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49화 (849/1,021)

#849.

그들도 이지수가 박사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거 자료를 살펴보면, 이런 일은 이전에 없었다.

물론 이지수 박사의 배후가 최민혁 실장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최민혁 실장은 수작을 부릴 동기가 충분했다.

만약 최민혁 실장이 메이런 프로젝트의 내막을 알았다면 충분히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우려가 마냥 근거 없는 걱정이 아니었다.

‘이거 정말 문제가 되는 것 아냐?’

그들은 최민혁 실장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다만 메이런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이 염려스러웠다.

그리고 리스크는 생각보다 컸다.

메이런 프로젝트에는 국방부, 방산업체 불법 로비 문제가 적나라하게 엮여 있다.

더욱이 무인 항공기 기술은 미국 국방성의 미래에 너무도 중요한 것이었다.

만약 미국 언론이 이 일을 안다면 가만히 넘어가지 않을 게 분명했다.

최근 최민혁 실장과 워싱턴 포스트가 돈독하다는 이야기도 있고 말이다.

‘설마 최민혁 실장이 톰 피트 기자에게 정보를 흘리지는 않겠지.’

결국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이 대충 결론을 내렸다.

“…테일러 박사 쪽은 제가 따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테일러 박사의 부친인 밀리아머 윌리엄 사장은 대화가 되는 인물입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여기에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다들 주판 굴리기에 바빴다. 다만 그들은 곧 인상을 찡그렸다. 만약 이지수 박사 일의 배후가 최민혁 실장이라면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마 자신들에게 보복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미친 짓을 하지는 않겠지?’

역시 이권에 관심이 많은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슬쩍 한 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차라리 최민혁 실장에게 재정 상태가 안 좋은 방산업체 지분을 넘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

여전히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토종 한국인에게 미국 방산업체 지분을 넘긴다는 것 말이다.

이권만 놓고 보면 괜찮은 생각 같았지만 차마 이 자리에서 속내를 밝히지는 못했다. 다들 은밀히 찬성한 것이었다.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혀를 찼다. 그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더 신경을 썼다. 지금은 최민혁 실장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

굳이 반감을 품은 인물을 보낼 필요는 없었다.

‘뭘 그렇게 머리를 굴리려는지. 보자, 누구에게 지시를 내려야 할까.’

* * *

조시 로버트 국무부 아태 부차관보는 갑자기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하지만 까라면 까야지.

그는 최민혁 실장에게 연락해서 미팅을 잡았다.

최민혁 실장은 국무부 아태 부차관보 만남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FBI 습격 이후에 분명히 다른 행보를 보일 것으로 생각했다.

다만 이 자리에서 듣게 된 내용은 그저 황당하기만 했다.

“네? 미국 방산업체 지분 인수 말입니까?”

동행한 파르빈 라미네즈 국장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는 냉소적인 표정을 한 채 그저 입을 쿡 다물고만 있었다.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파르빈 라미네즈 국장에게 눈치를 줬다. 그 역시 이 일이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다만 대충 눈치는 있다.

“지난 재무부 일도 있고 해서 전향적인 제안을 한 것 같습니다.”

최민혁은 다소 당황했다. 설마 방산업체 지분 이야기가 나올지는 몰랐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KMBOOK 쪽에 라이센스를 주면 됩니다.”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KMBOOK의 현재 가치를 고려하면, 지금은 상관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미래 가치를 감안하면 말이 나오겠죠.”

“흠.”

최민혁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KMBOOK 상장 이후를 걱정하는 거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메신저 서비스의 미래는 절대 가볍지가 않았다. 애초에 KMBOOK이 노리는 것이 그 미래니까.

다만 지금은 곤란했다. 아직 미국 내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페이스북이 대박을 터뜨린 시점이 있었어. IT 버블의 근원 역시 마찬가지야. 클린턴 행정부가 이 미래까지 본 것일까?’

클린턴 행정부도 나름 노력하기는 했지만, 미래를 완전히 읽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최민혁은 그제야 한국 IT 산업이 시작이 좋았지만, 미국에 다 빼앗긴 이유를 알았다. 결국에는 타이밍 문제이니까.

