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26화 (426/1,021)

#426.

결국 코지 부사장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수행원 덕분에 KM 전자 본사 로비에 도착해서 최민혁 실장을 바로 알아봤다.

주변을 오가는 KM 전자 임직원 40~50명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최민혁 실장만 봤다.

코지 시마다 부사장은 천천히 최민혁 실장 앞에 다가가서 허리를 구십 도로 숙여서 정중하게 인사했다.

[최 실장님, 일본에서 있었던 일에 이 자리를 빌어서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

최민혁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크게 당황했다. 그가 아는 일본인이 남에게 사과하는 모습이 흔치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힐끗 옆에서 버벅거리는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그 역시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뒤를 이어서 와컴 경영진과 수행원이 최민혁 실장을 향해서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은 사뭇 경건하기만 했다.

마치 전쟁에서 패해서 백기를 든 군대처럼 말이다.

다만 타가하시 마무라 이사는 억지로 다른 일행을 따라서 고개를 숙였을 뿐이다.

오가는 KM 전자 임직원은 그 모습에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의 행보가 특이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멀쩡한 일본 경영진이 이 많은 사람 앞에서 허리를 숙이는 광경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처음 접하는 이 어색한 상황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오영근 사장이 두 사람 사이에 슬쩍 끼어들어서 옆집 아파트 주민 같은 미소를 보였다.

“자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서 이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회의실로 가서 이야기하시죠.”

코지 시마다 부사장은 친근한 오영근 사장의 행동에 고개를 숙였다.

“일본 일은 실무진 측에서 상황을 잘 모르고 한 행동입니다.”

“아아, 알겠습니다. 최 실장, 뭐 하나. 이분들을 안내해야지.”

“…네.”

최민혁은 피식 웃으면서 오영근 사장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굳이 자신이 와컴 쪽과 감정 대립할 이유가 없어서 편했다. 오영근 사장이 끼어든 덕분에 와컴 경영진을 상대하기가 한결 수월했기 때문이다.

그는 분탕질은 잘해도 화해를 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뭐, 잘되었다고 해야겠지. 와컴이 이 정도로 저자세라면, 지분 인수도 어렵지 않을 거야. 당장 와컴 펜을 KMP-02에 적용할 수가 있겠어.’

***

두 세력 간의 감정 대립이 있어도 누가 중간에 중재를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진다. 아마 최민혁 실장이 나섰다면 와컴과의 협상은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타가하시 마무라 변호사가 코지 시마다 부사장 행동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영근 사장은 타가하시 마무라 변호사를 상대로 달달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별것 아닌 이야기지만 뜻밖에 이게 잘 먹혔다.

타가하시 마무라 변호사 역시 최민혁 실장의 성향을 충분히 보고받았기 때문이다.

코지 시마다 부사장 역시 오영근 사장을 중재자로 활용했다.

따라서 최민혁 실장은 장승처럼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해도 일은 술술 잘 풀려갔다.

다만 한 가지 문제만큼은 이야기가 달랐다.

바로 협상.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것은 와컴 지분이었다.

코지 시마다 부사장 역시 그걸 모르지 않았다.

여기서 최민혁은 처음에는 자신이 한 일도 있고, 인생 1회차에서 오성 전자가 먹은 지분 5%라는 것을 잘 알기에 15% 정도로 불렀다.

그런데 타가하시 마무라 변호사가 냉큼 태클을 걸었다.

“10% 이상은 어렵습니다.”

최민혁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와컴 태도에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20%.”

“우리 와컴 역시 KM 전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10% 이상 지분이라면 다른 대주주를 설득해야 합니다. 그건 이사회에서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타가하시 마무라 변호사가 언급한 것은 와컴 이사회 일원이거나 이 배후에 있는 투자자를 말하는 것이다.

이들 와컴 이사회 세력 배후는 개인이 아니라 세력을 등에 업고 있다.

타가하시 마무라 변호사조차 이 부분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타가하시 마무라 변호사의 행동에 오히려 태클을 걸었다.

