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81화 (778/1,021)

#781.

이기수 부장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네. 해결하면 됩니다. 문제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만큼 버그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거기에 기능 구현이 제대로 되는지도 의문이고요.”

이기수 부장은 경험이 많은 엔지니어였다. 그의 감으로는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정확히 그게 뭔지 모를 뿐이다.

그걸 알았다면 최민혁 실장에게 직접 전화해서 보고했을 것이다.

최영란 본부장은 다행히 밑의 사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경영자였다.

“…정확히 얼마 정도 필요한데요?”

“적어도 6개월, 실제적으로 10개월은 잡아야 할 겁니다. 아니, 그렇게 해도 된다는 보장을 하기 힘듭니다. 경영진도 이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최영란 본부장은 최근 DVR 아이템을 이용해서 만든 영업 플랜이 와르르 무너지는 내용을 듣고는 바로 반박했다.

“말도 안 돼요! 그건 완벽히 새로 개발하는 것과 다르지 않잖아요!”

이기수 부장은 그제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새로 개발하는 거라? 글쎄요. 제가 ARN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만 아마 새로 해도 3~4년은 잡아야 할 겁니다. 다른 기업은 특허 때문에 아예 개발 자체를 못 합니다. 그런 상황에 저희도 이렇게 일정이 당겨졌으니, 문제가 있을 겁니다.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그랬다.

DVR 사태를 보고 한국 10대 대기업이 놀란 것은 KM 센서의 상황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들도 실무진을 통해서 검토를 해봤지만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결과였다.

오성 그룹조차 관심을 보인 것은 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은 오로지 최민혁 실장 덕분이었다.

“솔직히 10개월 안에 결과가 나오면, 기적입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성과입니다. 지금 이 상황 자체도 믿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최민혁 실장님이 아니었다면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군요.”

“네. 최민혁 실장님을 비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개발은 분명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비록 편법으로 기능 구현을 했지만 그렇다고 기본적인 과정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민혁이도 알고 있나요? 아, 조금 전에 한 그 이야기가 이 이야기였어요?”

“네. 조금 전에 통화로는 최민혁 실장님이 아는 눈치였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KM 센서 지분을 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넘어간 이유는 아마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봐야 했다.

“…그런데 지금 봐서는 최민혁 실장님은 DVR 사업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러면 왜…….”

그녀는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가 최민혁 실장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 한 가지를 떠올렸다. 바로 미국 재무부 미팅 말이다.

최용욱 회장도 이 안건에 대해서는 최영란 본부장에게 말해주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길 때의 해결책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설마 소녀 납치 사건을 이용해서 이미지를 세탁할 생각이었다는 말인가? 아니, 왜 그렇게 일을 복잡하게 풀어 간 거지? 아, DVR 사업을 무시할 수가 없구나.’

이미지 세탁은 이미 끝난 일이었다.

즉, 최민혁 실장은 자신이 목표로 한 것을 다 끝냈다는 이야기다.

KM DVR 판매에 대한 공은 이제 KM 센서에 넘어간 상황이다.

최민혁이 굳이 그 일까지 책임질 이유는 없다.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은 경영자로서 자세한 엔지니어 일까지 관여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최영란 본부장은 그제야 최민혁 실장이 꾸민 계획을 깨닫고는 혀를 찼다.

“…혹시 다른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이기수 부장은 그제야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부터 할 일은 단순 노가다라고 보면 됩니다. 다만 그 노가다 양이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버그입니다.”

“…알았어요. 필요한 인력을 최대한 지원해 줄 테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진행해 주세요. 민혁이에게는 내가 이야기해 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이기수 부장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최문경 부회장과는 달리 말이 통하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문제야. 최용욱 회장님만 해도 일이 이미 끝난 것으로 알 테니 말이다.’

경영진을 설득한다라. 그게 쉽게 될 리가 없다. 경영진 관점에선 그저 물건이 나오면 그걸 판매하고, 기획하는 것 뿐이니 말이다.

결국 책임은 이기수 부장을 비롯한 실무진에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설마 토사구팽당하는 것은 아니겠지?’

