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14화 (714/1,021)

#714.

정확히는 최용욱 회장이 비자금 일부를 벨린 투자를 통해서 굴린 것에 불과했다.

그 결과 운 좋게 최문경 부회장은 막대한 재산을 챙겼고 말이다.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한 가지를 질문했다.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이 정도 자금이라면 차명으로 KM 그룹 지분을 사들여도 되지 않습니까?”

“시장에 유동 주식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특히 할아버지의 차명 지분이 많아요. 아마 시장에서 직접 KM 그룹 주식을 매입했다간 주가가 폭등할 겁니다.”

특히 최두진 사장과 같은 차명 지분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런 지분을 관리하는 이는 다름 아닌 최용욱 회장이었다.

따라서 시장에서 KM 그룹 주식을 얻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조성돈 팀장 역시 그런 점을 잘 알았다.

“가만, 그러면 차입금은…….”

최민혁도 그제야 차입금과 관련된 내막을 어느 정도 깨달았다. 그 역시 최문경 부회장이 무슨 수로 그 많은 차입금을 끌어왔는지 의아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정도 자금이 있으니, 샐로먼 브러더스도 별말 안 한 거죠. 단순히 공장이나 땅 담보만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정말 놀랍군요.”

“아마 그 차입금으로 공장을 증설하고, 계열사를 더 늘려서 영향력을 키우려 했을 겁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KM 그룹을 손아귀에 쥘 수가 있었겠죠.”

그런데 IMF가 그 상황을 모두 바꾸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KM 산업을 비롯한 핵심 계열사 워크아웃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그 책임을 피하고자 미국으로 튀었고 말이다.

이후엔 미국에 남아 있는 비자금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포보스지에도 나올 정도였으니. 그 돈이 다 그 돈이었어.’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뭐, 그건 앞으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중요하죠. 이 자금을 다 털어먹는 것이 핵심입니다.”

“…무려 10억 달러에 가까운 자금인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두고 봐야죠.”

최민혁은 씩 웃었다. 그는 도박하는 이들의 심정을 잘 안다. 불나방 같은 그들의 심정을 말이다. 하지만 딱히 별다른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애니 성능이니까. 참 애니의 현재 작업 수준은 어때요?”

* * *

테일러 박사는 특징 벡터를 사용한 모델을 확인하면서 분노를 쉽게 참지 못했다.

입력 벡터에 따른 프레임 수를 명확하게 정량화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고안한 알고리즘에 적용된 예측 오차값이 제대로 먹히지 않아서다.

아무리 실험을 반복해도 오류는 여전히 일정한 수치로 유지됐다.

‘분명히 이지수 그년의 기술을 베꼈는데, 왜 안 되는 거지?!’

“젠장!”

그는 마치 미친놈처럼 날뛰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옆에 있는 이들은 다들 테일러 박사의 눈치만 봤다. MIT 내의 인공 신경망 연구소 연구원들은 그저 테일러 박사의 심기를 거스를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한창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던 벤자민 스톡 박사 역시 테일러 박사의 눈치만 봤다.

“아무래도 시간적인 변동 오차가 너무 큽니다. 아무리 줄이려고 해도 더 늘어납니다. 차라리 기존 알고리즘이 오히려…….”

대형 화면에 나타난 결괏값은 오차가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났다.

지금까지 잘되던 연구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나빠져만 갔다.

연구를 지켜보던 이들은 다들 테일러 박사의 눈치만 봤고 말이다.

“말이 안 되잖아. 왜 갑자기 연구 결과가 더 나빠지는 거야!!”

“최근 수정한 부분이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벤자민, 그 코드는 어느 정도 검증을 거친 거야. 그렇게 될 수가 없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왜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진 거야.”

“그게…….”

벤자민 스톡 박사는 테일러 박사 눈치만 봤다. 그 역시 최근 수정된 부분이 모두 다른 코드 일부를 베껴서 적용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런데 그 코도 소스는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테일러 박사는 결국 참다 못해서 토니 투센 교수에게 전화했다.

[토니 교수,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제대로 된 코드를 준 것 맞아? 당신이 준 코드가 오히려 제대로 먹히지 않잖아!]

