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3.
그 모든 건 윙윙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는 눈앞에 놓인 테스트 모듈 때문이었다.
최용욱 회장이 최문경 부회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나빠만 갔다.
최문경 부회장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이 벼랑 끝으로 몰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용욱 회장의 시선이 카메라 모듈에서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 * *
부회장실은 한차례 폭풍우가 쓸고 간 것처럼 폐허가 되어 있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부회장실의 집기를 다 때려 부수고 나서야 겨우 진정했다. 그는 이전과는 달리 모멸감마저 느꼈다. 이젠 자신이 정말 부회장인지도 의심스러웠다.
“이게 말이 돼? 이게 상업화가 가능하다고?!”
쩌렁쩌렁한 울림 소리.
사실 조금만 들여다봐도 모바일 쪽에 적용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회의 중에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한 이는 없었다.
최영란 본부장의 배후에 최민혁 실장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이 해온 믿기지 않은 성과들 때문에 다들 이번 일도 잘될 것이라 섣불리 생각했다.
거기에는 그 깐깐한 최용욱 회장마저 예외가 아니었다.
“…….”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권재홍 비서실장은 말이 없었다.
같이 자리한 민상수 비서실 2팀장은 그저 권재홍 비서실장의 눈치만 봤다. 그는 CCD 카메라를 조사해서 취약점을 찾았지만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이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르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성 항공을 비롯한 여러 회사에서 이미 CCD 카메라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핸드폰에 적용할 정도의 기술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30만 화소가 기본이었는데, 다만 이들 회사의 연구 결과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아직까지 상업적으로 성공한 경우도 없었다.
“가만, 그러면 영란이 가져온 건 도대체 뭐야? 그건 하늘에서 떨어진 물건이야?!!!”
“그게…….”
당연히 대답하지 못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는데, 미국 국방성이 연루된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양산형으로 적용된 것이 아니라 군용으로 고안된 예외적인 경우다.
일단 보안 문제를 떠나서 당장 상업적으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선 드론 자체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어서 만들어진 성과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듈에 적용된 기술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당장 눈앞에 떡하니 견본품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걸 대체 어떻게 여기라는 거야!?”
문제는 그 내막을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디지털카메라 시장 전체를 고려하면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짜증이 나서 버럭 소리쳤다.
“지금 기술로는 어렵다면서?!!”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야, 민 부장, 너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거야?!”
“…….”
고개를 푹 숙이는 민상수 부장.
권재홍 비서실장이 그제야 나섰다.
“너무 흥분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권 실장, 너 이번 사장단 회의 분위기를 보면서도 그딴 소리를 해? 회장님이 날 보는 시선이 어떤지나 알아? 내 꼴이 지금 얼마나 우스운지 알아?!!!”
단단히 분노한 최문경 부회장.
그는 지금 자신의 상황이 생각보다 더 안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이 분위기라면 최민혁 실장이 문제가 아니라 최영란 본부장에게도 밀리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그제야 지금 상황을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뭔가 보여줘야 했다.
‘이대로는 안 돼!’
* * *
최문경 부회장도 에플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분위기부터 살피려고 했다. 하지만 주변 압력이 더 심해지자 더 이상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도 에플 투자로 대박 쳤잖아. 그 이후에 시선들이 달라졌어.’
최용욱 회장의 에플 대박은 이제 KM 그룹 내부에도 공공연히 알려진 상황이다.
무려 8배 가까운 초대박을 쳤으니, 다들 최용욱 회장의 안목에 놀랄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문득 대안 하나를 떠올렸다.
최용욱 회장도 성공한 마당인데, 자신이라고 못 할 것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샐로먼 브러더스에서 검토 중인 에플 공매도 계획이다.
겉으로 봐서는 에플 주식 공매도는 결코 손해를 볼 일만은 아니었다.
