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8.
에플에서는 이번 CES 전시회에서 보여줄 제품을 소개하면서 이번 개발은 모두 최민혁 실장 덕분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저 분위기 자체가 다들 불편해서 입을 다문 것뿐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런 상황이 마냥 짜증스러웠다.
“차라리 스티븐을 내세우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건 문제가 안 될 것 같은데.”
“그것도 어려운 게 스티븐이 계속 인터뷰를 할 때면 최민혁 실장을 거론합니다. 이번 CES 전시회에서도 과시적인 결과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고요.”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스티븐의 인터뷰였다. 하지만 그는 딱히 최민혁 실장을 생각해서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실제로도 그러하니까.
또한 이런 방식이 에플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가 굳이 최근에 와서 최민혁 실장을 더 띄워주는 것은 인공지능 무인 드론 관련 기술 때문이었다.
인공지능 무인 드론 자체도 중요하지만 정작 핵심은 그 안에 사용된 기술이다.
그건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었다.
최민혁 실장의 에플 지분 매각과 동시에 그의 영향력은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그가 최민혁 실장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놓지 않는 건 이 때문이었다.
최민혁 실장의 신비주의를 부각시키면서 에플도 이익을 보니까.
그 와중에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최민혁 실장을 옹호했다.
“최민혁 실장 이야기가 많은데, 우려할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커질 일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문제를 만든 겁니다. 애초에 하원 측의 이야기에 너무 집착했습니다.”
하원 이야기.
곧이어서 존 스미스 의원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클린턴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유독 여자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클린턴 대통령은 ‘존 스미스 의원’ 이야기가 나오자 도대체 왜 자신이 입만 열면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지 화가 났다.
“아니, 그러면 원래부터 큰일이 뭐가 있습니까? 툭하면 해결이 되었다고 하는데, 정작 대대적으로 보도가 난 후에야 움직였지 않습니까?!”
실제로 스캔들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해결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 덩치가 커지고, 커져서 결국엔 뻥 터졌다.
이번 일도 자칫하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려웠다.
“…….”
다들 클린턴 대통령 시선을 피했다. 그들 역시 불만이 많기는 매한가지다.
다만 그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이번 샐로먼 브러더스를 통해서 KD 통신, KD LCD 지분을 대량으로 매입했기 때문이다.
최용욱 회장의 지분은 누구 하나가 다 가진 것이 아니었다.
이해당사자들끼리 나누어 가진 것이었다.
최문경 부회장, 샐로먼 브러더스는 물론 다른 투자 은행도 다 같이 끼었다.
최민혁 실장이 고안한 원천기술이 바탕이라고 다들 단단히 믿은 것이었다.
그들 딴에는 나름 최민혁 실장이 자신들에게 굴복했다고 생각했다.
실상 최민혁이 굳이 한국의 ETRI의 신기섭 실장을 이용해서 최용욱 회장의 지분을 팔아 치운 것도 이런 분위기 조장을 위해서였다.
애초에 이 일은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이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테일러 가문이 불편해서 모른 척했다.
결국 땜빵으로 나선 이는 최민혁 실장과 1차 협상을 무난하게 끝냈다고 자평한 재무부 쪽이었다.
“이지수 박사의 제안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냥 무시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어차피 무인 항공기 관련 프로젝트 예산은 이미 10억 달러가 넘습니다.”
클린턴 대통령도 눈치가 있었다. 그는 서로 핑퐁 게임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왜 워런 크리스토퍼 장관이 메이런 프로젝트 이야기를 넌지시 꺼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그런 대답을 원한 것이 아니에요. 재무부에서는 이미 끝난 일이라고 하는데, 왜 이번에는 국방성이 문제가 됩니까!”
클린턴 대통령이 걱정하는 것은 사실 이쪽이 아니었다.
잘못하다 국방성과 테일러 가문 사이에 혹시 스캔들이 터질까 염려한 것이었다. 자신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데도 관련이 있는 것처럼 누명을 쓸 수도 있다.
