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6.
그러니 뭔가 찜찜하다는 자기 주장을 두 사람이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상구 회장이 갑자기 KM 그룹 최문경 부회장이 이번 에플 공매도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는 정보를 가져온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최문경 부회장 때문에 고민하던 다른 이들 역시 이번 에플 공매도에 결국 합류한 것이었다.
투자 한도 철폐가 빨라진 것도 이들이 압력을 넣어서다.
김현탁 사장도 이제는 김상구 회장 결정을 무조건 반대할 수만은 없었다.
가용한 DL 그룹 해외 비자금을 모두 이번 에플 공매도에 투입했다.
이러니 김현탁 사장 역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 역시 KM 그룹 대주주 중의 한 사람인 최두진 사장이 에플 투자로 초대박인 자세한 내역까지 결국 파악하자 에플 공매도 투자를 결정한 것이었다.
물론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그래서 제일 증권 내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해외 투자 전문가인 안기만 부장에게 넌지시 정보를 흘려본 것이었다.
“…으음, 솔직히 이 자리에서 제가 뭐라고 왈가왈부할 일은 아닙니다.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최문경 부회장님이 투자했다면, 크게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해?”
“최문경 부회장님은 제가 알기로 꽤 보수적인 투자 성향이 강합니다. 주로 금이나 안정적인 투자 자산을 애용하는 분입니다.”
“하긴.”
김현탁 사장 역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최문경 부회장이 외부에 드러난 것과는 달리 얼마나 깐깐한 사람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제가 한번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천만에요.”
* * *
에플 공매도 정보를 아는 이는 대부분인 반 최민혁 실장 세력이다.
정보 소스는 당연히 모건 스탠리와 연결된 샐로먼 브러더스 창구 쪽이다.
특히 샐로먼 브러더스가 국내에 KM 그룹과 손을 잡고 만든 연합 SB가 그 출처였다.
다만 에플 인공 지능 관련 정부에 대해서는 국내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오성 그룹 권태성 실장이 굳이 증권 회사 쪽에 이 정보를 흘릴 정도로 여유가 많지는 않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중요한 정보였으니, 알리지 않은 셈이다.
다만 그 리스크가 문제였다.
충분한 자금을 모았다고 해도 대상이 에플인 만큼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제일 증권 안기만 부장조차 처음엔 찌라시 정도로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도 에플 현황을 들여다보고서는 판단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
“최민혁 실장이라니.”
제일 증권 해외 투자자 파트 백승기 차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최민혁 실장이 낀 일이라면 조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안기만 부장은 성격이 급해도 감이 좋은 백승기 차장 의견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김현탁 사장이 낸 숙제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의 반대편에 섰잖아. 선뜻 내키지는 않아. 근데 문제는 이번 에플 공매도에 몰린 자금이 생각보다 많아.”
그가 내놓은 자료는 에플 공매도와 관련된 현황이었다.
당장 드러난 공매도 자금 규모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미국 투자자의 에플 공매도 현황은 지난 달에 비해서 무려 20% 가까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에플의 주가는 오히려 폭등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현탁 사장이 국내 자금까지 퍼부으려고 한다.
그것도 제일 증권을 통해서 말이다.
“…확실히 냄새가 나네요. 그럼에도 오늘 에플 주가가 12달러를 넘어섰으니.”
최근 조정 국면을 거친 에플 주가는 6달러 선까지 무너진 과거가 있다.
그런데 불과 몇 주 사이에 12달러를 돌파했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KM 전자 주가는 아예 에플 주가와는 따로 놀고 있는 점도 이상합니다.”
에플 주가는 수급이 갑자기 몰리면서 폭등했지만 KM 전자 주가는 상황이 달랐다.
국내 KM 전자 주식에 몰리는 수급 자체가 한도가 있었다.
샐로먼 브러더스, 모건 스탠리가 손을 잡고 에플 공매도에 사전 정지 작업이 우선 들어간 탓에 KM 전자와 에플 주가가 디커플링이 일어난 셈이다.