모건 스탠리를 비롯한 샐로먼 브러더스가 이 계획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고민하다가 결국 샐로먼 브러더스 한국 지사장인 제임스 러너 이사를 찾아갔다.
“내가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가용 자금이 얼마나 정도지?”
“그게 무슨…….”
제임스 러너 이사는 안 그래도 최민혁 실장의 동선을 파악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미국 내에서는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 인력이 움직이지만, 국내 쪽은 자신이 직접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때문에 최문경 부회장을 지속해서 만나서 이번 에플 공매도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최문경 부회장은 계속 머뭇거리기만 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절대로 리스크가 큰 일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의 자금 대다수는 미국 국채와 같은 안전 자산에 투자를 진행 중이다.
사실 지난 차입금에 대한 담보도 이 채권이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대규모 차입금이 그냥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KM 그룹에 대한 경영권 승계에 그만한 자신이 있기 때문인 셈이다.
그러니 제임스 러너 입장에서는 최문경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네? 국내 자금 말입니까?”
“아니, 샐로먼 브러더스에 들어가 있는 자금 말이야.”
“설마 그 자금으로 직접 투자할 생각입니까?”
“그래.”
“설마 안 된다고 할 거야?”
“아니,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부회장님이 지금까지 그 자금을…….”
“아니, 생각이 바뀌었어. 지금 좀 확인을 해줘.”
“자, 잠시만요.”
제임스 러너 이사는 곧바로 최문경 부회장 자금 내역을 확인했다. 국채를 포함한 장기 투자 자금을 제외하고 단기 자금 위주로 말이다.
특히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부분도 고려했다.
“…대략 9억 달러 정도 됩니다.”
“…애매하네.”
“무리하면 13억 달러까지 가능하지만, 손실을 좀 봐야 합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최문경 부회장은 잠깐 고민했다. 그는 최영란 본부장 때문에 열이 받아서 이 자리에 오기는 했지만 지금 자신이 하려는 일이 잘하는 선택인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이다.
KM 그룹 본사 임직원 분위기가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그건 KM 그룹 주주들도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만약 최민혁 실장이 KM 그룹 부회장이 되겠다고 해도 반대할 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막말로 최민혁이 최두진 사장과 손만 잡아도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 수가 있었다.
그는 다시 에플 공매도를 고민했다.
지금까지 충분히 그 내막을 들었다.
최민혁이 모건 스탠리를 협박해서 보복으로 진행된 일이니까.
‘최민혁 이 새끼가 정말 미친 건가?’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이 왜 모건 스탠리를 상대로 잽을 날려서 행패를 부렸는지 말이다.
그는 복잡한 상황을 털어버렸고, 다시 제임스 러너 이사를 쳐다보았다.
“그 에플 공매도 말이야, 그거 성공할 수 있어?”
제임스 러너 이사는 피식 웃고 말았다.
“이번 일은 모건 스탠리가 주도해서 여러 사모펀드가 같이 진행하는 일입니다. 심지어 헤지펀드도 있고 말입니다. 당장 들어간 자금만 무려 100억 달러가 넘습니다. 이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 일이 실패할 리가 있습니까?”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냉소적이었다.
“그건 모르잖아. 사모펀드가 늘 성공만 한 것은 아니지.”
“물론 맞습니다. 그런 예도 있습니다. 하지만 에플 공매도처럼 명확한 타깃에 대해서 실패한 경우는 없습니다.”
“아니, 이번 에플의 차세대 제품이 대박을 칠 수 있잖아?”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증시 수급입니다. 최소 100억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동원되는 일입니다. 최민혁 실장이 무슨 재주로 그걸 막습니까. 설사 그가 가진 주식을 대량으로 매각한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건 부 회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긴.”
최문경 부회장 역시 시장에서 주식이 막 쏟아지면 주가는 폭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더욱이 이번 일은 단순히 주식만 매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에플의 스티븐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는 최근 에플 사태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이슈를 떠올렸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9억 달러라는 자금 때문인지 최문경 부회장의 눈치를 보면서 최근 최민혁과 관련된 이슈를 하나씩 말했다.
