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1.
송도연은 깜짝 놀랐다. 최민혁 실장이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편으로 가슴이 찡했다.
최민혁은 물론 송도연의 반응에 꽤 만족했다. 그는 새삼 송도연이 고2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주 신경을 써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는 문득 자신이 재벌 3세 흉내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슬쩍 스포츠카 차체를 한 번 쓰다듬어서 시선을 끌었다.
‘자, 그러면 재벌 3세 코스프레 한번 해볼까? 아, 내가 재벌 3세였지. 흠.’
* * *
페라리 F50은 F40을 대체하기 위해서 나온 차라는 비평이 있다.
하지만 F50은 이전 페라리와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눈길에서도 타이어가 돌지 않게 되어 있는 장치.
미끄러운 노면에서도 타이어가 잠기지 않게 된 장치.
심지어 탄소 섬유 일체화 방식을 사용한 고성능 자동차다.
게다가 5리터 V12 엔진은 운전자에게 강력한 쾌감을 준다.
차량 자체가 탄소 섬유로 만들어진 만큼 심혈을 기울인 차량이다.
이 놀라운 차량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이었다. 그는 재벌 3세 포즈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굳이 연기는 필요 없다. 자신이 곧 재벌 3세였으니, 평소대로 행동하면 된다. 그림 자체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F50 차체에 슬쩍 기대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니까.
물론 김명준 과장을 비롯한 경호 팀의 위치도 미리 선정해 두었다.
다만 김명준 과장은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드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는 송도연을 보자 평소와는 달리 좀 과장스럽게 말했다.
“도연아, 잘 지냈어?”
“아, 네, 네!”
송도연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최민혁 실장의 슈트를 지나서 슈퍼 카 자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페라리 F50은 흔히 말하는 007 영화에 나오는 초고급 스포츠카였다.
“멋지지?”
“…아, 네!”
그녀가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슈퍼 카 구경에 정신이 없는 다른 고딩들의 모습이 그 증거였다.
그녀들은 목이 쉬도록 꺅꺅 소리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최민혁은 보는 구경꾼들을 위해서 좀 큰 소리로 차량을 선전했다.
“출시 가격이 무려 56만 달러야. 하지만 돈값을 하는 놈이야.”
“…실장님은 돈이 많아서 이런 차량을 타도 상관이 없기는 하지만.”
하지만 그는 곧 반박했다.
“무슨 소리. 이거 법인 차량이야. 원래 임직원들이 복지로 주로 사용해.”
초호화 요트와 비슷하게 적용된 것이 바로 이 F50 페라리였다.
사내 조사로는 F50 페라리에 대한 낭만이 꽤 있었다.
그들을 만족하게 해 주기 위해서 이 슈퍼 카를 사들인 것이었다.
결과는 최고였다.
KM 전자 임직원은 다들 서로 F50 페라리를 예약하기 위해서 난리였다.
물론 일에 대한 집중력이 커진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상위 고과 1명에게는 이 F50 페라리 한 대가 대여되기 때문이다.
기름값이나 보험은 회사에서 다 내주는 셈이다.
그야말로 남자로서는 최고의 로망이었다.
송도연은 최민혁의 말에 진짜 매우 놀랐다.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네? 저, 정말 직원 복지로 이 고급 승용차를 구입한 거예요?”
하지만 최민혁은 구경하는 이들이 다 들으란 듯이 크게 말했다.
“어, 우리 직원이 고생 많이 하잖아. 그래서 그들을 위한 보상으로 차량을 샀어. 지금까지 구입한 차량은 모두 20대지.”
지금 환율 700원 기준으로 보면, F50은 대략 4억이 좀 넘는 금액이었다.
20대라면 모두 8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KM 전자 처지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KM 전자 순이익이 급증한 덕분에 법인세가 너무 많이 나왔다.
법인세를 절감하기 위해서는 일정 금액을 쓸 필요가 있었다.
“하, 하지만 이런 슈퍼 카도 법인세 절감에 효과가 있을까요?”
“당연하지. 우리 회사에서 진행하는 차량용 배터리 개발 용도로 이 차량을 사용할 것이니까. 분명히 업무용은 맞잖아?”
‘말도 안 돼요!’란 말이 혀끝에서 맴돌았지만 차마 내뱉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민혁이 하는 말은 진심이었다.
이 차량은 개발용이기는 하지만 임직원이라면 예약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최민혁은 자신의 말 때문에 경악에 빠진 고등학생의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KM 전자 직원이 되면 이 꿈의 슈퍼 카를 몰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KM 전자 임직원 복지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호화 요트를 비롯해 생각보다는 다양했다.
그걸 일부만 고등학생에게 알린 것뿐이다.
KM 전자가 이런 회사다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송도연에 대한 주변의 시선 역시 당연히 바뀌었다.
그녀가 KM 전자 소속이라는 것이 최민혁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물론 계속 고등학생들에게 홍보만 하지 않았다.
그는 송도연을 향한 주변의 태도에서 자기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송도연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부러움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다행이네. 사실 할 말이 좀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어. 별다른 문제는 없지?”
“아, 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그게 좀…….”
송도연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 나름의 애로가 있기는 하지만 최민혁에게 차마 말하지는 못했다. 자기 동생의 백혈병 치료 외에 뭔가를 더 요구하기에는 염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나름 자신을 위해서 많은 것을 준비해 두었다.
음악 연습실도 있고, 보컬트레이너도 있었다. 심지어 연주를 도와줄 밴드도 있었다. 비록 계약에 의한 임시직이지만 말이다.
다만 그녀는 자신이 하는 준비가 과연 성공할지를 확신하지 못했다.
