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15화 (715/1,021)

#715.

미래를 잘 아는 최민혁조차 혀를 내둘렀다. 그가 보기에는 자신이 살았던 전생과 비교해도 이제 애니 수준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는 별 표정 없는 얼굴을 한 채 설명하는 이지수 박사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건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조성돈 팀장을 비롯한 다른 일행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표정 없는 김명준 과장조차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지수 박사가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도 인공지능이 바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크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어머, 그런 말씀은 실례란 거 아시죠?]

애니의 반응은 놀랍게도 일반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록 PC에 커스터마이징할 목적으로 정형화된 어휘만 사용한다고 해도 말이다.

아이컴 CPU가 가지는 한계 때문이다.

하지만 딥러닝 기술까지 포함된 성능은 절대 단순하게 표현할 수만은 없었다.

최민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솔직히 일정 안에 이 정도 성능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고는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기대 이상이었다.

[서, 성공했다!]

이지수 박사나 헬렌의 동료 연구원 표정이 그 증거였다.

별 반응이 없는 두 사람과는 달리 그들은 서로 앉은 채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 애니 연구는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지금까지 이 연구에 들어간 시간만 무려 10년이 넘었다.

이지수 박사 같은 천재가 있어도 말이다.

하지만 이 연구를 힘들게 한 것은 단순히 기술 문제가 아니었다.

테일러 박사 같은 이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 연구를 계속해서 방해했다.

권력과 금력을 이용해서 말이다.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망가뜨릴 속셈이었다.

최민혁 실장의 인생 1회 차 때는 결국 연구가 중단되고 말았다.

테일러 박사가 그 연구물을 가로채고, 소송에 승소해서 이지수 박사의 모든 특허까지 인수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 중간에 중단된 연구 결과를 가지고 다시 완성하기까지 10년은 더 걸렸다.

그 과정에서 이 연구는 결국 조각조각 찢겨서 다른 회사들로 넘어갔다.

그 결과물이 다시 씨앗을 뿌려서 인공지능 생태계가 마련된 것이다.

이지수 박사조차 후일 눈물을 흘리면서 안타까워했던 일이다.

그러니 이번엔 아무리 감정이 없는 이지수 박사라도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헬렌은 그런 이지수 박사가 와락 포옹했다. 그녀는 심지어 이지수 박사와 키스했다.

이지수 박사는 뒤늦게 상황을 알아채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당황해서 버둥거렸다.

하지만 헬렌은 이지수 박사를 놓지 않았다.

두 미녀의 뜨거운 키스.

환호하던 연구원조차 다들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

최민혁 실장은 이지수 박사에게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려다가 그 모습을 봤다.

그는 입을 딱 벌린 조성돈 팀장과 김명준 과장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특히 김명준 과장 말이다. 그는 최민혁이 이지수 박사를 좋아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았다. 그런데 헬렌과 이지수 박사가 그렇고 그런 사이였으니.

문화 충격에 이성을 잃고 만 것이었다.

‘미치겠네.’

두 사람 관계는 원래 저렇게 되지 않았다.

테일러 박사가 이지수 박사를 노리면서 계속 틈이 벌어지니 말이다.

결국 그게 갈등의 시발점이 되지만 말이다.

이지수 박사는 다행히 이성을 차리고, 헬렌을 가까스로 밀어냈다.

이지수 박사는 크게 당황했다.

헬렌은 당연히 사과했다.

“미, 미안해.”

“이, 이게…….”

이지수 박사는 결국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후다닥 화장실로 도망쳤다. 헬렌은 이지수 박사의 이름을 부르면서 허겁지겁 쫓아갔다.

김명준 과장은 힐끗 최민혁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설마 레즈…….”

최민혁 실장은 중간에 말을 끊었다.

“쓸데 없는 이야기는 마시죠! 두 사람의 개인사는 이야기하지 맙시다.”

“아, 네. 하지만 최 실장님이 이지수 박사님을 좋아하시는 것…….”

“김 과장님!”

김명준 과장은 뒤늦게 최민혁 실장의 과거 연애 문제에 대해서 한 말을 떠올렸다. 그는 여러 가지 사정을 염두에 뒀다.

