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87화 (687/1,021)

#687.

이 필터는 여러 가지 수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오염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서 다양한 필터는 계속 나오게 되어 있다.

이 필터의 본질은 결국 음성에서 잡음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 필터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CPU 성능 자체가 올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건 지금의 개인 PC로는 불가능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현실 세계의 노이즈는 그 요인이 다양합니다. 한두 가지 요인이 아닌 셈입니다. 그러면 결국 거기에 따른 디지털 필터를 따로 설정해야 합니다. 이걸 개인용 PC로 처리한다라?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문가는 한결같이 소리로 말했다.

[당대 기술로는 불가능합니다!!!]

아마 최문경 부회장도 과거였다면 전문가들의 일관된 이야기를 믿고 여기서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는 조카 최민혁을 정말 싫어하지만, 그의 능력만은 인정했다.

“이 일을 하는 주체가 내가 말하기 좀 뭐하지만 내 조카 놈인 민혁이야. 최민혁 실장 들어봤지? MP3의 아버지 소리를 듣는 그놈 말이야.”

그는 최근의 한 가지 정보를 떠올리면서 냉수를 우선 마셨다.

“모토롤라를 상대로 K투스 특허료를 뜯어내는 놈이야. 그런 놈이 하는 일이야. 이제까지 그놈이 한 성과가 있는데, 마냥 안 된다고 못을 박기는 그렇잖아?!!”

“최민혁 실장이라면…….”

‘최민혁 실장’의 이름이 나오자 자문가는 처음에 크게 당황했다. 그들도 이 일을 진행하는 이가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은 몰랐다.

최민혁 실장이 하는 일이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제야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번 인공지능 일은 상황이 좀 달랐다. 더욱이 그들은 최민혁 실장을 은근히 질투했다. 안 그래도 자기들끼리 모였을 때 최민혁 실장을 씹곤 했는데, 이런 기회가 생겼다.

이제는 자신들이 한 조사보다 감정이 상한 게 더 중요했다.

“…최민혁 실장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저희도 압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이 한 일은 기존에 이미 나와 있는 이론을 최대한 이용한 겁니다. 전혀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그랬다.

MP3, IPS, K투스와 같은 기술은 아주 새롭게 정리된 원천기술은 아니었다.

와컴 기술만 해도 아예 지분을 인수했으니 말이다.

CDMA와 같은 기술은 컬컴 엔지니어와 최대한 손을 잡았다.

“이런 기술은 자본만 충분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한국 대기업이 못 했을 리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최문경 부회장 역시 최민혁 실장이 너무 싫어서 자문가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

“최민혁 실장은 지금까지는 정말 운이 잘 따라서 성공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그 자신이 뭔가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최근에 밝혀진 MP3 원천기술을 얻기 위한 최민혁 실장을 생각하면 딱히 과장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

최문경 부회장은 권재홍 비서실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런데 권재홍 비서실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최민혁 실장이 이 모든 일을 했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외부 원천기술을 사들이고, 뛰어난 인재를 채용해서 진행한 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니, 그래야 했다.

그런데 인공지능 기술은 이런 기술들과는 그 격이 많이 달랐다.

“최민혁 실장님이 이제까지의 성공에 취해서 인공지능 기술도 이전 기술처럼 쉽게 될 수 있다고 착각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상업적인 성공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듣기로 스티븐도 이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한다는 소리가 있잖아. 그라면 뭔가 새로운 것을 내놓지 않을까?”

자본가는 서로 시선을 한 번 마주한 후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론으로 못 하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말로는 화성 탐사도 가능합니다. 아니, 저기 태양계 밖으로 우주선도 보낼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말이죠. 그런데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연산하는 데 필요한 CPU의 성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미 언급한 필터 알고리즘이 대표적입니다. 지금 CPU 기술로는 그걸 맞출 수가 없습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오류 문제다.

노이즈가 생기면 오류는 바로 따라서 나온다.

