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38화 (438/1,021)

#438.

콜린스가 뒤로 툭 튀어나온 부분이 존재하기에 유려한 곡선이 지나는 아랫부분에 컴퓨터 본체를 넣어서 모니터와 합체시키는 방식이다.

“아, 물론 이건 우리가 개발할 물건이 아닙니다. 여기에 윈도우를 넣을 생각은 없으니까. 다만 스티븐이 꽤 좋아할 겁니다.”

“설마 에플의 스티븐 말씀입니까?”

“네. 물론 아직 스티븐은 이런 제품류에 대해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찌 보면 에플에 돌아간 후에야 할 고민이겠죠.”

조성돈 팀장은 영문을 몰라서 눈만 깜빡거렸다. 최민혁은 스티븐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전에 이미 그를 위한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아마 최민혁 실장의 놀라운 행보를 보지 못했다면 조성돈 팀장도 반박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했다.

‘정말 실장님 말대로 될까?’

최민혁은 오른 손바닥을 쫙 펼쳤다.

“스티븐은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움직일 겁니다. 시간이 더 필요하면 스티븐 측과는 미팅을 연기해도 됩니다. 아마 스티븐 쪽이 더 원할 겁니다.”

“하지만 오성 그룹 행보가 좀 부담스럽습니다.”

“어차피 스티븐이 오성 그룹 측과 먼저 만나는 것도 우리를 압박할 방법을 찾는 겁니다. 자세한 대안은 최병연 소장님을 찾아가 보면 답을 해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 * *

조성돈 팀장은 우선 스티븐 측과 연락해서 일정을 다시 조율했다.

최민혁의 예측대로 스티븐 측에서는 기꺼이 미팅을 며칠을 더 연기하기로 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오성 전자의 권태성 기획실장이 오성 황태자 안재운과 함께 스티븐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안재운이라고 합니다.”

고개를 가볍게 숙이는 안재운의 표정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위성 사업 호조에 따른 e오성의 성공적인 데뷔 이후로 오성 그룹 내에서도 이전과는 사뭇 다른 시선을 받았다.

때문에 이번 스티븐과의 만남은 오성 그룹 내에서 그의 인지도를 더 올려주고도 남았다.

비록 스티븐이 에플에서 쫓겨났다고 해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 역시 오성 그룹 황태자인 안재운을 가볍게 대할 수는 없었다.

설사 그가 에플에 여전히 있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그가 오성 그룹 쪽과 만나는 것은 최민혁 실장을 압박하기 위한 행동이다. 따라서 굳이 서로 얼굴을 붉힐 이유는 없었다.

“한국에서 오성 그룹의 도움을 얻어서 파워맥을 팔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파워맥은 IBM과 공동으로 개발한 파워칩이 담겨 있는 제품으로 한국에서만 무려 만 대 이상 판매했다.

전 세계 판매 대수 60만 대와 비교하면 적은 양이었다.

하지만 프로모션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적어도 7만 대까지는 추가로 판매할 수 있었다.

스티븐은 토비 CEO와의 이야기 도중에 얻은 정보를 토대로 안재운과 동행한 권태성 실장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권태성 실장은 묵묵히 들으면서도 크게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다만 최근 늘어난 에플 매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플 분기 매출이 꽤 늘어났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었나 보네.’

실상 작년 대비 에플 영업실적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이런 바탕에는 PC 제조업이 가지는 한계가 깔려 있었다.

혁신적인 제품 개발이 어려워지면서 연구 개발비는 상대적으로 커졌다.

이에 결국 에플, IBM, 모토로라가 손을 잡게 된 것이었다.

PC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어느 정도 보기 때문이었다.

안재운 대리는 이런 사정을 모른 채 오히려 스티븐의 개인 사정에 흥미를 드러냈다.

“그런데 정말 KM 전자와의 협상 때문에 한국을 방문한 겁니까? 제가 듣기로 픽사 쪽 사정은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만?”

