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80화 (777/1,021)

#780.

“전 ARN 엔지니어라면 세계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더군요.”

그제야 팀 회식 분위기가 싸해졌다.

겨우 시간을 내서 회식하기는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영업 팀장을 비롯한 KM 센서 임원들이 돌아가면서 그들을 찾아왔다.

심지어 최용욱 회장 역시 경영진을 데리고 우르르 그들을 방문해서 치하했다.

하지만 뿌듯한 기분은 그때뿐이다.

이제 결과로서 증명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거다.

그들은 실상 KM 센서 내부 이야기를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이기수 부장은 기억하기도 싫은 사태에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소주를 병째로 꿀꺽꿀꺽 마시다가 옆에 앉은 팀원이 막아서자 술병을 가까스로 내려놓았다.

최태훈 차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부장님, 그런다고 이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핸드폰을 보세요!”

부재중 전화가 가득했고, 핸드폰 메시지는 산처럼 쌓여 있었다.

KM 센서 관련 임직원들이 계속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심지어 영업 팀은 스토커들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이기수 부장 역시 이제는 지난 일을 다 잊었다. 지금 당면한 문제 처리가 우선이었다.

“어떻게 일정을 당길 방법이 없어?”

“가장 큰 문제는 ARN입니다. 걔들 역시 분위기 봐서는 애초에 이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기존에 있던 직원이 다 갈려 나가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 정도야?”

“기능이 동작하면 뭐 합니까. 안정성이 없어요. 사실 이게 좀 이상합니다.”

“하지만 미국 경찰이 잘 사용했잖아?”

“그쪽 담당자 이야기로는 운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냥 녹화 자체가 운이 좋아서 잘된 것뿐입니다. 만약 범인 동선이 달랐다면 결과가 그렇게 좋지 않았을 겁니다. 그게 다 최민혁 실장님이 중간에 끼어들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허 참.”

그도 ‘최민혁 실장’ 이야기가 나오자 반박하지 못했다.

모든 일이 잘되어도, 못되어도 최민혁 실장만 통하면 해결이 되었다.

정작 그 사이에 낀 자신들은 오히려 어떤 대안도 내놓고 있지 못했다.

이걸 윗선에 보고한다고 해도 윗선이 수긍할 일이 아니었다.

직장 생활이 늘 그렇듯이 결과를 내놓아야 했다.

‘투덜이 스머프’란 별명이 팀 내에서 도는 최태훈 차장의 잔소리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러자 다들 침울한 표정으로 술만 마셨다.

이 자리가 마치 ‘최후의 만찬’ 같았다.

최태훈 차장은 슬며시 이기수 부장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영란 본부장에게는 사실을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우리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눈치 같으니까요.”

“…그래.”

이기수 부장은 결국 최영란 본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이기수 부장입니다. 아, 전화하려고 하셨다고요? 네, 잠깐 긴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네? 직접 오시겠다고요? 여기 주소가…….]

* * *

최민혁 실장에게 연락을 받은 최영란 본부장은 안 그래도 이 사안에 대해서 고민하던 중이라서 이기수 부장 전화를 받은 후에 불과 20분이 채 되지 않아 회식 자리에 도착했다.

그녀는 아무래도 여자 몸인지라 이 회식 자리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일단 분위기부터 살폈다.

확실히 삼페인을 터뜨린 KM 그룹 사장단 분위기와는 달랐다.

다들 눈가에 걱정거리가 가득했다.

역시 갈려 나가는 공돌이다웠다.

하지만 굳이 이기수 부장에게 전화를 받고도 이 자리에 온 이유가 있었다. 뭐가 됐든 최민혁 실장의 부탁이 우선이었다.

“KM 센서는 갑자기 만들어진 회사고, 원래는 모바일용 이미지 센서 개발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정이 여의치 않음에도 위의 지시를 잘 따라준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사실 실무진들이 알아서 움직여 주지 않았다면 이번 일은 실패했을 수도 있다. 그들이 실질적인 결과를 도출했기에 최민혁 실장이 도와준 것이었다.

