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30화 (730/1,021)

#730.

사업 재편 과정에서 직격탄을 맞은 곳은 다름 아닌 가전제품이다.

에어컨과 같은 몇몇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하나둘씩 사업을 정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쓰비시가 지금까지 쌓아온 원천기술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MPEG-2 원천특허 중에 41%를 보유한 곳이 바로 미쓰비시이니 말이다. 이는 일반인이나 관련자도 잘 모르는 사실이다.

하지만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좀 달랐다. 그는 미쓰비시가 가진 원천특허가 무엇인지 아주 디테일하게 잘 알았다.

“혹시 미쓰비시가 보유한 MPEG-2 특허를 원하시는 겁니까?”

옆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조성돈 팀장은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최민혁 역시 새삼스러운 눈으로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를 쳐다보았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딱히 이 안건에 대해서 잘난 척을 하지 않았으며, 자기 생각을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의뢰인의 제안에 귀를 기울일 뿐이다.

최민혁은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태도에 감탄했다. 그는 덕분에 이 문제에 대해서 다시 고민했다. 사실 이 일은 딱히 계획한 바가 아니었다.

‘미쓰비시에 개인감정은 없으니까. 다만 보물을 가진 것이 죄지.’

솔직히 일본 대기업인 미쓰비시와 굳이 치고받고 싸울 이유는 없었다.

그 자신은 말이다.

그러니 이런 경우라면 대리인을 내세우면 그만이다.

시즈벨의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라면 딱 적임자였다.

“이미 제이미 이사님은 제가 원한 바를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글쎄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최민혁이 원하는 바를 금방 알아챈 건 맞지만 이번 건은 모토롤라와는 상황이 좀 달랐다.

미쓰비시가 가진 원천기술을 가로채야 하는데, 쉬울 리가 없었다.

필요하다면 불법도 저질러야 한다.

최민혁은 넌지시 그런 부분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뭐, 미쓰비시에 최문경 부회장처럼 개인감정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원수지간으로 갈라서는 건 곤란합니다. 최대한 효율적인 방법이 좋겠습니다.”

“…미쓰비시가 바보가 아닌데, 그 많은 MPEG-2 원천기술을 그냥 확보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과한 반응에 피식 웃고 말았다.

“장난은 이 정도로 하시죠.”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미쓰비시란 회사의 덩치가 얼마나 큰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비록 지금은 주춤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 중에 하나입니다!”

사실 미쓰비시 덩치나 영향력을 고려하면 한국 10대 대기업이 그나마 견줄 수 있다.

하지만 실제적인 규모를 비교하면 미쓰비시 영향력이 더 크다.

MPEG-2 원천기술이 그 증거다.

미쓰비시가 보유한 기술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MPEG-2 기술은 그저 일부에 불과했다.

최민혁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군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덤덤한 최민혁 실장의 반응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딱히 최민혁 실장에게 추가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잘하는 일이 이것이었으니까.

협잡과 기만.

다만 미쓰비시의 덩치가 너무 컸다. 일본 대기업 중에 손에 꼽는 기업이니까.

더욱이 미쓰비시는 사업부를 다 매각한다고 해도 원천기술 매각만은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민혁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는 이미 자신이 조사한 MPEG-2 특허 원천기술 목차를 보여주면서 하나씩 설명했다.

꼭 얻어야 하는 MPEG-2 원천기술과 버려야 할 기술도 말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최저 기준에 불과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가능한 모든 MPEG-2 기술이었다.

“제가 노리는 것은 MPEG-2 원천기술입니다. 이것은 원하는 기술 목차인데, 지금 MPEG-2 원천특허는 MP3와 달리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MP3는 MPEG-2와는 많이 달랐다. 오디오 압축 기술이라서 모바일에 쉽게 적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비디오 압축 기술은 덩치가 제법 크다.

때문에 PC와는 달리 모바일에 적용하기는 당장 문제가 있었다.

당장은 돈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10년 후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다만 그게 구체적으로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그 속사정까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ARN에서 이미 MPEG-2 압축 코덱 테스트 중이니까.’

그는 힐끗, 수영 삼매경에 푹 빠져 있는 이지수 박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굳이 일에 끼어들기 싫어서 그런지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지수 박사가 이미 MPEG-2 압축 코덱 관련 로직은 미국 국방성 과제로 이미 다 개발한 지가 오래였다.

기본적인 뼈대는 말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테일러 박사가 중간에 깽판을 치면서 이 정보가 묻히게 됐다.

‘운이 좋았어. 결국, 인종 차별 때문에 이 기술도 덮인 것이니.’

최민혁은 새삼 사람 사는 곳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지수 박사가 이미 만들어놓은 기술 목차를 다시 떠올렸다.

이는 MPEG-2 기술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한 응용 프로그램, 드라이버와 같은 환경 역시 포함한다. 최영란 본부장에게 넘긴 자료가 그 일부 중의 하나였다.

다만 미국 국방성은 오디오나 비디오 압축 기술 자체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미국 국방성 과제와는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MPEG-2 표준 관련된 안건은 이미 미국 표준 협회에서 관리 중이었다.

즉, 이미 기술 자체는 민간으로 넘어간 셈이다.

미국 국방성이 나서서 미주알고주알 참견할 안건이 아니었다.

다만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이 일이 가능한지 확신하지 못했다.

“이번 일은 내부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시간은 많이 못 드립니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 * *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시즈벨 미국 법인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이사회부터 열었다.

시즈벨 대표이사인 가브리엘 아담스가 이미 연락을 받고 자리에 있었고, 그의 일에 사사건건 대립하는 패트릭 호프만 이사도 자리했다.

