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50화 (850/1,021)

#850.

최민혁 실장은 내심 휘파람을 불었다. DL 그룹은 이번에 아주 작살을 내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번 일은 꽤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해서 이룬 성과였기 때문이다.

최용욱 회장은 싱글벙글한 최민혁 실장의 목소리를 지적했다.

[혹시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면, 이왕이면 나도 알면 어떻겠냐?]

그는 칭얼대는 최용욱 회장이 귀여웠다. 하지만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지분 매각 대금은 대략 10억 달러 규모다.

이 거래로 재미를 짭짤하게 봤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자금이 다가 아니란 것이다.

이 금액만큼 샐로먼 브러더스가 결국 손실을 보게 된다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그런 자세한 내막까지 말하지 않았다.

[…기다려 보세요. 기회가 생기면 저도 제안할 테니까.]

[오냐. 그건 그렇고, 만나는 처자는 언제 소개해 줄 생각이냐?]

[네? 그게 무슨…….]

[그 이지수 박사 말이다. 소문이 자자하더라. 허허, 내 귀에도 들릴 정도야. 난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 줄 이제야 알았다.]

[이지수 박사와는 비즈니스 관계일 뿐입니다.]

[그래. 남자라면 그래야지.]

[…아무리 말해도 듣지는 않으니, 그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급한 일 때문에 전화를 끊어야 합니다.]

[…혹시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거냐? 안 그래도 말을 하려고 했는데, 재정경제원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그렇습니까?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재정경제원 따위는 이제 신경 쓸 상대가 아니니까.]

[허허허.]

최용욱 회장은 오만한 최민혁 실장의 말에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그가 아는 재정경제원은 만만히 볼 집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자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았다.

* * *

최민혁은 최용욱 회장의 이야기를 무시했지만 한 가지 사실만큼은 달랐다.

바로 재정경제원 말이다.

그도 사전에 선수를 쳐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재정경제원은 당장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았다.

최민혁은 덕분에 사전 조사 차원에서 재정경제원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자본 수지 말입니까?”

“샐로먼 브러더스가 최용욱 회장님 지분을 사들이기 위해서 들여다 온 달러가 문제였습니다. 이 달러는 재정경제원에도 갑작스러운 일입니다.”

갑자기 늘어난 자본수지는 재정경제원에게 그다지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자본수지가 과녁이 되면서 다른 무역 수지 역시 주목을 받았다.

덕분에 무역수지와 관련된 경제 현황이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재정경제원이 나서서 불을 끄려고 했지만 이게 쉽게 해결되지가 않았다.

자본수지, 무역수지를 둘러싼 잡음이 투자 확대 정책과도 엮여서 말이 나왔다.

이 일이 환율이라는 변수를 통해서 물가와도 연동되었다.

최민혁은 복잡한 연결 고리에 혀를 차고 말았다.

“정부 일이 참 어렵네요.”

조성돈 팀장은 혀를 찼다. 그가 보기에는 최민혁 실장이 벌인 일이 동기가 되어서 이 사태가 시작되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정경제원을 직접 때리진 않았지만 간접적인 방식으로 후려친 거나 마찬가지였다.

최민혁은 물론 이 일에 대해서 기타부타 어떤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이 일에 대해서는 따로 한번 대응 계획을 짜보세요. 다만 지금은 미국 일이 메인입니다. 할아버지도 또 다른 일을 벌일 수 있으니, 그것도 확인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이 최용욱 회장을 마치 아랫사람 취급하는 말투에 내심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새삼 최민혁 실장이 많이 달라진 것을 피부로 느낀 것이었다.

‘하긴 원래부터가 보통 사람은 아니었으니.’

* * *

최용욱 회장은 바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경제 현인은 아니었다. 그는 손자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받아서 KM 통신, KM LCD 지분을 매각하고서야 조금씩 눈을 뜰 수가 있었다.

IP 시티폰의 근본적인 한계 말이다.

