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30화 (430/1,021)

#430.

박광민 사원을 비롯한 기획 팀원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티븐의 이름은 신화와도 같아서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개인 PC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인물이니까.

“벨린 소프트의 크레이그 행크스만 해도 스티븐이 주목하는 인물이었다고 해. 실제로 NextOS 개발에 주축을 이룬 사람 중의 하나였고, 그런 친구가 나갔어. 아무래도 그 일 때문에 스티븐이 크레이그 행크스를 비롯한 세 사람의 성과물을 주목한 것 같아.”

“아, KMP-01 OS를 설계한 그 친구들 말씀하시는군요. 가만 그렇다면 그 기술의 원소유자가 NextOS란 말입니까?”

“그건 아닌 것 같아. NextOS는 어디까지나 OS 시장을 노렸으니까. 모바일 OS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심을 둔 것은 아니었어. 다만 연구는 했을 수도 있겠지.”

“그렇구나.”

배종대 과장은 다시 정성근 대리의 보고서를 살피면서 혀를 내둘렀다.

‘젠장, 이것도 강준석 대리가 보고한 내용이잖아.’

그랬다.

미국에 체류 중인 강준석 대리는 자신의 레이더를 최대한 이용해 KM 전자와 관련이 있는 행적을 철저하게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기획 팀이 전혀 생각도 못 한 점을 찾아냈고, 이를 보고한 것뿐이다.

강준석 대리에 예민한 다른 팀원들 역시 당혹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아니, 그들은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최민혁 실장이 지금까지 걸어온 행보의 진정한 의미였다.

최민혁 실장이 한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그게 스티븐과 관련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긴장한 배종대 과장은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조 팀장님, 가만 그러면 최 실장님이 스티븐의 뒤통수를 친 거였습니까?”

“거, 말을 해도 그런 식으로 해!”

“아니, 제가 틀린 말은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쯧.”

조성돈 팀장은 깐죽거리는 배종대 과장을 탓하지 않았다. 표현은 좋지 않았지만, 딱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팀원 역시 열심히 최민혁 실장이 한 일을 꼼꼼히 돌이켜 보고서야 알게 모르게 스티븐과 많이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성근 대리의 생각은 좀 달랐다.

“ARN 지분이나 켐코 사업부는 스티븐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너무 비약해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야, 정 대리, 너 최 실장님을 너무 끼고 도는 것 아냐?!”

“전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애초에 MP3 플레이어는 스티븐이 관심이 없는 아이템이었습니다. 다만 최민혁 실장님의 행보 때문에 주목했을 수도 있습니다.”

조성돈 팀장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 대리 주장도 일리가 있어. 그러니 다들 다양한 관점에서 스티븐의 행보를 조사해 봐.”

“알겠습니다.”

다들 대답을 하면서도 새삼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설마 그 스티븐의 행보가 자신의 회사와 관련이 있다고는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 * *

강준석 대리는 자신이 정성근 대리에게 다급하게 NextOS 모바일 특허와 관련해서 전달한 보고서의 결과를 기다렸다. 그는 이번 일이 절대 가볍지 않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이 정보를 알게 된 크레이그 행크스는 초조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사 쪽에서 확인 중이니, 기다려 보세요.”

“죄송합니다. 사전에 빨리 통보를 해야 했는데…….”

“어쩔 수 없죠. 설마 NextOS에서 크레이그가 과거 했던 프로젝트 결과물을 다시 들여다볼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옆에서 두 사람 대화를 듣는 스콧 포스탈 역시 툴툴거렸다.

“그 프로젝트는 제대로 진행된 결과물도 아니었습니다. 스티븐이 우리가 나간 후에 따로 조사하다가 진행되었을 뿐일 겁니다.”

“더 자세한 것은 모릅니까?”

“제가 듣기로는 스티븐이 이번 일 때문에 모바일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한 담당자를 괴롭혔다는 정보 외에는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또 세 사람이 그만뒀습니다.”

“하, 그렇게 심해요?”

크레이그 행크스는 NextOS 생활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스티븐은 꽤 독선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같이 일하면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줍니다.”

스티븐이 외부에 드러난 이미지는 좋게 포장된 경우가 많았지만 밑에서 일하는 직원은 좀 다르게 생각했다. 그를 존경해서 따르는 직원조차 살인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다.

강준석 대리는 그게 신기했다.

“그런데도 나온 결과만 보면 그렇지가 않아 보이잖아요.”

“뭐 리더십이 대단한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특히 보는 시야가 남다릅니다. 그런 부분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은 더 괴롭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존경할 만한 분입니다. 쉽게 포기하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에플에서 퇴출당한 스티븐은 여전히 자신의 꿈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NextOS에서 그 꿈을 위해 계속 노력을 한 것이 한 예이다.

NextOS는 스티븐의 그런 비전이 담겨 있는 회사였다.

단지 지금은 스티븐을 압박하는 거대 미국 기업 때문에 힘을 못 쓰고 있을 뿐이다.

강준석 대리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본사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일단 스티븐의 동선을 알았다는 점이다.

‘좀 더 파봐야겠어.’

* * *

스티븐도 처음에는 크레이그 행크스를 비롯한 세 사람이 나간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사내 내부 갈등 때문에 패닉에 빠져 있었다.

특히 자비로 5,000만 달러를 투자한 픽사의 재정이 최악으로 떨어지자 절망에 빠졌다.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자신이 빠진 것 같았다.

그는 결국 대안으로 픽사를 팔아 치울까도 생각했다.

NextOS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으니, 차라리 픽사를 포기할 것을 고민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작 세 사람이 그만둔 것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런데 디즈니가 갑자기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추어서 토이 스토리를 개봉하기로 한 것이다.