토니 투센 교수는 이전과는 달리 냉랭한 어조로 반박했다.

[난 테일러 당신이 원한 대로 코드를 줬을 뿐입니다. 모듈 자체는 독립된 코드라서 이상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아니, 그러면 왜 동작하지 않는데?!]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그 코드 원주인 이지수 박사가 잘 알 겁니다.]

[이 코드, 정말 이지수 박사가 만든 것 맞아?!]

[난 당신이 원한 대로 코드를 줬을 뿐입니다.]

그리고 끊어진 전화.

[토니 교수! 야, 토니!!!]

테일러 박사는 길길이 날뛰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이지수 박사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이지수 박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심지어 헬렌도 말이다.

“이 나쁜 년이!”

테일러 박사는 초조했다. 모건 스탠리 측의 압박이 만만치 않았다. 그는 결국 견디다 못해서 연구실 밖으로 튀어 나갔다.

벤자민 스톡 박사는 눈치를 보다가 후다닥 테일러 박사의 뒤를 따랐다.

* * *

테일러 박사는 변호사 몇 사람과 같이 KMBOOK 입구에서 경비원과 싸우는 중이었다.

“야, 저리 안 비켜, 네놈들 다 고소할 거야. 남의 기술을 도둑질해서 잘될 것 같아?!!”

KMBOOK 본사 1층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외침.

경비원도 곤혹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테일러 박사는 미친놈 같았다.

그런데 그와 동행한 이들이 모두 변호사였다.

검은 정장을 입은 변호사들 때문에 물리적인 압박도 못 했다.

[고소하겠습니다!]

테일러 박사 뒤를 따른 벤자민 스톡 박사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사내 경비원들에게 알아듣게 설명했다.

“이 회사에서 우리 기술을 훔쳐 갔습니다. 이미 소송은 진행 중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온 것은 협상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지수 박사를 좀 호출하세요!”

고소한 것은 맞다. 다만 소송이란 것이 하루 이틀 걸리는 일이 아니었다. 여전히 법원에서 고소한 내용을 검토 중이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힘듭니다.”

경비원 역시 당혹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그들이 연락해도 이지수 박사나 헬렌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이들은 이 사안을 잘 몰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막무가내인 테일러 박사 일행을 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물론 곧 사람이 나오기는 했다.

정확히는 연락을 받고 KMBOOK 입구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과 그의 경호원 김명준 과장이었다. 조성돈 팀장 역시 미친놈처럼 날뛰는 테일러 박사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테일러 박사도 마냥 미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을 보자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가 뒤늦게 그의 정체를 알아봤다.

“최민혁 실장?!”

최민혁 실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테일러 박사가 자신을 어떻게 알아본 것인지 묻지 않았다. 모건 스탠리 내부는 자신으로 시끌시끌하니, 자기 사진을 확인했을 것이다.

오히려 반문했다.

“테일러 박사?”

“네놈이었구나. 네놈이 내 기술을 도둑질한 놈이었어!”

테일러 박사는 마치 마약을 한 사람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최민혁은 이런 상황에도 피식 웃기만 했다. 아니, 그는 인생 1회 차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엔 자신이 테일러 박사와 똑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전생에서도 테일러 박사가 자신의 기술을, 정확히는 이지수 박사가 적용한 알고리즘을 빼돌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벤처 하나를 설립할 때 이지수 박사가 결국 도움을 준 것이었다.

원인은 돈이었다.

같이 일하던 이들을 돈으로 유혹해서 기술을 빼돌렸으니 말이다.

결국 그가 국내에 설립된 테일러 박사 법인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만 신기하기는 신기했다.

테일러 박사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미친놈처럼 설치는 광경은 사뭇 위화감을 들게 했다.

“무슨 일 때문에 이러는 겁니까?”

테일러 박사는 최민혁 실장의 멱살을 잡은 채 버럭 소리쳤다.

“이 새끼야, 네가 한 짓은 도둑질이야. 네놈은 반드시 감방에 보내 버릴 거야!!”

최민혁은 김명준 과장이 나서려는 것을 막았다. 그는 테일러 박사를 밀어낸 후에 관할 경찰서에 전화부터 걸었다.