그는 때문에 손자 최민혁이 한 일을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한 일 때문에 일어난 자본수지 변화도 살폈다.

그 과정에서 한국 국제 수지 현황도 자세히 들여다봤다.

“무역 수지 적자가 문제입니다. 벌써 58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당초 목표액을 훨씬 넘어선 무역수지 적자는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이건 미국, 일본 수출이 목표치만큼 늘어나지 않아서였다.

한국의 주력 상품인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사업 현황이 좋지가 않아서 생긴 일이다.

특히 4M D램은 수출 가격이 폭락 중이었다.

장승일 실장은 긴장한 얼굴이었다.

“원화 절상이 원인입니다. 그것도 일본 엔화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번 일에는 미국 헤지펀드와 투자 은행이 엮여 있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미국 정부가 개입했다는 소리인가?”

“네.”

“…흠, 이것도 민혁 그 녀석 추측대로군.”

사실 환율 문제야 늘 나왔던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환율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더욱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그 틈을 벌리고 있었다.

재정경제원의 내부가 난리가 난 것도 그 이유였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에 대한 팀까지 차출해서 이 일에 매달릴 정도로 진지했다.

“…설마 이 일도 민혁이 그놈 짓일까?”

장승일 실장도 이번 일에는 확신하지 못했다.

“자본수지는 맞습니다. 하지만 무역수지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이건 구조적인 수출 물품 항목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하지만 재정경제원 반응이 이전과는 다르잖아. 아마 한 달 전이었다면 이번 일은 업황 탓으로 돌렸을 거야. 환율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만 한다면 된다고 이야기했을 텐데.”

“지금은 그때와는 다릅니다. 그들 역시 개정판 X 리포트를 봤을 테니까.”

그랬다.

이환채 차관은 자존심 때문에 최민혁 실장을 무시하기도 했지만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펌하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겉으로는 글로벌 X 리포트를 무시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계속 염두에 뒀다.

이게 사실 최민혁 실장이 원한 바였고 말이다.

장승일 실장은 그 당사자 중의 한 사람이라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최민혁 실장님이 과거에 했던 일을 잘 보면 다 포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단적인 예가 냅스트입니다.”

“설마 냅스트 소스의 배후가 민혁이 그놈이라고 생각하나?”

“냅스트 소송을 보면, 굳이 이 사업에 끼어들어서 돈이 될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냅스트가 있었기에 MP3가 더 빠르게 미국이나 유럽 쪽에 퍼졌다고 생각합니다. MP3 플레이어 시작이 급속히 확대되는 것도 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MP3 플레이어를 공개해서 특허료를 챙기는 것이 목적이란 소리야?”

“네. 실제로 KM 전자의 MP3 관련 특허 수익이 기하급수적으로 폭증 중이라고 합니다.”

“그렇겠지.”

최용욱 회장은 새삼 혀를 내둘렀다. 그는 그제야 최근 최민혁 실장이 벌인 일을 떠올렸다. 자기 지분을 매각한 것 말이다.

‘꼭 날 위해서가 아닐 수도 있어.’

“…재정경제원 쪽에 한 번 이야기해서 약속을 잡아 봐. 아무래도 이번 일은 적당한 선에서 기름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다만 재정경제원에서 손을 떼지 마. 민혁이 이 녀석이 벌인 일이 아직 끝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그 부분은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 * *

이환채 차관의 경고나 최용욱 회장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은 이미 미국에서 손을 쓰는 중이었다.

다만 데릭 모건 이사가 걱정한 것처럼 샐로먼 브러더스를 직접 노리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샐로먼 브러더스가 투자했던 한 기업을 노렸다.

‘밀리아머라…….’

데릭 모건 이사는 다행히 최민혁 실장의 동선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파악하자 미국 국방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문제가 복잡했다.

밀리아머를 만든 곳이 다름 아닌 국방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밀리아머는 몇 년 전만 해도 평범한 회사였다.

