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20화 (817/1,021)

#820.

옆자리에 동행한 마크 루이스 수석 매니저는 주변 눈치를 봤다.

오늘 모임은 국제 금융 시장이 열린 덕분에 한국 내의 증권사가 이곳 힐튼 호텔 내에 열렸다.

국제 금융 성격상 국내 전문가는 잘 없다.

그렇게 본다면 샐로먼 브러더스 한국지사 임직원은 괜찮은 스카우트 대상이었다.

거기에는 제임스 러너 이사 역시 빠지지 않았다.

[이제 한국 국제 금융 시장이 열린 이상 좁은 국내 시장에만 집착해서는 곤란합니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국제 금융 시장의 구성원이 되어야 합니다!]

대한투금 회장이 직접 나와서 설명하는 것도 있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임직원 역시 국제 금융 시장 파이를 잘 알기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제임스 러너 이사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는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다 흘렸다.

때문에 발표가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히려 마크 루이스 수석 매니저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달라붙는 금융인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시간을 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저희 이사님이 몸이 안 좋아서 오늘 미팅은 힘들 것 같습니다.”

마크 루이스 수석 매니저가 그럭저럭 연기를 잘 한 덕분에 불필요한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다.

최근 샐로먼 브러더스 한국 지사가 무려 10억 달러를 국내에 들여왔기 때문이다.

이 막대한 달러 소식은 정부 기관에서 슬쩍 흘린 덕분에 국내에도 알려졌다.

물론 이 자금 출처는 다름 아닌 샐로먼 브러더스의 데릭 모건 이사였다.

에플 공매도 쇼를 진행하면서 KM 전자와 KM 센서 주식을 매입하라니.

하는 행동을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이 지시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이런 내막을 모르는 많은 이들은 이 자금에 욕심을 냈다.

대표적인 이가 바로 DL 전자 김용만 전무였다. 그는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일 때문에 그룹에 큰 손실을 주는 바람에 제대로 찍혀서 자금 구하는 일까지 해야 했다.

“제임스 이사님, 자, 잠깐만요. 20분, 아니, 10분만 시간을 내주십시오!”

집요하게 달라붙는 김용만 전무의 모습은 절박하기 짝이 없었다.

KD 통신의 적자 폭이 너무 커져서 추가로 DL 그룹의 자금을 수혈한 결과였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세력이 KD 통신 지분을 더 키울 테니 말이다.

제임스 러너 이사도 다른 사람은 다 무시해도 김용만 전무만큼은 다르게 대했다.

그는 일단 자신 앞에 온 차량 안에 탑승한 후에 김용만 전무에게 손짓했다.

김용만 전무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제임스 러너 이사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지금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고는 참담함을 느꼈다.

지금 자신의 행동은 과거 최용욱 회장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최용욱 회장 역시 샐로먼 브러더스의 자금에 매달렸으니 말이다.

‘이게 모두 최민혁 그 새끼 때문이야!’

그가 최민혁 실장을 욕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이 미래 사업이라고 하면서 깔아놓은 것들의 대다수는 자금만 끝도 없이 들어갔고, 수익성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또 포기하기에는 어려운 사업이었다.

시장만 열리면 초대박을 칠 사업이었다.

그러니 이번 한 번이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계속 투자를 늘려야 했다.

DL 그룹 혈족은 이미 KD 통신이나 KD LCD에서 다들 손발을 뗐다.

앞으로 구조조정이 필연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것도 자금이 있어야 가능했다.

“이미 일전에 말씀드렸지만…….”

제임스 러너 이사는 냉랭하게 반박했다.

“KD 통신이나 KD LCD 쪽은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 쪽에서 그나마 투자할 생각인 종목은 KM 전자와 KM 센서뿐입니다. 특히 KM 센서는 아직 상장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KM 센서는 KM 그룹 계열사로…….”

