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88화 (688/1,021)

#688.

다만 조건을 제목 바로 밑에 달았다.

[상업적으로 실제 구현 가능한 아이디어야 함!]

덕분에 KM 그룹 본사는 한동안 시끄러웠다.

KM 전자 기획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눈치 빠른 박광민 사원이 이 포스트를 들고 와서 호들갑을 떨었다.

“이거 보셨어요? 인공지능 아이디어만 채택되면 무려 10억입니다!”

하지만 매사 부정적인 배종대 과장이 박광민 사원을 비웃었다.

“광민 씨, 꿈 좀 깨. 우리 부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면서 그래?”

“네? 무슨 말입니까?”

“그 인공지능 말이야. 현실적으로 힘들어. 당장 문제가 되는 음성 인식 오류를 걸러내는 것만으로도 간단하지 않아.”

배종대 과장은 뜻밖에도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서 제법 잘 알았다.

그가 현실적인 문제로 걸고넘어진 오류 부분은 분포도에 따라서 확률적으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즉, 설사 된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확률적인 결과야. 다음에 할 때는 안 될 확률이 더 높은 거지. 그렇다면 기존에 만들어놓은 형태소 자체가 먹히지 않을 확률이 높아. 그러면 결국 CPU는 무한 루프를 돌 수밖에 없어.”

딱 핵심을 찌른 말에 기획 팀은 다들 입을 삐죽이고 말았다.

“배 과장님은 점쟁이세요? 해 보지도 않고 답을 다 알고 말이에요.”

“내가 안 된다에 500만 원 걸지!”

“…….”

이에 뭐라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배 과장이 저렇게 명료하게 답을 하는 경우는 잘 없기 때문이다.

다들 10억에 눈이 돌아가서 기대를 했는데, 알고 보니 사기였던 셈이다.

정성근 대리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배종대 과장의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배 과장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내가 대학원 때 논문으로 채택한 것이 인공지능이었으니까. 그래서 인공지능은 좀 알아. 아니, 꽤 잘 아는 편이야.”

“흠.”

배종대 과장은 자신의 전공 분야가 나왔다고 생각하자 입을 쉽게 다물지 않았다. 그는 인공지능이 가지는 현실적인 문제를 마치 설명충처럼 끝없이 말했다.

“인공지능이 어려워 보여도 간단한 거야. 한마디로 말해서 확률 기술이라고 해야 할까. 이 확률이 들어가면 답이 쉽지 않아. 모르는 사람은…….”

박광민 사원은 그제야 이 KM 그룹 이벤트가 고도의 낚시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정성근 대리는 한 가지 사실을 넌지시 걸고 넘어갔다.

“지금 미국에서 최 실장님이 인공지능 관련 일을 진행한 것으로 압니다. 그것도 다 쓸데없는 일이란 말입니까?”

“그건…….”

배종대 과장은 그제야 흠칫했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이 내건 상금 때문에 이 일에 최민혁 실장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기획 팀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다양한 연구 기획으로 정신이 없어서 그쪽은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막상 생각해 보면 논리적으로 위험한 사업이었다.

아마 평소라면 최민혁 실장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아는 인공지능 분야다.

때문에 인공지능에 대한 관련 지식을 쭉 정리해 보았다.

하지만 답은 여전히 부정적.

아무리 최민혁 실장이라고 해도 이번 일은 쉽게 성공할 것 같지가 않았다.

‘설사 기술이 있다고 해도 적어도 10년은 족히 필요해.’

인공지능은 그 기술만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배종대 과장은 그제야 자신이 먼저 이런 문제점을 검토해서 보고해야 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런데 자신도 이와 관련된 정보를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더욱이 자신의 담당도 아니고 말이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배종대 과장의 무거운 표정.

결국 팀장 대행을 하는 박상기 차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배 과장, 나도 그 부분은 알고 싶어. 솔직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최민혁 실장님은 잘될 거라고 하는데, 인공지능 관련 투자를 해서 잘된 것을 못 봤거든.”

“그거야…….”

그도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인공지능 관련 연구는 기획 팀에서도 미국에 가 있는 조성돈 팀장을 제외하고는 아는 이가 없었다.