“물론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가 설사 막대한 자금을 퍼붓는다고 해도 이번엔 천문학적인 손실을 볼 겁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이 그런 무리수를 둘 리가 없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묵묵히 그 이야기를 듣다가 불쑥 한 가지를 언급했다.
“만에 하나라도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거야?”
“…….”
의심으로 가득한 최문경 부회장의 말에 제임스 러너 이사는 혀를 찼다. 그도 최문경 부회장의 집착이 이 정도인지는 처음 알았다.
“정 불안하면 그냥 하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딱히 부회장님 자금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지금 집중하는 채권 이자만 받아도 자산 증식에는 충분합니다.”
최문경 부회장도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최영란 본부장의 행보 때문에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대로 불구경만 하다가는 정말 최민혁 실장에게 다 빼앗기고 만다.
뭔가 보여줘야 했다.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말이다.
“좋아, 하지. 나도 이번 에플 공매도에 같이 투자해. 9억 달러 말이야.”
“…잘 선택하셨습니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딱 한마디만 하고는 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이 또 말을 바꿀까 그게 더 염려되었다.
* * *
최민혁은 최근 모건 스탠리, 샐로먼 브러더스를 주로 지켜봤다.
이들이 에플 공매도 관련 자금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말이다.
특히 이들의 자금 창구를 주로 살폈다.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은 아예 이들을 감시하는 인력까지 배당했다.
결국 이들 회사에서 이전과는 다른 움직임을 찾아냈다.
“드디어 최문경 부회장이 움직였습니다.”
최민혁도 흥미를 느꼈다.
“어느 정도 자금이죠?”
“대략 10억 달러 규모입니다. 최문경 부회장 쪽이 드디어 미끼를 물었습니다.”
“확실한 거죠?”
“네. 샐로먼 브러더스 내부 인력을 통해서 확인한 겁니다. 틀림없습니다.”
최민혁도 신기해서 질문했다.
“언제 샐로먼 브러더스 내에 그 내부 인력을 박아놓은 겁니까?”
우영민 부장은 피식 웃었다.
“우리 벨린 투자 명성이 최근 몇 달 사이에 급격히 올라갔습니다. 덕분에 우리 쪽에 관심을 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샐로먼 브러더스나 모건 스탠리 인력을 대상으로 스카우트 제안을 제법 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정보를 얻었다는 말이군요.”
“네. 자세한 정보까지는 아니어도 에플 공매도에 투자하는 것 정도는 확인했습니다. 더욱이 최문경 부회장이 이렇게 직접적인 투자를 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하긴 아시아인 중에서 그 정도 자금 굴리는 사람은 흔치 않겠죠.”
하지만 우영민 부장도 꽤 놀란 얼굴이었다.
“그런데 최문경 부회장님의 비자금이 이렇게 많았습니까? 9억 달러는 절대로 무시할 금액이 아닙니다.”
최민혁은 그 자금이 벨린 투자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알았다. 물론 정확한 액수까지는 몰랐다. 다만 그런 점까지 내색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결국 남 좋은 일만 해준 거지. KM 그룹이 해체되고, 미국 가서 아예 기업을 새로 설립할 자금은 되었으니.’
“꽤 많죠. 아마 중견 기업 하나 정도는 가볍게 세울 만한 자금력이 있을 겁니다.”
우영민 부장도 최민혁 실장 이야기를 듣자 새삼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진짜 매우 놀란 이는 조성돈 팀장이었다. 그는 우영민 부장이 가져온 자료를 살피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문경 부회장이 무려 9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집행할 수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 입을 통해서 막대한 비자금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실제로 이렇게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거 다 벨린 투자에서 불린 자산이에요. 최문경 부회장의 능력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뭐 그것도 우리 회장님이 강제한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