이기수 부장이 걱정하는 포인트였다.

* * *

최영란 본부장은 그제야 자신의 앞에 떨어진 불똥을 처리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심지어 ARN 측 엔지니어를 만나서 상담도 해봤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ARN 측 엔지니어 중에 한 사람인 벤 골드 차장 역시 크게 당황한 눈치였다.

이유는 당연히 있다.

과거 에플의 뉴튼에 탑재된 ARM6는 재미를 크게 보지 못했다.

ARN은 부랴부랴 ARM6 업그레이드 버전인 ARM7를 만들어서 테스트했다.

이번에 KM DVR에 적용된 것이었다.

“그건 확인해 봐야 합니다.”

“아니, 이미 시제품이 나온 마당인데, 이제야 확인한다는 말입니까?”

벤 골드 차장 역시 문제가 생길 것 같자 슬쩍 책임 회피성 발언을 했다.

“이 칩 자체가 저전력 기반으로 나온 겁니다. 애초에 모바일 이미지 센서 칩에 사용될 예정이었고요. 갑자기 사양을 바꾼 것은 KM DVR 아닙니까?”

최영란 본부장은 가소로운 표정으로 벤 골드 차장을 째려봤다.

“설마 저희 때문에 확인하기 어렵다는 말인가요? 어차피 제가 알아본 바로 ARN 그쪽도 사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만?!!”

그녀의 말대로 지금의 ARN 매출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아직 소개 단계인 이 칩은 저전력 기반이다.

문제는 이게 성능이 좋지 못했다.

ARN은 결국 고육지책으로 여러 회사에 라이선스를 팔았다.

그중에는 한국 대기업인 LC 전자, 오성 전자 역시 빠지지 않았다.

이들은 정말 미친 듯이 이 ARN7 코어를 이용해서 개발 중이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ARN은 애초에 KM 센서를 메인 영업 포인트로 생각하지 않았다.

KM DVR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관심을 껐을 것이다.

이번 일도 그나마 대주주인 최민혁 실장의 부탁이 있어서 인력을 파견한 것뿐이다.

그런데 KM DVR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ARN 본사에서는 부랴부랴 인력을 다급하게 확충해서 한국으로 보냈다.

벤 골드 차장은 최영란 본부장의 질책에 눈치만 보았다.

그 역시 KM DVR에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런데 제대로 된 확인을 하려면 더 시간이 필요했다.

‘애초에 KM DVR에 칩을 공급하는 것은 무리였어. 심지어 설계 변경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모든 일은 최민혁 실장이 무리수를 둬가면서 밀어붙인 결과였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을 탓하기는 힘들었다.

ARN에게도 이번 KM DVR 사건은 미국 시장에서 영업하기에 괜찮은 한 수였다.

최영란 본부장은 그런 벤 골드 차장을 싸잡아서 씹어댔다.

“지금 제가 여자라서 우습게 보는 겁니까? ARN이 무슨 에플처럼 대단한 회사라고 생각합니까?!!”

“그,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럼 뭐예요? 민혁이가 로컬 경찰서에 가서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이번 일이 탄력받은 것 아닙니까. 양심이 있으면 내 일이 아니라고 그러지 못해요!!!”

“죄, 죄송합니다. 본사 측에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암사자 같은 최영란 본부장의 기백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단순히 말만 하지 마세요. 분명히 문제가 있으니, 우리 측 엔지니어가 다시 검토를 요청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 제대로 결과를 내보이란 말이에요!!”

“…네.”

* * *

결국 벤 골드 차장은 ARN 본사 측에 다급하게 상황 설명을 했다.

ARN은 부랴부랴 인력을 충원해서 한국 쪽에 사람을 보냈다.

그런데 그런다고 해서 일이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모바일 CPU, DVR CPU 두 가지 갭 차이가 존재했다.

문제는 ARM7 성능이 허접하다는 데 있다.

이번에도 멀티미디어 성능을 강화한 MPEG-2가 들어가면서 그나마 CPU 부하를 줄여서 상업적인 가능성이 열렸을 뿐이었다.

