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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32화 (732/1,021)

#732.

다만 그들이 원하는 것도 있었다.

일단 벨린 투자도 투자지만 투자 정보를 원한 것이었다.

그들도 정보만 안다면 자기 자본으로 재미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영민 부장은 당황하기는 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굳이 그 일에 집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약간의 손해.

아니, 정확히는 얻을 이익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으로 그들의 호감을 살 생각이었다.

‘친밀해진다면 모건 스탠리와 샐로먼 브러더스를 압박할 수도 있지.’

그렇게만 된다면 최문경 부회장의 미국 내 연줄을 하나씩 끊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 배후도 말이다.

‘목표는 그놈들이니까.’

최민혁은 물론 겉으로는 자기 번민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웃었다.

이지수 박사나 헬렌은 그 웃음에 넘어가지 않았지만 740번지 펜트하우스에는 감탄했다. 최민혁이 손짓하는 건물은 돈이 썩어나지 않는 이상 매입하기는 힘든 것이었다.

“…대단하세요.”

비꼬는 말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진짜 최민혁의 행동에 감탄했다.

“제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최민혁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는 이지수 박사가 이번 MPEG-2 원천기술 확보에 도움을 줄 것이라 봤다. 때문에 펜트 하우스 한 채를 선물로 줄까 고민하기는 했지만 관뒀다.

이지수 박사가 부담스러운 선물을 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주 사용하다 보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이걸로 일단 미쓰비시를 두들기기 전에 사전 정지 작업은 끝냈다고 봐야겠지.’

* * *

미쓰비시는 일본 최대의 인공위성 제작자이기도 하다. 이 회사는 일본이 진행하는 인공위성 관련 프로젝트에 거의 다 참여했다.

우주 탐사선 역시 빼놓기 어렵다.

최민혁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건 다름 아닌 오큘러스 프로젝트 이후다.

그는 가능하면 국내 기술로 일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미쓰비시가 깔아놓은 위성 관련 특허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술은 단순히 위성 영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오디오, 비디오를 비롯한 다양한 압축, 보안 기술도 포함했다.

미쓰비시가 MPEG-2 관련 원천 기술 중에 41%를 보유한 것은 단순히 운이 아닌 셈이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가 이런 점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미쓰비시가 비디오 기술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만약 불과 2년 전이라면 미쓰비시가 MPEG-2 관련 원천기술을 매각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도 큰 차이는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미쓰비시의 상황이 몇 년 전과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일본 정부가 경기부양책 위주로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아무래도 위성 산업을 외면한 것이니 말이다.

지금 일본 정부는 소비세 인상과 같은 정부 재원 확보에만 매달렸다.

이들은 일본 대기업에도 돈이 안 되는 사업부를 매각하란 식으로 얼음장을 놨다.

일본 은행의 일본 대기업 지원은 이런 큰 파도에서 비켜날 수가 없었다.

미쓰비시 특허 사업부 책임자인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이런 미쓰비시 내부 흐름을 잘 알았다. 미쓰비시 자금 사정이 경직된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불필요한 경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당장 돈이 안 되면 특허는 이 대상에서 높은 순위에 올라 있다.

그는 미쓰비시에 충성하고 싶지만 살 궁리를 찾아야 했다.

미쓰비시에서 은퇴한 이후 삶이 무섭기만 했다.

‘혼다 카즈이 이사가 그렇게 갈 줄은 몰랐어.’

지난주에 임종을 맞은 혼다 카즈이 이사.

히타치 내에서 잘나가는 친구였다.

친구 중에 가장 먼저 이사를 달았는데, 이번에 된서리를 맞았다.

개인 사업을 한다고 할 때부터 불안했다. 일본 내수 경제가 파탄이 난 상황에서 사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가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을 때 거절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시즈벨에서 기둥 중의 한 사람이니까.

특허 관련 매각 협상 때문에 몇 번 만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가 않았다.

시즈벨은 헐값에 특허를 매입한 후에 그것으로 소송해서 이익을 보는 업체이니 말이다.

자신이 넘기려고 한 특허는 미래 가치가 불투명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시즈벨이 원하는 것은 핵심 특허일 때가 많았다.

물론 당시 미쓰비시는 잘나가는 상황이었으니, 시즈벨의 요구를 들어줄 리가 없었다.

‘시즈벨이라…….’

그는 문득 시즈벨에 대한 시점 자체가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시즈벨이 비록 특허로 돈 버는 기업이지만 직장인에게는 꽤 매력적인 회사다. 이들이 보유한 특허가 있는 이상 망할 리가 없는 회사이니 말이다.

사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이런저런 기대를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게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의 현 경제 상황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과거 자신이 안내한 적이 있는 고가의 식당에 그를 초청했다. 거기에 여자도 껴서 말이다.

물론 공짜 접대는 아닐 것이다.

접대부도 나름 이름이 제법 있었다.

꽤 돈이 많이 들어갔을 것이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가 아예 작정했다는 것이다.

아마 코다 도시히로 이사도 몇 년 전이라면 그냥 나갔을 자리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와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주로 시즈벨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제가 기억하기로 시즈벨은 MP3 관련 특허를 확보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특허라면 지금 한국 MP3 기업을 상대로 특허료를 요구할 만하지 않습니까?”

“어, 그걸 아직 기억하십니까?”

“시즈벨이 보유한 특허가 장식일 리는 없을 테니까요.”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솔직히 한국 MP3 중소기업이 MP3 플레이어를 찍어내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일본에도 수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장 타격을 받은 이는 다름 아닌 소니를 비롯한 기업이다.