그러니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반사적으로 대답만 했다.

“넵!”

최민혁은 김명준 과장의 얼굴에 떠오른 다양한 표정 변화를 보자 괜히 오해를 더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는 뒤늦게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 이지수 박사 연구 팀의 시선을 받자 손사래를 치고 말았다.

“하, 아니에요.”

그는 오히려 피식 웃었다. 어차피 전생에도 이런 오해를 받았으니까. 아니, 그때는 더 심했다. 헬렌과 실제로 관계를 했으니 말이다. 그는 그래서 헬렌이 왜 저렇게 미친 짓을 한 것인지 잘 알았다. 너무 흥분해서다. 감정이 복받쳐서 참지 못한 것이었다.

전생과 상황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흘러가는 방향 자체는 다르지 않았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해외 투자 한도 폐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해외 투자 한도 폐지는 다음 주 정도에 결론이 나올 것 같습니다.”

최민혁은 자신의 전생보다 몇 개월 빨라진 해외 주식 한도 폐지에 꽤 만족했다. 그러곤 헬렌과 이지수 박사 관계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빠르게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빠르군요.”

조성돈 팀장도 반사적으로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오성 그룹, DL 그룹, 특히 한부 그룹이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입니다.”

“그래요? 재미있네요.”

그로서는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하면 국내 증권을 통한 직접 투자도 대폭 늘어났다는 말인가요?”

“네. 특히 모건 스탠리 쪽으로 꽤 투자 내역이 늘어났습니다.”

그는 빠르게 선수를 쳐서 국면 전환을 모색했다.

“좋네요. 관련 부분을 조사해서 보고를 올리세요. 아, 필요하다면 증권 회사 통해서 정보를 흘려 보세요. 김현탁 사장 같은 경우에 자기 비자금으로 투자할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그제야 만족했다. 조성돈 팀장의 얼굴에 떠오른 의혹을 그냥 무시했다. 그는 이번 국내 투자 전주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사실 일반 투자자는 이번 일을 알 리가 없었다.

‘주로 우리 부회장님이 주도한 것이겠지. 아마 그것 때문에 테일러가 더 미친 듯이 날뛴 것 같아.’

* * *

해외 투자의 위험성은 가볍게 다룰 일이 아니었다.

이머징그로스 펀드처럼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쪽으로만 진행되었으니.

이런 해외 투자는 말처럼 간단하지도 않고, 리스크가 생각보다 컸다.

특히 환율에 따른 위험도는 전문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럼에도 해외 투자 확대는 꾸준히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이 덕분에 해외 투자 한도 폐지에 대한 불만은 계속 나왔다.

일반인이나 일반 법인은 각각 5억, 10억이라는 투자 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외 법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런 한도를 잘만 빠져나갔다.

KD 통신의 김현탁 사장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도 해외 비자금을 이용해서 일부 투자는 하기도 해도 국내 자산을 활용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투자 한도 제한이 폐지되면서 상황이 좀 달라졌다.

이제는 DL 그룹 차원에서도 이번 에플 공매도에 참여하는 것과는 달리 개인 자금을 적극 활용 할 수가 있게 된 셈이다.

물론 제일 증권 해외 투자 파트장인 안기만 부장은 갑작스러운 김현탁 사장의 방문에 크게 당황했다.

“물론 투자 한도가 폐지되어서 사장님의 국내 자금으로 직접 해외 주식에 투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금액이 큰 만큼 리스크도 큽니다.”

“해외 투자 손실에 대한 것은 내가 자네보다 더 잘 알아. 하지만 이 자금 내역이 외부에 드러나서는 곤란해.”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안기만 부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김현탁 본부장이 갑자기 제일 증권을 찾아와서 내놓은 자금 규모가 무려 500억이 넘었다. 이 자금은 김현탁 사장 개인 자산까지 다 팔아 치우거나 가지고 있는 부동산 대출을 통해서 마련한 것이다.