제일 증권 해외 투자 팀은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감이 좋은 백승기 차장은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이번 일은 그냥 지켜보는 것이 어떨까요? 김현탁 사장의 제안도 거절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습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손해가 나면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겁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나올까?”
백승기 차장은 소탈하게 웃었다.
“재벌 애들이 언제 자기가 책임을 지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까? 김현탁 사장이 그나마 합리적인 사람이라도 손해를 보면 행동이 달라질 겁니다.”
“자넨 손해를 본다고 생각해?”
“아뇨. 제 말은 최민혁 실장 반대편에 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어떤 사람인지는 안기만 부장님이 모를 수가 없잖습니까?”
최민혁 실장이 한 초기 투자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국내 증권 회사에서 돌고 있었다. 고작 아파트값 몇 채로 시작한 투자 수익은 이미 몇천억 규모로 커졌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 출처는 뜻밖에도 국세청이다. 과거 최민혁 실장을 내사한 기록이 최근 들어서야 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기만 부장도 피식 웃고 말았다.
“알았어. 일단 보류하는 것으로 하지. 다만 지켜는 보자고.”
“…알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김현탁 사장처럼 최민혁 실장을 얕잡아보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최민혁 실장을 높이 평가한 이들은 오히려 이번 에플 공매도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 * *
제일 증권은 에플 공매도와 관련한 펀드에 대해서 판단을 유보했다.
리스크가 너무 커서다.
김현탁 사장은 어이가 없어서 연합 SB를 찾아갔다.
연합 SB는 다행히 이 에플 공매도와 관련된 정보를 알지는 못했다.
다만 이 정보가 연합 SB를 통해서 샐로먼 브러더스 실무진 측으로 흘러갔다.
데이비드 싱어조차 뒤늦게 이 정보를 알고는 황당하기만 했다.
그는 특히 에플 주가가 무려 13달러 선을 돌파하는 것을 보자 태국으로 쫓겨난 데니스 샐로먼 이사에게 알렸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안 그래도 동남아 쪽을 관리한다고 정신이 없었는데, 에플 공매도 현황을 알자 바로 국내로 돌아왔다.
그는 그길로 곧장 샐로먼 브러더스 한국 지사를 찾아갔다.
“제임스 이사님, 이게 사실입니까? 우리 회사가 에플 공매도를 계획한다는 거 말입니다. 이번 에플 주가 폭등이 우리와 관련이 있습니까?!”
제임스 러너 이사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이미 최문경 부회장의 지시를 받아서 에플 지분을 공격적으로 확보 중이다.
안 그래도 늦게 들어간 덕분에 에플 주식 매입이 쉽지 않아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건 데니스 이사 당신이 관여할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 내가 관여해야겠어요. 이번 일의 배후가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을 알면서 이 미친 짓을 한다는 말입니까?!!”
“아, 저도 최민혁 실장의 능력은 잘 압니다. 하지만 이번 건은 상황이 달라요. 물론 에플 차세대 제품이 얼마나 가능성이 높은지는 잘 알지만 그게 실제로 매출에 먹힐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만약 먹히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제임스 러너 이사는 오히려 어깨를 으쓱했다.
“좀 불쌍하군요.”
“나도 당신처럼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꼴을 보세요. 동남아로 쫓겨난 제 모양을 말입니다. 당신이라고 해서 이런 꼴을 안 당할 것 같습니까?”
“물론 전 당신처럼 안 당합니다.”
“정말 확신해요? 당신이 말한 것처럼 최민혁 실장이 고안한 인공지능이 과장된 것으로 생각합니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어쩔 겁니까. 최민혁 실장이 고안한 인공지능 기술이 현존하는 최고의 기술력이라면 에플 주가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럴 리는 없습니다. 이미 모건 스탠리의 폴 고스링이 다시 재검토 중이니까.”