“아닙니다. 본부장님이 더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실제로 최영란 본부장도 중간에 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최민혁 실장의 지시는 단방향이었다. 비록 기술적인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실제로 몸으로 때운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거기에 최문경 부회장은 ‘넌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런 주변 상황에도 목표를 관철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최영란 본부장은 어깨를 으쓱한 채 우선 김희수 연구소장, 이기수 부장, 최태훈 차장 순으로 봉투를 하나씩 내밀었다.

심지어 이 자리에 참석한 다른 실무진에게도 빠짐없이 말이다.

“……?”

처음에는 김희수 연구소장도 단순히 인센티브가 들어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헉? 서, 설마 KM 센서 지분을 주시는 겁니까?”

그가 받은 KM 센서 지분은 무려 3만 주였다. 부장, 차장, 과장, 대리, 평사원 직급에 따라서 할당된 KM 센서 지분은 다 달랐다.

미래 기술 지분 가치를 놓고 본다면 KM 센서 가치는 굳이 논할 필요가 없었다.

그야말로 로또였다.

최영란 본부장은 씩 웃었다.

“네.”

“맙소사!”

회식 자리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 * *

호들갑을 떠는 임직원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최영란 본부장은 손을 들어서 일단 그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녀는 그다음에 스피커폰을 사용해서 한 곳에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서 들려온 목소리는 최민혁 실장의 것이었다. 굳이 그가 최영란 본부장에게서 연락을 받고 전화를 한 이유는 최문경 부회장 때문이다. 괜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 배신을 때리는 직원이 나오지 않기를 원했다. 그런 사람이 생기면 내부 정보가 흘러나가게 된다. 물론 기우일 수 있지만, 기름칠 하기에도 지금이 적기였다.

[제가 빨리 연락을 해야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못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사실 제가 한국에 가서 여러분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야 했는데, 제 상황이 그럴 여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급한 대로 우선 이렇게 전화했습니다. 참, 회식 중이었습니까?]

김희수 연구소장이 바로 대답했다.

[아, 네, 맞습니다.]

[그러면 제가 괜히 회식을 방해한 것일 수도 있겠군요.]

[아닙니다.]

[짧게 본론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처음 제 지시는 꽤 무리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KM DVR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냈습니다. 더욱이 일정 안에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 지분은 성과에 대한 보상입니다.]

슬쩍 최민혁 실장이 판을 깔아주자 김희수 연구소장은 실무진의 따가운 눈총에 바로 입을 열었다.

[최 실장님, 그런데 미처 KM DVR에 대해서 말하지 못한 사실이 있습니다. 지금 미국 언론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KM DVR이 완전한 기능을 가진 상태가 아닙니다.]

최민혁은 당연히 이런 사정을 예상했다.

[압니다, 문제가 많은 것 보고받았습니다.]

하지만 김희수 연구소장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좀 달랐다.

[네? 아니, 사실 그 문제 중에 ARN 칩 버그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ARN 측에서 부랴부랴 엔지니어를 보내기는 했지만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최민혁은 여전히 김희수 연구소장이 말하는 의미를 잘 몰랐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 부분은 제가 ARN 측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으면서 실무진의 마음을 다독거려 주었다.

[제가 준 시간 안에는 절대로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있다면 프로토타입의 기능 구현 수준 정도일 겁니다. 겉으로만 봐도 문제가 많은 수준이죠.]

[그, 그렇죠. 제대로 KM DVR를 공급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회장님이나 경영진은 전혀 그 점을 인식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최악의 경우 이 문제 때문에 따로 추궁을 받아서 프로젝트가 개판이 될 수도 있었다.

[압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다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지분은 여러분의 성과에 대한 첫 번째 보상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KM 센서 직원들 입장에서는 시원한 대답이었다. 실상 KM 그룹 쪽의 인물들은 소통하려 해도 이런 식으로 명쾌하게 대답해 주지 않았다.

[가, 감사합니다.]

물론 최민혁은 최영란 본부장에게 한마디 더 남겼다.

[최영란 본부장님, 나머지 일은 본부장님에게 맡기겠습니다.]

최민혁은 최영란 본부장이 알았다고 하자 피식 웃었다. 그는 자세한 설명을 해줄까 하다가 은근슬쩍 넘어가 버렸다.