KM 전자는 전문적인 기획사와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난 도연이를 계속 돌볼 수는 없어. 일단 앨범 판매 이후에는 다른 기획사 쪽에 도움을 청할 거야.”
“그게 좀…….”
송도연은 힐끗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봤다. 꼭 자신을 팔아먹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솔직히 정상적인 기획사라면 최민혁처럼 말할 수는 없었다.
가수를 키워서 그냥 내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일단 한 가지 말하자면 도연이 데뷔는 무조건 성공할 거야. 그럼 아마 몸값이 어마어마해질 거야. 그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내 방법은 조금 이상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난 연예 기획사 사장이 아니니까.”
“하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요?”
“실력만 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하지만 전 아직 데뷔앨범도 내지 못한 신인 가수잖아요?”
“물론이지. 하지만 지금 우리 상황이 모호한 경우라서 어쩔 수가 없어. 방송국 데뷔 같은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야. 그리고 데뷔 날짜가 이제 다 정해졌으니까.”
“네?!”
송도연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아직 데뷔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최민혁 자신이 계획한 일은 자기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에플 쪽과도 같이 서로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일정은 이미 몇 달 전부터 말이 나왔지만 계속 뒤로 연기되었다.
그는 송도연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자신이 조사한 바로는 송도연을 괴롭히는 패거리가 있을 텐데 지금은 근처에 보이지 않았다.
‘아, 저기 왔네.’
* * *
때마침 나타난 이들은 바로 이미경 패거리였다.
그녀는 페라리 F50을 보고는 충격에 빠져서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다만 다른 지인을 통해서 조금 전의 상황을 듣자 질투심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쪼르르 송도연에게 달려가서 그녀를 비웃었다.
“야, 너 설마 조건 만남 하는 거야?!”
최민혁은 송도연이 발끈하려는 동작을 막았다. 그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경에게 자기 명함을 내밀었다.
“조건 만남이라니. 어이가 없네. 난 이런 사람이야. 도연이는 우리 회사 소속이고.”
“……?!!”
이미경은 최민혁 실장을 상대로 비웃으려고 하다가 명함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제야 최민혁의 얼굴을 보고는 아차 싶었다. 바로 KM 전자의 기획실장이었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
최근 뉴스만 틀었다 하면, 시사 뉴스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이었다.
굵직굵직한 IT 관련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IP 시티폰 사업과 관련해서는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천억을 벌어들였으니, 이걸 또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기는 힘들었다.
최민혁은 경악한 이미경과 그 패거리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근거도 없이 괜한 루머를 퍼뜨리면 큰일 나. 도연은 우리 회사에서 따로 관리하는 연습생이니까. 괜한 오해는 하지 말고.”
“저, 정말이에요?”
“그럼. 도연이가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라서 내가 이렇게 마중 나온 거잖아.”
“마, 맙소사, 그, 그럼 도연이가 한 말이 전부 다 진실이었다는 말이야?”
“도연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거짓이나 과장을 말하지 않았을 거야. 물론 제대로 된 설명을 안 했을 수는 있어.”
최민혁의 말에 이미경은 충격에 빠져서 망연자실했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 하지만 KM 전자가 기획사까지 한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요?”
“아, 당연히 기획사를 운영할 생각은 없어. 도연이 경우는 예외적이야. 회사 보안과 관련이 있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말하기 좀 곤란하지만.”
이미경은 질투심에 사로잡혀서 계속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하, 하지만 말이 안 되잖아. 전문 기획사가 아닌데, 어떻게 연습생을 키운다는 말이에요?!”
최민혁은 이미경 때문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의혹을 풀어주기 위해서 하나씩 설명해 주었다.
“왜,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설마 돈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아니지만…….”
이미경은 그제야 KM 전자가 수천억의 현금을 보유한 화제의 기업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KM 전자 앞에서 돈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는 없었다.
최민혁은 차분하게 송도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괜한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효과는 있었다.
최민혁 실장 본인이 와서 하는 이야기이니까.
더욱이 그녀들의 시선이 간 곳은 다름 아닌 페라리 F50이다.
아직 시동이 걸려 있는 탓에 차량 가까이 가면 엔진의 미세한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강력한 진동은 굳이 차량에 탑승하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최민혁은 그 모습에 꽤 만족했다. 그들은 송도연을 이제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자, 이 정도면 충분한 해명을 한 것 같네. 도연이에게 괜한 소리 하지 말고, 서로 잘 지내. 이상한 루머를 퍼뜨리면 혼난다!”
그러고선 그는 송도연을 차에 태웠다.
V12 엔진의 진동이 고등학교 입구를 울렸다.
강력한 엔진 소음에 뒤늦게 선생들도 나왔다. 그들은 입을 딱 벌린 채 고개를 숙이는 송도연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V12 엔진 진동이 학교를 울리는 순간 차량은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최고급 승용차에 탄 송도연이 사라지는 모습을 본 이미경은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그녀는 질투심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쳇, KM 전자가 아무리 대단해도 전문 기획사가 아니잖아. 신경 쓸 것 없어!’
* * *
송도연은 최민혁 실장의 방문 이후에 학교 내에서도 뜨겁게 주목을 받았다.
그녀가 미래 기획사를 그만둔 이후의 행보가 드디어 밝혀졌기 때문이다.
다만 KM 전자가 연습생까지 키운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때문에 송도연은 학교에 가면서 탤런트 못지않은 주목을 받았다.
이미경은 물론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 너 정말 조건 만남 아니야?!”
“하, 어이가 없네. 민혁 오빠가 뭐가 아쉬워서 조건 만남 같은 걸 해. 오빠가 손만 내밀면, 달려올 여자가 수백 명이 넘어!”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