자칫하면 재선에 재를 뿌릴 수도 있는 안건이었다.
아니, 확실히 상황이 이전과는 달랐다.
지금은 클린턴 대통령도 이번 일에 대한 보고를 받고 말았다. 이 일을 대충 처리했다가는 반드시 문제가 될 것이다.
“아직도 이 일의 심각성을 모르는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그제야 다들 클린턴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좋습니다. 뭐, 무인 드론 기술 때문에 해야 한다면 해야죠.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이지수 박사가 아니면 대안이 없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이번 일이 이슈가 되면 절대로 가만히 안 둘 겁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분노한 채 회의실을 나가 버리고 말았다.
“…….”
다들 난감한 얼굴을 한 채 침묵했다.
하지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무조건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 * *
FBI 요원 20명이 갑자기 벨린 투자 본사로 찾아왔다.
벨린 투자는 크게 당황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당사자는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이었다.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아, 특별한 일이 있어서 찾은 것은 아닙니다. 잘 아시다시피 방산업체 관련 사업에 관한 사전 조사 때문입니다.”
일테면 FBI가 방산업체 라이센스 관련 명분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KMBOOK의 라이센스와 관련이 있었다.
다만 최민혁은 굳이 FBI에서 20명이나 동원해서 이래야 하나 싶었다.
“협박하는 겁니까?”
“…….”
FBI 요원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일단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라서 이 자리에 있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FBI 요원은 마치 고장이 난 로봇처럼 벨린 투자를 조사했다.
우영민 부장은 다급하게 이곳저곳에 연락한 후에 뒤로 물러났다.
“이상하군요. 조사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 왜 일을 이렇게 처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겁주는 겁니다.”
“네? 설마 실장님을 상대로 말입니까?”
최민혁은 쓰게 웃고 말았다. 그는 방산업체 라이센스 일이 이렇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이건 오버였다.
그는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저 살기가 가득한 시선으로 FBI 요원들을 째려봤다.
과연 효과는 있었다.
FBI 요원 20명은 우르르 왔다가 와르르 그냥 조용히 떠나가고 말았다.
벨린 투자 직원들은 다들 이 소동에 황당해서 서로 이야기하기 바빴다.
[역시 최민혁 실장님이 무섭기는 무서운가 봐.]
[최민혁 실장님이 무섭다기보다는 죄가 없으니 그렇겠지.]
[이건 역시 KMBOOK의 방산업체 라이센스 때문이겠지?]
[그렇지 않을까. 명분도 좋잖아.]
[하지만 FBI 요원이 한 사람을 이렇게 두려워할지는 몰랐어.]
[역시 최민혁 실장님이셔.]
“…….”
최민혁은 딱히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조성돈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번 알아볼까요?”
“아뇨. 됐습니다. 이런 일은 시작에 불과해요. 계속해서 경고와 압박을 이어갈 겁니다.”
“설마 최 실장님을 적대시할 거라는 말입니까?”
“아뇨. 그 반대일 수도 있죠. 일을 이렇게 풀어가는 것은 뭔가 저에게 줄 것이 있어서라고 보이니까.”
“그게 뭘까요?”
“곧 알게 되겠죠.”
최민혁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아쉬운 것은 자신이 아니니까.
‘아쉽지만 메이런 프로젝트를 얻기 어렵다면 포기하면 그만이니까.’
* * *
FBI가 벨린 투자를 조사한 사실은 곧 미국 기관 내부에도 알려졌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최민혁 실장의 태도 역시 말이다.
이 보고를 받은 이 중의 한 사람인 윌리엄 국방장관은 다시 지난번에 넘어간 ‘메이런 프로젝트’ 국무회의가 끝나자 따로 모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다시 분노했고 말이다.
다들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을 째려봤다.
“…도대체 왜 철이 지난 구닥다리 프로젝트를 꺼낸 겁니까?”