다만 짧은 기간 안에 일어난 일이라서 버그가 생각보다는 많았다.

벤 골드 차장은 뒤늦게야 이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설명했다.

“죄송합니다. ARN7은 이제 막 소개하는 단계라서 이런 문제점을 간과했습니다.”

“이론적인 성능과 실제적인 성능은 다르다는 말씀인가요?”

“네, 뭐, 사실 그 성능 차이가 미묘합니다. 딱 사각에 걸려 있다고 해야 할까요?”

변명치고는 보잘것없었다.

그런데 그럴 수 있긴 하다.

ARN은 어디까지나 칩 라이선스를 파는 회사다.

응용 에플 성능 문제는 그들 자신도 잘 몰랐다.

그런데 ARN7은 아직 제대로 응용이 되지 않은 제품이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그제야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보고서를 꼼꼼하게 정리했다. 그녀는 필요하다면 ARN 엔지니어와 KM 센서 엔지니어 양쪽을 찾아다니면서 교차 검증했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민혁이에게 빨리 연락해야겠어.’

* * *

권재홍 비서실장은 뒤늦게 이런 최영란 본부장의 동선을 파악했다. 이에 다급히 KM 센서 측 엔지니어를 만났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KM 센서 측 엔지니어는 다들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비록 KM DVR 자체는 문제가 많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다.

굳이 무리수를 둬가면서 최문경 부회장 측에 붙을 이유는 없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안 그래도 KM DVR의 문제점을 정리하는 중이었는데, 뒤늦게 권재홍 비서실장의 움직임까지 알게 되자 곧바로 최민혁 실장에게 자신이 정리한 내용을 보고했다.

[민혁아, 이거 문제없는 거 맞지?]

그도 권재홍 비서실장 문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 걱정하지 마.]

[진짜야?]

[내가 이런 것도 모르고 일을 밀어붙였겠어? 다 생각이 있어.]

[아니, 이쪽 엔지니어들은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어. ARN 측에 확인한 바로는 그쪽도 잘 모르는 눈치야. 이거 진짜 심각한 상황일 수 있잖아.]

최영란 본부장은 걱정 많은 시어머니처럼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갔다.

[…걱정 마. 내가 보고서를 확인해 보고 나서 다시 이야기할 테니까.]

최민혁은 최영란 본부장의 걱정에 혀를 내둘렀다.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도 그녀가 보내온 보고서를 별생각 없이 읽다가 한 부분에서 화들짝 놀랐다.

‘아, 맞아. ARN 성능이 좀 문제가 있었잖아. 그래서 문제가 되는구나.’

MP3와 달리 MPEG-2 코덱은 생각보다 CPU에 부하가 많이 걸린다.

비록 MPEG-2 코덱 칩을 사용한다고 해도 중간에 병목현상이 존재한다.

기존의 ARN7에 근본적인 성능 제약이 있어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최민혁 실장도 이런 ARN의 단점을 알기는 알았다. 다만 그가 보는 기준은 ARN 미래 칩 코어였다. 그 기준으로 봤으니, 성능이 떨어진다는 한계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로서는 실수를 제대로 한 셈이다.

아니, 실상 KM DVR 용도가 선동 목적이었으니,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런데 KM 센서의 입장은 좀 달랐다.

또한 KM 센서 가치가 커져야 자기 일에 도움이 될 테니,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최민혁은 당장 미국 재무부 미팅이 걸려 있어서 이 문제를 뒤로 미룰까 생각했다.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아.’

지금의 ARN은 미래의 ARN처럼 잘나가는 회사가 아니었다.

ARN IP 성능에 문제가 많았다.

그는 단기간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영란 본부장의 요청을 슬쩍 피하면 2~3개월 정도는 넘길 수 있다.

‘제품 개발하다 보면, 하자는 늘 나오니까.’

그래도 그렇게 또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대안을 떠올려 보았다.

‘고성능 ARN이 필요해.’

그리고 이 기술을 가진 회사가 있다.

바로 ARN V4 아키텍처를 라이선스한 DEC이 그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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