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64화 (464/1,021)

#464.

최민혁은 특히 이 새로운 사양이 적용된 K투스 칩을 개발해서 KMP-02에 탑재하겠다는 의도를 넌지시 비추었다.

“이미 칩 기능 테스트는 끝난 것으로 압니다. K투스 3.0은 중간에 거치는 단계로 생각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아마 이 제안에 반발하는 이도 상당히 있겠지만, 우리 뜻을 거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말을 안 듣는 기업은 K투스 라인에서 빼버리겠다는 말씀입니까?”

블루투스 시장 초기에 여러 가지 문제로 시장 형성이 쉽지 않았는데, 이런 부분을 교정하면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나온 주장이다.

주로 AV 데이터 전송을 위한 표준이 그 기준이다. 따라서 무선 LAN 이용, 프린트용에 적용되는 표준과 같은 다양한 표준들을 빼버렸다.

오디오, 비디오를 중심으로 한 이 표준은 PC, 핸드폰, MP 플레이어 같은 모바일 전자 기기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최민혁은 이전과는 달리 이런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그렇죠. 그런 점을 실무진에게 명시를 시키세요. 우리 말을 들으면 합리적인 로열티만 받고 기술을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면 됩니다.”

“하면 자동차에 사용할 수 있는 기능 같은 경우는 아예 포기하는 겁니까?”

최민혁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굳이 자동차에 사용되는 기능을 넣지 않겠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참여 기업의 요청에 따라서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다는 점을 피력하세요. 단, 우리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중요한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최민혁의 태도. 어떻게 보면 공격적인 성향이 다분했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의 심보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최민혁한테서 블루투스를 아예 없애고, 이름도 K투스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느꼈다.

이런 분위기는 이전에 보이지 않던 모습이다.

그는 힐끗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임기석 부장을 쳐다보았다.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한 임기석 부장은 조성돈 팀장을 통해서 최근 회사 사정을 파악했다. 덕분에 이 모든 일이 샐로먼 브러더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KM 전자는 차입 공매도 허용 후에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에플의 주가 폭등에 따른 수혜를 입어서 30만 원을 다시 회복한 KM 전자 주가가 27만 원으로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걸려 있는 현재 공매도 물량만 무려 백만 주를 웃돌았다.

공매도 허용 후에 불과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일어난 공매도 물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어, 엄청나구나.’

그가 가장 놀란 것은 샐로먼 브러더스만이 아니었다.

다른 외국계 증권 회사를 비롯한 국내 증권 회사도 이번 일에 합류했다.

차익 실현을 참지 못한 투자자가 이번이 기회다 싶어서 주식을 대거 정리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는 이번 기회를 최대한 이용할 생각에 빠져 있었다.

“굳이 부담을 줄 생각은 없습니다. 이에 이로 대응하면 됩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임기석 부장은 이번 일이 전혀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결국 컨소시엄 명목으로 에릭슨을 비롯한 블루투스에 관여한 모든 기업에 초청장을 보냈다. 심지어 한국에 있는 어지간한 중견 회사나 대학에도 알렸다.

갑작스러운 KM 전자의 행보에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 K투스와 관련해서 KM 전자가 미적거린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그야말로 날벼락과 같이 갑자기 열린 학술회의였던 것이다.

‘KM 전자가 갑자기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 * *

권태성 기획실장은 최근 최민혁의 에플 인수 후에는 그저 두 손 놓고 최민혁의 행보를 지켜만 봤다.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조차 최민혁 실장의 행동에 치를 떠는 것을 보자 아쉬울 것은 없었다.

그런 그도 갑자기 KM 전자에서 나올 K투스 3.0 학술 대회 초청장에는 말없이 응했다.

그런데 대강당은 그야말로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강연장 바깥 통로에서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걸어 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대강당 주차장은 차량이 너무 많아서 다른 쪽으로 돌려야 했다.

대학 경비원이 몰려 나와서 몰려오는 사람들에 대응한다고 진땀을 흘렸다.