‘스마트폰 사업을 서둘러서는 곤란하겠어.’

그는 그제야 냅스트를 퍼뜨려서 MP3 산업 자체를 키운 방식이 또 한 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은 스마트폰 사업과 관련된 백그라운드 산업에 대해서는 다시 검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사실 KMBOOK을 통해 방산업에 끼어드는 것도 이지수 박사 때문이다.

따로 방산업체 쪽에 괜히 발을 들였다가는 견제를 더 받을 수도 있었다.

최민혁은 미국 정부의 제안을 전향적으로 되돌아보았다.

조시 로버트 아태 부차관보가 소리쳤다.

“실장님?”

“아, 죄송합니다. 잠깐 생각할 일이 있어서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는 돈이 되지 않는 방산업체 지분을 사들일 생각은 없었다.

‘뭐, 돈이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

“하면 무인 군사용 드론 관련 기술을 제가 인수할 방산업체에 넘겨야 하는 겁니까?”

“그게 아무래도 좋지 않겠습니까?”

“으음, 생각 좀 해봅시다.”

최민혁은 막상 대답하고도 혀를 찼다. 그는 미국 방산 사업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견제를 받는 처지에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방어보다는 공격이 차라리 나으니까. 아니, 차라리 잘되었어. 방산 사업을 이용해서 테일러 박사를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뭔가 추가적인 반응이 나올지도 모르겠어. 이 일은 한번 슬쩍 정보를 흘려 보면 답이 나오겠지.’

* * *

최민혁 실장이 미국 내의 방산업체 담당자와 만난다는 이야기가 갑자기 퍼져 나갔다.

그는 실제로 몇몇 방산업체 담당자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굳이 이 정보를 숨기지도 않았다.

당연히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최민혁 실장 때문에 예민한 데릭 모건 이사 역시 그 대상 중의 한 명이었다. 아니, 그는 바로 한국에 가서 재정경제원 이환채 차관을 만났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최민혁 실장이 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간 겁니까?!”

이환채 차관은 안 그래도 최민혁 실장 때문에 한숨을 내쉬었다.

“…좀 바빴습니다.”

“아니, 이번 일은 이야기가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그도 지친 얼굴로 말했다.

“당신네들 때문에 문제가 생겼어요. 이달 자본수지 흑자가 무려 70억 달러를 돌파해서 작년 대비 무려 3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네? 그게 무슨…….”

“샐로먼 브러더스 측이 KD 통신, KD LCD 지분을 사들이려고 달러를 들여온 것으로 압니다. 설마 아니라고 할 겁니까?”

“아, 그거야…….”

데릭 모건 이사는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 자본수지 여건이 미국처럼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무리수를 둔 덕분에 자본 유입이 너무 많이 늘어났다.

이런 문제가 생긴 데는 역시 국내외 금리가 큰 것도 한몫했다.

국내 금리가 국제 금리보다 무려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샐로먼 브러더스가 막대한 자금을 국내로 끌어들였으니. 그 틈새를 비집고 외환이 미친 듯이 들어온 것이었다.

이환채 차관이 데릭 모건 이사의 부탁을 받아서 최민혁 실장에게 손을 쓰려고 했을 때는 이미 이 일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특히 한 가지 점을 지적했다.

“해외 투자 은행의 국내 증시 개방 압박을 둘러싸고는 말이 많습니다. 이런 중에 당신네가 무려 10억 달러를 갑자기 끌고 들어오면 문제가 됩니다. 설마 모르고 있었습니까?”

“하아.”

데릭 모건 이사는 몰랐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거지 같은 상황이었다.

이환채 차관은 어이가 없었다.

“전 최민혁 실장이 의도적으로 일을 벌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겁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최민혁 실장은 자신이 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데릭 모건 이사 당신이 하려는 일을 알았다면 사전에 손을 썼을 수도 있습니다.”

“설마 최민혁 실장이 아예 날 노려서 이번 일을 벌이었다는 말입니까?”

