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53화 (653/1,021)

#653.

“혹시 KM 전자의 주주총회를 염려하신 겁니까?”

최민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부인하지 않았다.

“KM 전자가 개인 회사면 상관이 없지만 상장회사입니다. 그러니 주주총회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합리적인 설명을 해줘야 할 겁니다. 그런데 콜린스 사업부 매각은 말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업이 없어도 KM 전자가 잘나간다는 증명이 필요합니다.”

그랬다.

콜린스 사업부 매각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콜린스 사업부의 덩치가 이제는 너무 커서 가볍게 매각하기 힘들었다.

최민혁은 이미 콜린스 사업부를 매각한다고 말을 했을 뿐인지, 실제로 그렇게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그렇게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전에 미리 떡밥을 깔아놓아야, 사람들이 어느 정도 수긍할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조성돈 팀장도 이제는 그 의미를 알았다. 그조차 콜린스 사업부 매각 자체를 터부시하지 않았다.

“그건 이미 MP3 로열티로 설명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이유가 되기는 합니다만 아직은 설명이 부족합니다.”

“에플의 성공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특히 아이컴 성공이 중요해요. 그게 대박을 치면, 결국 콜린스 사업부 매출에 영향을 줍니다. 그렇게 되면 콜린스 사업부 매각 대금은 더 올라가겠죠.”

“그렇기는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더 반박하지 못했다. 그도 처음에는 콜린스 사업부 매각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콜린스 사업부의 매출 덩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은 초창기와는 달랐다.

KM 전자 브랜드가치가 많이 올라서다.

당시만 해도 KM 전자 브랜드가치는 뭐 하는 회사인지에서 모른다 수준에서 이제는 아, MP3 원천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정도로 알려졌다.

하지만 설사 수익이 MP3 사업부가 더 크다고 해도 콜린스 사업의 매출 덩치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최민혁 실장은 씩 웃고 말았다.

“그러니 지금 안재운 전무를 만나서 할 말이 없습니다. 뭐 하나 약속할 수가 없으니까요. 다만 굳이 안재운 전무 쪽의 연락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안재운 전무를 흔들 수는 있죠. 그건 콜린스 사업부 매각 전에 할 필요가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질질 끈 것만으로 목적한 바를 다 이룬 셈입니다. 꼭 지금 안재운 전무를 만날 이유는 없습니다.”

“…지금은 세쿼아 캐피탈이 우선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최민혁은 그제야 피식 웃었다.

“그렇죠. 구골 설립 정보가 오성 그룹에 정보가 들어가면, 이제부터 그들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겁니다. 결과는 야후의 나스닥 상장을 통해서 스스로 자각하게 되겠죠.”

“…….”

그는 조성돈 팀장이 침묵하자 다시 피식 웃었다.

“제 능력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면 콜린스 사업부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겁니다. 오성 전자 처지에서도 콜린스 사업부 인수는 빠르면 빠를수록 수천억을 절감할 수가 있으니까.”

또한 단순히 비용 절감 문제로 끝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는 콜린스의 브랜드인지도가 꽤 알려져 있기 떄문이다.

모르기는 몰라도 거기에 오성 그룹 브랜드로 나간다면 수출 실적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건 오성 그룹이라고 해도 군침을 흘릴 만큼 가치 있는 결과였다.

최민혁 실장은 오성 그룹이 가능하면 콜린스 사업부를 비싼 값에 인수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딱히 그게 콜린스 사업부의 가치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야 오성 전자가 자동차 사업과 같은 덩치 큰 사업에 들어가지는 못할 테니까.’

융통 가능한 자산을 강제해 오성 전자가 선택과 집중을 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오성 그룹이 좋아서?

천만에 말이다.

오성 그룹의 뭉칫돈이 한쪽에 잠기면, 결국 그들은 최문경 부회장 쪽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워진다.

‘DL 그룹도 상태가 안 좋지. 다른 대기업은 아직 침묵 중이니까. 그게 사실 좀 걱정되기는 하지만 결국 IMF가 그들에게 족쇄를 채울 거야.’

사실 최민혁 실장은 IMF 사태를 최대한 이용할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태국 바트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전 정보를 알아야 했다.

그것도 비밀이 아니라 당당하게 말이다.

