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1.
특히 세쿼아 캐피탈 매니저 잭 맥켄지는 단호한 성격으로 이 일을 단순히 넘기지 않았다. 그는 회의가 끝난 후에 굳은 얼굴을 한 채 회의실을 나섰다.
과거 야후에 대한 검토를 가장 먼저 한 사람이 다름 아닌 잭 맥켄지였다. 그는 그 실적을 인정받아서 주식은 물론이고, 조기 승진까지 약속받았다.
몇 달 후에 이미 시니어 매니저로 진급이 약속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구골이라니.
길가다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이건 놓쳐서는 안 돼.’
그는 동행한 이오이 마틴 시니어 매니저를 따로 화장실로 끌고 가서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이번 투자를 절대로 놓치면 안 됩니다!”
이오이 마틴 시니어 매니저는 급작스러운 잭 맥켄지의 태도에 놀라긴 했지만 신중하게 반응했다.
“너무 다급하게 결정할 필요는 없잖아.”
이오이 마틴 시니어 매니저는 중요한 결정을 앞둘 때면 늘 그랬듯이 투자를 망설였다.
하지만 잭 맥켄지는 절대로 그렇게 놓아둘 수가 없었다.
“마이클 이사님 성격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번 일은 늦게 보고했다가는 정말 큰일 납니다. 일단 선보고 하고 나서 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습니다!”
이오이 마틴 시니어 매니저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봐 잭,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지금 마이클 이사님은 야후의 나스닥 상장 때문에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 거기 걸려 있는 판돈이 얼마인 줄 알면 이럴 순 없어.”
야후 나스닥 상장 이후에 벌어질 일은 아주 간단했다.
바로 야후 주가 변동이었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그리고 그때 어떤 식으로 투자하느냐에 따라서 수익 차이가 꽤 난다.
지금 가지고 있는 주식만이 아니라 얼마든지 단기 투자를 더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잭 맥켄지는 그래서 더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야후에 대한 신속한 투자를 결정한 사람은 역시나 세쿼아 캐피탈의 마이클 모리츠 이사님이지만 그런 판단을 내리게 만들었던 것은 이오이 마틴과 잭 맥켄지, 바로 우리 두 사람이 올린 보고서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오이 마틴 시니어 매니저는 이번 일만큼은 꽤 망설였다.
그의 판단력은 결코 나쁜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조적인 두 사람 성격 때문에 큰 사고도 벌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의 이런 성향이 서로 시너지를 잘 이룬 셈이었다.
마이클 모리츠 이사는 이런 두 사람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반면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한 사람만 강하게 주장하는 의견은 자주 무시하곤 했다.
잭 맥켄지 매니저는 그래서 속이 탔다. 그가 직접 마이클 모리츠 이사에게 전화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다급하게 외쳤다.
“클라이너 퍼킨스가 지금 구골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정말 이대로 있다가 뒤통수를 맞을 겁니까? 그랬다간 아마 최소가 회사에서 퇴출당하게 되는 걸 겁니다!”
“글쎄, 내가 듣기로는 안 그래. 그쪽에서도 고민하는 눈치야. 구골 알고리즘이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증명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잖아.”
“아니, 그걸 보고도 모릅니까?”
그가 내놓은 것은 야후 쪽을 검토한 자료였다.
야후 알고리즘에 대한 대응 알고리즘이 몇 가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 알고리즘 한 가지는 구골의 검색엔진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이걸 보세요. 일단 질러놓고 봐야 합니다!”
“좀 참아봐!”
이오이 마틴 시니어 매니저는 어이가 없었지만, 마이클 모리츠 이사가 뜻밖에 투자사에게 외면당한 회사에 주목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시스코가 그 대표적인 예이니까.
그도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잭 맥켄지 매니저의 극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마이클 모리츠 이사의 성격을 다시 떠올렸다.
어설프게 일을 처리하다가는 진짜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었다.
그는 결국 모리츠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구골에서 한 미팅 내용을 말했다.
야후 나스닥 상장 때문에 정신없이 일 처리에 집중한 채로 묵묵히 듣기만 하던 마이클 모리츠 이사는 딱 한 가지만 물었다.
