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
노래를 들은 에플 실무진은 혀를 내둘렀다.
아니, 에플 실무진의 요청을 받아서 이 자리에 참석한 모타운 레코드의 윌리엄 고디 실장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저, 정말 이 음원을 최민혁 실장이 사전에 준비해 둔 겁니까?”
스티븐은 모타운 레코드에서도 나름의 명성이 있는 윌리엄 고디 실장의 놀란 얼굴을 보면서 최민혁 실장이 한 제안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네.”
“…이건 놀랍군요.”
모타운 레코드 자체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주류였다.
때문에 ‘I'll be missing you’의 본질을 아주 잘 이해했다.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펑키한 이 음원은 대중의 관심을 끌 만했다.
그렇다고 마냥 노래가 가볍지도 않았다.
물론 윌리엄 고디 실장은 이 노래가 발매되기 전의 결과까지 예측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망하지는 않을 거야.’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음원을 부르는 가수다.
동양인 여자애가 이 음원을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차라리 저희 쪽과 다시 협상하죠. 이 음원이라면 하겠습니다.”
“…그건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스티븐은 혀를 찼다.
에플 실무진 역시 고압적이던 윌리엄 고디 실장의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에 혀를 내둘렀다.
음원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여태 대놓고 에플을 마구잡이로 깠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음원 하나 딱 보고 태도를 바꾼 것이었다.
그들은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이런 음원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윌리엄 고디 실장은 스티븐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절대 무리하지 않았다.
다시 음원을 살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해.’
스티븐은 그제야 안도하고는 에플 실무진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래. 괜찮기는 한데, 나야 음원에 대해서는 잘 몰라. 다른 사람들 생각은 어때?”
마케팅을 책임진 필 실러는 윌리엄 고디 실장 평가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윌리엄 고디는 이제까지 선택한 샘플 음원을 보고는 그들이 음악을 전혀 모른다고 조롱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음원에 대해서는 태도를 달리했다.
윌리엄 고디 실장이 슬쩍 끼어들었다.
“네, 이 정도라면 당신들 제안대로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곡입니다. 그런데 이 음원을 누가 만든 겁니까?”
스티븐이 피식 웃었다.
“최민혁 실장이 혼자 작사, 작곡, 편집까지 다 한 겁니다.”
“대단하군요. 저희 쪽에 한번 소개해 줄 수 있습니까?”
“소개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KM 전자의 기획실장입니다. 그쪽이랑 작업을 할 생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경영자란 말입니다. KM 전자 오너이자, 에플 대주주이기도 합니다.”
“가만, 혹시 에플 대주주인 최민혁 실장을 말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최민혁 실장의 명성은 에플 주가가 폭등한 후에 주목을 받았다.
처음에는 기업가들이 주로 알아봤고, 그다음에는 엔지니어들이었다.
특히 엔지니어들은 최민혁 실장을 숭배하기까지 했다.
윌리엄 고디 실장도 최민혁 실장의 명성을 모르지는 않았다.
다만 설마 음원을 작사, 작곡, 편집까지 할 능력이 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도 최민혁 실장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터라 완전히 인정하지는 않았다.
스티븐도 그 부분을 디테일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저도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전문 작곡가를 섭외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 자체는 무시하기 힘듭니다. 심지어 가수까지 미리 준비해 놓았다고 하니까요.”
바로 송도연의 프로필.
중간에 다시 끼어든 필 실러는 송도연의 경력을 확인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나이가 너무 어렸다. 다만 노래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는 차라리 미국인 가수를 섭외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의견을 내밀었다.
“윌리엄 고디 실장 의견도 일리가 있습니다. 솔직히 17살짜리 동양인 여자애의 가창력이 얼마나 의미가 있겠습니까?”
윌리엄 고디 실장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의견 일치를 봐서 좋습니다. 그쪽에서 도와준다면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스티븐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모타운 레코드 쪽 소속 가수도 MP3로 음원 출시하는 것을 터부시합니다. 협상이 아직 끝난 것도 아닙니다. 당신네 모타운은 벌써 몇 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건 이야기를 잘해보면 될 겁니다. 이런 음원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스티븐은 상대의 태도 변화에 오히려 반박했다.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최 실장은 아마 레코드사와의 협상 때문에 아예 가수를 따로 준비한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동양인 가수로 될까요?”
“그게 문제지만 음원 자체는 나쁘지 않잖아요.”
윌리엄 고디 실장은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는 스티븐의 우려를 무시하지 않았다.
‘하긴 내부적으로 검토는 해봐야겠어. 또 다른 소리 하는 인간도 있을지 모를 테니까. 하지만 정말 음원 자체는 괜찮네.’
* * *
스티븐은 윌리엄 고디 실장을 통해서 음원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했다. 그가 보기에는 최민혁 실장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만약 이 음원이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온다면 말이다.
‘모타운 측의 도움을 얻는다면, 음원 홍보는 문제가 없을 거야.’
최민혁이 미리 준비해 둔 음원 자체는 꽤 좋았다.
필 실러도 그 부분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번 전시회에는 에플이 심혈을 기울였다. 여기에 동양인 가수를 넣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는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스티븐은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무시하지 않았다.
“지금 봐서는 최민혁 실장 제안이 가장 현실적이야. 문제는 계약 문제지. 그 부분은 전시회 통해서 음원을 공개한 후에 다시 이야기해도 늦지 않아.”
“…스티븐은 이 송도연이란 친구가 뜰 거로 생각합니까?”
“그래, 난 최민혁 실장을 믿어. 그가 몇 개월 전부터 준비한 프로젝트야. 심지어 본인이 작사, 작곡, 편집까지 했잖아. 결과가 나쁠 거라 생각이 들지는 않아.”