때문에 난 헤지펀드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길 필요가 있었다.

그는 애초에 헤지펀드를 방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 방식이면 자기 집착에 빠진 한국 권력자와 정치인을 입맛대로 교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헤지펀드 쪽과 같이 움직이면 좋지. 그 와중에 돈도 좀 벌고, 우리 첫째 큰아버지 배후를 정리하면 가장 이상적이니까.’

* * *

[실리콘 밸리 투자자로 유명한 세쿼아 캐피탈이 구골이라는 신생 검색 엔진 개발 기업의 지분을 1억 달러에 매입하다!]

이 뉴스는 정말 갑자기 터졌다.

밑도 끝도 없이 이루어진 일이다.

새로운 검색 엔진에 관한 이야기도 없는 상황에서 투자 결정부터 이루어졌다.

미국 언론에서도 뉴욕 타임스 기사를 보자마자 기자들을 구골 본사에 파견했다.

래리 페이지조차 정신없이 구골 본사를 방문한 기자들 때문에 크게 당황한 얼굴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뉴욕 타임스 기자가 무려 열 명이나 자신을 찾아올지는 몰랐다.

[…조금 뜬금없네요. 설마 언론사에서 이렇게 관심을 보일지는 몰랐습니다. 아직 우리 회사 법인 설립 잉크가 마르지도 않았으니 말입니다.]

심지어 법인 건물의 페인트 냄새가 자욱한 공간에서 하는 인터뷰였다.

실제로 구골 법인 설립은 진행되었지만, 아직 정식으로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법인 설립 인허가 과정을 충족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틈을 참지 못하고 기자들이 몰려온 것이었다.

하지만 래리 페이지의 얼굴은 그렇게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는 일단 외부에서 자신을 인정해 줬다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

더욱이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와는 달리 구골이란 회사가 알려지는 것이 일단 인재를 끌어오기에 더 유리했다.

‘고집 센 인간들이 생각을 좀 달리 먹겠지?’

자신이 그런 고집쟁이 중의 한 사람이니,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후 지원 요청이 쏟아졌다.

그러니 굳이 그 자신이 나서서 뭐라고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자신조차 세퀴아 캐피탈의 저돌적인 투자 모습에는 혀를 내둘렀다.

세쿼아 캐피탈이 10% 지분을 무려 1억 달러에 사들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투자는 정말 황당했다.

그 누구도 아닌 세쿼아 캐피탈 내부에서도 황당하다는 소리가 나왔다.

그들은 뉴스를 통해서 세쿼아 캐피탈이 구골에 투자했다는 것을 알았을 정도다.

때문에 대충 형식만 맞추어 부랴부랴 이사회가 열렸다.

하지만 세쿼아 캐피탈 이사회 역시 딱히 마이클 모리츠의 투자를 반대하지 않았다.

이건 마이클 모리츠의 과거 투자 성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저돌적인 성격을 잘 아는 탓이다.

더욱이 이런 마이클 모리츠의 투자 때문에 아직 회사가 손해를 본 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큰 이익을 봤다. 그가 먼저 선수를 친 덕분에 다른 실리콘 밸리 투자자들을 엿 먹인 적이 수십 차례가 넘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 과정에서 오히려 한 가지 사실을 더 밝혔다.

“구골 설립에 대부분 자금을 댄 최민혁 실장님이 굳이 지분을 세쿼아 캐피탈에 넘길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분도 돈이 많으니까요.”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혹시 구골 설립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를 부탁할 수 있을까요?”

“확실히 특이한 일이었습니다.”

래리 페이지는 최민혁 실장과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불과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은 지금껏 그의 인생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지금은 벌써 옛날이야기가 된 셈이라 지난 일을 숨김없이 다 말했다.

딱히 숨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자는 예상도 하지 못한 내용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하면 구골 검색엔진 알고리즘은 최민혁 실장이 고안한 겁니까?!”

“원소유자는 최민혁 실장님이 맞습니다. 다만 그 안에 구현하는 방식은 저와 세르게이가 힘을 합쳤습니다. 즉 세 사람이 같이 공동으로 일했다고 하면 될 겁니다.”

“……!”