그 오류 하나를 정리하는 데, 연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오류가 딱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염된 데이터가 생길 때마다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단어와 문장이 늘어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그 숫자가 늘어난다.

그걸 전부 처리하는 건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기술이었다.

조언가들이 추가로 언급한 것은 구체적인 CPU 연산 파워다. 그들은 실제로 어느 정도로 강력한 CPU 성능이 필요한지 수치로 표기했다.

“혹시 슈퍼컴퓨터를 이용해서 시뮬레이션으로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건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만 슈퍼컴퓨터를 사용해야만 그나마 가능한 정도입니다. 연구실에서나 가능한 기술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그걸 개인용 PC에서 실현 가능하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계속되는 같은 이야기.

“흠.”

최문경 부회장은 그제야 안도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전문가들이 한 입으로 안 된다고 했는데, 될까 싶기는 했다.

아니, 한 사람이라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원점에서 다시 조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다들 무조건 안 된다고 하니까.

그는 전문가들의 충분한 조언을 듣고는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권재홍 비서실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권재홍 비서실장도 다른 일과는 달리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여기에 모인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의견에 수긍했다.

솔직히 인공지능은 선을 한참 넘은 이야기였다.

“저도 공감합니다. 최민혁 실장이 지금까지 늘 성공만 했지 않습니까. 아마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겁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기술도 쉽게 생각해서 무리수를 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럴까.”

“네, 확실합니다.”

“…알겠네.”

회의는 여기서 끝났다.

* * *

최민혁은 장승일 실장을 통해서 최문경 부회장이 인공지능 전문가를 불러 모아서 자신을 철저히 조사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과연 우리 첫째 큰아버지라고 생각했다.

“역시 대단한 분이죠?”

조성돈 팀장 역시 혀를 내둘렀다. 그도 미국에 와서야 최문경 부회장이 얼마나 신중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도 이렇게 신중하게 일을 처리할 줄은 몰랐습니다.”

“절대로 무시해도 될 사람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더 조심하겠습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인공지능 관련 정보 일부를 한번 흘려보세요. 미국 국방성 과제에서 사용된 기술 정도면 좋겠습니다.”

“네? 굳이 그럴 필요가?”

최민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정보가 아니면 우리 부 회장님은 구경만 할 겁니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난 후에야 슬쩍 손을 걸치죠. 이대로는 정말 답 없습니다. 자기 돈은 단 한 푼도 안 쓸 겁니다.”

“…하긴 이제까지 부회장님의 행보를 봐도 좀 그런 면이 있습니다.”

조성돈 팀장도 그제야 고개를 갸웃했다. KM 그룹 부회장 정도 되면 막대한 자금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최문경 부회장은 지금까지 그런 행적을 보인 적이 없었다. 고작 KM 그룹을 이용하는 정도에 불과하니까. 심지어 비자금 운용 역시 다르지 않았다.

최민혁은 넌지시 한 가지 사실을 말해주었다.

“왜 샐로먼 브러더스가 우리 KM 그룹을 친구처럼 대한다고 생각합니까? 그거 다 우리 부 회장님이 손을 쓴 덕분입니다. 그런데 샐로먼 브러더스 같은 거대 투자 회사가 왜 우리 부회장님 말을 들을까요? 잘 생각해 보면 답은 한 가지죠.”

차입금.

연합 SB.

이런 투자는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3년에 걸쳐서 20억 달러가 넘는 차입금을 들인 것은 이해하기 힘든 투자였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도대체 뭘 믿고 KM 그룹에 막대한 투자를 하겠는가.

단순히 KM 그룹 담보만으로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조성돈 팀장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 역시 그 부분은 의아하게 생각한 부분이다. KM 그룹에 대한 차입금 역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설마 부 회장님이 샐로먼 브러더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는 말입니까?”

최민혁은 오히려 반문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 하지만 이제까지 부회장님은 큰 자금을 돌린 적이 없습니다!”