[잭도 똑같은 의견인가?]
[잭 이 친구가 더 극성입니다. 전 좀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벨린 쪽에서 투자했다면서?]
[그게 벨린 투자에서 이미 3,000만 달러 가까이 투자했다고 합니다. 지분은 90%를 가져갔습니다.]
[벨린 투자…….]
잠깐의 침묵.
아니, 무응답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그사이 마이클 모리츠 이사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상황이 그에게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마이클 모리츠 이사는 과거 10년 전에 에플의 스티븐과 소통하던 기자 출신이었다. 그는 때문에 스티븐에 대해서 잘 안다.
비록 스티븐 개인사를 폭로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가 스티븐을 존경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스티븐이 에플로 복귀한 후의 행보를 잘 알았다.
심지어 에플 주식에도 투자했으니, 당연히 에플 대주주인 최민혁 실장을 잘 안다.
아니, 사실 잘 아는 정도가 아니라 최민혁 실장 관련 팀을 만들어서 따로 감시까지 하는 중이었다.
따라서 ‘벨린 투자’ 이야기는 이오이 마틴 시니어 매니저의 입에서 나온 의견일 뿐이지만 그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러니 반응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 그건 일단 1차 투자해 놓고 결정하지. 얼마 정도 투자하면 좋겠나?]
[바, 바로 투자를 할 생각입니까?]
[야, 이오이, 너 지금 분위기 파악하고 전화한 것 맞아?!]
[죄송하지만…….]
[너 최민혁 실장 몰라? 그 양반이 에플 대주주잖아. 거기다 그가 벨린 투자 실소유잖아. 결국 구골 지분을 확보한 사람이 바로 최민혁 실장이야. 그런데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많아?!!!]
수화기가 폭발할 정도로 쩌렁쩌렁한 외침에 이오이 마틴 시니어 매니저의 안색은 새파랗게 변했다. 그는 그제야 가슴을 탁탁 치고 있는 잭 맥켄지 매니저를 힐끗 쳐다보았다.
다행히 위험한 상황은 넘어갔다.
곧이어서 다시 나온 음성.
[그러면 이렇게 하지. 일단 5,000만 달러를 구골 법인 계좌에 송금할 테니, 그 자금을 가지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봐.]
[네?! 저기 아직 계약 이야기도…….]
[말로만 해서는 그쪽에서 안 받을 확률이 높아. 그러니 일단 돈부터 질러. 그러면 아무래도 사람인 이상 고민을 할 테니까.]
[…설마 그러지 않으면 그쪽에서 제안을 안 받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하, 진짜 답답하다. 지금 에풀 주가가 얼마인지나 알아? 최민혁 실장의 에플 지분 가치가 무려 120억 달러를 넘었어. 그런데 그 양반이 뭐가 아쉬워서 투자를 받겠어? 만약 투자를 받는다면, 그건 인맥 때문이잖아. 우리 쪽에게 어느 정도 양보를 해야 서로 협상하기도 좋잖아!!!]
[…알겠습니다.]
이오이 마틴 시니어 매니저는 꽤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는 황당해서 바로 질문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마이클 모리츠 이사는 생각한 것보다 더 극단적이었다.
그는 전화하는 중에 벌써 5,000만 달러를 구골 법인 계좌에 송금했다.
의도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송금 끝냈으니, 문제가 없도록 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투자를 하란 말이야!]
[…반드시 지분을 얻으란 말씀입니까?]
[그래, 자네도 야후의 가치와 문제를 잘 알잖아. 그 취약점을 극복했다면, 투자 자체는 나쁘지 않아. 더욱이 벨린 투자라면 묻지마 투자를 해도 큰 부담이 없어. 다만 이번 일이 쉽지는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이오이 마틴 시니어 매니저는 양손으로 만세를 부르는 잭 맥켄지 매니저의 모습에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의 지적이 맞았다. 이번 일을 빨리 처리하지 않았다면 그만한 책임을 져야 했을 것이다.
이미 진행하기로 한 이상 이제부터는 그의 책임이 아니었다.
