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
그 덕분에 IT 종목에 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최민혁 역시 야후의 나스닥 상장 타이밍을 보고 들어가기는 했지만, 이 정도 분위기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뭐, 전문성이 다르니까.’
그는 이들을 어떻게 이용하여야 할지 구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막 차량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막는 이들이 있었다.
김명준 과장은 이미 그들을 알아봐서인지 극단적으로 막지는 않았다.
두 사람 중의 한 명이 다급하게 소리쳤기 때문이다.
“세쿼아 캐피탈에서 나왔습니다!!”
‘이거지, 이런 반응이어야지!’
최민혁은 내심 두 사람의 신분을 알고는 쾌재를 불렀다. 다만 겉으로는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일은 자신과 무관한 것처럼 말이다.
사실 그도 사람인 이상 표정 관리 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모건 스탠리의 스탠리 로버트 이사 반응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짜증이 나니까.
‘아마 이번에는 그러지 못할 거야.’
클라이너 퍼킨스 역시 비슷한 시기에 구골을 방문했다.
그런데 그들 반응은 미지근했다.
하지만 세쿼아 캐피탈은 확실히 좀 달랐다.
최민혁은 어차피 자신이 미끼를 던져놓아서 일어난 일임에도 혀를 내두른 채 잠깐 머뭇거렸다. 그는 자신을 이미 기다리고 있을 안재운 전무를 떠올렸다. 딱히 미안하지는 않았다. 그냥 시기적으로 이상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구골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구골 경영자는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입니다.”
“두 사람에게 이미 허락을 받았습니다. 최민혁 실장님만 동의해 주시면 됩니다. 1차 자금 5,000만 달러는 이미 구골 계좌에 송금했습니다.”
“잠깐만, 우리가 그쪽하고 협상한다고 말했습니까?”
“그럴 의도가 없었다면 우리 쪽에 구골 관련 정보가 넘어올 이유가 없습니다.”
“설마 제가 정보를 흘렸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게 중요합니까?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최민혁 실장님은 아직 미국 내에 자기 세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번 일은 우리 쪽과 같이 손을 잡는 것이 상호에게 이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신뢰 때문이다.
세쿼아 캐피탈이 일단 대규모 투자를 한 이상 시선을 끌게 마련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일단 인재 채용과 같은 부분에서 강점이 크다.
더욱이 연계 사업을 풀어가기도 좋다.
수익모델을 풀어가기도 좋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의 일이다.
지금은 아직 변호사를 부르지도 않았다.
최민혁은 황당한 눈으로 힐끗 옆자리에 앉은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조성돈 팀장은 다급하게 벨린 투자 쪽에 전화를 걸어서 확인했다.
황당한 사실은 우영민 부장 역시 이제야 부랴부랴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도 5,000만 달러나 되는 자금이 갑자기 들어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벨린 투자의 자금 규모가 워낙에 큰 것도 있지만, 생각보다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영민 부장은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무려 5,000만 달러를 송금받았는데, 아무런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최민혁은 그제야 인생 1회 차의 세쿼아 캐피탈에 대한 것을 떠올렸다. 그는 세쿼아 캐피탈 내에서 극단적인 성향이 있는 한 인물을 떠올렸다.
“…혹시 마이클 모리츠 이사 밑에 있습니까?”
“어, 마, 맞습니다.”
두 사람은 화들짝 놀랐다. 송금 건은 마이클 모리츠 이사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 맞다. 그런데 그 내막을 알지도 못하는 최민혁 실장이 의사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 1회 차를 사는 최민혁 실장에게는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마이클 모리츠 이사는 인수합병 과정에서도 제대로 계약이 결정 나지 않는 상황에서 돈부터 보내는 일화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구골 엔진은 그에게 그만큼 절박한 투자였던 셈이다.
‘나쁘지 않아.’
최민혁은 곰곰이 고민했다. 그는 이 일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쉽게 판단 내리지 못했다. 지금 자신을 기다리는 안재운 전무를 생각하면 좀 미안한 일이기는 한데,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일이 무사히 진행된다면 모건 스탠리도 지금처럼 무거운 엉덩이로 앉아 있지는 못할 것이다.
‘뭐, 10% 지분쯤이라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아니지.’