“…엄청나군.”

“…후유, 다들 K투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온 것 같습니다.”

임권수 부장은 새삼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이 이전과 달라진 것을 체감했다.

그는 이 자리엔 단순히 초청받은 이만이 아니라 뒤늦게 소식을 들은 이들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들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이는 언론사 기자들이다. 그들 역시 삼삼오오 모여서 강연장을 취재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도대체 몇 명이나 온 거야?]

[KM 전자 주가 폭락 때문에 난리가 났잖아. 그 일이 더 이슈가 되어서 사람들이 몰린 것 같아.]

[하긴 갑작스러운 KM 전자 주가 폭락은 누구도 예상을 못 한 일이니까.]

[글쎄, 내가 증권가에서 들은 이야기는 좀 달라. 이번 일을 주도한 것이 외국계 증권사란 소리가 있어. 아예 KM 전자에 대놓고 작업을 친 거야.]

[KM 전자 실적이 엄청난데, 그게 가능한 일이야?]

[단기에 너무 많이 올랐잖아. 이제 차익 매물이 나올 때가 되었지. 그 기회를 노린 거야. KM 전자 대주주도 딱히 이번 기회가 나쁜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거기에 불만이 많은 이들도 있잖아.]

[하긴 KM 전자 때문에 재미를 보지 못한 이들은 이를 갈고 있다고 하니까.]

[KM 전자도 꼭 잘했다고만 할 수는 없어. MP3 원천기술만 봐도 그렇잖아. 혼자 다 먹겠다는 심보인데, 그게 도둑놈이지!]

KM 전자에 대해서 반감을 품은 이들은 KM 전자 때문에 이익을 보지 못한 이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세력은 KM 전자에 더욱더 크게 반감을 보였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그게 활화산처럼 폭발한 것이었다.

여기에 KM 전자의 성공을 시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언론사 역시 최민혁 실장에게 된통 당한 지난 일을 잊지 않았다.

그러니 KM 전자의 대외 행사가 이루어지는 이 자리에 많은 사람이 나온 것이다.

KM 전자 본사가 아니라 대학 대강당을 빌렸는데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심지어 반 이상은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기존에 블루투스 개발에 참석한 모든 기업이 그 대상이었다.

물론 이와 관련이 없는 기업들 역시 자리를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외에 많은 일본 기업이나 중국 기업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KM 전자의 에플 인수 이후에 KM 전자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K투스의 가치도 다시 재평가를 받은 것이었다.

권태성 실장은 대강당으로 걸어가면서 다양한 참석자들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시사 초대석 이후에 KM 전자의 위상이 한 단계 더 올라간 것 같아.’

권태성 실장은 이 학술 대회가 갑작스럽게 진행된 이유를 떠올렸다.

‘KM 전자의 주가 폭락 때문에 최민혁 실장이 손을 쓴 것이겠지.’

그도 정부의 뜬금없는 공매도 제도 허용 후에 일어난 일에 기가 찼다.

‘생각은 하고 있는 것일까? 이건 매국 행위나 다름없잖아.’

하지만 그도 이 사태에 오성 그룹의 전략 기획실이 한 역할 했다는 것 정도는 김진석 이사에게 넌지시 들었다. 그래서 더욱 이 상황에 머리가 복잡했다.

‘어쩔 생각인 건지.’

그 자신이 아는 최민혁 실장은 결코 손해를 보는 이가 아니다.

만약 이번 일도 이전과 같은 함정이 있다면 오성 전자도 타격이 불가피했다.

그는 이번 일에 대해서는 김진석 이사에게 경고할 생각이었다.

그런 그를 알아본 이도 있었다.

ETRI 위성 사업부 실장인 오현종 팀장이었다. 그는 정장을 한 채 다른 연구원 십여 명과 같이 이 행사에 참석했다.

“권 실장님, 오랜만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오큘러스 프로젝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오현종 팀장 외에 김승구 팀장을 비롯한 김문호 박사도 같이 자리했다.

