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33화 (733/1,021)

#733.

물론 마냥 접으라고 하지는 않았다.

이전처럼 일본 정부가 도와주기 힘들다고 했을 뿐이었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그걸 접으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가 걱정하는 이유는 LC 그룹이나 오성 그룹에서 이미 자동화 산업 역시 꽤 따라붙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국에 정부에서는 한국 대기업과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으니, 접으라고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일본 정부가 자금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미쓰비시 역시 그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그들이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지금까지 쌓인 감정을 가감 없이 폭로했다.

“…근심이 많으십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술잔만 따라주면서 묵묵히 들어주기만 했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답답함을 내보낼 배출구를 찾자 가슴에 쌓인 모든 것을 토해냈다.

덕분에 공감대는 꽤 형성되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그제야 넌지시 한 가지를 제안했다.

“사실 우리 시즈벨은 미쓰비시가 보유한 MPEG-2 특허에 관심이 많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간단합니다. 미쓰비시가 보유한 MPEG-2 특허를 얻을 수 있게만 도와주십시오.”

“…지금 절보고 회사를 배신하란 말입니까?!”

코다 도시히로 이사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이 정도까지 예상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왜 굳이 뒤로 빠졌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민감한 반응이라면 차라리 자신이 나았다.

“…시즈벨 내에 코다 이사님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일본 시즈벨 지사 내에 말입니다.”

“흠.”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꽤 술을 먹었지만, 정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그는 더 분노하지 않았다. 매국이란 행위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역시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남의 술주정이나 받아주려고 이 자리에 있을 사람이 아니란 것을 말이다.

그 역시 내심 이런 상황을 기대했다.

다만 그도 지금 이 자리가 MPEG-2 관련 원천기술 때문이라는 것은 몰랐다. 더욱이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 말만 믿을 수는 없었다.

“MPEG-2 관련 특허는 미쓰비시가 대충 관리하는 기술은 아닙니다.”

“아마 미쓰비시가 1년과 같았다면 이런 제안은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현재 미쓰비시는 지속적인 구조조정 중입니다. 그렇게 보면 MPEG-2 원천기술은 당장 돈이 안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몇몇 위성 관련 시스템에서 사용되기는 하지만 그 특허료라고 해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국 위성 시스템인 오큘러스 프로젝트에 특허료로 받아가는 돈이 고작 10억 안팎이지 않습니까?”

“…….”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역시 아는 사실이다. 미래 가치는 좀 다르겠지만 말이다. 지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오큘러스 관련 특허 문건을 내밀었다. 그 서류 안에는 오큘러스 사업과 관련된 된 자세한 특허료 내역이 있었다.

도대체 이런 자료를 어떻게 구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물론 그런 예민한 사안을 묻지 않았다.

그는 물끄러미 자료만 살폈다.

MPEG-2 관련 특허료는 실상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 모바일 관련 MPEG-2 제품이 시장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실상 아직은 모바일에서 MPEG-2 동영상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배터리를 떠나서 관련 기술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다 도시히로 이사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말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이보다는 그의 제안을 받아줬을 때 자신이 얻을 것을 더 고민했다.

“이걸로 설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가 그제야 머리를 살짝 숙인 채 코다 도시히로 이사에게 속삭였다.

“미래 기술의 차세대 배터리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필요하다면 미래 기술 지분 매각에 다리를 놓아줄 수 있습니다. 라이선스를 받아서 일본에 양산하는 것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게 정말 가능합니까?”

제이미 니콜라스는 이사는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우리 시즈벨은 이미 KM 전자와 꽤 많은 거래를 했습니다. KM 전자의 유럽 기업 로열티를 챙겨주기도 하니까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설사 미래 기술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해도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지 않는 코다 도시히로 이사의 태도에 그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으음,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미쓰비시가 과거처럼 이사님 삶을 책임져 주진 않습니다. 전 그 말은 드리고 싶습니다.”

“휴우.”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은퇴한 동료 중에 가족과 같이 자살한 이도 봤기 때문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특허 매입 대금은 원하는 대로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알았습니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한숨을 내쉰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보고 평생직장인 미쓰비시를 배신하라는 제안을 받았으니 말이다.

‘슬프네.’

* * *

최영란 본부장은 CMOS 이미지 센서 관련 기업 설립과 관련해서 장승일 기획조정실 실장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그녀는 자신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장승일 실장의 도움을 받았다.

다만 최민혁이 자신에게 지시해 놓고 연락이 없어서 확인차 전화했다.

최민혁은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을 핵심만 빼고 설명해 줬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MPEG-2 기술 특허까지 확보해야 해?]

그 역시 최영란 본부장의 반박을 듣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가 생각보다는 복잡하게 일을 풀어간다는 것을 보고받았기 때문이다.

그도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돌아갈지는 몰랐다.

하지만 이번 일은 꼭 매듭을 지어야 했다.

단순히 CMOS 이미지 카메라 때문이 아니었다.

동영상 산업 때문이다.

하지만 최민혁은 굳이 최영란 본부장에게 자세한 내막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CMOS 이미지 센서만으로는 시장 수요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그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쉽게 말하자면 동영상 이미지를 촬영했다고 하자. 그 동영상 파일 덩치가 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동영상 압축 기술이야. 그건 들어봤지?]