그는 핸드폰 문자 하나만 달랑 보낸 후에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공장 시공식에는 못 갑니다.]
“흠, 좋습니다. 잠깐 이야기나 해볼까요?”
“무, 물론입니다!”
두 사람은 그제야 쾌재를 불렀다. 마이클 모리츠 이사는 지금 뉴욕에서 급한 일을 처리하는 중이라서 이곳에 오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이 일차적으로 협상을 매듭지어야 했던 것이다.
물론 이들이 이렇게 설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다른 벤처 캐피탈이 달려들기 전에 먼저 구골을 점찍어놓을 목적이었다.
‘휴우, 다행이다. 마이클 이사님에게 바로 연락부터 해야겠어.’
* * *
마이클 모리츠 이사는 타임의 산업 담당 기자로 지냈다.
그는 특히 에플 특집 기사를 써서 명성을 날렸다.
그 과정에서 스티븐과 꽤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그가 스티븐의 숨겨진 딸 이야기 기사를 써 버린 후에 스티븐과 관계가 틀어졌다.
그가 그렇다고 에플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에플의 몰락 과정을 주시하면서 스티븐을 오히려 조명하기도 했다.
마이클은 스티븐과는 애증의 관계였다.
그런 그이기에 최민혁 실장의 에플 투자와 스티븐의 복귀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
다만 이 때는 타임을 그만두고, 세쿼아 캐피탈에 합류한 이후였다.
시스코 투자 프로젝트를 성공한 이후라서 에플도 주시했다.
그게 바로 그가 에플 주식 매입을 공격적으로 한 이유이며, 그 덕에 또다시 세쿼아 캐피탈 내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떨쳤다.
마이클은 다른 투자자와는 달리 에플 주가가 3달러인 시점에서 들어갔으니까 말이다.
그는 이오이 마틴 시니어 매니저에게서 ‘최민혁 실장’의 이름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때문에 다급하게 세쿼아 캐피탈 이사회를 열어서 구골 투자를 결정했다.
세쿼아 캐피탈 임원 대다수는 갑자기 튀어나온 구골이란 회사에 황당했지만,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마이클 모리츠 이사의 행동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실상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는데, 당시 실제로 대부분이 뒤통수를 맞았다.
이사회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무려 5,000만 달러를 쐈다는 말에 다들 어이가 없기보다는 도대체 구골이 어떤 회사인가 살핀다고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구골이 바로 야후의 취약점을 극복한 회사라는 것을 알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이런 정보는 어떻게 얻은 거야?]
[난 정보를 얻은 것보다 이렇게 빨리 투자한 것이 더 놀라워.]
[가만, 이거 벨린 투자가 먼저 투자한 거잖아? 그자들이 우리 투자를 받은 거야?]
벨린 투자 이야기가 나오자 부정적인 이야기는 쑥 들어갔다.
그리고 곧 알게 된 사실은 아직 벨린 투자 계약서의 잉크가 아직 마르기도 전이란 것이다.
[카카, 갓 타이밍이다!]
세쿼아 캐피탈 이사회는 그저 감탄만 했다.
그런데 그들은 감탄하면서도 지금 정보가 실시간으로 올라온다는 것을 알았다.
마이클 모리츠 이사의 결단이 맞았던 것이다.
[…….]
마이크 모리츠 이사는 충분한 설득을 했다고 판단하자 말없이 이사회를 나섰다. 하지만 그에게 목적지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마이클 모리츠 이사는 이사회의 설득을 끝낸 후에 자신이 검토해야 할 중요한 투자 결정만 마무리 짓고는 곧바로 텍사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그곳에서 그 동안 귀가 따갑도록 이야기를 들은 최민혁 실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마이클 모리츠 이사입니다.”
“최민혁 실장입니다.”
최민혁은 아니나 다를까 미국인 눈으로 봐서는 십 대 후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마이클 모리츠 이사는 이미 최민혁 실장에 대해 본인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말없이 바로 구골 지분 협상에 들어갔다.
“우리 세쿼아 캐피탈이 구골에 투자하는 것은 결국 최민혁 실장에게 이익이 될 겁니다.”
