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
바로 특정금전신탁 문제 때문에 생긴 손실이다. 당시 DL 화재는 1조가 넘는 손해를 봤는데, 아직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LCD 사업에 쓸데없이 자금을 너무 많이 퍼부었어.”
“하지만 LCD 사업은 지금이 들어갈 기회였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오성 전자나 LC 전자의 영향력 때문에 더 들어갈 기회가 없습니다!”
“알아. IPS LCD 때문에 정신이 없는 시기여서 쉽게 들어간 거지. 그걸 모르지 않아.”
그는 새삼 에플 주식에 입맛을 다셨다. 여윳돈이 있었다면 무리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현탁이 그놈 사정도 있으니, 법무 팀을 붙여서 잘 처리해 봐.”
“알겠습니다.”
* * *
김현탁 본부장은 서울 구치소를 나오면서 이를 갈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DL 그룹 힘이 검찰이나 사법부에 영향을 줬다.
일단 보석금을 내고 구치소에서 나올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혐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검찰 수사는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다만 문제는 몰려와 있는 승냥이 같은 기자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김현탁 본부장을 보자 미친개처럼 달려들었다.
[김현탁 본부장님, 이번 내부자 거래로 구속된 것으로 압니다. 그 일이 범죄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 하신 겁니까?!]
한 가지가 포문을 열자 질문은 쓰나미처럼 밀어닥쳤다.
다행히 김현탁 본부장은 지난 살인 교사죄 이후에 단단히 준비를 끝냈다.
그는 DL 그룹에서 보내온 떡대 경비원 다섯 명을 앞세워서 차에 몸을 실었다.
박태정 부장은 마치 텔레파시라도 받은 사람처럼 차를 몰았다.
기자들이 차량 앞을 막아서자 김현탁 본부장 눈치를 봤다.
“야, 그냥 밀어버려,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박태정 부장 역시 모기떼같이 몰려온 기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차량을 출발시켰다.
앞을 막아선 기자들은 차량에 밀려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기자들은 그 특종 장면을 찍는다고 정신이 없었다.
* * *
김현탁 본부장의 차량이 기자를 밀어붙이는 장면은 뉴스 속보로 나갔다.
최문경 부회장은 부회장실에 앉아서 에플 주가 폭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가 이 뉴스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저놈은 또 왜 저래?”
권재홍 비서실장도 난감한 얼굴이었다.
“이번에 내부자 거래로 검찰에 구속된 것 때문에 단단히 열을 받은 것 같습니다.”
“아, 그 주식 판 거. 하, 정말 저놈도 정신이 나갔네.”
“DL 그룹도 에플 주식을 사들이려다가 에플 주가 폭등 때문에 눈치를 보는 중입니다. 보다 못해서 김현탁 본부장이 나선 것 같습니다.”
“아니, 그 돈 많은 DL 그룹 후계자가 돈이 없어서 지분을 몰래 매각했다고?”
“…DL 그룹이 돈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특정금전신탁 사건 이후에 손실을 크게 봤습니다. 특히 오성 그룹이 그 틈을 노려서 DL 화재 시장을 잠식한 덕분에 타격을 크게 봤습니다.”
“아, 오성. 역시 돈에 미친 개새끼들답네.”
“…오성 외에도 보험 쪽 관련 기업은 다 달려들어서 하이에나처럼 DL 화재를 영역을 먹어 치웠습니다. 실상 그 손실이 더 컸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조차 가슴이 서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정말 민혁 이놈은 알면 알수록 무서워. 가만, 그런데 시간이 제법 지났잖아?”
“정확히는 DL 화재가 그 일 때문에 신뢰를 잃은 것이 더 컸습니다.”
특히 최민혁이 언론플레이를 빙자해서 보험 업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거기에 다른 대기업들이 얼씨구나 기회다 싶어서 DL 화재를 공적으로 만든 것이다.
당시 손실도 문제였지만 이때 잃어버린 신뢰는 시간이 갈수록 더 규모를 키웠다.