더 설명하기는 곤란해서 이 정도로 끝냈다. 최영란 본부장은 다행히 최민혁 실장의 이야기를 대충 이해한 것 같았다.

[아, PC에서 되잖아. 참, 이건 모바일에 적용되는 거구나. 아, 맞네. 지금은 모바일 기기에서는 안 되는구나.]

[딱히 모바일 기기에 국한할 수는 없어. 동영상 압축이 안 되면 하드 디스크로도 감당이 안 되니까. 이 동영상 산업은 반드시 압축 기술이 필요해. 그래야 CMOS 이미지 센서가 주목을 받으니까.]

[…….]

최영란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는 CMOS 이미지 센서만으로도 이미 골치가 아팠다. 양산 공장을 비롯한 연구 인력까지 말이다.

그녀는 맞은편에 앉아서 스피커폰으로 듣고 있는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장승일 실장은 침묵했다. 아니, 그는 슬쩍 이 자리에 참석한 기획 조정실 직원들을 쳐다보았다.

다들 장승일 실장의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그들은 동영상 압축 기술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 말을 잘 들어보면, 얼렁뚱땅 넘어가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았다.

다만 굳이 그 부분에 대해서 질문하지는 않았다.

지금 진행되는 건수만 해도 머리가 복잡했다.

아니, 실상 기획 단계에서 검토하기는 했지만, 단순히 언급하는 선에서 끝냈다.

아직 동영상 국제 표준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는 동영상 압축 표준 기술 숫자도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동영상 압축 원천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이니 말이다.

최민혁은 굳이 묻지 않아도 이런 현실을 잘 알았다. 그가 굳이 MPEG-2 원천기술을 뒤로 미뤄둔 이유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MPEG-2 기술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어. 문제는 그나마 나와 있는 MPEG-2 특허의 41%를 일본 미쓰비시가 들고 있다는 거야.]

[…하면 미쓰비시에 꽤 많은 로열티를 내야 한다는 소리야?]

[원래라면 그렇지. 내가 굳이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포기한 이유 중의 하나니까. 다행이라면 우리도 10건 정도 되는 동영상 압축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특허 팀이 말한 동영상 압축 기술이 그것이었구나.]

최영란 본부장도 KM 전자 쪽을 통해서 몇 가지 조사했다.

그녀도 소규모 그룹으로 남아 있는 비디오 관련 특허를 보고는 의아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미쓰비시도 바보가 아닐 텐데, 우리에게 MPEG-2 특허를 매각하려고 할까?]

[그건 잘해야지. 하지만 꼭 불가능하지는 않아. 지금 당장은 미쓰비시도 MPEG-2의 가치를 잘 모를 거야. 더욱이 걔네들은 지금 구조조정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이거든.]

[하긴 일본 경제가 좀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설마 그걸 말하는 거야?]

[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이 일은 굳이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니까. 지금 내가 말한 정보도 보안을 유지해. 만약 최문경 부회장이 알기라도 하면 난리가 날 테니까.]

[…알았어.]

그녀는 통화를 끊고 나서는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장승일 실장은 이 자리에 참석한 기획 조정실 직원 두 사람을 상대로 협박했다.

“두 사람도 들었겠지만, 만약 이 사실이 외부에 흘러나가면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어.”

“…아, 알겠습니다.”

두 사람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수긍하고 말았다.

다행이라면 두 사람은 이미 내부적으로 검증을 거친 인물이었다.

보안은 문제가 없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골치가 아팠다. 일이 생각보다 더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왜 최민혁 실장이 자신보고 일을 잘했다고 하는지 깨달았다.

‘CMOS 이미지 센서 그 자체만으로 돈이 되지만 이를 기반으로 얻어진 동영상 처리 자체까지 할 수 있다면…….’

그건 단순히 CMOS 이미지 산업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최민혁이 왜 복잡한 반응을 보였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니, 그녀는 솔직히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이 사업이 단순하게 끝날 것 같지 않다고 추론만 할 뿐이었다.

‘우리 부회장님 귀에 들어가면 큰일이 나겠어.’

당연한 일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이 이 사실을 사전에 알면 미친놈처럼 날뛸 것이다.

물론 그가 난리를 쳐봐야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은 없지만 말이다. 시즈벨과 미쓰비시 사이에 진행되는 일에 끼어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 * *

최영란 본부장은 결국 최용욱 회장에게 직접 연락해서 사장단 보고를 늦추어 달라고 요청했다. 최용욱 회장은 딱히 서두를 일이 아니라서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두 사람 선에서 간단하게 일을 끝냈다.

기획 조정실 역시 CMOS 이미지 생산 공장과 관련된 일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들은 굳이 이 정보를 숨기지 않았다.

일단 CMOS 이미지 센서 쪽으로 상황을 몰아간 것이었다.

의심이 많은 최문경 부회장도 장승일 실장의 행보에 딱히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감이 좀 안 좋다고는 생각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최용욱 회장이다.

그는 최근 최영란 본부장을 띄워주기에 바빴는데, 갑자기 사장단 회의를 연기한 것이었다.

“이상하군.”

다만 권재홍 비서실장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CMOS 이미지 기술을 모바일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지난번 KM 산업 이사회에서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당시에는 그렇게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당장 양산 문제를 검토해야 합니다. 그러니 좀 더 면밀하게 확인했을 것이고, 또 다른 문제를 찾아냈을 겁니다.”

“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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