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33화 (633/1,021)

#633.

비록 나사 빠진 친구 같지만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느낀 것이었다.

‘가만, 이 일을 최문경 부회장은 알고 있는 것일까? 호, 잘하면 괜찮은 기사가 나올지 모르겠어.’

그는 고민한 끝에 KM 그룹 비서실에 전화를 걸어서 인터뷰 핑계로 간단한 질문을 통해서 최민혁 실장이 미국에 가 있다는 정보를 넌지시 흘렸다.

‘뭐, 최 실장님이 이것으로 꼬투리 잡지는 않겠지.’

사실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이라면 이 사실을 언제 알아도 알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어 벌어져야 특종도 챙길 수 있다.

최민혁 실장이 그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추후 문제가 되면, 난 그냥 질문만 했다고 하면 되니까.’

* * *

최문경 부회장은 최근 최민혁 실장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그가 하는 고민은 단순히 KM 전자의 실적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KM 그룹과 관련된 부분 때문이다.

이미 이런저런 많은 일이 있었지만, 특히 차세대 배터리 부분은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었다.

다른 계열사와는 달리 당장 수익 창출이 가능할 뿐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 정부가 직접 투자할 정도로 미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더욱이 KM 그룹은 지금 현금이 넘쳐난다. 이건 조카 최민혁과의 갈등 문제로만 여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모른 척 와이프 김이경까지 슬쩍 동원했다. 자존심까지 버렸다. 최용욱 회장을 잘만 이용한다면 한 다리 걸칠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민혁 이 새끼, 간은 좁쌀만 하다니까.’

두 사람의 관계야 어쨌든 김이경은 최민혁에게 큰어머니다. 도의적으로 약간은 도와줄 수도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최민혁의 입장 따위는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차에 들려온 오성 전자의 갑작스러운 행보.

그들이 먼저 미래 기술 지분 5%를 꿀꺽한 것이었다.

다만 그것이 배종구 사장의 지분이었으니.

“죄송합니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지금 자네에게 그런 말을 듣자고 한 것이 아니잖아. 이런 일을 어째서 언론사 기사를 통해서 알아야 해?”

“오성 전자가 그렇게 비밀리에 일을 진행할지는 몰랐습니다.”

“아니, 그러면 우리 비서실은 대놓고라도 일을 진행하긴 한 거야?”

“권태성 실장이 직접 움직인 덕분에 대응하기가 좀 늦었습니다. 이번 일은 백지 수표까지 내밀면서 밀어붙인 일입니다.”

오성 전자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다. 때문에 보통 의사 결정이 느리다. 그런데 이번 일은 권태성 실장이 주도해서 마치 중소기업처럼 빠르게 의사 결정을 진행했다.

KM 그룹조차 이런 식으로는 하지 않았으니.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권태성 실장의 행보와는 너무 많이 달랐다.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그래서 권 실장 능력이 좋다고?”

“제가 들은 바로 오성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도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5% 지분 인수에 무려 500억을 투자한 것은 과했습니다.”

“그래서?”

“네?”

“그래서 안 회장이 권 실장을 징계라도 한 거야?”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안건민 회장은 놀랍게도 권태성 실장을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덕분에 이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미래 기술 지분 인수는 오성 그룹 내에서도 말만 무성할 뿐이다.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결국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다 좋아, 아니, 우리 KM 그룹이 오성 전자의 권태성 기획실장보다 행보가 느리다니,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권재홍 비서실장은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설마 권 실장이 배종구 사장에게 손을 쓸 줄은 몰랐습니다. 더욱이 그쪽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은 이유는 모든 실권을 쥔 사람이 최민혁 실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배종구 사장의 지분 매각을 허락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흠칫했다. 권재홍 비서실장 이야기는 틀리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하고, 집착이 심한 조카 최민혁이 자기 밥상에 오성 전자가 숟가락을 올리는 것을 허락할 리가 없다.