“아직 손실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에 DL 화재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DL 화재가 현금이 많다는 것은 재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런 DL 화재가 빌빌거린다는 이야기는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민혁이 그놈은 도대체 그 사건에 어떻게 끼어든 거야?”
권재홍 비서실장은 해당 그 사건의 관련 시간 흐름도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명확하게 최민혁 실장이 DL 화재를 엿 먹였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다.
“진짜 징한 놈이다.”
“그래서 더 최민혁 실장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중입니다.”
“하, 지독한 놈.”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딱히 자기 일도 아니어서 휘파람을 불었다. 어차피 DL 화재는 최훈열 전무의 외가라서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뭐, 그래도 KD LCD 계열사 설립과 관련해서 상당한 자금을 지원받아서 딱히 밉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민혁이 이놈은 안 끼는 곳이 없어.”
정확히는 최민혁이 낀 것이 아니라 최민혁이 만든 함정에 다른 이들이 빠졌다는 것이 정확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김현탁 본부장의 몰상식한 행위를 비난하는 뉴스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가만, 설마 저것도 민혁이 그놈 작품은 아니겠지?”
“남부지검 쪽에 파악한 바로는 제보가 있었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민혁이 그놈이잖아!”
“…….”
권재홍 비서실장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제보를 누가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중간에 중앙지검의 박두영 부장검사가 엮여 있기 때문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검지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면서 장고에 들어갔다. 다른 일과는 달리 에플 주식 이슈는 손을 대기가 힘들었다.
아니, 어찌어찌 국내 KM 전자에 손을 댈 수는 있다고 해도 에플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그의 영역 밖의 일이다.
“하긴 KM 전자에게 빌빌거리는 상황이니, 에플 이야기를 하기도 좀 그래.”
더욱 큰 문제는 조카 최민혁의 날카로운 시선이 계속 자신을 향한다는 점이다.
“그룹 분위기는 어때?”
“…….”
“안 좋은가 보네.”
“특히 에플 인수 이후에 계열사들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니, 계열사 경영진도 문제지만 정작 심각한 것은 그룹 임직원들의 시선입니다.”
사실 KM 그룹 임직원들도 에플 인수설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들 역시 에플의 내부 사정을 한국 언론을 통해서 알고 나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남짓한 사이에 벌어진 일은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에플 주가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스티븐은 자신이 할리우드 스타라도 된 것처럼 이곳저곳에 나타나서 에플에 대한 인터뷰를 계속했다.
미국 주류 대학이나 기업도 마다치 않았다.
강연료에 구애받지 않는 이런 스티븐의 모습은 과거에는 없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스티븐의 면모도 많이 바뀌었다.
다만 안 좋은 일이 있다면 스티븐이 에플 임직원을 마구잡이로 잘라낸 일이다.
잘린 이들은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독재자 스티븐을 씹었다.
하지만 이런 일 자체가 오히려 노이즈마케팅이 되었다.
이때까지 에플이 받은 부정적인 시선 중의 하나가 무능한 경영진 때문이었으니까.
이들을 마구잡이로 잘라낸 것은 에플 입장에서는 오히려 호재였다.
에플에 대한 시선은 스티븐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최문경 부회장은 고민한 끝에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쪽에 연락해 봐. 아니, 권 실장 자네가 우선 움직여서 이야기를 들어봐.”
“…알겠습니다.”
권재홍 비서실장도 최문경 부회장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하려다가 단단히 마음을 굳힌 최문경 부회장의 얼굴을 보자 그럴 수가 없었다.
‘하긴 에플은 이제 손을 댈 수가 없으니. 차라리 그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 나을 수도 있어. 하지만 내키는 일은 아닌데…….’
* * *
에플 주가의 갑작스러운 폭등세는 대부분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곳으로 꼽을 수 있는 기업은 샐로먼 브러더스다.
샐로먼 브러더스는 이미 KM 그룹과 손을 잡고 연합 SB를 설립했다.
물론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정보이다.
실제로 샐로먼 브러더스가 손을 잡은 이는 최문경 부회장이었다.