그건 바로 시스코를 시작으로 실리콘 밸리 캐피탈로 명성이 자자한 세쿼아 캐피탈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최민혁도 그 점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세쿼아 캐피탈을 끌어들인 것이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클라이너 퍼킨스는 아직 관망 중인가? 아쉽네. 둘이 같이 경쟁시키면 더 재미를 봤을 텐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지.’
사실 세쿼아 캐피탈이 밀당을 하면서 눈치를 봤다면 최민혁 실장은 좀 다른 방법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쿨 지분 거래다. 상대가 협상을 질질 끌지 않은 것이 좋았다.
그래서 그도 쿨 제안을 던졌다.
“10%에 1억 달러.”
“…콜.”
제안을 하는 사람이나.
거래를 받는 사람이나.
둘 다 황당한 대응이었다.
마이클 모리츠 이사 역시 알려진 명성답게 성격이 쿨했다.
“이, 이사님!”
옆에서 조용히 지켜만 보던 이오이 마틴 시니어 매니저와 잭 맥켄지 매니저가 기겁했다. 두 사람은 산더미 같은 구골 검토 서류를 아직도 다 확인 중이었다.
그들은 다급하게 마이클 모리츠 이사의 양손을 잡아서 끌고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마이클 모리츠 이사는 집게손가락으로 두 사람 의견을 막았다. 그는 세쿼아 캐피탈 쪽에 전화해서 간단하게 몇 마디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머지 5,000만 달러 송금했습니다.”
최민혁은 황당한 눈으로 마이클 모리츠 이사의 반응이 정말인가 싶어서 힐끗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조성돈 팀장은 곧바로 우영민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송금을 확인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쿨하십니다.”
“이런 거래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다만 역시 추가 지분 매각은…….”
최민혁은 씩 웃었다.
“그건 좀 더 두고 본 후에 거래할까 합니다.”
“아쉽네요.”
마이클 모리츠 이사는 입맛을 다셨다. 그는 이번 거래가 꼭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자금이 넘치는 이다. 굳이 투자받을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은 역시 노림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벤처 캐피탈을 의식한 것 같은데, 역시 클라이너 퍼킨스일까? 가만, 모건 스탠리도 무시하기는 힘들겠어. 이미 모건 쪽하고 계속 미팅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아무래도 그것 때문인 것 같아.’
하지만 그는 모건 스탠리가 있었기에 그나마 지분 10%라도 얻을 수 있었다고 확신했다. 그들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고마웠다.
굳이 말을 빙빙 돌릴 필요는 없었다.
“…뉴욕 타임스 쪽에 아는 지인이 있습니다. 이번 거래는 그쪽을 통해서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좋네요.”
최민혁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굳이 이번 일을 진행하는 것은 일종의 미끼였으니까. 그렇다고 그 미끼를 싼값에 넘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마이클 모리츠는 이런 최민혁 실장 자신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아주었다.
“역시 쿨하십니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씩 웃었다. 둘 다 이번 거래를 통해서 얻을 것은 다 챙겼다. 그러면 된 것이었다.
하지만 마이클 모리츠 이사는 약간 아쉬운 표정이었다. 때문에 그는 모건 스탠리가 이번에도 멍청한 짓을 하기만을 기대했다.
‘최민혁 실장이라면 또 떡밥을 던질 거야. 그때 또 먹으면 되니까.’
* * *
최민혁은 쿨 거래를 한 후에 안재운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이번 텍사스 공장 시공식은 최민혁 실장을 위한 자리였다.
이를 위해서 텍사스 주 인사도 초청하고 신경을 썼는데, 갑자기 없던 일이 돼버렸다.
조성돈 팀장은 오성 전자 실무진을 통해 하소연을 듣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안재운 전무 쪽과 만나서 사과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이번 일은 콜린스 사업부 인수를 노리고 그쪽에서 진행한 일입니다. 우리 쪽에서 굳이 급하게 일을 밀어붙일 필요는 없어요.”
조성돈 팀장도 혀를 내둘렀다. 그가 보기에 제삼자가 이 사실을 안다면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하면 콜린스 사업부 매각은 더 늦어지는 겁니까?”
“아니, 콜린스 사업부 매각 일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보다는 에플의 이번 이벤트가 핵심이에요. 그 일이 끝나야 뭘 해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