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65화 (465/1,021)

#465.

이 학술 모임을 주도한 임기석 부장은 최민혁이 하는 이상한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이번 행사에 자신이 나선 것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강연장 분위기에 꽤 만족했다.

그는 관련 특허 기술을 소개하면서 기술 공개를 일부 약속했다.

[K투스는 단순히 우리 KM 전자에게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원하는 기업이 있다면 협상을 거쳐서 누구라도 사용 가능합니다.]

일방적으로 기술을 푼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협상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즉 기업에 따라 특허료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을 내포했다.

심지어 충격적인 사실도 있었다.

[향후 K투스에 합류한 기업은 얼마든지 새로운 연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자동차 산업 쪽에 필수적입니다. 기존의 블루투스 참여 기업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K투스와 관련된 모든 연구와 상업적인 이용에는 KM 전자의 허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명시했다.

당연히 발끈한 이도 있었다.

바로 HY 자동차다. 이 회사에서도 십여 명의 실무진이 나왔다.

[그게 로열티를 내야 한다는 이야기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최민혁 실장에게 이미 충분한 지시를 받은 임기석 부장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일반적인 로열티는 모든 업체에 예외 없이 특허료를 다 받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그와는 좀 다르게 적용됩니다. 영세 업체에 대해서는 특허료를 면제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러면 대기업은 무조건 특허료를 내야 한다는 말 아닙니까?!]

[아, 모든 대기업이 다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기준이 뭡니까? 설마 KM 전자 말을 잘 듣는 기업은 특허료를 안 내고, KM 전자에 대항하는 대기업은 특허료를 더블로 내야 한다는 소리입니까?]

[하하하, 그런 뜻이 아닙니다.]

임기석 부장이 나름의 설득을 해보았지만 한 번 나온 말을 다시 담을 수는 없었다.

다들 색안경을 끼고 임기석 부장을 쳐다보았다.

다만 대놓고 불만을 털어놓은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HY 자동차에서 나온 실무진 역시 뒤늦게야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들도 이 행사의 배후에 있는 최민혁 실장의 괴랄한 성격을 들은 것이다.

결국 협박은 통했다.

불만이 많은 에릭슨 같은 기업조차 입을 쿡 다물었기 때문이다.

결국 학술 대회는 히틀러의 전당 대회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당연히 학술 모임 분위기는 좋지가 않았다.

이게 공동 연구를 위한 모임인지, 아니면 KM 전자의 일방적인 발표회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불행한 사실은 블루투스 3.0에서 핵심만 추린 K투스 3.0를 무서워하지 않은 기업이 많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소수 몇몇을 제외한 그 어떤 기업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했다.

그러기에는 후환이 너무 무서웠다.

단순히 KM 전자가 문제가 아니라 최민혁 실장의 악명이 더 심각했다.

기업에 따라 협상을 거쳐야 하는데, 최민혁 실장이 삐치면 그 로열티가 얼마가 될지 몰랐던 것이다.

당장에 문제가 되는 기업은 주로 모바일 기기와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기업이다. 특히 빼놓을 수가 없는 곳은 컴퓨터 제조업체였다.

[이거 설마 KM 전자 주가 폭락 때문에 우리를 상대로 분풀이하는 거야?]

[그렇겠지. 안 그래도 KM 전자 주식 때문에 말들이 많았잖아. 다만 그 분풀이를 우리를 상대로 할 줄은 몰랐어.]

[하, 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

[그런데 들어보니, 이번 KM 전자 주식을 던진 이들 중에는 대기업 계열사가 대부분 포함되어 있어.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들도 이번에 KM 전자 공매도 대열에 합류했다고 봐야 해. 오죽하면 HY 자동차도 이번 회의에 참석했겠나?]

[가만, 그러면 결국 KM 전자의 주가 폭락도 이제 멈춘다는 소리네.]

[그렇겠지. 갑자기 뜬금없는 학술 대회를 연 것 자체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귓속말을 하는 이들 중에 그 누구도 자기 속내는 대놓고 말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들은 뒤늦게야 최민혁 실장이 자신들을 상대로 갑질 할 방법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조심해야겠어.’

