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23화 (820/1,021)

#823.

그러니 중간에 논리의 비약이 생기지 않았다.

더욱이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다음 후계자라고 소문난 데릭 모건 이사가 이 일을 맡았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일이 이전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최민혁도 ‘데릭 모건’ 이사란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다시 한번 전생 기억을 검색해서 그냥 놔둬서는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이대로 둬서는 곤란하겠군요.”

“아무래도 뭔가 하기는 해야 할 겁니다.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두뇌도 뛰어나고, 전자공학을 전공까지 한 터라 기존의 증권맨과는 많이 다릅니다.”

최민혁은 인상을 찌푸렸다가 오히려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자신의 적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하긴 이 정도 실력자가 있어야지.’

결국 샐로먼 브러더스 내부를 흔들 필요성을 느꼈다.

이대로 그냥 시간을 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결국 전생의 기억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당장 샐로먼 브러더스를 흔들 수 있는 소재가 필요했다.

그러다 미처 예상치 못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고 말았다.

바로 한국 전력이 백 년 만기의 8억 달러 규모의 장기 미국 본드를 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어?’

그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굳이 이 시기에 장기 미국 본드를 발행하는 이유를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미 이 일은 진행형이었다.

한전 사장이 직접 미국 뉴욕을 방문해서 미국 증권사의 기관 투자자를 상대로 협상하기 시작했다.

그 대상자 중에는 놀랍게도 샐로먼 브러더스가 있었다.

한전이 굳이 장기 펀드를 발행하려고 한 이유는 간단했다.

원전, 화력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자금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일에는 재정 경제원도 관련되어 있었다.

최민혁은 갑작스러운 이 사태에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아니, 그는 단순히 고민만 한 것은 아니었다. 벨린 투자를 최대한 활용해서 한전 사장의 동선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우영민 부장은 생각보다 빨리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했고, 최민혁 실장을 직접 찾아왔다.

“아무래도 최 실장님 때문에 문제가 커진 것 같습니다.”

최민혁은 황당해서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이죠?!”

우영민 부장도 난감한 얼굴을 한 채 최민혁 실장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국 전력이 원전과 화력 발전소 건설을 위해서 자금이 필요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 외에 원전 기술도 필요했습니다.”

“혹시 초기 투자는 2억 달러 정도였는데, 저로 말미암은 손실을 메꾸게 돼서 비용이 8억 달러로 늘어났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이 더 있었다.

“원래 본드 발행 계획은 올 하반기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님으로 말미암은 손실 때문에 일정을 더 당긴 것 같습니다.”

그랬다.

최민혁 실장이 한 일 때문에 샐로먼 브러더스는 지금까지 계속 손실을 보아왔다. 에플 공매도 역시 그중에 하나였다.

여기에 병행한 옵션 손실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이었다.

그나마 에플 주식 때문에 어느 정도 손실을 메꿀 수 있었다.

이러니 이러한 손실을 메꾸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다.

장기 미국 본드 발행이 그런 수단 중의 하나였다.

최민혁은 우영민 부장에게 사정을 듣고 나서야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일어나는 일이 어쩌면 자신이 미국에 와서 한 일 때문이라는 것을 문득 느꼈다.

불행히도 그 자세한 내막까지는 그조차 알 수가 없었다.

우영민 부장은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내심 탄사를 터뜨렸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벌써 샐로먼 브러더스에게 잽을 날린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물론 오해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일의 진척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원전 원천기술이 부족한 한국 정부 처지에서는 장기 미국 본드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샐로먼 브러더스는 기존 계획을 좀 더 빨리, 자금 규모를 더 키워서 일을 만든 것에 불과했다.

최민혁은 자신이 벌인 일 때문에 생긴 일이라 해당 건을 진행하고 있는 자가 누군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누구죠?”

“샐로먼 브러더스의 데릭 모건 이사입니다.”

“데릭 모건이라…….”

그는 데릭 모건과 관련된 전생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샐로먼 브러더스를 다시 부활시킨 이가 바로 데릭 모건이었다.

그만큼 야망이 큰 사람이었고 말이다.

‘하긴 그라면 한전에서 발행한 본드를 노릴 만하지. 가만, 그 작자라면 날 주목하고도 넘쳐. 그렇다면 결국 이번 기회에 장기 미국 본드를 노리기로 한 것인가.’

최민혁은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우영민 부장이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전 관련 기술은 미국 정부가 관리하기는 하지만 예민한 기술은 아닙니다. 우리 벨린 투자가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습니다.”

“…원전 회사 지분을 통해서 한국을 지원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정확히는 미국 정부에서 내놓은 규제 때문에 벨린 투자도 원전 지분을 제대로 확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영민 부장이 아는 이들 중에는 원전 지분을 가진 이도 있었다.

최민혁은 물론 원전 원천기술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았다. 덩치도 덩치지만 위험한 원자력은 솔직히 손이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샐로먼 브러더스가 하는 일이 잘되기를 원치 않았다.

‘이왕이면 에플 공매도에 계속 집중했으면 좋으니까.’

“좋습니다. 의도는 알겠어요. 그런데 누구에게 부탁할 생각입니까?”

우영민 부장은 씩 웃었다.

“타이거 펀드의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님입니다. 필요하면 언제라도 연락하라고 했습니다.”

“…그쪽을 믿을 수 있습니까?”

“몇 달 후라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에플 주식으로 재미를 단단히 보고 난 후라서 최 실장님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글쎄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민혁 실장님의 프로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최민혁 실장님 능력을 믿습니다.”

“하, 그래요?”

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헤지펀드 파벌 쪽이었다. 그런데 지금 봐서는 생각이 좀 바뀐 것 같았다.

우영민 부장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라면 로비스트 역할을 잘해줄 겁니다.”