“참 답답하네. 아니, 그걸 생각만 하면 어떻게 해? 일단 직접 가서 확인을 해야 할 것 아냐?!”

“…….”

권재홍 비서실장은 차마 얼굴을 들지 못했다. 솔직히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의 행보라면 배종구 사장 지분에도 족쇄를 걸어놓았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지분을 달랑 오성 전자에 팔아치우다니.

최문경 부회장은 이 상황이 짜증스럽기만 했다. 그가 예상한 방향과는 전혀 다르게 일이 진행되어서였다.

“우리 최 회장님은 뭐래?”

“최 실장님과 직접 만나려는 것 같습니다.”

“그래?”

“다만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알기 어렵습니다. 최 실장님이 자기 지분을 호락호락하게 넘기지 않을 테니까요.”

“그놈이라면 더하겠지. 가만 미래 기술 5% 지분 가치가 500억이라고 했지?”

“네. 지금 봐서는 배 사장이 그냥 부른 것 같은데, 권 실장이 그 제안을 받은 것 같습니다. 최 실장이 또 중간에 끼어들면 문제가 복잡하기 때문일 겁니다.”

“미래 기술 매출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40억이라고 하지 않았어?”

“네.”

사실 지금도 미래 기술 매출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이 회사의 5% 지분 가치가 무려 500억이나 되었던 것이었다.

실로 황당한 일이었다.

누가 봐도 사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 지분을 사들인 회사가 오성 전자란 점이다.

즉 오성 전자이었기에 무려 500억 주고 매입한 것이었다.

그것도 시작이었으니.

다음 지분 거래는 500억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최문경 부회장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문제는 다음 거래입니다. 전과 같은 금액으로는 거래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뭐 1,000억이라도 부른대?”

“그게 알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미 KMB-01 시제품이 나왔다. 그 성능도 나왔다.

과도한 핸드폰 업체 사이의 경쟁 때문에 핸드폰 업체 매출이 줄었다.

만약 이 시기를 넘겨서 그들이 이 새로운 배터리를 적용한다면 판매 수량이 급증할 것이다.

오성 전자가 이 배터리를 쓴 이상 자신들도 이 배터리를 사용해야만 했던 것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화가 났다.

“잠깐만. 그러면 장 실장이 이미 민혁 그놈을 만났다는 이야기야?”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설마 이대로 두고만 볼 거야? 뭔가 하긴 해야 할 것 아냐!”

길길이 날뛰는 최문경 부회장 모습에 권재홍 비서실장이 슬쩍 내놓은 것은 다름 아닌 범용구 기자가 흘린 송도연 사진과 관련된 기사였다.

송도연의 셀카와 더블어서 같이 찍힌 사람은 다름 아닌 최민혁이었다.

“아니, 설마 민혁 이 새끼가 미쳤어?”

권재홍 비서실장이 최문경 부회장이 오해한 것 같아서 냉큼 끼어들었다.

“스캔들은 아닙니다. 투자 때문에 이 아파트를 사들였는데, 마침 송도연이란 이 친구가 같이 끼어서 그런 것뿐입니다.”

“송도연? 뭐 하는 친구지?”

“가수입니다. 정확히는 연습생입니다.”

“가수, 연습생?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최민혁 실장이 미국에 갔을 수도 있다. 이제는 뉴스거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가수와 동행했다는 이야기가 황당했다.

사실 언론사도 어지간한 재벌 3세가 주인공이었다면, 의도적으로 ‘스캔들’이라고 난리 블루스를 쳤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도 KM 전자의 위용을 알기 때문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

“KM 전자에서 자체적으로 키우는 연습생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부분은 아직 파고 있는데, 내막까지 밝히지는 못했습니다.”

“연습생…….”

최문경 부회장은 어이가 없어서 권재홍 비서실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기사를 확인했다. 아파트 가격에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1,500만 달러라.”

큰돈은 맞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에게 1,500만 달러가 큰돈이냐고 한다면 그렇지 않았다.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지분이나 현금을 배제하고라도 말이다.

