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32화 (632/1,021)

#632.

송도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조건 만남 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민혁 실장의 자산이 이미 조 단위를 넘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미경은 패배를 인정했다. 그녀가 아무리 송도연이 못마땅해도 최민혁 실장의 명성을 모르지는 않았다. 혁신의 아이콘인 최민혁 실장의 명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오늘자 신문만 봐도 나오니까.

신문 일면을 장식한 기사 내용은 바로 최민혁 실장에 대한 이야기다.

[최민혁 실장, 차세대 배터리 시장에도 손을 뻗치나!]

일면 전체가 차세대 배터리 시장과 최민혁 실장의 연결 고리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히 뒤늦게 발을 담근 오성 전자가 이 배터리 시장의 주인공인 미래 기술 지분 인수와 같이 엮였다.

이 말대로라면 최민혁 실장은 차세대 배터리 때문에 정신이 없어야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송도연이란 연습생 때문에 여고를 방문한 것이었다.

송도연은 최민혁 실장의 방문으로 다소 흥분해 있었다.

그녀도 이제는 당당할 수 있었다.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침울한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최민혁이 자신을 위해서 준비해 둔 음원 네 곡을 흥얼거렸다. 그리고 음정을 하나씩 다시 살피면서 반복하기 시작했다.

전부 다 최민혁 실장이 간간이 올 때마다 한 조언에 따른 행동이다.

실제로 그녀는 그 말에 따라 지금까지 이 음원을 완벽하게 외울 정도로 연습했다.

그 어떤 무대에서도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이제는 세상 그 무엇도 무섭지 않았다.

자신의 등 뒤에는 최민혁 실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일에는 나쁜 일도 따르게 마련.

송도연은 시기심에 사로잡힌 친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도대체 왜 그래?”

특히 이미경이 배가 아주 아파서 송도연을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아무리 그래 봐야 KM 전자는 기획사가 아니잖아.”

“하, 도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해?”

“난 널 걱정해서 하는 소리야. 물론 최민혁 실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야. 다만 최민혁 실장이 널 이용할 수도 있잖아.”

송도연은 화가 나서 버럭 소리쳤다.

“나, 곧 미국 가!”

“……?!”

송도연 반 학생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상상도 못 할 반전이었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서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송도연 자신이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나도 자세한 것은 몰라. 그냥 미국에서 데뷔한다는 소리만 들었어.”

이미경이 발끈했다.

“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넌 앨범 낸 적도 없는 초짜 연습생이잖아. 그런데 무슨 미국을 가냐? 말이 좀 되는 소리를 해!”

이미경의 말은 일리가 있다. 초짜 연습생을 미국에 보내서 데뷔시키는 기획사는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경험이 필요했다.

송도연도 그걸 잘 알았다.

“…나도 알아. 그런데 민혁 오빠가 날 기업 홍보 무대에 쓴다고 했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미경은 한껏 비웃어 주었다.

다만 상식이 있는 친구는 좀 달랐다. 그들은 송도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앨범 편곡도 이미 다 끝난 거야?”

“어. 사실 몇 달 전부터 계속 그 편곡만 연습했어.”

“아니, 그러면 더 말이 안 되잖아. 국내 방송국에 먼저 출연해야 하는 것 아냐?”

송도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가 정말 알고 싶은 부분이었다. 그런데 최민혁은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는 송도연이 괜한 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를 원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실제로 송도연은 무대에 대해서 자세히 몰라서 심적 압박을 적게 받았다.

그러니 제삼자인 송도연의 반 학생들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더욱이 이 일은 보안 때문에 외부에 알릴 수도 없었다.

최민혁이 송도연이 쓸데없는 부분을 알아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조치한 것이다.

이미경이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너, 사기당한 거야!”

“…….”

송도연은 기가 막혀서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도 가끔은 이게 사기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분명 자신을 위해서 적지 않은 투자를 했다.

그리고 자신을 착취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가 봐도 최민혁 실장의 행보는 이상했다.

최민혁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그가 너무 자신에게 잘해주기 때문이다.

