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58화 (458/1,021)

#458.

“지난 일에 대한 답례다.”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지난 주가 조작 사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했지만, 곧 그런 상념을 떨쳐 버렸다.

그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고마워.”

“뭐, 그런 말을 듣자고 준 것은 아냐.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뜻이니까.”

“쯧.”

박상희 부부장검사도 서류를 챙긴 후에 자판기에서 타 온 믹스커피를 박두영 부장검사에게 내밀었다.

“고작 이거냐? 나 한가해서 여기까지 제보하려고 온 것 아니다.”

“그 뻔한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믹스커피 하나로 접대를 끝마친 후에 사건 파일을 확인하다가 ‘미국 주식 투자’라고 적혀 있는 추가 문구를 보자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다.

‘가만, 이거 에플 주식 매입 관련된 사건인가?’

에플 주식 이슈에 대해서는 이미 남부지검 증권 거래 팀 내에서 말이 나왔다. 사실 최민혁 실장이 에플 인수를 시사 초대석 생방송에서 밝힐 때만 해도 ‘미친놈’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에플 주가가 폭등하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에플 매출이 변한 것도 아니고, 에플이 혁신적인 제품을 당장 눈앞에 내놓은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은 스티븐이 CEO가 된 것과 에플 이사회에 최민혁 실장이 합류했다는 것뿐이다.

더 황당한 것은 이 에플 이사회가 노골적으로 경영에 간섭하는 단체가 아니다. 일 년에 고작해야 4~5차례 정도 관여하는 게 다였다.

그럼 결국 CEO 하나 바뀐 것 때문에 에플의 미래 가치가 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박두영 부장검사만큼이나 철저해서 뇌물을 받는 타입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미국 내의 에플 주식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전 내부 정보도 없잖아?’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도덕성이고 나발이고 이건 진짜 그의 인생 세 번째 기회 중의 하나였다.

‘좋아, 결심했어. 나도 에플 주식 한번 사보자!’

* * *

마음을 단단히 먹은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박두영 부장검사 팔을 잡고는 남부지검에서 나와서 가까운 공원 벤치에 앉았다.

“선배, 혹시 에플 주가 폭등 말인데, 혹시 아는 것은 없어?”

에플 관련 이야기는 중앙지검 내에서도 말이 많았다.

특히 박두영 부장검사가 최민혁 실장의 라인이라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 있었기 때문에 그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라 뻑하면 KM 전자 주식에 대해서 묻는 이도 있었다.

박두영 부장검사 처지에서는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무슨 소리냐?”

“아니, 솔직히 그렇잖아. 형이 잘 아는 최민혁 실장이 에플 인수한 후에 에플 주가가 미친 듯이 오르고 있잖아.”

“너도 주식에 투자하려고?”

“아, 나도 국내 주식은 눈치 보여. 하지만 에플 주식은 좀 다르잖아? 증권감독원이 에플 주식을 내사하겠어?”

“…해외 주식 매입은 복잡할 텐데?”

“미국에 가 있는 외가 삼촌에게 부탁하면 돼. 일단 삼촌 돈으로 투자하게 하고, 나누어서 삼촌에게 보내면 되니까.”

“지금 너무 많이 올랐어.”

“내 생각은 달라. KM 전자를 봐. 1,500원에서 오를 때만 해도 15,000원 시기가 너무 많이 올랐다고 작전주라고 그랬잖아. 그런데 지금은 무려 30만 원을 돌파해 버렸어!”

“하긴.”

박두영 부장검사만큼 KM 전자의 주가 흐름을 잘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과 서로 같이 지내면서 꽤 많은 정보를 얻었다.

실제로 KM 전자 주식으로 재미를 단단히 봤다.

당장 검사를 그만둬도 변호사 사무실 정도는 개업할 여력이 있었다.

그제야 에플 관련 소식이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오늘도 아침 뉴스에서 에플 주가 폭등 뉴스를 다룬 것을 떠올렸다.

일단 아내부터가 난리였다.

