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31화 (731/1,021)

#731.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딱히 나쁜 제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쓰비시 역시 핸드폰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비록 올해는 핸드폰 경쟁 과열 때문에 핸드폰 산업이 주춤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CDMA 상업화도 이미 막바지 단계이고…….’

CDMA 관련된 한국 내의 상황 역시 조금씩 진척을 보이는 중이다.

그 덕분에 미국 퀄컴 본사 역시 정신이 없었다.

미국 정부에 대한 로비부터 시작해서 산적한 여러 가지 문제의 해결 때문이다.

최민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잘 아시겠지만 지금 전 에플만으로도 골치가 아파요. 굳이 미래 기술에 신경 쓸 여력이 안 됩니다. 더욱이 일본 내수 차세대 배터리 양산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걸 제가 일일이 다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미래 기술을 키울 생각은 없는 겁니까?”

최민혁은 미래 기술 인력을 떠올리고는 쓰게 웃고 말았다.

“기업 성장이 단순하게 진행될 일이 아닙니다. 미래 기술에만 맡겨두었다가는 제가 원하는 타이밍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좀 무리가 따라도 필요하다면 미래 기술 경영진을 압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그 역시 2조 6천억이라는 매직 넘버에 대해서 모르지는 않았다.

최민혁이 굳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특허권 싸움을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미쓰비시도 바보는 아닙니다. 최 실장님이 MPEG-2 원천특허를 노린다는 것을 알면…….”

최민혁은 냉큼 반박했다.

“그들이 모르도록 해야겠죠. 그러니 이번에는 시즈벨 이름으로 나서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제이미 이사님을 미국까지 호출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예 최 실장님은 이번 거래에 나서지 않을 생각이군요.”

“그런 셈이죠.”

최민혁은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눈빛이 바뀐 것을 보자 한숨을 내쉬었다. 시즈벨의 악명이라면 무슨 짓을 할 지 몰라서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제 뒤통수를 치면 그냥 안 둘 겁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움찔했지만 그런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라도 소탈하게 웃었다. 그도 사실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약간의 수작을 부릴까 싶었다.

하지만 최민혁의 표정을 보고는 그런 생각을 깔끔하게 접었다.

“KM 전자와 시즈벨은 파트너입니다. 파트너의 이익을 침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 역시 시즈벨의 악명은 잘 안다. 그런데 이번 모토롤라 협상 자문과 협상을 도와주면서 어느 정도 자신의 신뢰를 얻었다.

그렇다면 굳이 시즈벨에게 벽을 세울 이유는 없었다.

때문에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좋아요. 이번 일은 잘 좀 부탁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대화가 끝나자 이번 계약과 관련된 서류를 내밀었다.

물론 변호사는 동반한 채 말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안현수 팀장은 새삼 기대에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도 최민혁 실장호에 오르면서 나름 많은 기대를 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까지 포함될 줄은 몰랐다.

더욱이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와 같이 일하면서 꽤 배운 터라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최근 모토롤라 협상의 실무진으로 합류해서 실로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 역시 그 과정에서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것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이었다.

최민혁은 별 표정 없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그가 보인 욕심과 탐욕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시즈벨이 이미 자신과 계약을 한 이상 뒤통수를 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배신하면 배로 보복하면 그뿐이니까. 그보다는 이번 계약을 잘할 수 있을까?’

시점이 참으로 애매했다. 하지만 MPEG-2 원천특허는 이번이 기술을 사들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이 시기가 지나면 미쓰비시는 절대로 MPEG-2 원천 특허를 매각할 리가 없다.

아무리 천문학적인 자금을 제안해도 말이다.

‘다는 힘들 수도 있어. 하지만 최대한 사들이는 것이 중요하겠지.’

최민혁 자신도 지금 공매도와 바트화 이슈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최문경 부회장을 압박하는 일 말이다. 이번 MPEG-2 원천기술 확보와 CMOS 이미지 센서는 결국 최문경 부회장에게 큰 영향을 미칠 테니 말이다.