“그러지 않을까요. 전 그것 때문에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다시 분석한다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

데릭 모건 이사는 입을 쿡 다물고 말았다. 그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개입한 것을 최민혁 실장이 알았다는 말인가?’

이환채 차관은 푸념을 털어놓았다.

“당신네가 이번에 한 일 때문에 우리도 처지가 난처해졌습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외자 도입 확대가 다른 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실 아마추어 같은 정부의 행보에 대해 이미 말들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샐로먼 브러더스가 한 짓 때문에 그 일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외국자본의 국내 유입이 마냥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직전 투자, 기술 이전은 좋을 수가 있다.

그런데 샐로먼 브러더스의 갑작스러운 행보는 꼭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다.

특히 단기성 투자 자금이 국내에 들어오면 환율 문제를 만들 수 있었다. 이건 대외 수출 요건을 흔들어서 오히려 국내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도 있다.

이환채 차관 역시 아는 문제이지만 무시했다. 그런데 이번에 최민혁 실장이 한 일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는 더욱이 최민혁 실장에게 손을 쓰려고 하는 중이었다.

만약 최민혁 실장이 이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면 미리 손을 썼다고 봐야 했다.

그는 결국 다급하게 최민혁 실장에 관해 내사를 하는 이들에게 경고했다.

데릭 모건 이사도 이환채 차관의 표정에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었다.

“하면 최민혁 실장이 미국으로 간 것도 날 노리는 거라는 말입니까?”

이미 최민혁 실장은 샐로먼 브러더스를 위한 초대형 지뢰를 설치했다.

다만 그걸 데릭 모건 이사가 아직 모를 뿐이었다.

이환채 차관은 다행히 최민혁 실장을 얕잡아보지 않았다. 아니, 바보가 아닌 이상 최민혁 실장이 국세청을 상대로 한 짓을 보고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샐로먼 브러더스가 만든 문제를 검토한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 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우리 쪽에 손을 썼으니, 그다음은 당신네가 아닐까요? 더욱이 미국으로 갔다면, 미국 사업 쪽이겠죠.”

“…….”

데릭 모건 이사는 바짝 긴장했다. 이건 그가 원한 바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확인을 해봐야겠어.’

* * *

최민혁 역시 최용욱 회장 지분 매각을 진행한 후에 재정경제원 내부를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그는 칭얼대는 최용욱 회장의 이야기를 무시했다.

심지어 추가로 다시 어딘가에 투자하려는 최용욱 회장의 주장을 막았다.

최용욱 회장은 크게 당황했다. 그는 설마 손자 최민혁이 자신에게 아예 작정하고 경고를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전화상으로 말이다.

[…민혁아, 네가 대단하다는 것은 이제 안다. 하지만 이 할아비에게 잔소리할 줄은 몰랐구나.]

[할아버지도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아실 텐데요? 고작 샐로먼 브러더스에서 10억 달러 자본을 끌어오는 것만으로 자본수지가 휘청하지 않습니까. 거기에 끌려 들어오는 일본 자금은 큰 문제가 될 겁니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측에 불과하지 않겠냐?]

최민혁은 참 최용욱 회장이 집요하다고 생각했다. 돈을 있으면 그냥 들고 있지만 못했다. 이쯤 되니 최민혁도 스스로 자책하고야 말았다.

‘에플 투자 제안은 괜히 한 것일까?’

최민혁은 최용욱 회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한 가지 일까지 거론했다.

[휴우, 만약을 대비해서 보험을 들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할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는 가문을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민수 형에게 KD 통신 지분을 넘긴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러냐?]

하지만 최민혁은 좀 다른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최민수가 KD 통신 지분 일부를 증여받았다는 것 때문에 DL 그룹은 크게 당황했다.

DL 그룹이 굳이 최용욱 회장의 지분 매입에 손을 내민 상태였으니까.

자신이 원한 그림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DL 그룹 재정 상황이 그렇게 좋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정말 무리한 것 같던데, 아주 자살 특공대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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