스티븐은 흠칫 놀랐다. 픽사와 디즈니 사이의 차기작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듣기로 차기작이 너무 잘 나와서 최소한 중박 이상은 될 것이라 들었습니다. 스티븐이 그걸 모를 리가 있습니까?”

“확실하지 않은 것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마 스티븐이 거기에 따른 자신감 때문에 에플 대리인으로 굳이 나서지 않았나 싶네요. 필요하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쪽은 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파워맥이니까.”

파워맥 이야기에 안재운은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국내 PC 시장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고가의 파워맥은 매니아 층에서 인기가 좋지만, 그 수는 결코 많지가 않았다.

권태성 실장은 조용히 듣기만 하다가 스티븐에게 넌지시 말했다.

“혹시 최민혁 실장을 만나는 것도 그 파워맥 때문입니까?”

“그거야…….”

당황한 스티븐.

권태성 실장은 그것이면 충분했다. 스티븐이 최민혁 실장과는 또 다른 이유로 만난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다만 그게 무엇인지 간과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질문을 한다고 스티븐이 말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는 스티븐의 최근 현황과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둘 사이에 공통점으로 나올 만한 것을 골라 봤다.

“혹시 KM 전자 쪽보다는 저희 오성 전자와 손을 잡는 것은 어떻습니까?”

“…흠.”

스티븐은 난감했다. 오성 전자가 그럴 힘이 있다면 둘 사이를 경쟁시키는 것이 낫다. 그런데 불행히도 사정이 그렇지가 못했다.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MP3 원천 특허, 근거리 통신망, ARN과 같은 기술이 오성 전자에도 있습니까?”

“네? 아, 그건 없습니다만 우리 오성 전자도 나름의 가지고 있는 기술이 다양합니다.”

“많은 기술은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딱 KM 전자가 가진 원천기술이면 됩니다. 아니면 그와 유사한 기술이어도 됩니다.”

“그건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번 확인한 후에 연락을 주십시오. 만약 충분한 가치가 있다면 우리 에플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권태성 실장은 에플이 처한 상황을 알아도 내색하지 않았다. 다만 스티븐이 저렇게 당당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모르는 다른 것이 있는 건가?’

* * *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 내의 한 회의실 안은 평소와는 달리 침묵이 감돌았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진석 이사는 안재운 대리에게 저자세를 취하면서도 권태성 기획실장이 하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는 스티븐이 한 이야기에 가슴이 답답해서인지 별다른 반론을 내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다.

“전략 기획실 내에서도 이번 일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자꾸 이런 식으로 최민혁 실장에 휘둘려서는 곤란합니다.”

“하지만 스티븐의 내한은 우리가 에플 내에 라인이 있지 않고서야 알기 힘듭니다.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단 말입니다.”

“그건 핑계에 불과합니다. 아니, 그러면 최민혁 실장은 어떻게 스티븐에게 손을 썼다는 말입니까? 오성 전자 기획실이 사전에 그런 일을 하는 곳이 아닙니까. 늘 최민혁 실장 뒤꽁무니만 쫓아다니지 않습니까?!”

권태성 실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오성 그룹 본사에 오면 늘 듣는 소리가 저 소리였다. 웃기는 것은 그럼에도 자신을 자르지 않았다.

자신이 회사를 그만두면 결국 누군가 혼자 바가지를 써야 하는데, 그게 부담스럽기만 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최민혁 실장 때문에 권태성 실장 자신이 잘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니, 아는 것으로 곤란합니다. 물론 권태성 실장님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최민혁 실장과의 일을 무난하게 처리한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결과는 곤란합니다.”

“…….”

‘새끼, 도대체 나를 보고 뭘 하란 이야기야!’

권태성 기획실장은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는 계속 눈치만 보고 있는 안재운을 힐끗 쳐다보았다. 안재운은 역시 소심한 성격답게 안건민 회장이 있는 그룹 본사에서는 제대로 자기주장을 피력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게 더 마음이 상했는지 입술을 살짝 깨물고 있었다.

e오성의 성공에는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이 깊숙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아, 물론 그 근간은 권태성 비서실장 자신이 한 성과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딱히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최민혁 실장과 딱 선을 잘 탔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진석 이사 역시 마음 편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는 얼마 전에 한국 언론사를 이용해서 최민혁 실장을 압박하다가 된통 크게 당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민혁 실장이 싸움을 키우지 않아서 겨우 한숨을 돌렸다.