‘도대체 최 실장님은 나에게 뭘 원하는 것일까?’

* * *

송도연은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 이런저런 일로 심란했다.

그녀가 최민혁을 믿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경험이 없어서인지 앞일을 확신하지 못했다.

다행히 미국 여행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비자도 마련해 뒀다.

다만 그녀도 최민혁이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서 답답했다.

하지만 그런 것도 뉴욕 공항에 도착한 후에 향한 곳을 보고는 전부 다 사라져 버렸다.

송도연은 입을 딱 벌린 채 멍하니 초고층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

다름 아닌 뉴욕 맨허턴 트럼프 타워 68층 꼭대기에 있는 초고가 아파트였다.

루이 14세풍으로 꾸며진 터라 다른 아파트와는 비교조차 하기 힘든 곳이었다.

최민혁은 송도연의 표정을 보면서 설명해 주었다.

“남쪽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북쪽은 센트럴파크가 한눈에 보여. 전망이 끝내주지!”

가격이 무려 1,500만 달러에 달하는 이 초호화 빌딩은 일반적인 아파트와는 실내 장식 자체가 많이 달랐다.

정장을 차려입은 우영민 부장은 막 도착한 최민혁 일행을 안내해 주었다.

최민혁도 송도연을 의식해서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살짝 놀랐다. 그도 우영민이 최근 벨린 투자가 보유한 주식으로 단타를 쳐서 무려 3,000억 가까이 벌었다는 것을 들었다.

에플, 퀄컴, ARN 종목이 조정장을 거칠 때는 매입하고, 다시 오를 때는 되파는 수법으로 계속 수익을 올린 것이었다.

지금까지 몇 개월에 걸쳐서 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3,000억은 무시할 만한 수익은 아니었다.

단적인 예로 에플 주가가 폭등하면서 그 이익 폭이 꽤나 컸다.

그리고 그 수익금 일부로 매입한 초호화 아파트를 구입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민혁은 딱히 우영민 부장을 타박하지 않았다.

“…이익금으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가격이 좀 과한 것 같네요.”

“하지만 최 실장님이 권해준 아파트 라인에는 들어갔습니다만.”

“아, 그거야 그렇지만.”

지금 이 시기에 이 정도 아파트는 괜찮은 투자 대상이었다.

우영민 부장이 구입한 부동산은 뉴욕 내에 꽤 많았다.

특히 대리석을 사용해서 희소가치가 높은 아파트라면 말이다.

센트럴파크와 가까워서 운동하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아무리 재벌 3세라고 해도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아파트는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이 이 정도였으니.

송도연은 아파트 내부를 구경하면서 입을 딱 벌린 채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녀도 미국에 가기 전만 해도 그냥 호텔에 묵는다고 생각했다.

설마하니 이런 초호화 아파트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방 하나가 그녀가 사는 집보다 더 넓고 화려했다.

아방궁 같은 침실에는 차마 들어가지도 못했다.

최민혁은 놀란 송도연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당분간은 여기서 묵을 거야.”

“…그러면 공연은 뉴욕에서 한다는 말인가요?”

“아니, 라스베이거스 전시회에서 할 거야. 뭐, 그 전에 공연 연습을 좀 해야 할 거고. 이곳은 잠깐 들른 거야. 도연이도 이제까지 고생했는데, 보상을 받아야지.”

“아, 네.”

송도연은 그제야 뉴욕 여행이 보너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집안 곳곳을 장식한 휘황찬란한 인테리어 때문에 손조차 쉽게 뻗을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상기된 송도연의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동행한 조성돈 팀장에게 말했다.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에게 연락을 해보세요.”

“…알겠습니다.”

* * *

송도연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그저 꿈만 같았다. 결국, 흥분을 참을 수가 없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이메일을 통해서 친구에게 보냈다.

그녀가 찍은 사진은 이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이미경도 한국에서 이 사진을 봤다.

“마, 말도 안 돼!”

당연했다.

화장실 내부를 장식한 자재만 해도 수천만 원을 호가했다.