“30%.”

“…….”

담담한 최민혁 어조에 크게 당황한 타가하시 마무라 변호사는 바로 오영근 사장을 쳐다보았다.

오영근 사장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힐끗 최민혁 실장의 고집스러운 얼굴을 쳐다보았다. 절대로 마음을 바꿀 것 같지 않은 포스가 풀풀 넘쳐흘렀다.

‘좀 눈치껏 행동하지.’

그는 다시 당황한 코지 시마다 부사장을 힐끗 쳐다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타가하시 마무라 변호사 안색은 너무 흥분해서 홍시처럼 달아올라 있었는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최민혁은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든 얼굴은 아니었다.

“40%. 단 2억 달러를 내놓겠습니다. 거기에 스마트 펜 관련 특허 역시 포함합니다.”

인생 1회차에 오성 전자가 8년 후에 5% 지분에 560억를 줬다. 40% 지분이면, 딱 8배 기준이다. 대략 4천 5백억인 셈이다.

지금 환율 기준으로 볼 때 2억 달러는 1천 4백억이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서는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제안이었다.

“마, 말도 안…….”

최민혁 실장이 어깨 너머로 시선을 보내자 나선 이는 조성돈 팀장이었다. 그는 어젯밤에 나온 KMP-02 시제품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는 상황 설명을 위해서 가볍게 터치를 통해서 몇 가지 동작을 보여주었다.

쪽지 화면이 바뀐 후에 터치 펜을 사용해서 간단한 메모리 기록을 남겼다.

신용카드 크기의 스마트 펜을 사용한 데모는 코지 시마다 부사장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사마 야마모토 수석 부장만큼 충격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그는 중풍 환자처럼 들들 떨리는 손으로 KMP-02 시제품과 펜을 잡아서 사용해 보았다.

마치 종이 질감 같은 부드러운 필기감은 딱 와컴 기술진이 원했던 그 펜이었다. 더욱이 그 형태가 고작 신용카드 반 사이즈의 모바일 기기에 적용되었다.

이 기술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마 수석 부장은 한동안 넋을 잃었다. 그가 아는 와컴 기술력으로는 적어도 10년은 지나야 가능한 기술이다. 그것도 모바일 협력 업체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기술이 떡하니 자기 앞에 놓인 것이었다.

의문이 너무 많이 떠올라서 도저히 질문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는 팔짱을 낀 최민혁 실장을 보고서야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스마트 펜 특허가 이것 때문에 나온 것이구나.’

“…서, 설마 이게 KMP-01 차세대 모델입니까?”

“물론입니다. 거기에 사용된 기술 중에 일부는 당시네 와컴의 스마트 펜 기술입니다. 하지만 이를 이루는 기반 기술은 우리 특허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우리 두 회사가 힘을 합친다면, KMP-02와 같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사다 야마모토 수석은 너무 놀라서 이제는 놀랄 겨를도 없었다. 와컴 기술진이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 바로 이것이다.

다만 이런 형태 기술은 적어도 3~4년, 아니, 현실적으로 7~8년은 지나야 나올 만한 것이다.

그는 이 시제품을 보고서야 여러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당장 LCD 리플 현상과 같은 전형적인 문제도 나타나지 않았다.

의문은 구름처럼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거기에 이 기술에 대한 탐욕이 떠올랐다. 하지만 권태성 기획실장이 준 자료에 나온 기술을 떠올리면서 욕심을 버렸다.

애초에 이 분야만큼은 이제 KM 전자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업체가 없었다.

그는 얼음처럼 굳어 있는 코지 시마다 부사장 눈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코지 시마다 부사장은 상황의 엄중함을 깨닫자 여전히 정신 못 차린 타가하시 마무라 변호사가 나서려는 것을 강제로 막았다.

“겨우 이 정도 기술을… 아니, 부사장님 도대체 왜 이러시는…….”

“최 실장님이 원한대로 투자가 진행된다면, 결국 모바일 시장에서 우리 와컴이 얻는 이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겁니까?”