특히 패트릭 호프만 이사는 어이가 없어서 그를 씹어댔다.

“아니, 미쓰비시가 무슨 구멍 가게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네. 그 일이 가능할 거로 생각해? 설마 공갈 협박이라도 할 생각이야?!”

사실이었다.

일본을 씹어대기 바쁜 이들은 일본 대기업의 저력을 몰랐다.

하지만 시즈벨은 좀 달랐다. 그들은 원천기술 확보를 바탕으로 이익을 챙기는 집단이니 말이다. 그들이 싸울 수 없는 대상이 바로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이었다.

그나마 미쓰비시가 과거와는 달라졌기에 이야기가 통하는 것뿐이었다.

그들 처지에서는 차라리 한국 대기업과 갈등하는 것이 오히려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물론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이미 미쓰비시 내부 사정을 먼저 확인했다.

“그럴 생각은 없어. 이미 미쓰비시 내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니, 방법은 나올 거야.”

패트릭 호프만 이사는 삿대질까지 해가면서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를 씹었다.

“입은 살아서 계속 나불거리네.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미쓰비시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MPEG-2 원천기술을 41%나 확보했겠어?!!”

사실이었다.

미쓰비시는 MPEG-2 동영상 압축 기술이 꼭 필요했다.

다름 아닌 위성 사업부 때문이다.

미쓰비시는 단순히 위성 사업만이 아니라 군사 기술 쪽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미국만 해도 이미 동영상 표준은 민간으로 넘긴 지가 오래야. 군사 기술 쪽으로 묶는 것은 좀 과한 거야!”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병신 같은 소리야!”

두 사람은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인 것처럼 거칠 것 없이 서로를 공격했다.

가브리엘 아담스 대표이사는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로 일단 두 사람을 말렸다.

“제이미 이사, 패트릭 이사의 말이 마냥 근거 없지는 않잖아.”

“힘들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성사시킨다면 일본 내에 영향력을 키울 수가 있습니다. 이건 기회입니다!”

그랬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단순히 최민혁 요구의 때문에 이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보수적인 일본 대기업에 자기들 인맥을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번 일을 추진하는 것이다.

가브리엘 아담스 대표이사 역시 제이미 이사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그는 시즈벨 사장답게 이번 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떠올렸다.

패트릭 호프만 이사는 황당한 얼굴로 소리쳤다.

“가브리엘 이사님, 이번 일이 진짜 될 것으로 생각합니까. 자칫하다가 미쓰비시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될 겁니다!”

“알아요. 그런 위험성도 있죠. 하지만 이 일을 의뢰한 최민혁 실장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밀어붙이지는 않을 겁니다.”

뭐 이전이라면 패트릭 호프만 이사도 ‘최민혁 실장 말 따위를 믿을 겁니까!’라고 몰아붙였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

2조 6천억 투자 수익.

정확히는 이 수익의 기반이 된 기술 중의 하나가 MP3 원천기술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즈벨은 자신이 가진 MP3 원천기술도 넘겼고 말이다.

가브리엘 아담스 이사가 이 자리에 온 것도 2조 6천억이라는 터무니없는 투자 수익 때문이다. 그도 최민혁 실장을 이제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잠깐 고심했다.

‘확실히 제이미 이사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지는 않아. 최민혁 실장을 이전처럼 대우할 수는 없어. 이번 협상은 길게 봐야 해.’

시즈벨로서는 단기적으로 봤을 때에 이번 일은 무리수다.

하지만 이번 모토롤라 협상을 중재하면서 그들이 얻은 것이 꽤 많았다.

특히 핸드폰 업계 쪽에 말이다.

그건 최근 시즈벨 쪽에 의뢰를 문의하는 업체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그 보수적인 소니와 같은 일본 대기업 역시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결국 마음을 굳혔다.

“최민혁 실장에게 다시 확인을 해 보세요. 그냥 이대로는 이 일이 진행될 것 같지 않으니까. 다만 최민혁 실장이 내놓을 수 있는 키가 확실하다면 못 할 것도 없습니다.”

패트릭 호프만 이사는 허탈한 표정을 한 채 더 입을 열지 않았다.

* * *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다시 만난 최민혁 실장에게 공격적인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는 이보다 현실적인 부분을 걸고넘어졌다.

“으음, 최 실장님이 원하는 것은 MPEG-2 원천기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쓰비시에서 그 기술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설득만으로…….”

하지만 최민혁은 이미 이번 MPEG-2 확보에 대안을 준비해 뒀다.

“그쪽이 원하는 미래 기술 지분 일부를 넘기는 것도 고려해 보세요.”

“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일본 내에 차세대 배터리 양산 공장도 필요하니까. 필요하다면 라이선스를 맺어줄 생각입니다.”

“그렇다면야…….”

최민혁은 양손을 펼치면서 마치 세상의 지배자인 것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일부 줄 수 있다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모든 것을 다 먹겠다는 것은 탐욕입니다. 그래서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 모습은 MP3에 집착할 때의 최민혁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자신이 가진 기술을 세상에 푼다는 식이니까.

하지만 다르게 보면 MPEG-2 특허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최민혁 자신이 가진 원천기술이 너무 많아서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랬다.

MP3 원천기술 사건 때문에 세계의 수많은 기업이 최민혁 실장을 씹고 있었다.

‘아니면 미래 기술이 가진 차세대 배터리 기술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일까?’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살짝 놀라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은 완벽하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민혁은 미래 기술이 가진 배터리 기술의 한계를 잘 알았다. 그가 원한 바는 아니지만 지금 기술로는 배터리 기술을 더 끌어올리기에는 많은 한계가 존재했다.

‘뭐, 그런 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지. MPEG-2 원천기술은 이야기가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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