덕분에 초창기 KM 그룹 전체를 좋게 봤다. 이들이 KM 전자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인 이유다. 즉, 그들이 KM 전자 주가가 계속해서 급등하게 만들었던 세력 중의 하나다.
하지만 이들은 에플 인수설이 나온 이후로 KM 전자를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KM 전자로 재미를 단단히 본 샐로먼 브러더스 입장에서 에플 인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세력과 손을 잡고 KM 전자를 공격했다.
한국 언론 역시 미친 듯이 KM 전자를 공략했다.
이 당시에는 샐로먼 브러더스가 왜 이렇게 일을 만든 건지 그 이유를 아는 이는 없었다.
덕분에 샐로먼 브러더스 동아시아 담당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한국을 찾았다.
그는 본사의 지시를 받아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치는 KM 전자를 공격하기로 한 것이다.
그 첫 번째 행보가 바로 KM 전자 주식을 대량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33만 원까지 오른 KM 전자 주식.
십만 주씩 마구잡이로 KM 전자 주식을 패대기쳤다.
심지어 대량의 공매도까지 걸었다.
이런 공포 분위기 때문에 KM 전자 주식이 대량으로 시장에 흘러나왔다.
27만 원까지 주식이 갑자기 폭락한 것도 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배후에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딱히 음모론 같은 건 아니었다.
KM 전자 주식 물량이 대량으로 나오는 창구를 조사하면 전부 나오기 때문이다.
실상 에플 주가가 갑자기 2달러까지 폭등했다가 다시 0.4달러로 추락한 후에 1.8달러까지 반등하더니 다시 1.3 달러까지 추락하는 롤러코스터를 그린 일의 배후가 바로 샐로먼 브러더스였다.
그런데 결과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예측과는 많이 달랐다.
KM 전자 주가가 비록 27만 원까지 내려앉았지만, 그 밑으로는 더 하락하지 않았고, 에플 주가 역시 다시 반등에 성공해서 1.7달러를 탈환한 것이었다.
아니, 심지어 그 상승세를 이어가서 2.5 달러를 돌파해 버린 것이었다.
대량의 공매도까지 건 샐로먼 브러더스는 크게 당황했다.
한국에 있던 데니스 샐로먼 이사 역시 KM 전자의 주가 회복세에 혀를 내둘렀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뒤늦게야 이 KM 전자와 에플 주가의 주가 회복세가 전부 스티븐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권재홍 비서실장이 자신을 찾아온 것은 한창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심할 때였다.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비록 아시아 파트너로 KM 그룹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그 자신은 이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권재홍 비서실장 입장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자금줄이나 마찬가지인 샐로먼 브러더스의 눈치를 계속 봐야 했다.
“다름이 아니라 에플 주가 문제 때문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안 그래도 KM 전자가 눈엣가시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샐로먼 브러더스 내부 정보를 밝힐 수는 없었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이 반대였다. 그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입장을 꼭 알고 싶었다.
“지금 에플 주가가 심상치 않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매입한 주가를 기준으로 놓고 봐도 5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최민혁 실장을 이대로 두고 볼 생각입니까?”
“그렇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네? 하지만…….”
“겉으로 봐서는 두 회사가 좋아 보이지만 에플 매출 하락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러니 결국에는 KM 전자에도 악영향을 줄 겁니다. 지금 하락한 KM 전자의 주가가 그 증거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KM 전자의 주가 하락은 에플 가치 하락에 따른 지분 반영 결과였다. 실제로 에플 매출이 계속 하락 중인 것은 사실이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지금 KM 전자와 에플 주가 흐름이 예상한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할 수가 없어서 적당한 선에서 축객령을 내렸다.
“쓸데없는 걱정은 말고, KM 산업 경영이나 제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KD LCD 성과도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들어가고 있는 자금 대비 수익이 빨리 나와야 할 겁니다. 만약 우리 예상과 다르다면 우리도 손을 뗄 수 있어요!”
“아, 알겠습니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괜한 압박에 서둘러 데니스 샐로먼 이사와 헤어졌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차가운 눈으로 권재홍 비서실장이 탄 차량이 떠나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다른 일과는 달리 KM 전자의 에플 인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