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66화 (466/1,021)

#466.

버럭 화를 내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모습은 평소에 보이지 않던 모습이다. 웬만해서는 감정 기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태가 점점 악화하는 것을 느낀 데이비드 싱어는 반발했다.

“아니, 그러고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자칫하면 이번 일로 큰 손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KM 전자의 잠재력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안다니까!”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평소와는 달리 격한 모습을 보였다. 그 역시 샐로먼 브러더스가 KM 전자의 주식으로 재미를 단단히 본 것을 잘 알았다.

굳이 이제 와서 최민혁 실장과 척을 져서 손실을 볼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샐로먼 브러더스의 정책이 아니었다.

문제는 최민혁 실장과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네도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와 만나서 이야기를 듣지 않았나?”

“하지만 당시 상황은 최민혁 실장과 완전히 이야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최민혁 실장이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를 브로커 삼아서 대화하던 시점에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서 KM 전자의 주식을 던진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된서리를 맞은 곳 중의 하나가 샐로먼 브러더스였다.

결국 협상은 없던 일이 되었다.

문제는 한번 계약을 파투 낸 최민혁 실장을 더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당시 최민혁 실장은 우리 입장을 전혀 몰랐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때 일을…….”

“그만해. 이미 다 끝난 일이니까.”

“좋습니다. 대신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를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소용없을 거야.”

“하지만 이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겁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잠깐 고민했다. 그 역시 데이비드 싱어의 주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만약 최민혁 실장과 협상이 잘된다면 굳이 상황을 파국으로 몰고 갈 이유는 없었다.

“시간은 많이 못 줘!”

“감사합니다!”

* * *

사실 과거 KM 전자의 지분을 가지고 브로커와 협상을 하던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서 움직였다.

그는 최민혁 실장에게 참아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하지만 최민혁의 입장에선 굳이 외국 투자자에게 끌려다닐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샐로먼 브러더스를 의심하고 있는 상태였다.

정확히는 미국 단기 투자자들 대부분에 대해서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최민혁 실장은 샐로먼 브러더스와 최문경 부회장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계속해서 최민혁에게 저자세를 요구했다.

계속 자신의 역량을 키워가던 최민혁 입장에서 제이미 니콜라스의 제안을 굳이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정확히는 최민혁도 자존심이 상했다.

그게 실상 최민혁 실장과 외국인 투자자 사이에 지분 매각 협상이 끝난 이유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도 꽤 타격을 받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일단 인내를 가지고 지켜본 것이다.

그런데 최민혁의 행보는 이런 그의 상상을 가볍게 초월했다.

ARN 지분 인수, 켐코 사업부 인수, 와컴 지분 인수에 이어서 IPS-LCD, VA-LCD, 심지어 에플 인수까지 했다.

에플 인수는 그에게도 쇼킹한 일이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이때만 해도 에플 인수는 아니라고 최민혁 실장을 설득할 생각마저 했던 것이다.

최민혁의 영향력은 점점 커졌고, 그는 굳이 외국인 투자자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최민혁은 자신의 능력으로 그걸 증명한 것이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결국 한 걸음 물러나서 조용히 침묵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덕분에 KM 전자에 투자를 한 모든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도 뾰쪽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결국,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차에 나타난 이가 바로 데이비드 싱어 수석 매니저였다.

“오랜만입니다.”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눈치를 보느라 바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급한 이는 데이비드 싱어였다.

“지난 일은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최민혁 실장 측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을 해주십시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도 지난 일 때문에 민망했다.

“주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최민혁 실장님은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설마 우리 샐로먼 브러더스를 얕잡아 보고 하는 말입니까?”

그는 기겁했다.

“아,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저는 최 실장님이 외국인 투자자를 바라보는 시각을 말한 겁니다. 좋게 안 봅니다.”

이 부분은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가 꾸준히 최민혁 실장의 측근과 접촉해서 얻은 정보였다. 그는 둘 사이의 중재가 끝난 후에 최민혁 실장의 성향을 유심히 살피다가 이를 우연히 발견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입니까? 설마 최문경 부회장 때문입니까?”

“그것도 한 원인입니다. 근본적으로 샐로먼 브러더스의 정책이 한 원인입니다. 솔직히 여유가 있는 기업이라면, 그쪽을 좋아할 이유가 있습니까?”

인상을 찌푸린 데이비드 싱어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회사 이미지가 나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하지만 우리 회사가 월스트리트 내에서 수익성만 놓고 보면, 세계 최고입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에게 있어 우리 회사는 최고의 파트너입니다.”

“압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지금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KM 전자의 매출은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고, 사내 현금 보유고도 사상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에플 지분을 인수하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랬다.

최민혁 실장이 시사 초대석에 나간 이후에 KM 전자의 국내 매출은 수직으로 치솟았다.

콜린스 누적 판매 대수는 결국 60만 대를 돌파하더니 결국 70만 대에 도달했고, KMP-01 누적 판매 대수는 90만 대를 돌파했다.

KMP-01 누적 판매 대수 증가는 오성 전자 낸드 메모리 수급이 해결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에플 인수 과정에서 KM 전자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두 가지 품목이 다같이 초대박을 친 것이었다.