필 실러도 윌리엄 고디의 반응이 나쁘지 않은 점을 떠올렸다. 그도 스티븐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아주 잘 알았다.
“하지만…….”
“전시회 프로젝트를 좀 바꾸어야 하지만 차라리 이게 나을 수도 있어. 어차피 다른 메이저 음반사에서도 계속 질질 끌고 있잖아. 그놈들이라면 뒤통수 치고 남아. 우릴 엿 먹이려는 행동이라고!”
“…알겠습니다.”
필 실러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확실히 메이저 음반사들의 태도가 좋지 않았다. 그들은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최대한 에플을 압박하려는 모양새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자신들이 준비한 음원으로 작업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송도연이라니, 생판 초짜 가수잖아. 그것도 한국인 가수라니. 결과가 어찌 될지는 모르겠네.’
* * *
최민혁은 에플 측에서 자신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연락을 받고 난 후에 송도연의 상황에 대해서 다시 확인했다.
그는 혹시라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런데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조성돈 팀장이 한 가지를 우려했다.
“아무래도 정상적인 기획사와 달라서 걱정이 많은 눈치입니다.”
“우리 회사가 사기라도 친다고 생각하나요?”
“아, 그게 아니라 KM 전자 소속이라고 하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도연이의 지인이 이런저런 문제를 걸고넘어지나 봅니다.”
“그게 자신감 상실로 이어졌다고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아무래도 감수성이 예민한 것 같습니다.”
최민혁은 그제야 송도연이 고2라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들 속에 있으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송도연이 미래 기획사에 있을 때와는 또 상황이 달랐다.
최민혁은 이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문제 해결책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사실을 보여주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죠. 회사 법인 차량 중에 최고급 차량을 준비해 두세요.”
“네?”
“도연이한테 자기 소속사가 어떤 곳인지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서요.”
“서, 설마 직접 도연이 고등학교에 찾아가실 생각입니까?”
“그게 좋지 않겠어요? 저도 꽤 명성이 있지 않습니까? 재벌 3세가 떡하니, 입구에서 기다린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어때요?”
“…그게 좀.”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 제안에 어이가 없어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이 방식을 강행했다.
“유치하기는 하지만 이게 가장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 * *
송도연은 최민혁 실장의 지시에 따라서 묵묵히 연습에 집중했다.
그녀는 솔로곡을 연습하는 것이 마냥 편치는 않았다.
자기 동생의 백혈병 치료가 된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미래 기획사에 있을 때는 그나마 아는 지인이 있어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런데 KM 전자 내에서는 자신이 아는 지인이 전혀 없었다.
KM 전자 기획사 임직원이 그녀를 보살펴 주기는 하지만 딱 그것뿐이다.
그들은 연습생들의 생리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더욱이 안 좋은 것은 또 있었다.
바로 고등학교 친구 반응이었다.
그중에 특히 시기심이 많은 이미경이 송도연을 괴롭혔다.
“야, 도연아, 너 노래는 포기한 거야?”
“아, 아냐.”
이미경 역시 서울 프로덕션 소속으로 한창 준비 중인 연습생이었다.
“미래 기획사를 나왔다면서?”
“어.”
“연습생 생활이 힘들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잖아. 끈기도 없이 그냥 그만두면, 이 생활 못 해. 그냥 차라리 접는 것이 훨씬 나아.”
대놓고 접으란 소리.
그런데 이미경과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도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송도연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학교 내에서 인기가 많은 것이 꼴 보기 싫었던 것이다.
그녀가 딱히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송도연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아니, 그게 다 민폐야. 잘 생각을 해봐. 기획사를 들락날락하는 게 정상이야? 너, 또 새로운 기획사 들어갔다가 곧 그만둘 거잖아.”
“아, 아냐.”
“가만, 너 이미 새로운 기획사에 다시 들어간 거야?”
“그게…….”
송도연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KM 전자를 기획사로 칭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KM 전자 기획 팀 소속으로 지금 일하는 중이었다.
지도해 주는 음악 선생과 같은 담당자가 있지만 전부 다 임시직이었다. 그들은 KM 전자 기획 팀과 계약해서 자신을 돌봐주고 있었다.
그녀도 처음에는 이 방식에 별다른 태클을 걸지 않았다.
자기 동생 백혈병 치료만 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과연 이대로 잘 풀려갈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그래서 자신의 소속을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는 수업이 끝나자 이미경이 무서워서 후다닥 교실을 나섰다.
“야, 송도연!”
“아, 미안, 나 연습이 있어서.”
송도연은 이미경이 부담스러워서 아예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녀도 최민혁 실장이 얼마나 잘 챙겨주는지 잘 안다. 그런데 그것과는 달리 자신의 가수 인생이 순조롭게 출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건 최민혁 실장이 신이 아닌 이상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나, 데뷔에 성공할 수 있을까?’
* * *
송도연은 평소처럼 학교 입구를 향해서 열심히 뛰었다.
그녀는 이미경 패거리와 마주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학교 입구 분위기가 좀 달랐다.
학교 입구에 자신을 기다리는 차량이 있었다.
최고급 외제 차량은 딱 봐도 억 소리가 절로 나오는 차량이었다.
수업을 마친 이들 수십 명이 모여서 꺅꺅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물론 KM 전자 법인 차량이었다. 알다시피 현금을 주체하지 못하는 회사가 KM 전자다. 그래서 법인 차량 중에도 최고급 승용차가 있다.
법인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매한 차량이라고 해야 할까.
오랜만에 최고급 정장을 입은 채 차량 앞에 기대고 있는 최민혁 실장.
딱 영화에 흔히 나오는 재벌 3세 주인공 같았다.
그녀도 처음에는 보컬 선생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 최, 최민혁 실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