* * *
이오이 마틴 시니어 매니저는 마이클 모리츠 이사의 지시에 따라서 우선 세르게이와 래리를 만났다. 두 사람은 크게 당황했다. 다짜고짜 법인 계좌에 꽂힌 5,000만 달러 때문에 많이 황당한 듯했다.
‘역시 5,000만 달러를 꽂고 나니, 반응이 있구나. 문제는 몇 %냐 하는 건데…….’
그는 이를 악물었다. 마이클 모리츠 이사가 이렇게까지 판을 깔아놓았는데, 뭔가 결실을 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래리 페이지는 세쿼아 캐피탈 담당자의 극단적인 행동에 크게 당황했다. 그는 구골 법인 계좌에 꽂힌 5,000만 달러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사실 최민혁 실장의 3,000만 달러 투자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더 황당한 것은 세쿼아 캐피탈의 대응이었다. 이들은 지분 인수와 관련해서 담당 변호사가 없는 자리에서 돈부터 쏘고 봤다.
자신들을 그만큼 믿든지, 아니면 회사의 가치를 자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서도 솔직히 이 상황이 어리벙벙했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벨린 소프트 쪽의 도움을 얻어서 구골 시제품을 만든 것에 불과했다.
성능도 그다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그저 아이디어 자체는 잘 동작한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리고 세쿼아 캐피탈 담당자에게 그걸 보여줬을 뿐이다.
다만 이해하기 힘든 점이 한 가지가 있었다.
구골 관련 내부 정보를 흘린 사람이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이란 점이다.
‘외부 투자를 받을 생각인가?’
이게 사실 그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만나본 최민혁 실장은 결코 자기 것을 남에게 내놓을 스타일이 아니었다.
만약 자금이 부족하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돈이 부족하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는 때문에 세퀴어 캐피탈 담당자 두 사람의 이야기를 무시하지 않았다.
“두 분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
“아니, 이건 우리 쪽에서 진지하게 다가가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마이클 이사님의 안목을 믿으니까요. 그분은 탁월한 혜안을 가지고 있고, 성공적인 비즈니스모델, 사업 환경에 대한 통찰력도 대단한 분입니다. 그런 분이 승인했으니, 당연히 나머지 일은 소소한 것에 불과합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쪽에서 들고 있는 지분은 고작 1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지분은 최민혁 실장님이 들고 있습니다.”
“압니다. 그래도 두 분이 구골 경영부터 모든 것을 관리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두 분의 의견이라면 최민혁 실장님도 무시하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최민혁 실장 공략 전에 실무진을 우선 구워삶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라면 5,000만 달러 투자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
래리 페이지는 상대의 극단적인 반응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는 솔직히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너무 성급하게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후회하다가도 구골 검색엔진 특허의 실소유주가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을 다시 떠올렸다.
아무리 봐도 자기 아이디어와 너무 비슷해서 간혹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하니까.
그런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꼭 자금 때문이 아니더라도 세쿼아 캐피탈의 투자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세쿼아 캐피탈이 가지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인맥 때문이다.
나스닥 상장 전 단계에 가기 전까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특히 탁월한 인재를 끌어오는 것 말이다.
세쿼아 캐피탈이 가지는 영향력은 벨린 투자를 압도했다.
그것은 세쿼아 캐피탈이 실리콘 밸리에 둥지를 튼 채 꽤 오랫동안 명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벨린 투자가 투자해서 성공한 실리콘밸리 기업보다는 세쿼아 캐피탈 쪽이 더 월등했다.
“…저야 뭐 세쿼아 캐피탈이 얼마나 대단한 회사인지 압니다. 그러니 그쪽의 투자를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거면 됩니다!”
두 사람은 쾌재를 불렀다. 일단 장벽 하나는 넘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최민혁 실장이 이번 일을 반대할 것 같지는 않았다.
* * *
최민혁은 호텔에서 나와 텍사스 공장 시공식으로 이동하기 위해 대기 중인 차량을 향해서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최근 세쿼아 캐피탈을 비롯한 실리콘 밸린 투자가가 구골에 집적거린다는 보고를 받았다.
모건 스탠리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기민한 반응이었다.
‘생각보다는 반응이 빨라. 역시 야후의 나스닥 상장 때문일까.’
나스닥은 최근 야후 상장을 앞두고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