일본에 수출된 MP3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KM 전자 제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한국 내에 갑자기 늘어난 MP3 중소기업들이 미친 듯이 일본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 공세에 사전에 MP3를 준비하지 못한 소니를 비롯한 일본 대기업을 큰 타격을 받았다.

그들은 부랴부랴 MP3 시장에 뛰어들려고 기술 개발에 착수했지만 당장 문제가 된 것은 MP3 특허풀이었다.

일본 대기업은 사실 이 문제를 처음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특허료를 적당히 주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상대가 다름 아닌 KM 전자였다.

이번 에플 주식 매각 대금으로 무려 2조 6천억을 벌어들였고, 작년 순이익만 이미 조 단위를 넘어선 곳이었다.

‘난리가 났지.’

우울한 소식은 일본 정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MP3 플레이어의 미래 가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씩 웃었다. 그는 코다 도시히로 이사의 속내가 이미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렇다면 굳이 불필요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일본 대기업은 저력이 있습니다. 이번 일은 잘 극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술을 연달아 석 잔을 마신 후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MP3 관련 특허는 이미 KM 전자가 다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특히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은 이런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리라는 것도 말입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코다 도시히로 이사가 ‘최민혁 실장’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격해지자 오늘 미팅은 이 정도에서 끝냈다.

그는 여자 접대부에게 따로 팁까지 줘서 코다 도시히로 이사를 맡겼다.

‘이거 서두르다가 자칫하면 실패할지도 모르겠어.’

* * *

MP3 플레이어 산업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KMP-01이 MP3 플레이어 시작을 만든 이후에 특허 풀까지 저렴한 가격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MP3 플레이어 시장은 이미 KM 전자가 선점한 상황이다.

특허료나 낸드 메모리 가격 때문에 국내 MP3 기업은 KM 전자와 경쟁하기 어려웠다.

KMP-01의 변종 제품이 꽤 매력적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거기에 미래 기술이 어렵게 생산한 차세대 배터리도 문제였다.

MP3 중소기업은 부랴부랴 미래 기술에 배터리 오더를 내렸지만, 시간상으로 그들이 물건을 받기란 쉽지가 않았다.

미래 기술은 당장 핸드폰 배터리 쪽에 우선순위를 뒀기 때문이다.

그들이 오성 전자와 모토롤라 측과 먼저 손을 잡은 이유다.

오성 전자는 미래 기술의 차세대 배터리 OEM 계약을 통해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MP3 중소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대안은 수출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워크맨에 익숙한 일본 시장을 먼저 노려서 공격한 것이었다.

소니를 비롯한 일본 대기업은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 실무진 일부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서 최민혁 실장과 미팅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최민혁 실장을 만나지 못했다.

그들로서는 한국 MP3 중소기업에 먼저 선제공격을 당한 셈이다.

그들은 부랴부랴 KM 전자에 연락해서 특허료 문제를 협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계약은 쉽게 체결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최민혁 실장이 미국에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민혁은 물론 일본 대기업의 연락을 잘 받지 않았다. 그는 굳이 자신이 서두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면 한국 MP3 플레이어 기업이 일본 MP3 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하기를 은근히 바랐다.

이런 상황이니.

일본 기업들에게서 MP3의 아버지라 불리는 최민혁에 대한 이미지가 좋을 리가 없었다. LCD-IPS를 비롯한 원천특허 사건을 빼고도 말이다.

[그래요?]

예상치 못한 반감 소식에 최민혁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 역시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나쁠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장 소식은 그의 예측을 뛰어넘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그런 점을 몇 번이나 지적했다.

[아무래도 일본 대기업과 협상할 때는 최민혁 실장님의 이름이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필요하다면 거짓말을 좀 해도 됩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번거로운 소식을 전해서 말입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괜히 덤터기 쓰는 것보다는 훨씬 났죠.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시즈벨이 그냥 절 대리하는 것으로 하죠. 제 이름은 다 빼세요. 중요한 것만 사전에 미리 연락을 주세요.]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혀를 찼다. 그 역시 한국 MP3 산업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왕이면 잘되었으면 하지만 말이다.

‘미국 시장은 좀 골치 아프겠어. 애니가 탑재된 KMP-2B와 경쟁을 해야 할 테니.’

* * *

사실 최민혁 실장의 악명은 일본 대기업 실무진 선에서는 이미 악명이 자자했다.

여러 가지 일본이 가진 원천기술을 헐값에 가로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기술을 먼저 개발한 것이지만 일본 엔지니어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진지한 얼굴의 코다 도시히로 이사의 얼굴에는 우려와 근심이 가득했다.

단순히 자신의 미래만이 아니다.

미쓰비시의 장래와 일본 정부의 현황이 암울했기 때문이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다시 만난 코다 도시히로 이사와의 술자리에서 그를 어떻게 설득할까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그렸는데,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술이 제법 들어가자 화제를 미쓰비시 쪽으로 바꾸었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제법 술을 먹어서인지 발음이 고르지 않았다.

그래도 할 말은 다 했다.

“정치하는 쓰레기들이 문제입니다. 정부 세수를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서민들 수탈만 하니까. 소비세 인상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는 아예 생각도 안 합니다!”

“정권이 바뀌면 뭐 합니까? 경기 대책이 제대로 서지 않는데 말입니다. 위성 사업은 접으라고? 미친 새끼들이죠. 가전은 한국 대기업과 경쟁에서 이길 수 없으니, 포기하라고? 그러면 자동화 산업은 살아남을 것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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