* * *

학술 대회는 원래 교수, 대학원생이 참가자의 주가 되어서 다양한 연구 내용을 발표한다. 국내 학술 대회는 사실 대학원생의 소풍과 비슷한 분위기다.

그게 아니면 최신 연구 동향과 관련된 이슈를 내놓는 자리다.

하지만 이번 KM 전자가 진행한 학술 대회는 그런 성격과는 많이 달랐다.

일방적인 통보가 그 핵심이다.

KM 전자 뜻에 거슬리는 업체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대놓고 학술 대회에서 밝혔다.

다만 당근으로는 자신의 말을 잘 들으면, 최대한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

이 내용을 들은 권태성 비서실장은 학술 모임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자리를 비우지 못했다.

충격을 받은 임권수 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권 실장님.”

“아, 미안. 내가 정신이 좀 나갔어.”

“저도 황당합니다. 저놈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주장을 할 수가 있습니까? 아니, 세상에 근거리통신망이 지들 겁니까?!”

사실 근거리통신망 기술은 모든 전자 회사가 쓸데없는 비용을 절감하자는 측면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번 학술 모임은 이 기술을 KM 전자가 독식하겠다는 선전 포고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KM 전자 사단에 합류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했다.

문제는 이게 K투스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 말이 나오는 것이 바로 MP3 원천기술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면, 요즘 쉬쉬하는 IPS-LCD 특허료다.

권태성 비서실장은 특허 수수료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협상하겠다고 하잖아.”

“그게 그 말 아닙니까. 아니, 협상 과정에서 특허료는 자기 멋대로 정하겠다는 말과 뭐가 다릅니까?”

“아니면 알아서 개발하란 뜻이겠지.”

하지만 학술 모임 분위기를 봐서는 그럴 확률이 희박했다.

당장 에릭슨을 비롯한 몇몇 기업은 임기석 부장과 긴밀하게 상담을 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다른 기업은 아예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들은 KM 전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이번 일이 잘 해결될 것이라 봤다.

실제로 임기석 부장이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KM 전자에 반기를 들거나 딴생각을 하는 이들이다.

그들 중에는 오성 전자 역시 빠지지 않았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때문에 학술 대회가 진행되는 중에도 근심을 지우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김진석 이사가 소심한 성격 탓에 최민혁 실장을 자극하는 행동을 자제한다는 점이다.

‘그래도 걱정스러워.’

* * *

단상 뒤쪽에서 조용히 학술 모임 분위기를 살피던 최민혁 실장은 패닉에 빠진 권태성 기획실장을 비롯한 참여자들의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분위기 좋네요.”

조성돈 팀장은 히틀러를 떠올리게 하는 최민혁의 행동에 혀를 찼다. 다만 속마음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불만이 많은 이들이 있는데, 이번 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시기하는 이들은 뭘 해도 나옵니다. 그런 애들까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도 최민혁 실장의 단호한 태도에 결국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임기석 부장이 이번에 단단히 준비해서인지 결과가 나쁘지 않습니다.”

“임기석 부장은 능력이 있는 분이니까.”

실제로 K투스와 관련된 특허 처리는 임기석 부장이 전적으로 진행한 일이다.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일부 아이디어만 있는 특허 기술을 실제로 특허로 출원한 사람이 임기석 부장이었다.

조성돈 팀장은 다만 한 가지를 확인하고는 안도했다.

“다행히 주가 폭락이 멈추었습니다. 그래도 이전과는 달리 주가가 바로 반등하지는 않습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수급 때문일 겁니다. 아무리 종목이 좋아도 수급이 따라주지 않으면 반등은 어려울 겁니다. 지금 걸린 공매도 물량과 누적된 물량을 합치면 벌써 120만 주가 넘었다면서요?”

“네. 특히 샐로먼이 아주 작정을 했습니다. 연합 SB 창구가 아니라 다른 증권사 창구까지 이용해서 미친 듯이 팔아치우고 있습니다.”

“거래량은 어때요?”

“엄청납니다. 평소와 비교하면 무려 300%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처음에는 KM 전자 주가가 내려가서 좋다고 하던 이들이 이번 K투스 3.0 발표를 보자 사자 쪽으로 돌아서서 주식 거래량이 폭등했다.