긴장한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그제야 주변 눈치를 다시 살폈다. 괜히 남부지검의 아는 지인이 있을까 싶었다.

“선배가 최민혁 실장과 긴밀한 사이잖아. 그러면 에플 주식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정보를 얻을 수가 있어. 딱 그거면 된다.”

중앙지검 내의 다른 지인이 물을 때만 해도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 이야기를 남부지검 후배에게 듣자 그때와는 좀 다른 기분이 들었다. 그는 피식 웃었다. 딱히 문제가 될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자문하는 것이니까.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하려다가 멈칫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다행히 마침 공중전화가 앞에 있었다.

박상희 부부장검사가 아예 작정하고 여기로 끌고 온 이유다.

‘하, 정말.’

“…….”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씩 웃고 말았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최민혁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민혁 반응은 역시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와, 박 부장검사님이 먼저 전화를 다 주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괜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박두영 부장검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에플 주식에 관심이 많아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실장님이라면 지금 에플 주가가 너무 높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 에플 주식에 투자하시려고요?]

[아는 지인이 에플 주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지난주에 2.5달러 최고가를 찍었다고 합니다. 너무 많이 올라서 에플 주식을 사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뭐, 여윳돈이 있으면 에플 주식을 매입하세요. 아마 절대로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벌써 4~5배 가까이 올랐는데, 더 오를까요?]

박두영 부장검사의 걱정에 대한 최민혁의 반응은 대수롭지 않았다. 그는 마치 자신이 노스트라다무스라도 된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네, 지금 당장은 단기로 대략 30달러 선까지는 오를 겁니다. 그다음은 저도 예상하기 힘든데, 적어도 50달러는 넘어설 겁니다.]

[…지, 진담입니까?]

[그럼요. 제가 에플 대주주인데, 그걸 모를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에플 대주주라도 주가를 예측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예언가도 아닌데, 어떻게 에플 주가를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스티븐 때문이죠.]

[…스티븐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이제는 한물갔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건 스티븐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여윳돈이 있다면 에플에 몰빵하세요. 제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이게 다입니다. 박두영 부장검사님의 원금 손실은 제가 보증해 드리겠습니다.]

[…….]

박두영 부장검사는 한동안 수화기를 든 채 눈만 끔벅거렸다. 최민혁 실장의 답변이 그의 상상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최민혁의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최민혁은 단순히 스티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도대체 뭐지?’

그리고 애가 탄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박두영 부장검사 팔에 매달렸다.

“선배, 대단하다. 설마 최민혁 실장과 그렇게 가까운 관계인지는 몰랐어.”

어깨를 으쓱한 박두영 부장검사는 일축했다.

“괜한 소리 하지 마!”

“아, 그래, 알았어. 그 꼰대 기질 정말 학창 시절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네.”

“야!”

“워워, 내가 잘못했다. 그래서 최민혁 실장이 뭐래? 에플 주식 사래?”

“그래. 여윳돈이 있다면 에플 주식을 전량 다 사라네.”

근거도 없는 말에도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쾌재를 불렀다.

“역시, 뭔가 있을 줄 알았다!”

“너, 설마 에플에 대해서 아는 정보라도 있어?”

“난 모르지. 하지만 최민혁 실장같은 사람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에플 인수를 결정하지 않았을 거야. 더욱이 에플 이사회의 반응도 이상했어. 회사 인수 합병이 저렇게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진 걸 보면 사전에 뭔가 이야기가 돼 있었다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에플 이사회가 미국 정부 눈치도 보지 않고, 에플 지분을 매각했을 리가 없잖아.”

“…넌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는 소리야?”

“그렇지. 다만 그들도 제대로 된 정보를 아는 것은 아닐 거야. 근데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이 해온 성과가 있잖아. 그걸 보고 모험을 걸었을 수도 있어.”

그랬다.

에플 매각에는 스티븐이 꽤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는 자신이 가용한 모든 인력을 총동원해서 일을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에플 이사회가 많이 바뀌었다.