한영 일보를 상대로 보여준 최민혁 실장의 갑질을 보자 가슴이 덜컥했던 것이다.

이런 차에 스티븐이 방한했으니.

‘파워맥이라.’

선뜻 마음에 든 아이템은 아니었다. 비록 최근까지 60만 대가 팔렸다고 해도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본다면 차라리 콜린스가 진짜 대박이었다.

더욱이 미국 시장을 공략하지도 않았는데, 누적 판매 대수가 무려 50만 대를 넘어섰다.

‘그게 진짜 물건이야. 차라리 콜린스 사업부 인수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좋아. 문제는 최민혁 실장 이 인간이 오락가락한다는 말이야.’

김진석 이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언론 대응을 담당하고는 있지만, 콜린스 문제 역시 전적으로 자신의 소관이었다.

전략 기획실 내에서도 콜린스를 둘러싼 잡음과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보니 김진석 이사에게 다 떠넘겨진 것이었다.

정확히는 이 모든 게 최민혁 실장의 줏대 없는 태도 때문이다.

콜린스 사업부를 매각한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계속 말을 번복했다.

심지어 월마트 측과 계약도 진행하는 것 같다가 다시 끝장내 버렸다.

아니, 월마트 대응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럼에도 일이 계속 꾸역꾸역 진행된다는 것이다.

스티븐의 내한이 그 결과물이었다.

“권 실장님.”

“아, 네. 말씀하십시오.”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아시죠?”

“스티븐 방한 말입니까? 아니면 최민혁 실장을 말하는 겁니까?”

“둘 다입니다. 정확히는 콜린스 사업부라고 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하지만 콜린스 사업부 인수는 최민혁 실장이 아직 정확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 최민혁 실장 말을 믿지 않습니다. 지금 KM 전자의 상황을 보면 설사 최민혁 실장이 콜린스 사업부를 매각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라고 있습니까?”

“회사 매출 때문입니다. 콜린스 누적 물량이 벌써 50만 대를 넘어섰습니다. 아마 이제 곧 60만 대는 넘어설 겁니다. 2조 억이 넘는 매출액입니다. 그것 자체를 무시하기 힘듭니다.”

“하면 최민혁 실장은 콜린스 사업부를 매각할 생각이 없다는 말입니까?”

권태성 기획실장은 교묘한 김진석 이사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가 최민혁 실장이 정말 사업부를 매각하면 자신만 엿(?) 되기 때문이다.

‘하여간에 이 인간은 무슨 말을 못 하게 한다니까.’

소심하지만 책임을 잘 떠넘기는 김진석 이사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건 확실치 않습니다.”

“이봐요, 권 실장.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당신이 오성 전자를 책임진 기획실장 맞습니까? 확실치 않다는 말을 할 것 같으면, 쌀집 사장을 그 자리에 앉혀도 되겠습니다.”

삐딱한 김진석 이사의 말에 권태성 실장은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안재운이 끼어드는 것을 손으로 막았다.

“그 부분은 그만하시죠. 지금 중요한 것은 스티븐에 대한 대응책입니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결국, 최민혁 실장이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기에 스티븐을 초청했을 겁니다.”

김진석 이사 역시 흥분한 안재운을 보자 소모성 논쟁에 가까운 최민혁 실장의 조변석개와도 같은 태도 변화를 더 언급하지 않았다.

“하면 최민혁 실장은 왜 스티븐을 초청한 겁니까?”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 에플의 메시지 패드와 KMP-01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거기에 최근 와컴 지분 인수를 포함한 최민혁 실장의 대응책을 고려하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게 뭡니까?”

“PDA일 겁니다.”

“하지만 메시지 패드가 이미 망했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