBOOK 솔루션 매출 현황을 확인하고는 이마를 잡고 말았다.
정확히는 매출이 문제가 아니라 이 솔루션을 적용한 곳이다.
미국 연방 정부 중에서 보안을 요구하는 곳이 대다수였다.
그것 때문인지 미국 메이저 기업 몇 곳도 이미 테스트 중이었다.
겉으로 알려진 KM 센서와는 달리 물밑에서 또 다른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가만, 일은 그래도 이지수 박사가한 실적이야? 아, 결국 영업은 최민혁실장이 했구나."
"네."
"기가 막히네."
데릭 모건 이사는 양손으로 머리를 잡은 채 자책하고 말았다. 이지수 박사에 대한 것은 이미 사전에 충분히 보고받았다.
정확히는 메이런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10년 전부터 알았다.
다만 그 역시 인종 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 동양인 여자 하나가 무슨 큰 역할을 하겠나 싶었다. 심지어 테일러박사를 은근히 밀어주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드러난 이지수 박사의 역량은 상상도 못 한 수준이었다. 이지수 박사의 인공지능 기술 수준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한 세대를 앞서간 기술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이지수 박사의 인공지 능 기술 수준은 최민혁 실장이 죽기 전의 기술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었다.
물론 디테일이나 규모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정말 믿기 어려운 사실은 최민혁 실장은 이런 이지수 박사의 실력과 잠재력을 잘 알았다. 심지어 그 잠재력을 키우기도 했다.
데릭 모건 이사는 뒤늦게야 자신이 아주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능한 빨리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알아봐. 물론 쉽지 않다는 것은 알아. 그러니 필요하다면 인센티브를 더 제안해 봐. 100만 달러, 아니, 300만 달러를 제공해도 좋으니까!!!"
"…알겠습니다."
***
최민혁이 보안과 더불어서 가장 크게 신경 쓰는 것은 인력 채용이었다.
그 자신이라도 내부에 첩자를 투입해서 일을 만들 테니 말이다.
그가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역시 KM DVR과 애니를 이용한 인공지능 감시시스템이었다.
이지수 박사는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최민혁 실장 의도를 잘 파악했다.
더욱이 이 시스템은 딱히 시스템적인 요인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음성, 영상 정보를 토대로 분석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정보 분석은 이지수 박사가 최민혁 실장과 손을 잡은 후에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이었다.
이 시스템 덕분에 노골적으로 내부 정보를 빼돌리려는 직원을 적발했다.
그들은 강하게 반발했지만, 증거 앞에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김명준 과장은 그들을 설득해서 배후도 알아냈다.
그런데 그 배후가 한두 곳이 아니었다.
"샐로먼 브러더스만 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보다는 너무 많습니다. 특히 방산업체 쪽이 문제입니다."
어지간한 명성이 있는 방산업체는 다 내부 첩자를 들여보냈다.
최민혁 실장이 그들을 걸러내지 못한 것은 그만큼 그들이 자질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이 대학 시절에 방산업체들과 알게 모르게 엮여 있었다는 점이다.
다만 그래도 동향 정도는 알 수가 있었다.
사전에 이런 사실을 짐작했음에도 인원을 충원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 매출 구조나 미래 가치가 너무 급속도록 커졌기 때문이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생각보다 독이 오른 것은 사실이네요. 한 번에 세명이나 집어넣다니."
더욱이 그 대상은 하버드, 칼텍, MIT 출신으로 잠재력도 나쁘지 않은 친구들이었다.
이 정도 인력이니,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최민혁 처지에서는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걸린 친구들 쪽하고 일단 협상을 해보세요. 이중 첩자로 만들 생각이니까. 우리 제안을 받아준다면, 이번 일은 없던 것으로 해주겠다고 하세요. 다만 배신하면 증거를 FBI에 넘기겠다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샐로먼 브러더스라면, 내 일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지. 어쩌면 당연한 일이야. 아직은 조심할 필요가 있어.'
***
데릭 모건 이사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최민혁 실장이 투자한 회사 정보를 살피면서 새삼 최민혁 실장이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댄 스티븐 부장은 데릭 모건 이사의 마음을 잘 알았다.
"지금 구골이나 KMBOOK를 건드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워낙에 폐쇄적인 운영과 보안 때문입니다. 차라리 다른 대안이 어떨까요. 제가 보기에는 최민혁 실장이 노린 것은 스티븐일 겁니다. 이번 CES 기조연설 강연자로 손을 쓴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전시회를 노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스티븐이라……."
데릭 모건 이사는 피곤했다. 최민혁실장은 일을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 찝쩍, 저기 찝쩍 건드리기만 했다.
그러니 계획 자체가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다.
다만 아직 최민혁 실장을 직접 건드리지 못한 이유가 있다.
최민혁 실장은 각 회사 지분을 인수한 후에 정말 놀라울 정도로 철저한 방어벽을 쌓았다.
그는 때문에 최민혁 실장과는 달리 '스티븐'을 고민하다가 문득 노릴 만한 구멍이 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티븐은 에플로 귀환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티븐을 흔들어서 에플을 흔들자고?"
"네. 누가 뭐래도 최민혁 실장은 에플 지분을 여전히 32%나 들고 있는 대주주입니다. 스티븐을 흔들어서 에플을 자극하면 타격을 받을 겁니다."
"애플 주가 말인가?"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지금 애플주가는 7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일 때문에 최민혁 실장 역시 높은 평가를 받는 중입니다."
"혹시 에플 주가가 우리 쪽에서 손을 써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