이를 들은 기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들 역시 최민혁 실장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믿을 수가 없군요. 저도 최근 들은 사실이 거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혹시 모토로라를 비롯한 메이저 핸드폰 업체가 KM 전자 측과 K 투스 사용과 관련해서 긴밀한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로서는 알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K투스 관련 협상은 이미 어느 정도 사전에 큰 가이드라인을 최민혁 실장이 정해놓았다.

나머지 K투스 관련 로열티 조정 문제를 지금 KM 전자 기획 팀이 검토 중이었다.

판매 수량과 일정에 따라서 다양한 로열티 금액이 책정되기 때문에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이 거래 자체가 주목을 받는 것은 전 세계 모바일 시장 규모가 2억 대를 넘겼고, 내년부터 모바일 생산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당 2,000원씩 로열티를 잡아도 무려 4,000억이 된다.

그것도 시간이 흐를수록 핸드폰 시장이 커지니,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조 단위가 넘어선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KM 전자 주가는 한창 조정을 받아서 -6%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12%를 폭등했다.

뉴욕 타임스 기자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래리 페이지 역시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도 최민혁 실장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의 예상을 너무 많이 벗어난 인물이었다.

인터뷰는 덕분에 최민혁 실장의 여러 가지 면을 다루었다.

하지만 그것도 전설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 과정에서 검색엔진의 미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구골의 미래는 굳이 멀리 가서 확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곧 야후의 나스닥 상장이 있으니까. 그때 야후 주가를 본다면 구골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그렇겠습니다.”

기자들도 순순히 인정했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에 대한 취재 지시를 받고는 황당했지만, 이제는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인터뷰는 특종이었다.

* * *

세쿼아 캐피탈의 투자 소식은 당연히 한국에도 전해졌다.

특히 한영 일보의 편집장 최경진 부장은 이동수 부사장에게 호출당한 후에 이 안건을 가지고 욕을 무진장 처먹었다.

두터운 보고서로 한 방 두들겨 맞기도 했다.

[야아, 최 편집장, 너 지금 제정신이야? 지금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 만약 일이 잘못되면, 우리가 최민혁 실장에 관해서 쓴 기사가 역풍으로 돌아와. 그런 일과 관련된 일인데, 들어보지 못했다고? 이 미친 새끼가 누굴 죽이려고 그래?!!!]

사실 한영 일보에서 최민혁 실장 스캔들과 관련된 기사가 오보였다고 사과하면 끝날 수도 있었다.

아니, 이제까지 그래 왔으니,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미국에 가서 벌인 일은 그냥 두고 볼 만한 일이 아니었다.

야후의 나스닥 상장 일은 한국 언론사라면 관심을 두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최경진 편집장은 잔뜩 분노한 채 담배를 베어 물고는 최민혁 실장 담당자인 범용구 기자와 최광수 기자를 비롯한 관련 기자를 전부 다 호출했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스폰남 최민혁 실장 계획이 잘 돌아가는데, 어째서 미국에서 이런 소식이 들리는 거야?!!!”

“…….”

“이 새끼들이, 지금 입을 다문다고 끝날 일이야?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최민혁 실장 그 새끼가 조용히 있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고! 싸하다고 했잖아. 분명히 뭔가 일을 저지를 거라고!!!”

“…죄송.”

범용구 기자는 섬뜩한 살기에 최경진 편집장이 재떨이를 들고 자신을 겨누는 것을 봤다. 그는 침을 꼴칵 삼킨 채 뒤로 물러났다.

최경진 편집장이 진짜 분노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말이 말 같지가 않냐? 오보 기사 내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야. 만약 시민들이 이 사실을 알아봐. 그때는 어떤 반응이 나올 것 같아?”

두 사람은 다시 침묵했다. 분노한 시민이 그냥 자리만 지킬 것 같지가 않았다. 한영 일보 본사로 몰려와서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두 사람은 그제야 심각해졌다. 그들도 최민혁 실장이 왜 갑자기 침묵하는지 몰랐다. 자신들이 쓴 기사는 좀 과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처음에는 스캔들 냄새가 풍겼다고 썼다가, 다른 언론사들의 눈치를 보면서 조금씩 스캔들의 강도를 올렸다. 그리고 분위기가 국민 스캔들 최민혁 실장 단계로 접어들자 이제까지 쌓인 분노를 가감 없이 기사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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