‘영란 누나 때문이니까.’

하지만 이 일은 자신이 더 이상 개입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국내 업무는 최영란 본부장에게, 국외 협상은 시즈벨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이보다는 지금 있는 이 저택이 꽤 마음에 들었다.

단순히 이지수 박사나 헬렌이 좋아해서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이 환경에 흡족해하는 두 사람이 자신의 히든카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나도 호감을 좀 사볼까?’

선물이라면 초고가 핸드백이나 차가 대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두 사람의 성정을 잘 안다. 그냥 준다고 받을 사람이 아니다. 그저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우영민 부장을 호출 좀 해주세요.”

* * *

벨린 투자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최근 에플 주식으로 재미를 꽤 봤다.

단순히 10억 달러 수준이 아니었다. KM 전자가 보유한 에플 주식으로 재미를 볼 때, 벨린 투자 역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에플 외에 퀄컴, ARN과 같은 주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야후 주식으로도 재미를 꽤 봤다.

단순한 재미는 천문학적인 이익으로 늘어났다.

우영민 부장이 최민혁 실장이 말한 가이드라인을 놓치지 않아서 나온 결과였다.

하지만 그가 요즘 재미를 붙인 것은 저택 수집이었다.

최민혁이 내린 여윳돈이 있으면 건물을 다 사놓으란 지시에 충실한 과정에서 재미를 붙인 것이었다.

그래서 최민혁이 호출할 때도 매입할 저택 리스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민혁은 우영민 부장이 도착하기가 무섭게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돌아가는 일 따위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우영민 부장은 조성돈 팀장에게 넌지시 질문해 보았지만 그라고 아는 것은 없었다.

최민혁은 가끔 인재가 넘쳐나는데, 자신이 세부적인 일까지 알 필요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에플 공매도가 자신이 알 필요 없는 일인가?’

의문은 많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물론 최민혁이 이러는 이유가 있었다. 그 역시 우영민 부장이 하고 있는 저택 모으기를 보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바로 파크 애비뉴 740번지에 늘어서 있는 초호화 펜트하우스 말이다.

누구든 740번지에 있는 펜트하우스를 가진 사람은 뉴욕 사회의 왕좌를 물려받는다는 이야기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뉴욕 파크 바로 앞에 있는 이 펜트하우스는 당연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미국 부동산이 그나마 바닥을 기는 이 시점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20년 후에는 4,000만 달러, 7,000만 달러를 호가하는 건물이기도 하지.’

최민혁은 740번지를 천천히 거닐면서 여유로운 뉴요커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다행이라면 우영민 부장도 제법 이곳의 건물 내력, 정확히는 사용자들에 대해서 알았다.

“한때는 프랑스 정부가 대사 관저로 사용하기 위해서 복층 건물을 사들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프랑스 정부 소유인지는 그도 잘 몰랐다.

최민혁도 그 정도의 관심은 없었다. 그는 우영민 부장이 잽싸게 준비해 온 초호화 펜트하우스 내부 사진을 살폈다.

“…불행히도 지금 나와 있는 건물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지금과 같은 시기는 초호화 펜트하우스를 사들여야 할 시기라는 것을 말이다.

최민혁은 덕분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백화점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행동을 여기서 했다. 그는 센트럴 파크 공원을 뒤로한 채 한쪽 손으로 선을 그은 후에 다른 한 손으로 도로 저 멀리를 가리켰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매입할 수 있는 모든 건물을 다 사들이세요.”

“…네?”

요즘 투자로 재미를 크게 본 우영민 부장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반문하고 말았다.

백화점 쇼핑도 이런 식이면 욕을 먹는다.

하물며 백화점 상품도 아닌 초호화 펜트하우스를 이런 식으로 사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저, 저기 실장님, 여기 펜트하우스 소유주는 돈이 넘쳐나는 사람입니다. 전설적인 펀드 매니저를 비롯해서 부동산 재벌까지 여력이 넘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아무리 가격을 불러도…….”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아, 요즘 벨린 투자에 투자 요청이 제법 들어오죠?”