“본인 명의로는 그렇겠죠. 차명이라면 방법이 많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제 선친이 무슨 일을 했다고 생각하세요? 벨린 투자 말입니다. 그 용도가 뭐였을까요. 왜 제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벨린 투자를 정리하려고 했을까요?”

“…가만, 그렇다면 그 자금이 전부 샐로먼 브러더스 쪽으로 흘러갔다는 말입니까?”

“그건 모르는 사실입니다. 우리 할아버지 비자금도 있을 겁니다. 다른 자금 주인도 있겠죠. 최두진 사장 같은 분의 현금성 자금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자금 중의 일부는 우리 부회장님이 관리했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 부회장님을 만만하게 보시면 안 됩니다.”

“하면 지금 진행하는 일은…….”

“우리 부회장님이 스스로 저금통을 깨게 하여야죠.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 더욱이 미국 국방성에 있는 정보는 상업적인 인공지능 수준과는 거리가 멀어요. 군사용 정보니까. 이지수 박사가 그 당시에 한 성과는 상업적인 기술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미국 국방성이 관련돼 있다는 것만으로 꽤 매력적인 정보가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판은 꽤 큽니다. 먹잇감에 계속 신뢰를 줘야 합니다. 도박판에 따라올 수 있도록 손을 써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판을 더 키울 테니 말이죠. 가장 큰 표적은 우리 부회장입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 부회장의 비자금 규모를 대폭 줄일 필요가 있어요. 안 그러면 의미가 없어요. 지금으로선 설사 KM 그룹 부회장에서 물러나도 미국 가서 괜찮은 회사 인수하면 그만입니다. 그걸 잊지 마세요!”

“…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의 심모원려에 혀를 내둘렀다. 그도 가끔은 최민혁이 왜 저렇게 소극적으로 질질 끄는가 싶었다. 막대한 자금이 있으니, 그걸로 부회장을 밟아버리면 간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최문경 부회장이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움켜쥐고 있다면 상황이 다르다. 더욱이 최문경 부회장은 마치 도마뱀 같은 사람이다. 위험하다 싶으면 꼬리를 잘라 버리니 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초집착 성향이 있는 사람이 바로 최문경 부회장이란 점이다. 그는 자신이 노린 먹잇감을 쉽게 포기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KM 그룹 계열사 중에는 무려 10년에 걸친 공작을 통해서 인수한 회사가 있을 정도였다.

최민혁은 그런 사람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 * *

조성돈 팀장은 즉시 장승일 실장에게 연락해서 미국 국방성 과제 때문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슬쩍 흘렸다.

장승일 실장은 계속 최용욱 회장에게 쪼임을 당하는 중이라서 이 정보를 곧바로 최용욱 회장에게 보고했다.

그렇게 비서실과 회장실 사이에 정보가 오갔다.

조성돈 팀장이 중간에 정보를 쪼개서 여러 번에 걸쳐서 자료를 보냈다.

그 과정에서 정보가 샌 건 당연지사다.

최문경 부회장은 인공지능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중에 이 정보를 보고받았다. 그는 자문가의 의견을 듣기는 했지만, 여전히 망설였다. 제임스 러너 이사를 통해서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에서 조사한 최민혁 실장의 동향을 알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과하다 싶은 신중함.

그것은 모두 조카 최민혁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당하고도 또 당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내가 계속 병신 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

이 와중에 최민혁이 지금 투자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미국 국방성 과제와 관련이 있다는 정보를 추가로 들은 것이었다.

‘이거 분명 뭔가 있어.’

결국 최문경 부회장은 사내 인력으론 안심할 수가 없었고, 심지어 외부 연구 용역도 믿지 않았다. 그는 결국 비서실을 비롯한 사내에 인공지능 관련 조사 지시를 내렸다. 인공지능을 현실에서 써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라고 말이다.

여기에 상금으로 무려 10억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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