게다가 조성돈 팀장도 인공지능 관련해서는 제대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메신저 서비스와 관련된 인공 지능이 다였다. 게임 수준의 아바타 인공 지능이 한계였다.

더욱이 이것과 관련해서도 그런 게 있다, 정도였다.

정성근 대리가 다시 끼어들었다.

“최 실장님이 아무런 확신도 없이 일을 진행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이 10억이란 이벤트 상금까지 내걸어서 회사를 흔드는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인공지능 이슈가 전혀 허황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흠.”

배종대 과장도 평소처럼 정성근 대리를 타박할 수는 없었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솔직히 이번 일은 나도 잘 모르겠어.”

“아니, 배 과장님이 갑자기 왜 그러세요?”

“내가 뭘?”

“그 자신에 넘치던 배 과장님과는 너무 다른 것 같아서요.”

“야,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버럭 소리치는 배종대 과장 태도에 정성근 대리는 피식 웃었다.

“이제 좀 원래 스타일 나오시네요. 배 과장님의 그런 모습이 좋습니다.”

“지랄한다. 정 대리, 너 자꾸 사람 우습게 말할 거야?”

“아니, 전 평소 모습이 좋습니다. 지금처럼 무거운 분위기는 영 마음에 안 듭니다.”

배종대 과장은 결국 정성근 대리의 목을 비틀어주었다.

정성근 대리는 억 억 억 소리를 냈다. 그는 결국 다른 팀원의 도움을 얻어서 배종대 과장의 목 조르기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이번 일 역시 최민혁 실장님이 계획한 일 중의 하나일 겁니다.”

“그럴까?”

“네!”

자신 없는 배종대 과장과 확신에 찬 정성근 대리의 대립은 평소와는 달리 정성근 대리 승리로 끝나는 것 같았다.

박광민 사원은 두 사람 모습에 혀를 내두른 채 10억 상금 인공지능 이벤트 게시물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일견 그냥 블랙코미디 같았지만 의미심장한 내용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기란 말일까?’

결국 KM 전자 기획 팀은 이번 사내 공고를 무시하기로 했다.

* * *

최문경 부회장의 10억 인공지능 사내 공모가 사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10억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때문에 인공지능과 관련된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하지만 역시 인공지능을 개인용 PC에서 쓸 수 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그제야 안도하기는 했지만 검지 손가락을 가볍게 두들기면서 올라온 아이디어 목차를 읽고 또 읽었다.

혹시 KM 전자 쪽 임직원이 괜찮은 아이디어를 내지 않을까 싶어서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가 특히 노린 대상은 KM 전자 기획 팀과 특허 팀이었다.

이들이라면 뭔가 알지 않을까 싶었다.

때문에 적당한 형태의 아이디어를 낼 것으로 생각했다.

‘10억은 작은 돈이 아니니까. 만약 인공지능 기술 상업화가 가능했다면 아이디어 정도는 냈을 것 같은데, 이것도 아닌가?’

역시 불안했다. 이왕이면 보험을 준비하고 싶었다. 그런데 비서실을 총동원해도 이 정보를 사전에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샐로먼 브러더스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뒤늦게야 한 가지 사실을 기억했다.

“참,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이 지금 미국에 가 있다고 했지? 안재운 전무가 미국에 간 것도 최민혁 실장하고 접촉하기 위해서라고 했잖아? 그 일은 어떻게 된 거야?”

“최민혁 실장이 아예 연락을 받지 않아서 접촉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한국으로 돌아온 거야?”

“그건 아닙니다. 오성 전자는 실리콘 밸리에 SISA(오성전자 미주 연구 법인)을 이미 만들었는데, 그곳에 거주하는 것으로 압니다.”

“SISA? 거기 SISA에서 뭘 하는데?”

“주로 위성 셋톱박스 개발을 하는 것으로 압니다. 오큘러스 프로젝트 성공 이후에 이쪽에 투자 규모를 늘렸습니다.”

오큘러스 프로젝트 성공 이후에 위성 사업은 최민혁 전생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오성 그룹이 이 사업에 투자를 대폭 늘리는 것은 당연했다.

위성 관련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병행해서 진행 중이었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을 모티브로 삼아서 실리콘 밸리에 투자를 대폭 늘렸다.