즉, 만약 이 자금에 손실이 난다면 김현탁 사장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김현탁 사장의 최측근인 박태정 비서실장조차 크게 당황했다.

“괜찮겠습니까?”

“괜찮고 말고가 없잖아. 어차피 그룹 차원에서 이미 결정한 일이야. 이건 우리만 하는 일도 아니야. 한부 그룹에서도 이번 투자에 목숨을 걸었으니까.”

“…….”

제일 증권 안기만 부장은 크게 당황했다. 그도 알음알음 특별한 정보를 얻어서 투자를 진행했다. 그냥 단순히 회사의 미래 가치만 보고 달려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쉽게 나서지는 않았다.

그저 귀를 쫑긋한 채 김현탁 사장의 이야기만 들었다.

하지만 김현탁 사장은 피식 웃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히려 이 정보가 제일 증권을 통해서 알려지는 것이니까.

‘해외 위탁 자금이 이번 에플 공매도에 쏠리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함이다.

비록 500억, 1,000억 같은 규모가 아니더라도 증권사의 해외 위탁 계좌가 늘어난다면 이는 무시할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김현탁 사장 자신의 자산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

제일 증권 안기만 부장 역시 바보는 아니다. 그는 에플 공매도 투자 관련 자문을 하면서도 눈치껏 질문을 던졌다.

“혹시 에플 거품과 관련해서 투자하시려는 겁니까? 하지만 그 리스크는 절대 무시 못 합니다. 국내 주식이 하루 15% 제한이 있는 것과는 달리 미국 증시는 그 제한이 없습니다.”

나스닥 주식 폭락 비율에 제한이 없다.

따라서 만약 공매도가 잘못되면 이론적으로 손실은 무한대로 늘어난다.

설마 그런 일까지 일어나겠나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김현탁 사장은 피식 웃었다.

“이봐, 안 부장, 설마 내가 그런 것도 모르고 내 국내 개인 자산으로 투자한다고 생각해?”

소탈한 모습에 인기만 부장은 조심스럽게 더 눈치를 봤다. 그는 이 에플 공매도에 대한 히든 정보를 얻고 싶어서 자세를 낮추었다.

“아, 아니 그건 아닙니다. 제가 김현탁 사장님과 거래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서요.”

“글쎄, 에플 주가의 거품 이야기가 나온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잖아. 작년 에플 4분기 순손실 규모도 어마어마해. 그런 회사 주가가 지난주에 10달러를 돌파했어. 이게 말이 돼?!”

그랬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이번에 최문경 부회장 자금을 사용한 덕분에 에플 주가는 고공 행진을 거듭했다. 에플 공매도에 앞서서 실탄을 무리하게 마련하다 보니, 에플 주가가 폭등한 것이었다.

최근 8달러 선에서 조정 국면을 거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불과 작년만 해도 1달러 선에서 맴돌던 주가가 폭등했다.

그런데 지금은 무려 10달러를 돌파했으니.

투자자의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에플 거품에 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나왔다.

심지어 워싱턴 포스트가 나서서 에플 주가는 조작된 거다라는 기사를 대문짝만 하게 1면에 실었다.

안기만 부장은 국내 코스닥 작전주에서나 나타나는 이 에플 주가 폭등에 관심을 두기는 했지만, 투자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늦었지. 차라리 공매도를 치는 것이라면 몰라도.’

에플 공매도는 꽤 매력적인 조건인 셈이다.

나스닥 시장의 반응이 그렇다는 것이다.

“…혹시 에플과 관련된 정보에 대해서 아시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김현탁 사장은 애니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씩 풀었다.

“이번 CES에서 발표되는 제품에 인공지능 기능이 들어갔다는 소리가 있어. 그런데 이 인공지능 성능이 조작되었다는 말이 나와.”

안기만 부장은 황당해서 말을 더듬었다.

“에, 에플이 자기 제품 성능을 조작해서 CES 전시회에 출품한다는 말입니까?”

김현탁 사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 부분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김상구 회장이나 김희찬 부사장에게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보고했다.

두 사람은 의외로 이 에플 공매도에 크게 집착했다. 그들은 지난 에플 투자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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