“…….”

데이비드 싱어는 어이가 없어서인지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저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부탁해도 안 됩니까? 최소한 최민혁 실장을 만나서 한번 이야기라도 해주십시오. 그렇게만 한다면 그만한 보상을 하겠습니다.”

“으음, 좋습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잠깐 갈등하는 척하다가 결국 상대의 제안을 받고 말았다. 그 역시 지난 일 때문에 최민혁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 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 * *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KM 전자 본사의 기획실을 찾아갔다.

역시나 최민혁 실장도 자신을 보자 지난 일을 바로 떠올렸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협상을 쫑 낸 일이다.

그리고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다.

“아, 제이미 이사님…….”

“오랜만입니다.”

그는 딱히 최민혁 실장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저 지켜만 봤다. 비서가 내온 인삼차를 음미하면서 말이다. 어차피 그 일은 최민혁 실장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민혁은 바로 표정을 바꾸었다. 그는 당시 KM 전자의 지분 매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내색하지 않았지만 자존심이 상했었다.

“갑자기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찾아온 겁니까?”

“흠.”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우선 지난 일부터 언급할까 싶었다.

하지만 최민혁이 눈을 부라리자 차마 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

지금의 최민혁 실장은 그 당시의 최민혁 실장과는 많이 달랐다.

바로 에플 인수 때문이다. 에플과 연결 고리가 생긴 이상 에플 CEO인 스티븐을 통해서 얼마든지 다른 브로커를 구할 수가 있었다.

그는 결국 넌지시 말을 돌렸다.

“…지난번에 KM 전자 지분 매각과 관련한 협상이 깨진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최민혁은 그제야 만족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내심을 숨기지 않았다.

“아, 그렇죠. 이왕이면 대주주와 좋게 지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뭐 꼭 그렇게 사이좋을 필요는 없습니다. 정 안 되면 반수 이상 지분을 가진 제가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면 되니까.”

“그렇습니까.”

“솔직히 지금에서야 말하는 것이지만 당시 KM 전자의 지분 매각 때문에 굳이 투자자들의 눈치를 보는 게 마음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KM 전자가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주식회사가 되지 않으면 성장의 한계는 반드시 존재했다.

KM 전자처럼 주 수요가 미국, 유럽에 있는 경우는 특히 더 심하다.

주식을 통한 이익 공여가 되지 않으면, 각국의 텃새를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에플을 인수했습니다. 스티븐이라면 그 일을 잘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그렇죠. 스티븐이라면…….”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새삼 최민혁의 태도가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부터 자신이 고개를 일방적으로 숙여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하면 외국인 투자자와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당장 샐로먼 브러더스 측은 생각보다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제이미 이사님이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은 샐로먼 브러더스 대변인 역할극을 하기 위해서 인 거 같습니다?”

“그게 좀…….”

최민혁은 씩 웃었다. 그로서는 딱 자신이 기다리던 결과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 자존심이 강한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서 이렇게 대화를 먼저 걸어올 줄은 몰랐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전 최문경 부회장님과는 양립하기 힘든 사이입니다. 그런데 샐로먼은 우리 첫째 큰아버지와 손을 잡고 있습니다. 결국, 둘 사이가 좋아질 수가 있습니까?”

“…그렇군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해서인지 매우 놀라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가 나쁜 것은 한국 기업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지분 매각이 파토 난 것도 이것 때문이었어.’

결국 그는 몇 차례 최민혁 실장과 이야기를 거듭했다.

다만 최민혁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전 샐로먼 브러더스와 척을 질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님과 계속 동맹관계를 유지한다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이 일은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가 떠올린 최문경 부회장은 한국 꼰대의 정석이라고 해도 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네.’

* * *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최민혁 실장의 의지를 듣고 나서는 데이비드 싱어 수석 매니저에게 그대로 전했다.

이 사실을 안 데이비드 싱어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 역시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일이었다.

문제는 이 일이 결코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샐로먼 브러더스는 몇 년 전부터 최문경 부회장에게 공을 들였다.

차입금은 시작에 불과했고, 연합 SB는 두 번째 단추였다.

이 일은 단순히 몇 사람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 샐로먼 브러더스 윗선에서 결정이 난 일이다. 더욱이 그 일이 이거 하나로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여전히 최민혁 실장이 갑이라는 것이었다.

데이비드 싱어는 결국 최민혁 실장을 조사한 내용을 가지고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찾아가서 보고했다.

“죄송합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 역시 보고 내용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최민혁 실장과 최문경 부회장 사이의 관계가 문제가 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고생했어.”

“…정말 답답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최민혁 실장을 가볍게 볼 수는 없습니다. 만약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해서 에플이 다시 일어서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이성적으로 반박하는 데이비드 싱어의 모습은 나름 타당했다.

“그건 자네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냐!”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단언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우선 샐로먼 브러더스는 합리적인 투자 회사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진행하고 있는 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단순한 계획도 아니었다.

목적 자체도 원래 KM 전자나 최민혁 실장이 아니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최민혁 실장을 주목한 것은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최민혁 실장이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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