윌리엄 국방장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구닥다리가 환골탈태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몇 년 전의 프로젝트지 않습니까. 더욱이 AT사에서 이미 새로운 무인 드론 개발에 착수했고 말입니다. 그쪽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충분한 연구를 해왔습니다.”
“그 연구 결과가 실상 이지수 박사의 성과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그 프로젝트를 이지수 박사 혼자 했다는 말입니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 됩니다. 이지수 박사는 특별한 인물입니다. 그녀의 능력은 독보적이라서 다른 어떤 이도 견주기 어렵습니다.”
“아니, 그렇게 유능한 인재를 왜 쫓아낸…….”
“외부 압력 때문이죠.”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만큼 이지수 박사의 성과는 놀라웠습니다. 테일러 박사 역시 자기 능력으로 안 되니, 그 자료를 AT 측에 넘겼습니다. 뭐, 내부적으로 지분을 일부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사실 제가 기업 인수 합병까지 관심 둘 필요는 없습니다. 성과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안 보입니다.”
“하지만…….”
“아니,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기존 메이런 프로젝트 실무진은 이전 자료를 토대로 작업을 계속해 왔는데, 그 기술이 이지수 박사가 지금 진행하는 인공지능 기술과 호환이 됩니다. 하드웨어 인터페이스도 다 같은 방식을 썼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가장 빨리 분위기를 파악한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내심 휘파람을 불면서 국방장관에게 말했다. 그는 이지수 박사가 국방성의 압력에 휘둘렸지만, 오히려 뒤통수를 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할 겁니까?”
“…일단 방산업체 쪽에 잘 이야기해서 적당한 선에서 협상을 끝내겠습니다. 테일러 박사는 문제가 많은 인물로, 협상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걸로 끝입니까? 이지수 박사라면 그 배후가 최민혁 실장 아닙니까?”
“글쎄요.”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최민혁 실장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지수 박사 쪽이 더 급했다.
따로 조사한 자료를 보면 이지수 박사가 만든 애니는 기존 인공지능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그 기술을 이용하면 무인 드론 기술을 이른 시일 안에 완성할 수 있었다.
그건 차세대 전장을 지배할 수 있는 첨단 군사용 기술이었고 말이다.
그런 핵심 기술을 쥔 이지수 박사의 주인이 있다니.
“그거 쉽게 결론이 안 날 겁니다. 만약 일이 그렇게 단순하게 끝날 것 같았으면, 일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최민혁 실장 말입니다. 우리 재무부가 굳이 최민혁 실장을 파고 들어간 것도 테일러 가문의 입김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 생각은 좀 달라요. 하원에 바람을 집어넣은 이가 테일러 가문이라는 설이 있으니까. 뭐 다른 이야기도 있는데, 말이 많습니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고요.”
정확히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데릭 모건 이사가 최민혁 실장이라는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거기에 기름을 퍼부은 곳이 바로 테일러 가문이었다.
이 두 세력이 하원에 바람을 집어넣고 말이다.
탐욕에 눈이 먼 미국 하원 역시 최민혁 실장 일에 슬쩍 끼어들었다.
결국 기업을 때리는 가장 좋은 수단은 IRS.
최민혁 실장에게 압력을 넣을 적임자가 된 곳이 바로 재무부였다.
“그건 아닙니다!”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혀를 찼다.
“좋습니다. 아니라고 합시다. 그러면 메이런 프로젝트는 없앨 겁니까?”
“없애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그건 내부적으로 반드시 검토를 해봐야 합니다.”
“제가 당부하지만, 이왕이면 문제가 없도록 잘 처리하기 바랍니다. 클린턴 대통령 님의 우려가 단순한 우려가 아닙니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도 바보가 아니고요.”
“…무슨 뜻으로 하는 말입니까?”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의외로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때문에 최민혁 실장의 처지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최민혁 실장이 당시에는 사정을 잘 몰랐다고 해도 지금쯤이면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 테니까. 벌써 메이런 프로젝트를 걸고넘어지는 것도 그 이유일 겁니다.”
“…네.”
회의실에 갑자기 침묵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