안재운 전무는 바로 이 일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 위성 관련 사업에 대한 경쟁자는 고작 HY 전자가 유일했다.

당장 LC 전자를 비롯한 다른 대기업은 관심만 기울이는 중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혀를 내둘렀다. 이미 조카 최민혁 때문에 오성 그룹과 HY 그룹 역시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을 깨달았다.

‘대단한 놈이야.’

설마 한국 대기업 두 곳이 한 사람 때문에 실리콘 밸리에 무리수를 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쪽도 간과할 수는 없었다.

“하면 그쪽은 인공지능 쪽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소리야?”

“현재는 그런 것으로 압니다.”

“정확히 모른다는 소리지?”

“…네.”

권재홍 비서실장도 피곤한 얼굴을 한 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 역시 이번 일과 관련해서 인공지능 관련 조사를 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인공지능이란 분야는 너무 생소하고,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인공 지능 관련 투자는 꽤 오래전부터 한 것으로 압니다. 다만 아직 결과가 나온 적은 없습니다. 실제로 써먹기에는 난제가 많은 기술입니다.”

“하긴. 그게 현실이지.”

최문경 부회장은 조카 최민혁 때문에 자신이 심하게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지친 얼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안재운 전무가 굳이 최민혁 실장을 만나려고 한 것도 추가 투자에 대한 자문이었을 겁니다.”

“아, IT가 미래라는 개소리를 한 그놈답네.”

“하지만 그 말을 전적으로 무시하기는 힘듭니다. 지금의 야후 인기만 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아직 나스닥 상장 전인 야후였지만 그 미래 가치에 대한 평가로 말이 많았다.

사기라는 소리를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야후 사용자만 보면 또 그렇게 평가 절하 하기 힘들다.

유저에 대한 광고만으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보수적인 인물답게 선뜻 야후에 대해서 좋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 이야기는 지금 논지와는 다르니, 굳이 더 언급하지 마.”

“…알겠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그제야 안재운 전무의 행보를 보면서 최민혁 실장이 미국에서 이것저것 건드린 사업을 떠올리고는 혀를 찼다. 그는 안재운 전무가 왜 굳이 급하게 최민혁을 만나려고 한 것인지를 이제야 안 것이었다.

‘하긴, 이들은 샐로먼 브러더스나 모건 스탠리 내부 정보는 알지 못할 테니.’

“그렇다면 안재운 전무나 권태성 실장도 아직 이 내막은 모른다는 이야기겠네. 그쪽에 한번 정보를 흘려 봐. 아마 절대로 조용히 있지 않을 거야. 에플 주가와도 관련이 있으니까. 그러면 뭔가 나와도 나오겠지. 그러다 보면 인공지능 기술 상업화가 가능한지도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 뭐, 아니어도 상관은 없어. 권태성 실장은 이 일을 이전처럼 쉽게 넘어갈 것 같지 않으니까. 필요하다면 오성 안에 있는 우리 인력을 동원해. 아, 그 돼지도 있잖아.”

“김현우 상무, 아니, 김현우 수석 말입니까?”

“그래. 아직 오성에 잘 붙어 있지?”

“…그런 것으로 압니다.”

“꼭 그 친구가 아니어도 돼. 일단 정보를 이리저리 흘려봐. 뭔가 나와도 나오겠지.”

“…알겠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이를 갈았다. 이번 일을 잘만 이용하면 조카 최민혁을 크게 흔들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미국 자산을 이용해서 이번 일에 끼는 것도 한 방법이겠어.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서는 이미 검토 중이라고 하니, 에플 주식 공매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 * *

최민혁 실장이 갑자기 일정을 안 지킨 것 때문에 권태성 실장도 미국에 도착해서 호텔에 머무르다가 결국 SISA 사택으로 옮겼다.

안재운 전무는 길길이 날뛰었다.

“민혁이 이 자식이 감히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는 거야?!”

지금까지는 말 잘 듣는 후배 호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하는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는 마치 자존심이 상한 여자처럼 최민혁 실장을 씹었다.

그도 뾰쪽한 방법이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아예 연락을 받지 않아서다.

이 넓은 미국 내에서 이동하니 그 동선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람을 구해서 최민혁 실장의 동선을 확인하려 했지만 이내 관뒀다.

자존심이 상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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