“그걸 믿습니까? 최민혁 실장이 의도적으로 덫을 놓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휴우, 너무 나간 생각입니다.”
제임스 러너 이사도 피곤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직접 찾아와서 자신을 괴롭힐지는 몰랐다. 다만 한편으로 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걸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질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도 그걸 느껴서인지 이번에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지금 에플 주가가 13달러를 넘었습니다. 만약 공매도를 잘못 치면 손실이 천문학적인 액수를 넘어설 겁니다.”
“좋습니다. 최민혁 실장의 덫이라고 하죠. 하지만 에플 주가가 어느 정도까지 갈 거로 생각합니까? 20달러, 네, 뭐 그렇다고 합시다. 설사 20달러를 넘어간다고 해서 큰 손실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데니스 샐로먼의 이사 생각은 달랐다.
“만약 그 이상이라면 어떻게 할 겁니까? 제가 대충 파악한 것만으로도 최민혁 실장의 행보가 이상했습니다. 구골 설립, KMBOOK 설립, 거기에 미래 기술까지 말입니다. 심지어 오성 그룹을 협박까지 했다고 하더군요. 그런 최민혁 실장의 행보에 대한 의도가 뭔지 검토 안 한 겁니까?”
“휴우, 무슨 지적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이렇게 걱정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하지만 우리 샐로먼 브러더스도 바보가 아닙니다. 모건 스탠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중 삼중 확인하고 있으니, 그만 태국으로 가서 지금 주어진 일이나 제대로 하시죠.”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자신의 설득이 통하지 않자 결국 협박했다.
“당신은 이번 일을 결국 후회할 겁니다!”
“아, 일이 잘못되면 제가 책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일이 잘못되면 샐로먼 브러더스에도 큰 손실이 되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네, 네, 잘 알겠습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제임스 러너 이사의 행동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행히도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 역시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아무리 말해도 믿지를 않았다.
‘큰일이구나.’
* * *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국내에 돌아와서 제임스 러너 이사를 설득하려고 해도 그러지 못했다.
그는 결국 연합 SB를 비롯한 자신의 인맥을 일일이 만났다.
하지만 그들도 뾰쪽한 대안은 없었다.
이런 소식은 당연히 최민혁 실장 귀에도 들어갔다.
최민혁은 에플 공매도와 관련된 시끄러운 국내 사정을 듣고는 혀를 찼다.
‘일을 너무 키웠나?’
솔직히 최문경 부회장만 어떻게 엮으려고 했는데, 사정이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았다.
다행한 일이라면 DL 그룹, 한부 그룹이 이번 에플 공매도에 끼어들었다는 점이다.
“혹시 국내 증권사에서도 이번 에플 공매도에 끼어든 곳이 있나요?”
조성돈 팀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최근 두 달 동안 에플 주가 변동폭이 너무 심해서인지 지켜보는 분위기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연합 SB처럼 샐로먼 브러더스와 관련이 있는 쪽이 주류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최민혁은 툴툴거렸다.
“다들 왜 이리 욕심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다 싶으면 구경만 해야 하는데, 남들 한다고 우르르 몰려가서 뭘 하려는지.”
조성돈 팀장은 그 욕심을 부추긴 사람이 최민혁 실장님이 아닙니까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사람 마음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이건 아니죠. 만약 이번 일로 큰 손실을 보면 결국 절 욕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에플 공매도와 관련된 책임자는 스티븐이 아닐까요? 최민혁 실장님은 어디까지나 에플 대주주이지 않습니까.”
“아, 그건 또 그러네요. 그렇다면 앞으로 조심해야겠어요.”
“…네.”
조성돈 팀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최민혁은 물론 이 문제를 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플의 주가 흐름이 이상하니, 면밀하게 살피세요. 모건 스탠리 측 반응도 자세히 살피고요. 또한, 벨린 투자 측에는 최대한 단기로 해서 이익을 더 챙기라고 하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