“친동생 김여정 여사가 KM 그룹 둘째인 최훈열 전무 아내 아닙니까. 아직 이혼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더욱이 KM 그룹과 DL 그룹은 자금 거래가 제법 있습니다.”

“KM 센서 실소유주는 최민혁 실장입니다.”

“아뇨. 나머지 지분 말입니다. 최용욱 회장을 비롯한 최씨 일가인 것으로 압니다만.”

“하아, 그건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저도 답은 똑같습니다.”

제임스 러너 이사의 태도는 냉정했다. 그는 매달리는 김용만 전무를 무시했다. 아예 차량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차가 출발해도 김용만 전무는 차량 뒤에 계속해서 매달렸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아예 김용만 전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괜한 시간 낭비만 했어. 앞으로 저 사람에게 오는 전화는 다 끊어버려.”

“…네.”

마크 루이스 수석 매니저는 제임스 러너 이사의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하긴 요즘 일이 제대로 안 풀려서 그런 것 같으니.’

* * *

최민혁 실장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김용만 전무와 관련된 정보를 보고받았다. KM 그룹과 DL 그룹은 주의할 대상이라서 이 정보를 알게 된 것이었다.

그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매몰찬 행동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하여간에 대단한 놈들이야.’

조성돈 팀장 역시 이 보고를 받고는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DL 그룹 자금 사정이 이렇게 어려운지는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KD 통신 중국 투자에 너무 무리한 것 같습니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투자를 따라가려고 무리수를 둔 겁니까?”

“네.”

최민혁은 히죽 웃었다. 그 자신이 한 일이지만 설마 이렇게 계획대로 잘 흘러갈지는 몰랐다.

“참, 우리 최문경 부회장님은 어때요?”

“그쪽은 최용욱 회장님이 반대해서 DL 그룹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럼 지분이 줄었을 텐데요?”

“그 이상입니다. 최용욱 회장님은 아예 KD 통신 지분 일부를 매각했습니다.”

“…흥미롭군요.”

“어떻게 할까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우리 할아버지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이니까.”

그는 이보다 샐로먼 브러더스 국내 지사에 더 주의를 기울였다.

“10억 달러 자금을 국내에 들여왔다고 했죠?”

“네.

그는 전생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전생에선 이런 일이 생긴 적이 없었다.

조성돈 팀장도 눈치가 빨랐다.

“아무래도 KM 전자와 KM 센서 주식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흠, 그럴 수 있죠. 그렇다고 해도 행보가 이전과는 많이 다르네요.”

“어떻게 할까요?”

“KM 센서를 좀 더 부각시켜 보세요. 이왕이면 사업자 설명회 같은 것을 여는 것도 좋겠군요. 인공지능 미니 드론은 버리는 카드 정도로 생각하게요.”

“…알겠습니다.”

* * *

최민혁 실장의 지시가 KM 센서 내에 내려가자 KM 센서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KM DVR이 마치 KM 전자보다 더 중요한 사업인 것처럼 내세웠다.

언론 측에도 광고를 좀 뿌리고 말이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머리를 굴렸다.

그 역시 KM 센서 미래 가치가 높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KM 센서의 주식을 사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차선인 KM 전자 주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등락 폭을 거듭하는 KM 전자는 여전히 50만 원 선을 지키는 중이었다.

한때는 40만 원까지 내려가서 30만 원대를 보나 싶었지만, 그 기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이틀 남짓 사이에 다시 40만 원대를 돌파했다.

리만 브라더스가 참전한 결과였다.

결국 다시 50만 원대에 안착했다.

KM 전자 주식은 주당 달러로 무려 700달러나 되었다.

‘너무 비싸.’

그나마 이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최민혁 실장이 보수적으로 나섰다는 점이다.

콜린스 사업부를 외부에 매각한다는 소문만 내거나, 아니면 KM 전자에 원천기술을 더 넘기지 않은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특히 요즘 최민혁 실장이 보유한 원천기술은 벨린 투자가 일괄적으로 처리했다.