그건 그로서는 전혀 예상도 못 한 일이었다.

스티븐은 결국 자신감을 얻었고, 천천히 자기 주변을 다시 확인했다.

그 자신의 단점은 이미 어려운 상황을 통해서 확인했기에 임직원에 대한 것도 다시 확인했다.

최소한 임직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스티븐은 그 과정에서 뒤늦게 NextOS의 주축이 된 젊은 엔지니어 세 사람이 퇴직한 것을 발견했다. 그들이 더욱이 벨린 소프트란 듣도 보도 못한 회사에 들어간 것을 알았다.

그는 과거처럼 벨린 소프트를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 사람이 무엇 때문에 벨린 소프트를 들어갔을까 확인해봤다.

그 과정에서 세 사람이 한 프로젝트를 꼼꼼하게 검토했는데, 그중에는 모바일 OS 관련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NextOS를 모바일 타입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사실 스티븐은 이 프로젝트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프로젝트로 보지는 않았다.

앞으로 미래에는 이 사업 영역이 반드시 주도적인 영향을 보일 것이라 확신했다.

다만 그 일은 먼 훗날 일이었다.

그런데 그의 생각이 바뀐 것은 바로 벨린 소프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한 회사의 제품 때문이었다.

“KMP-01이라…….”

사실 스티븐은 이 MP3란 물건을 보고는 꽤 충격을 받았다. 그가 그린 비전 중에 있는 물건인데, 그것이 세상에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부랴부랴 NextOS 모바일 프로젝트를 살폈고, 일단 특허 출원부터 했다.

실무진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스티븐의 일방적인 지시에 일단 따랐다.

스티븐은 픽사 문제가 풀린 덕분에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KMP-01을 기준으로 삼아서 가능한 특허를 최대한 만들어냈다.

그것이 실제로 구현되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KM 전자에 손을 쓰기 어렵다고 확신한 것이다.

스티븐은 당연히 KM 전자의 행보를 하루 단위로 확인했다.

그는 특히 와컴 지분 인수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스마트 펜이 뭘 의미하는지 금방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와컴과 관련된 부분에 끼어들기는 어려웠다.

그는 결국 KM 전자의 그동안의 행보를 살폈는데, 그 과정에서 에플이 ARN 지분을 KM 전자에 넘긴 사실을 발견했다.

“하.”

에플에 쫓겨난 후에 정신적으로 괴로워서 에플의 상황을 전혀 살피지 않았다.

실수였다.

최소한 에플에 귀를 계속 열어놓고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 한 것이다.

그는 결국 에플 이사회 중의 한 사람인 아맬리오 이사에게 연락해서 만났다.

아마 몇 달 전이었다면 아맬리오 이사는 스티븐과 만나려고 하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그는 MS에 밀려서 에플호가 침몰하는 것 때문에 어려움에 부닥쳐 있었다.

안 그래도 스티븐이라면 이 난관을 극복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찰나였다.

“오랜만입니다.”

“네.”

솔직히 아맬리오는 다른 에플 이사회와는 달리 작년부터 에플에 참여해서 스티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크지 않았다.

그는 더욱이 토비 스핀들러 CEO의 태도에 대해서 크게 걱정했다.

걱정이 가득한 스티븐의 얼굴을 보자 다른 일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에플은 현재 침몰하는 배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아.”

스티븐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가 그렇게 지적하던 부분이니까. 다만 에플 이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밀려서 쫓겨난 것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일에 자신이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NextOS에 있으면서 그 문제를 다시 돌이켜 봤기 때문이다.

“저는 지난 일 때문에 만나자고 한 것은 아닙니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ARN 지분 매각 때문입니까?”

“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토비 CEO는 에플 매각을 고민하고 있어요. 문제는 이사회 역시 그의 주장을 반대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에플 상황은 잘 알 테니,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에플의 매출은 시간이 갈수록 추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간 10%씩 하락하는 에플 매출액의 바닥이 어디인지 아무도 몰랐다.

주가는 바닥을 뚫고, 지하실 바닥을 계속 확인하는 중이었다.

스티븐은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고 ARN 지분까지 매각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돈이 안 되는 사업부를 매각하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하지만 토비 CEO 생각은 다릅니다. 오히려 가능성이 있는 것을 그대로 두면, 미련이 생길 것을 염두에 둔 겁니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에플 매각의 사전 정지 작업으로, 기회가 생기자 ARN 지분을 매각한 겁니다.”

그랬다.

토비 CEO가 ARN 지분 가치를 몰라서 지분을 KM 전자에 넘긴 것은 아니다. 아, 물론 그가 ARN 지분 가치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에플 이사회가 기대할 모든 것을 정리할 목적이었다.

실제로 ARN 지분 매각 자체는 큰일이 아니지만, 상징적인 의미는 있었다.

그 덕분에 에플 매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스티븐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KMP-01을 아맬리오 이사에게 내밀었다.

“이걸 보고도 모바일 산업을 포기하겠다는 말입니까?”

“그건…….”

아맬리오 이사도 KMP-01을 보고 크게 당황했다. 메시지 패드의 참패 때문에 모바일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니, 그는 이미 보고를 받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다만 그 보고를 뭉갰을 뿐이다. 지금 에플 매각이 문제인데, 당장 미국도 아닌 한국에서 출시한 제품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도 뒤늦게야 KMP-01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메시지 패드와는 조금 다른 방향이기는 하지만 아이디어 자체가 기발했다.

황당한 것은 메시지 패드에는 딱 이 MP3 콘텐츠가 없다는 점이다.

메시지 패드에도 얼마든지 MP3가 가능했다면 꽤 매력적인 어필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부랴부랴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서 KMP-01 관련된 보고서를 다시 확인했다.

“맙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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