새롭게 에플 이사회에 합류한 이들은 대부분이 스티븐 편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기에 에플 인수가 빠르게 진행된 것이었다.

최민혁은 물론 그런 부분을 알면서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가 사실 진정으로 원한 바였다. 에플이라는 방파제를 만들기 위해서 이권을 일부 내놓은 셈이다.

박두영 부장검사도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너, 정말 에플 주식을 살 생각이냐?”

“형은 최민혁 실장과 그렇게 잘 알면서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이 한 성과를 왜 몰라.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이 손해 본 장사를 한 적이 있어?!”

“그렇기는 하지만…….”

“고마워! 아, 이 사건은 최대한 빨리 처리할게.”

“…그래.”

박두영 부장검사는 박상희 부부장검사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그가 아는 후배는 결코 주식에 저렇게 무리한 투자를 하는 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도 뒤늦게 KM 전자 주식으로 재미를 단단히 본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 현금은 은행 통장에 꽤 있었다.

‘…나도 에플 주식이나 좀 살까.’

* * *

인센티브 정보를 얻은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원기 왕성하게 움직였다. 그가 즉각 김현탁 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받은 것이었다.

구속영장이 나온 이유는 증거 인멸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김현탁 본부장이 비록 살인 교사죄는 무혐의를 받고 풀려났지만 이미 중앙지검에 찍혀 있던 것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김현탁 본부장은 황당하게도 회사를 찾아온 검찰에게 수갑을 차고 말았다.

“…….”

과거라면 길길이 날뛰면서 폭력을 행사해야 할 김현탁 본부장도 이번에는 정말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 자신이 한 일은 잘 알고 있으니까.

다만 남부지검이 이렇게 작정하고 자신을 찾아와서 수갑을 채울지는 상상도 못 했다.

‘역시 너무 무리수를 뒀어.’

차익 규모가 무려 100억을 넘었으니, 그도 일을 진행하면서 아, 이게 아니다 싶었다.

그놈의 욕심이 뭔지.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설마 검찰이 정말 자기 사무실을 찾아와서 수갑을 채울지는 상상도 못 했다.

그는 크게 당황한 박태정 부장에게 뒷일을 맡긴 후에 검찰 수사관과 같이 사무실을 떠났다.

‘우리 아버지는 잔치 분위기겠어.’

* * *

김현탁 본부장의 예상처럼 김희찬 부사장은 휘파람을 불 정도였다. 다만 그도 내부자 거래로 자식이 구속된 일에 대해서 대놓고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일단 김상구 회장에게 이 일을 보고했다.

“…설마 에플 주식 때문이냐?”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사내 투자를 막아버리니, 홧김에 자신이 나선 것 같습니다.”

“쯧.”

김상구 회장은 이전과는 달리 크게 화를 내지 않았다. 에플 주가가 예상과는 달리 폭락 징후가 나오지 않았고, 계속 거래 물량이 늘어나고 있었다. 다만 여전히 에플 주식 매입에 들어가기에는 주가가 걸렸다.

당장 에플이 매출을 반전시킬 만한 정보라도 있다면 들어가겠지만 그런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용만이 이 너구리 의도를 잘 모르겠어.”

“최 회장님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겁니까?”

“그래. 문경이 그놈도 나름 전략 기획실을 뒤지고 있는데, 아직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했어.”

최용욱 회장이 쓴 자금은 바로 최병문 상무가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 자금 이력을 아는 이는 KM 그룹 내에도 흔치 않았다.

있다고 한다면 박두진 사장이 다였다. 그런 그도 자세한 것까지는 몰랐다.

하지만 김희찬 부사장은 이런 문제보다 더 핵심을 걸고넘어졌다.

“일본 단기자금은 기한이 1년에 불과합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일본 측에서 만기 연장을 안 해주면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회복하려면 얼마나 걸려?”

“그게, 오성을 비롯한 대기업이 우리 쪽 영역을 파고들어서 타격이 꽤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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