황금 장식이 가득한 아파트 내부는 상상 초월 그 자체였다.

특히 송도연은 아파트를 나와서 센트럴파크를 돌아다니면서 사진도 찍었다.

그녀는 셀카를 찍으면서 상기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센트럴파크 주변 전망은 딱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영화 스태프가 센트럴파크에서 촬영도 하고 있었다.

송도연은 셀카를 찍으면서 그 전망도 담았다.

이미경은 질투심 때문에 길길이 날뛰었지만 도저히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야, 이거 말이 되냐?!”

하지만 다른 친구 몇몇은 이미 최민혁 실장에 관한 조사를 했다.

“최민혁 실장이 오너로 있는 벨린 투자에서 최근 부동산을 대거 매입했다고 뉴스 떴어.”

여고생이 부동산 투자에 대해서 알 리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을 만나고 난 후에 조사를 하다가 자연히 부동산 투자 소식을 안 것이었다.

단순히 뉴욕에만 그치는 부동산 매입이 아니었다. 미국 전역이 다 해당이 된다. 뉴욕, 캘리포니아를 비롯해서 말이다.

이 부분은 뉴스에서도 소개되었다.

워낙에 투자 규모가 커서 해외 토픽으로 조명을 받은 것이었다.

“와, 끝내준다. 도대체 도연이는 최민혁 실장하고 무슨 관계이기에 이렇게까지 해주는 걸까?”

이미경이 바로 소리쳤다.

“내가 말했잖아. 몸 로비라고!”

“야, 그만 좀 해. 이렇게 대놓고 하는 몸 로비가 어디 있어?”

“여기 있잖아!”

서로 갈등이 좀 있었다.

그녀들로서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미경은 질투심에 미칠 것만 같았다. 이대로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결국 언론사에 이 사진을 보내 버렸다.

* * *

한영 일보에서 최민혁 실장을 다루는 기자는 딱 정해져 있다.

다름 아닌 범용구 기자다. 그는 이미 최민혁 실장이 KM 전자 기획실장으로 들어갈 때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이다.

그는 때문에 제보로 온 이메일을 확인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조건 만남이라니.”

최광수 기자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내가 만나서 이야기해 보니, 아무래도 친구인 송도연이 잘나가서 배가 아픈가 봐. 그러니 본인이 이성적으로 아닌 걸 알아도 그냥 지르고 본 거야.”

“하, 요즘 애들 진짜 무섭네요.”

범용구 기자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제보는 한영 일보에게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고민을 한 끝에 이번 일은 먼저 최민혁 실장에게 알려서 확인부터 받기로 했다.

KM 전자 홍보 팀에 연락하니, 미국에 있다고 해서 국제전화를 걸었다.

최민혁은 역시 예상한 반응을 보였다.

[하, 걔는 진짜 꼴통이네. 알아듣게 이야기해 줬는데, 결국 언론사에 알리다니.]

[아는 애입니까?]

그러자 서울 프로덕션에 소속된 연습생 이미경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이어졌다.

최민혁은 만약을 대비해서 기획 팀을 통해서 사전에 정보를 얻어 두었다.

송도연에게 무리수를 둘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정 궁금하면 그쪽에서 따로 조사를 해보세요. 애 성격이 한 까칠 하더라고요. 질투심도 만만치 않아요.]

범용구 기자는 사전에 확인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가 굳이 뉴욕에 가 있는 최민혁 실장에게 연락한 것은 이미경 때문만이 아니었다.

[가만, 미국에는 왜 갔는지 알 수가 없을까요?]

[업무 때문이죠.]

[요즘 차세대 배터리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것 때문입니까?]

[뭐, 비슷합니다.]

[…혹시 제가 알면 안 되는 겁니까?]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아직은 말할 내용이 아닙니다. 추후 결정이 나면 알려 드리죠.]

[…알겠습니다.]

범용구 기자는 이 일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 실장이 굳이 비밀로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무리하게 미국 출장을 가는 무리한 방법은 쓰지 않았다.

‘이미경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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