당장 미래 기술 지분 가치만 해도 무려 8천억이 넘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이상이지. 오성 전자에 5% 지분을 넘긴 가격이 기준이 될 테니까.’

최문경 부회장은 화도 나고, 짜증을 쉽게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일만큼은 개인 감정을 억눌렀다.

그는 권재홍 비서실장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지금 상황이 과거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 생각을 달리 먹었다.

“권 실장.”

“네?”

“차세대 배터리에서 갑자기 연습생이라니. 앞뒤가 안 맞잖아. 그런데 두 가지 공통점이 있어. 바로 MP3 플레이어야.”

권재홍 비서실장도 아차 싶었다.

“혹시 에플하고 관련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미국 변수를 넣으면 당연히 에플이 나오겠지. 그러면 이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어. 일단 국내 쪽에서 한 번 파봐. 분명히 뭔가 있어. 필요하다면 기획사 쪽에 도움을 구해 봐. 일테면, 벼랑 끝에 몰린 기획사면 좋겠지.”

“…알겠습니다.”

“이번 일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해. 만약 일이 잘만 되면 그것을 이용해서 미래 기술 지분을 쉽게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네.”

권재홍 비서실장도 순순히 최문경 부회장의 말에 수긍했다.

* * *

KM 그룹 비서실이 움직이자 이는 자연스럽게 장승일 실장의 귀에도 들어갔다.

장승일 실장은 곧 비서실이 왜 움직이는지 알게 되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국에 가 있는 조성돈 기획팀장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최민혁 실장은 조성돈 팀장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언론사에도 충분히 사실을 소명한 터라 송도연 스캔들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성돈 팀장 생각은 달랐다.

“일단 일을 터뜨려 버려서 향후 이슈가 된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앞으로의 상황을 생각하면 큰 문제는 안 될 겁니다.”

최민혁의 확신은 단순한 추론이 아니었다.

에플의 차세대 제품 데뷔 이후에는 그 사건에 모든 관심이 갈 테니까.

자신과 송도연 관계는 제대로 주목조차 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신중했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의 집착을 너무 잘 알았다. 그가 이번 일을 쉽게 포기할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미래 기술 지분을 한창 노리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최대한 이용할 겁니다.”

“뭐, 심각한 문제가 아니지만…….”

최민혁은 곰곰이 고민했다. 조성돈 팀장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생각은 방향이 좀 달랐다. 애초에 송도연을 이용하려 한 것은 MP3 산업에 시선을 끌기 위함이었다.

MP3 플레이어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판 자체를 키우는 것은 어떨까?’

미국 시장은 에플에서 손을 쓸 것이다.

그런데 한국 시장은 좀 달랐다.

이번 일을 잘만 꾸미면 굳이 홍보나 마케팅을 할 필요도 없어진다.

그는 결국 생각을 바꾸었다.

“차라리 최 부회장을 이용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네?”

“어차피 이전에 이미 된통 당한 적이 많아서 보복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보복하게 내버려 두는 것도 한 방법이죠. 우리는 그걸 최대한 이용하면 됩니다.”

“……?”

조성돈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민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대중의 무관심보다는 차라리 악플이 낫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최 실장님 이미지에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건 크게 문제가 안 될 거예요. 스티븐이 지금 하는 일 때문이죠. 이번 CES 기조연설을 통해서 에플의 상황이 알려지면, 제 스캔들 따위는 묻혀 버릴 겁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서 불을 붙이는 거죠.”

“서, 설마 송도연과의 스캔들을 더 키워서 사태를 더 악화시킬 생각입니까?”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지금 이 시점에서 확신할 수는 없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까. 더욱이 미국에 있는 제가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마케팅 팀이라면 좀 다르죠.”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메드 드로닉 사태를 주도한 마케팅 팀의 한 사람을 떠올렸다.

“최준형 과장 말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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