‘누나도 고생을 좀 해봐야지.’

[어, 걱정하지 마세요.]

곧 끊어진 전화.

[자, 잠깐만, 최, 최 실장님!]

다급하게 소리쳐도 최민혁 실장 대답은 없었다.

오히려 최영란 본부장 역시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뜨거운 임직원들의 시선에서 노골적인 욕망을 느낄 수 있었다. KM 센서 지분 가치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들이 더 잘 알 테니까.

[기회는 늘 여러분에게 주어질 겁니다. 그 기회를 잡는 것은 제가 아니라 여러분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그건 압니다만…….]

KM 센서 개발 연구진은 다들 눈치만 볼 뿐이었다. 환호성도 내지르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에게 말하기는 했지만, 이 상황을 정말로 이해를 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이기수 부장은 눈알을 도르르 굴리면서 최영란 본부장의 눈치를 봤다. 도저히 이 분위기에서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본부장님, 따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네? 무슨…….”

* * *

이기수 부장은 눈치를 보다가 결국 최영란 본부장을 슬쩍 회식 식당의 한쪽 구석으로 데려가서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저기 본부장님, 제가 최 실장님에게 충분히 말했지만, 전달이 잘 된 것 같지 않아서 말입니다.”

“넵, 말씀하세요.”

최영란 본부장은 기분이 좋았다. 비록 자신의 실책은 인정하지만 이미 결과는 나왔다. 더욱이 KM 센서 지분 10%를 챙겼다. 이제는 그녀 자신도 경영권 승계에 뛰어들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기수 부장이 기쁨에 들떠 있는 최영란 본부장의 마음에 재를 잔뜩 뿌렸다.

“그게, 지금 DVR 개발 과정에서 생긴 문제가 좀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해야 할 듯싶어서…….”

그렇게 해서 나온 버그에 관한 책임은 전부 다 ARN 측으로 돌렸다.

최영란 본부장은 역시 경영자답게 공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 터라 발끈했다.

“자, 잠깐만요. 이미 미국 지역 경찰에서 기능 확인을 다 끝냈지 않습니까.”

“기능 구현은 됩니다. 하지만 테스트 기간이 짧아서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을 겁니다. 윌슨 부부 사건은 정말 운이 좋아서 해결되었습니다. 다른 사건에는 이번처럼 기능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 언론에서도 이미 우리 KM DVR 장비를 분석했습니다. 최고의 성능이라고 평가했단 말입니다.”

“그쪽은 KM DVR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러니 무리수를 둔 거죠. 다른 회사의 DVR이 있었다면 다른 답변을 했을 겁니다. 잊지 마십시오. 세계 최초로 DVR를 개발한 회사는 우리 KM 센서입니다!”

“…그래요?”

최민혁 실장이 알았다고 하고 넘어간 내용은 단순히 그냥 넘어갈 수준이 아니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뒤늦게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멍하니 보고서를 살폈다.

실제로 이기수 부장이 서류 가방에서 주섬주섬 내놓은 것은 미국 지역 경찰이 작성한 버그 리포트였다. 그 안에는 욕설도 많았다.

[씨발, 뭔 놈의 장비가 툭하면 죽어버리냐? 도대체 이런 쓰레기를 어떻게 쓰란 소리야?!!]

[최소한 기본적인 동작을 해야 할 것 아냐. 왜 마우스로 클릭하면 시스템이 뻗어버려?!!]

사소한 버그가 생각보다 많았다.

사실 동작한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윌슨 부부에 대한 증거를 찾은 것은 정말로 운이 정말 좋아서였다.

만약 최민혁 실장이 전생 1회 차 기억을 토대로 DVR를 설치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소녀를 납치한 범인을 찾을 수가 없었을 일이었다.

언론이 몰려드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차마 최민혁 실장을 공격하지 못했고, 버그 리포트에만 KM 센서를 싸잡아서 맹비난했다.

[이건 사기야!]

[내가 반드시 언론에 제보할 거야!!]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거야? 디지털 세상 같은 개소리하네!!!]

단순히 기능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사용상에 애로사항이 많았다.

최영란 본부장은 크게 당황했다.

“…아, 아니, 이런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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