이 회사가 다른 계열사에 넘어간 특허도 이제 다 사들였다.

그러니 KM 전자 주주도 요즘은 최민혁 실장에게 비판적이었다.

따라서 KM 전자 주가가 이전처럼 폭등을 거듭하지는 않았다.

다만 안 좋은 점도 있는데, KM 전자 주식을 사들이려고 들어가는 경우다.

그때는 다시 KM 전자 주식이 폭등했다.

KM 전자 주식이 시장에서 구하기가 어렵다는 뜻이었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결국 다른 대안으로 KM 센서 관련 정보를 얻고 나서는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서라도 KM 센서 주식을 구하려고 애썼다.

‘휴우, 정말 어렵네.’

그래도 김용만 전무를 이용해서 어떻게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 방법도 효과가 없었다.

KM 센서 주식은 아직 비상장 주식인 것치고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는 때문에 KM 전자와 KM 센서 주식 매입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으로부터 미팅 요청을 받은 것은 이 시기였다.

아예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는데, 놀랍게도 최문경 부회장이 직접 찾아왔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혹시 김용만 전무 일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최문경 부회장은 다행히 김용만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는 이전과는 달리 저자세를 보였다.

“잠깐 할 말이 있네.”

“부회장님과는 아무런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최민혁 실장의 인공지능 미니 드론에 관한 이야기이니까.”

“…….”

제임스 러너 이사도 몸을 움찔 떨었다. 안 그래도 KM 전자와 KM 센서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여기에 뜬금없는 인공지능 미니 드론이라는 이야기에 한숨부터 내쉬고 말았다.

그는 호출받고 찾아온 경비원에게 손짓해서 일단 사무실 밖으로 내보냈고, 비서를 호출해서 최문경 부회장과 권재홍 비서실장에게 마실 것을 내왔다.

최문경 부회장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는 최민수에게 들은 인공지능 미니 드론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도 같이 피력해서 말이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황당한 눈으로 최문경 부회장을 쳐다보았다.

“미니 드론이 사람을 인식도 하고, 지시도 들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다는 말이군요. 근데 그게 현대 기술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최문경 부회장은 마치 세상의 고뇌를 다 짊어진 노승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측도 지금 기술로는 무리하다고 판단했어. 하지만 KM 센서 DVR 팀이 그 사실을 목격한 것은 사실이네.”

제임스 러너 이사도 ‘KM 센서’ 말에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KM 센서란 곳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혹시 그 장면을 찍은 영상은 있습니까?”

“그건 못 구했네.”

“우리 부회장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다 하다니.”

“…나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아네. 다만 그 기술을 구현한 곳은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는 KMBOOK이라는 소리가 있어. 우리 쪽에서 정보를 확인하기가 어려워서 자네에게 부탁한 거네.”

“좋습니다. 뭐 부회장님이 나름 절 생각해서 정보를 넘겼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일단 알아보고 나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고마워.”

최문경 부회장은 굳이 더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그는 제임스 러너와 이야기를 한 것으로 만족한 것이었다. 일단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한 것이었다.

* * *

제임스 러너 이사는 한국 내의 주식 확보 때문에 정신이 없었지만, 최문경 부회장이 굳이 자신을 찾아와서 정보를 준 것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그는 미국 본사에 있는 킬리언 시몬스 이사에게 자기가 얻은 정보를 말했다.

킬리언 시몬스 이사도 처음에는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었다.

아마 다른 일이라면 여기서 끝났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일에 ‘최민혁 실장’이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제임스 러너 이사에게 정보를 확인한 후에 연락 주겠다고 말했다.

그 역시 데니스 샐로먼에게 최민혁 실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공지능 미니 드론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아는 지인 쪽에 연락을 해봤는데, 이상한 소리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인공지능 미니 드론과 비슷한 유언비어가 이미 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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