그로서는 의아한 일이었다.

“세 분은 위성 사업부 쪽인데, 이번 행사에 초청을 받은 겁니까?”

“아, 최근에 우리 팀이 모바일 통신 사업 쪽도 일하고 있습니다.”

“네? 모바일 통신 사업이라면…….”

그는 권태성 기획실장을 무시할 수 없었다.

“CDMA입니다. 그래서 근거리통신망에 관한 연구도 같이 진행 중입니다.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권태성 기획실장은 그냥 대충 넘기지 않았다. 오현종 팀장은 지금 국책 사업권 때문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이였기 때문이다.

“하하하,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전 아직 연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공무원 따위는 하고 싶지 않으니까.”

결국 그 스스로 정부 관련 일은 다른 이에게 떠넘겼다고 말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오 박사님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중요한 위성 사업부 총책임자를 정부에서 그냥 뒀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모바일 통신 사업이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제가 들은 바로는…….”

“하, 이거 권 실장님은 정말 못 속이겠군요. 뭐, 숨길 일도 아니죠. 어차피 통신 쪽은 이미 승부가 난 셈이니까요. 최민혁 실장님이 저에게 제안한 일이 CDMA였습니다.”

“…….”

권태성 기획실장은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오현종 팀장 일행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로서는 전혀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CDMA는 쉽지 않을 텐데, 이미 원천기술을 쥔 회사가 퀄컴이잖아. 미국 정부에서도 통신 사업에 한국 기업이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을 테고. 최 실장이 이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말인데,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일까?’

다만 그는 뒤늦게야 최민혁 실장의 최근 행보를 다시 떠올렸다. 에플 인수가 그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CDMA라니.

그는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지금 K투스만 해도 일이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이 모든 작업이 KM 전자를 위한 실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설마 여기에 뭔가 더 있는 건가?’

* * *

K투스 학술 모임은 다른 학술 모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KMP-02 개발 과정에서 진행되는 실제 테스트 플랫폼을 가져와서 그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 시연은 모바일 기기, 노트북, KMP-01과 상호 통신했다.

특히 돋보이는 부분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진 전송 속도였다.

때문에 테스트 품질임에도 그 완성도가 혁신적으로 높아졌다.

이는 단순히 테스트를 위한 용도가 아니라 이미 상업화 단계를 넘어섰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K투스 3.0 표준에 관한 이야기는 필요한 내용만 언급했지만, 실제 테스트는 마치 시제품을 보여주는 것처럼 진행했다.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경악했다.

[맙소사!]

[속도도 속도지만 보안 스택을 위한 부호화와 복호화까지 가능하잖아!]

[아니, 기기 사이에 접속이 왜 저렇게 간단하게 적용되는 거야?]

최민혁의 인생 1회 차에서 존재하던 고질적인 블루투스의 문제도 보이지 않았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불필요한 기능을 다 잘라냈기에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에릭슨을 비롯한 업체가 작업했을 경우에 나타나는 자잘한 문제도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나서서 독단적으로 교통 정리를 다 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그도 시간이 있었다면 좀 더 조율을 거쳐서 자연스럽게 진행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처럼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맹세를 지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적어도 이번 행사에는 최민혁 실장이 직접 나서지 않았다.

조성돈 팀장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번 행사는 실장님이 나서야 하지 않습니까?”

“전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시니컬하게 툴툴거렸다.

“이제 그런 말은 그만하시죠.”

“아니, 진담입니다. 굳이 에플을 인수를 한 것도 스티븐을 내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러는 만큼 저는 대신 뒤로 물러날 수가 있습니다.”

“…….”

조성돈 팀장을 비롯해서 옆에 수행원으로 나온 이들은 다들 시끄러운 강연장 분위기에도 최민혁 실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김명준 과장은 어지간해서는 경호원에 충실한데, 이번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실장님,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쯧.”

최민혁은 혀를 찼다. 이번 일은 샐로먼 브러더스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따라서 일을 자신이 만들어도 직접적으로는 나서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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