[네, LA 경찰서죠? 여기 회사에 불법으로 침입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네, 맞습니다.]

차분한 어조에는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테일러 박사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옆에 동행한 변호사가 그를 말렸다. 물론 그는 뒤로 밀려나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

“최민혁, 너 이 새끼야, 반드시 고소해서 네놈을 매장시킬 거야. 네놈이 우리 회사에 끼친 피해가 얼마인지나 알아?!”

길길이 날뛰는 테일러 박사.

변호사조차 테일러 박사를 쉽게 제지하지는 못했다.

그의 보스이니 말이다.

하지만 최민혁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지금 테일러 박사가 진행하는 연구는 원래 지금 당장 진행될 것이 아니었다. 아직 테일러 박사가 이지수 박사의 특허를 다 사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두고 진행되어야 할 연구.

그런데 이지수 박사가 스탠포드 인공 지능 연구소를 그만두면서 지금처럼 느긋하게 진행하기가 힘들게 됐다.

‘그러니 무리수를 둬야 했겠지.’

사실 이 애니 프로젝트는 테일러 박사에게도 꽤 중요한 일이었다.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성 그룹이 이 애니 기술을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인공 지능 가전은 소니 같은 일본 가전 대기업을 넘어설 수 있는 꽤 매력적인 기술 장벽이었다.

더욱이 에플 공매도와 관련된 일이라서 확인은 필요했다.

에플 인수합병 팀 폴 고슬링이 애니에 대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 같은 경우에 모건 스탠리 내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술은 좀 달랐다.

테일러 박사도 큰소리치기는 했지만 폴 고슬링의 이야기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번 에플 공매도에 들어갈 자금 규모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샐로먼 브러더스가 최근 20억 달러 가까이 자금을 더 투입했다.

이 일이 잘못되면 모건 스탠리도 큰 손실을 봐야 했다.

그러니 대충 일을 진행할 수가 없는 셈이다.

최민혁은 최근 들은 최문경 부회장의 투자 행보를 떠올리면서 내심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만든 계획이 생각보다 잘 풀려간다는 것을 확신했다.

‘뭐, 우리 최 부회장님이 이번 일에 끼어든 것으로 충분하지. 그나저나…….’

테일러 박사는 변호사에게 붙잡힌 채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물론 곧 도착한 LA 경찰이 테일러 박사 일행을 막아섰다.

최민혁은 LA 경찰에게 소리쳤다.

“업무방해와 폭력죄로 고소하겠습니다.”

“뭐야? 이 새끼가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네놈이 우리 기술을 빼돌리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저 개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 차리네!”

길길이 날뛰는 테일러 박사의 모습은 흥분한 황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LA 경찰이 그를 막아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변호사가 자기 신분을 밝히자 LA 경찰도 당황했다.

그래도 일단 상황이 수습되기는 했다.

LA 경찰이 결국 테일러 박사 일행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그 모습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뜬금없이 남의 연구소에 쳐들어와서 내 물건 내놓으라고 외치는 테일러 박사 때문이다.

‘참 집요한 새끼야.’

업체 미팅 때문에 외부에 나갔다가 뒤늦게 연락받고 나타난 이지수 박사는 황당한 얼굴로 끌려나가는 테일러 박사를 쳐다보았다.

“야, 이지수, 이 씨발년아, 내 기술을 도둑질해서 잘 될 것 같아? 법정에서 보자.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너희들 연구는 세상에 나오지 못할 거야!!”

탐욕에 불타오르는 테일러 박사의 모습은 이지수 박사에게도 이질적이었다.

최민혁은 물론 그런 이지수 박사를 막아서는 헬렌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이야기 좀 하죠.”

* * *

“인공 신경망 인식 모듈 오차를 2% 가까이 더 줄였습니다.”

2% 수치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애니 인공 지능 완성도에 2% 수치는 유의미한 의미가 있었다.

거리, 방향에 따른 노이즈 변화에도 인식률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현실에서는 인식 오류 때문에 생기는 변화는 대폭 줄어들었다.

완성도로 친다면 거의 10년, 아니, 15년 이상 발전된 음성 지능이었다.

“놀랍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