“그러면 한번 진행해 보세요. 다만 그쪽을 무조건 믿지는 마세요. 아니다 싶으면 손해를 봐도 좋으니, 중간에 손절매 하세요.”

“…알겠습니다.”

우영민 부장은 최민혁 실장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았다. 하지만 그가 만나본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당장은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다.

‘물론 최민혁 실장님을 믿는 것이겠지만.’

* * *

우영민 부장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과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최민혁 실장에 관심이 많았다.

그 덕분에 우영민 부장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과 간혹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우영민 부장은 아직 태국에 있는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찾아가서 한국 전력 관련 장기 미국 본드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굳이 자세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상대는 헤지펀드 거물답게 그 내용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아, 한전 장기 채권 말입니까? 하긴 전력 사업이라면 나쁘지 않죠.”

“회장님이 관심이 있다니, 다행입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우리 최민혁 실장님이 흥미를 느끼니, 나도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의도를 금방 깨달았다. 데릭 모건의 계획은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 펀드 발행과 관련해서 미국계 증권사 내에서는 말들이 많았다.

형식적으로는 경쟁 입찰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이 일의 배후에는 미국과 한국 정부 사이에 딜이 존재한다는 것도 느꼈다.

다만 굳이 왜 이 일을 벌였는지는 잘 몰랐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영문을 잘 몰랐다. 그가 집중한 것은 최민혁 실장이니까.

“이번 일만 잘 해결해 주면, 최민혁 실장이 알아서 괜찮은 거래를 하나 챙겨주겠다는 말입니까?”

“네, 회장님, 우리 최민혁 실장님은 상호 윈윈을 특히 좋아합니다. 지난 만남 이후에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님이라면 같이 거래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거 좋은 이야기군요.”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물론 최민혁 실장과 샐로먼 브러더스 사이에서 감도는 분위기를 이미 보고를 받기는 받았다.

‘둘 사이가 안 좋던데, 그 일 때문일까?’

사실 상대가 최민혁 실장이 아니었다면 이익을 최대한 뽑을 다른 대안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들고 있는 물건(?)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 많았다.

굳이 최민혁 실장을 뒷조사해서 대립각을 세울 이유는 없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한전 사장을 만나서 최저 이자로 장기 미국 본드를 사주고, 필요한 원전 기술 협력을 진행하도록 하게끔 하면 됩니까? 그걸 다시 벨린 투자 쪽에 넘기면 되고요?”

“네. 이왕이면 미국 정부에서도 말이 안 나오게 해 주시면 됩니다. 수수료는 넉넉하게 드리겠습니다.”

그도 상대가 미국 정부가 정말 싫어하는 샐로먼 브러더스라는 것을 떠올렸다. 자신이 하겠다고 하면 쌍수를 들어서 환영할 것이다.

‘다만 샐로먼은 분노하겠지.’

그건 방법이 또 있다.

원전 원천기술에 다른 대주주를 같이 끼워넣어서 일을 진행하면 되니까.

“좋습니다. 어차피 자금은 그쪽에서 내겠죠?”

“물론입니다.”

“바로 진행하죠.”

* * *

타이거 펀드의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리더십은 탁월했다.

그는 우선 백악관 측에 몇 단계를 거쳐서 넌지시 제안했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라서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그다음은 원전 원천기술을 가진 기업에 슬쩍 압력을 넣었다.

물론 본인이 아니라 다른 대주주를 통해서 말이다.

마지막은 콜린 사이먼을 보내서 한국 전력 사장 이중수를 뉴욕의 한 바에서 만났다.

간단히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종수 사장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그로서는 콜린 사이먼이라는 사람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타이거 펀드라니. 결국, 밑 정리는 다 끝났고, 그쪽에서는 8억 달러 규모 펀드를 사들이겠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전 내막을 잘 모릅니다. 혼자 결정할 수도 없습니다. 잠깐 전화 한 통화만 해도 되겠습니까?”

“기다리죠.”

이종수 사장은 솔직히 의문이 많았다. 하지만 콜린 사이먼 수석 펀드 매니저가 중간에 소개해 준 인맥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부담 없는 몇몇 사람은 직접 확인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정경제원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재정경제원 담당자는 시간을 달라고 한 후에 이쪽저쪽 확인을 거친 후에 결론을 내려주었다.

[계약은 그대로 진행하면 됩니다.]

[…확실한 겁니까?]

[타이거 펀드가 생각보다 영향력이 엄청난 것 같습니다. 미국 내의 관련 기관 실무진 선에서 괜찮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혹시 이번 일의 배후가 타이거 펀드였던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샐로먼 브러더스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니까요. 아무래도 이들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알력 싸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

이종수 사장은 그제야 수긍하고 말았다. 세력 싸움은 한국 내에서도 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게 미국이라고 하니 조금 이상할 뿐이었다.

‘괜찮겠지.’

* * *

이종수 사장은 어느 정도 진실을 안 터라 콜린 사이먼에게 많은 것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다.

다만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서 다소 당황스러웠다.

눈동자만 굴리는 이종수 사장의 모습에 콜린 사이먼은 한숨을 내쉬었다.

“중공과 말레이시아의 전력 회사가 만기 100년짜리 장기 채권을 발행한 것은 아십니까?”

사실 이 부분은 대부분 사람이 잘 모르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중공의 경우에는 이 일을 아는 사람이 흔치 않았다.

말레이시아조차 이 일을 쉬쉬해서 아는 사람이 손에 꼽는다.

“네?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이것도 비슷한 일입니다. 전력 민영화 문제라서 예민한 일입니다. 하지만 부분 전력 민영화로,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외부에서 알 수 없도록 손을 써둘 겁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에 할당된 범위 내에서 원전 기술을 운용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무리수를 둔다면 상황이 좀 달라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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