K투스 3.0에 대한 발표가 나오면서 매수세와 매도세가 빅 매치를 이룬 것이었다.

최민혁은 뜨거운 학술 모임 분위기를 살피면서 피식 웃었다.

“자, 자, 우리 샐로먼 브라더스가 이번에 단단히 열 받은 것 같습니다. 단단히 준비를 해봅시다.”

“…알겠습니다.”

* * *

KM 전자 주가는 이전과는 달리 공중파 뉴스에 나올 정도였다.

단순히 주가가 폭등한 종목이기 때문이 아니다.

공매도 허용과 더불어서 타깃이 된 종목이기 때문이었다.

33만 원까지 올랐던 KM 전자 주가는 공매도 허용과 발표와 더불어서 27만원 대까지 쭉 폭락했다.

27만 원 선에서 지지대를 형성하던 주가도 매수세에는 뾰쪽한 수가 없었다.

결국 25만 원까지 추락했다.

이 가격대에서는 저가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다시 27만 원까지 반등했다.

하지만 100만 주를 넘어서 200만 주에 도달한 공매도가 문제였다.

진주만 폭격과 같은 폭격이 이어지면서 다들 공포에 잠겼다.

이 시기에 맞추어서 최민혁이 K투스 3.0을 발표한 것이었다.

기존의 K투스 2.0에 비해서 혁신적으로 빨라진 성능 때문에 큰 충격을 받은 이가 많았다.

뉴스가 이 내용을 보도했다.

[날개 없이 추락하던 KM 전자 주가가 다시 반등했습니다. 이번 K투스 3.0은 이전과는 달리 고속 데이터 전송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빼놓을 수가 없는 예가 바로 차량 시스템입니다.]

이 뉴스의 폭발력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공매도가 주춤한 것이었다. 그사이 KM 전자 주가는 27만 원까지 단숨에 반등했다.

거래량이 폭발하면서 코스피 주가가 휘청할 정도였다.

이 뉴스를 접한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미국행을 연기했다.

그도 뒤늦게 보고를 받고 나서는 황당하기만 했다.

“…3,000억을 퍼부었는데, 고작 결과가 이것이란 말인가.”

연합 SB 데이비드 싱어 수석 매니저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이번 공매도에 참여한 한국 대기업들이 손을 떼고 있습니다. 당장 HY 증권, LC 증권, 오성 증권이 이탈했습니다.”

“설마 K투스 3.0 때문인가?”

“그것도 있지만, 학술 대회에서 밝히지 않은 MP3 특허, IPS-LCD 특허가 문제입니다. 특히 IPS-LCD 특허는 아직 협상조차 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LC 전자나 오성 전자로서는 협상에 실패하면 타격이 큽니다.”

“하지만 KM 전자도 그 LCD가 필요하잖아. 무리하게 일을 진행할까?”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오성 전자와 LC 전자는 이미 IPS-LCD 양산에 성공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업체도 이 자료만 있다면 얼마든지 양산할 수 있습니다.”

“그거야 이미 어느 정도 합의가…….”

“아닙니다. 아직 합의된 사안이 아닙니다. 오성 전자만 해도 기술을 몰래 빼돌려서 일을 진행했습니다. 그렇다면 최민혁 실장이 거꾸로 그 양산 기술을 빼돌려서 일본 업체에 넘겨서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데이비드 싱어는 그다지 좋은 안색이 아니었다. 그는 왜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든 것인지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생각을 공감하지 못했다.

“…굳이 일을 이렇게 어렵게 끌고 가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야망이 가득한 데이비드 싱어 수석 매니저가 이번 일 때문에 타격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걱정하지 마. 자네에게 이번 일과 관련해서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까.”

“…역시 본사에서 결정이 난 일입니까?”

“자네가 아직 알 내용은 아냐. 다만 연합 SB가 만들어진 것은 다 이유가 있어. 그런데 최민혁 실장 때문에 그 일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어. 이대로 최민혁 실장을 내버려 둘 수는 없어.”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만만한 이가 아닙니다.”

“알아. 아니까. 최민혁 실장 이야기는 그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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