“물론입니다. 시장이 너무 커서 지분 40%가 아니면 이번 협상은 받아들이기 곤란합니다. 정 안 되면 다른 차선책을 쓸 수밖에 없으니까.”

와컴을 무시하는 최민혁 실장 말에 타가하시 마무라 변호사가 분노해서 소리쳤다.

“최 실장님, 이게 말도…….”

하지만 코지 시마다 부사장의 시선을 받은 수행원이 타가하시 마무라 변호사의 입을 막으면서 그의 말은 계속되지 않았다.

대신 그가 다시 나섰다.

“하면 모바일 시장이 커지면 그 이익이 우리 와컴 매출조차 뛰어넘는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리고 이 기술을 우리 와컴 제품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겠지요?

“당연합니다. 그게 지분 매입 조건이니까. 와컴도 얻는 것이 있어야 서로 윈윈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타가하시 마무라 변호사는 그제야 화들짝 놀랐다. 지금 눈앞에 있는 기술이 와컴 제품에 전반적으로 응용된다면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따라서 그 이익 증가율을 본다면 최민혁 실장 제안이 마냥 억지는 아니었다.

최민혁은 와컴 경영진 한 사람 한 사람을 쳐다본 후에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 이 시제품 가치를 잘 보면 와컴에도 꼭 손해는 아닐 겁니다. 따라서 여기에 따른 점을 고려하면 40% 지분도 무리한 조건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 조건을 거절하면, 당신네들과 협상할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

와컴과 최민혁 실장 간의 1차 협상 소식은 타가하시 마무라 변호사를 통해서 와컴 이사회에도 바로 알려졌다.

마사히코 야마다 이사는 길길이 날뛰었고, 코지 시마다 부사장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런데 이때 나선 것은 사다 야마모토 수석 부장이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KMP-02 기술 가치를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와컴 이사회 분위기는 이전과는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마사히코 야마다 이사를 미는 이들조차 고민에 빠진 것이다.

사실 와컴 지분 40%를 넘기는 것은 와컴 이사회가 모두 어느 정도 자기 지분을 일부 내놓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즉 그렇게 넘겼을 때 자신의 이익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보여준 결과물은 충분한 이익을 보장했다.

아니, 일본 내수 일부 분야에만 집중했던 와컴 매출이 글로벌 모바일 시장으로 넓혀진다는 측면에서 절대로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와컴 이사회는 각자 주판을 튕긴다고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최민혁 실장을 압박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와컴 이사회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마사히코 야마다 이사가 결사 항전을 외쳐도 그의 손을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그들 역시 최민혁 성정에 대한 정보를 뒤늦게 코지 시마다 부사장을 통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마사히코 야마다 이사 제안대로 했다가는 와컴 이사회가 직접 최민혁 실장과 정면에서 싸워야 하는데, 도저히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마사히코 야마다 이사가 최민혁 실장을 이용해서 자신을 처리하려고 하는 음모를 꾸미지 않나 의심했다.

그만큼 최민혁 실장의 밝혀진 정보에 와컴 이사회도 겁을 집어먹었다.

[당신들 미쳤어. 아니 이걸 정상적인 협상이라고 생각해? 어떻게 와컴 지분 40%를 고작 2억 달러에 넘길 수가 있어?!]

[…….]

와컴 이사회는 가슴이 아팠지만, 점점 뒤이어서 들어오는 IPS LCD 관련 정보에 최민혁 실장의 무서움을 절절히 느꼈다.

그들은 뒤늦게야 IPS LCD가 히타치 공작소가 수년에 걸쳐 연구하던 원천 기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KMP-02 차기 제품에 사용된 것이 이 기술이었다.

그러니 오성 전자와 LC 전자도 최민혁 실장을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민혁 실장 눈 밖에 벗어나 봐야 와컴의 미래는 암울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받는 것이 최악은 아니라도 차악은 될 수가 있었다.

와컴 사장은 와컴 이사회 압박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제안을 받아들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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