이 회사가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미군에 제식 소총을 공급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쟁쟁한 콜트를 비롯한 여러 회사와의 경쟁에서 이긴 것이었다.

정확히는 윌리엄에게 자금을 대준 이는 따로 있었다.

샐로먼 브러더스 역시 그 세력 중의 하나였다.

윌리엄은 바지 사장 처지였지만 굳이 이들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미군 소총 보급으로 큰 성공을 이루었다.

이게 시작이었다.

윌리엄은 자신에게 자금을 대주는 이들의 지시를 잘 따랐다.

그 덕분에 밀리아머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했다.

윌리엄은 자신을 밀어준 배후에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했다.

이런 그의 태도는 밀리아머를 미국에서 손꼽는 방산업체로 만든 비결이 되었다.

윌리엄은 어느 정도 힘을 가지자 그제야 밀리아머 지분을 야금야금 모았다. 지금에 와서는 남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다만 그도 테일러 가문의 다른 형제는 불편했다.

밀리아머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끊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와중에 진행한 메이런 프로젝트는 미래를 위한 프로젝트 중의 하나였다.

다만 문제가 된 것은 역시 메이런 프로젝트의 지지부진한 성과였다.

이지수 박사가 대단하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아들인 테일러가 나름 자기 주장을 피력했지만 그걸 믿을 수만은 없었다.

국방성 내에서도 이제는 메이런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는 이도 없어서 다 잊고 있었다.

데릭 모건 이사는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파악하고는 크게 당황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왜 이 사실을 아무도 파악 못 한 건가?”

데릭 모건 이사의 최측근 중의 한 사람인 댄 스티븐 부장 역시 바로 대답하지는 못했다. 사실 이유가 있었다. 국방성과 최민혁 실장의 관계가 아직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상은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은 이지수 박사가 그저 과거 자신의 인맥인 마크 프랭클린 소령에게 손을 내민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단순한 손길이 아니었다.

실제로는 두 사람이 손을 합친 것처럼 보였다.

아니, 현실이 그랬다.

그런데 그걸 몰랐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데릭 모건 이사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이환채 차관의 충고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다면, 몰랐을 것이다.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감시했지만, 그 밑의 사람까지 따로 조사한 것은 아니었다.

“휴우, 좋아. 지금 잘잘못을 따질 상황은 아니니까. 최민혁 실장이 지금 하는 일은 나를 노린 거야?”

“그건 아닙니다. 문제가 된 것은 메이런 프로젝트 때문입니다. 당시 이 프로젝트를 덮은 이들이 국방성 요직에 올라 있습니다.”

“밀리아머 말하는 건가?”

“네. 특히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지금의 밀리아머를 만드는 데 상당히 손을 쓴 인물입니다. 만약 메이런 프로젝트 관련 스캔들이 터지면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에게는 치명적일 겁니다.”

“재선을 앞둔 클린턴 행정부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겠네.”

“네.”

클린턴 행정부의 재선은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클린턴 행정부 내부의 분위기는 이미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괜한 잡음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데릭 모건 이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 역시 클린턴 행정부의 재선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정치 자금을 밀어주면서 입을 다물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하, 정말 거지 같네.”

데릭 모건 이사가 걱정하는 일은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밀리아머로 인해서 생길 수 있는 손실이었다.

그건 곧 샐로먼 브러더스에게 큰 타격을 줄 만한 일이었다.

‘설마 최민혁 실장이 이런 사실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샐로먼 브러더스의 밀리아머 투자는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몇 단계를 거쳐서 진행된 일이기 때문이다.

“…윌리엄 장관은 이 사실을 알아?”

“모를 겁니다. 사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최민혁 실장은 이지수 박사를 앞세웠을 뿐입니다.”

데릭 모건 이사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우려하던 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본능적으로 알았다.

최민혁이 어떤 형태로든지 반격을 할 거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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