“네? 그건 그렇지만…….”

그는 문득 최민혁 실장이 벨린 투자 제안을 받지 말라고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당시만 해도 황당한 지시였다.

그런데 지금은 최민혁 실장의 말처럼 되었다.

굳이 외부 자금을 수혈받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최민혁은 이전과는 생각을 달리했다. 그는 모건 스탠리와 샐로먼 브러더스를 압박하면서 인맥의 한계를 느꼈다.

사실 두 투자 회사 자금도 따지고 보면 다 자기 자본이 아니었다.

그가 원한 바는 아니지만, 이들과 편하게 싸우기 위해서는 그들 자금을 줄이고, 자기 영향력에 놓인 자금 규모를 키울 필요가 있었다.

‘모토롤라와 미쓰비시의 경우가 좋은 예이니까.’

특히 모토롤라의 경우는 시즈벨을 중간에 끼워 넣지 않았다면 일이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그때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우리는 2조 6천억이라는 외형적인 성과를 이루었고,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굳이 이익을 독점해서 따가운 눈총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우영민 부장은 얼떨떨한 얼굴을 한 채 최민혁 지시를 떠올렸다. 확실히 불가능한 지시는 아니었다. 벨린 투자에서 투자 요청을 받는 조건으로 협상한다면 말이다.

특히 최민혁 실장의 명성은 이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벨린 투자에 수천 명의 투자 요청이 들어오는 것이 그 증거였다.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그제야 만족했다.

“일단 급한 대로 구할 수 있는 건물을 한번 다 구해보세요.”

“…네.”

* * *

우영민 부장은 확실히 능력이 좋았다. 아니, 그는 미국에 와서 저택 건물 사들이면서 그동안 꽤 명성을 쌓았다. 인맥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740번지 펜트하우스를 사는 게 쉽지는 않은 일임에도 급한 대로 물건 하나를 매입했다.

가격은 대략 1,000만 달러 남짓.

과거 록펠러가의 거물이 살았다는 집 중의 하나였다.

미국 유명 건설가 중에 한 사람이 설계했는데, 확실히 다른 건물과는 달랐다.

르네상스식 건물 외형에, 건물 내부는 대리석으로 처발랐다.

하지만 이런 인테리어보다는 역시 조망이 끝내줬다.

저 멀리 센트럴파크가 훤히 내려다보였으니 말이다.

건물 옥상에서 가지는 티타임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아니, 실제로 영화로 나갔었나?”

최민혁은 따뜻한 커피 맛을 즐기면서 건물 주변에 푹 빠져 있는 이지수 박사와 헬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MPEG-2 미팅 때문에 이 자리에 왔던 것이다.

헬렌은 살짝 상기된 얼굴이었다.

“최민혁 실장님, 대단하네요. 이 펜트하우스는 언제 매입한 거에요?!”

“어제요. 아직 건물이 제 명의로 넘어오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이죠.”

“와!”

그녀도 신기한 눈으로 최민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가 알기로 이 건물은 돈이 있다고 해서 매입할 수 있는 건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민혁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필요하다면, 휴가 내서 이 펜트하우스를 즐겨보세요. KMBOOK 쪽 임직원은 우리 KM 전자 직원처럼 즐길 수 있도록 해둘 테니까.”

“저, 정말이에요?!”

“그럼요. 서로 한 식구 아닙니까. 누릴 것은 다 같이 누려야죠.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 펜트하우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저기 건너편 건물을 이용해도 될 겁니다.”

“설마 이 한 채가 다 아니에요?”

“그럼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해당합니다. 아, 건물 전체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협상 중인데, 고집 부리는 분이 제법 있어서요.”

하지만 우영민 부장이 나선 덕분에 매입 협상은 긍정적으로 흘러갔다.

심지어 저택 매각 대금을 할인까지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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