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69화 (369/1,021)

#369.

“…아쉽네. 하지만 다른 대안도 있지 않을까?”

“다른 대안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일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두 분이 아쉬워도 참아주세요.”

두 사람은 최민혁의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깨달았다. KM 전자와 이익이 반하는 곳에서도 판매할 수 있다는 의미니까.

그들도 과거와는 달리 콜린스의 해외 수출 물량을 늘리면서 국내 내수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에 대한 개념을 어느 정도 얻었던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는 이유 중의 하나기도 했다.

최민혁은 어느 정도 설명이 되었다고 판단하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전 이틀 후에 바로 미국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이틀 후에 당장 말인가?”

“네. 일정이 생각보다는 빡빡해서요. 아 그리고 이왕이면 마스터 카드 인터뷰 건은 사장님이 조성돈 팀장을 도와서 기자회견을 도와주십시오. 이왕이면 분란을 좀 더 키워주세요. 제 행적이 노출되지 않도록 말이죠.”

“꼭 그럴 필요가 있나?”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죠.”

최민혁은 씩 웃고 말았다.

문형섭 부사장이 보다 못해 툴툴거렸다.

“일전에 말하기는 최 실장 자네는 늘 조용히 살고 싶다고 하면서도 정작 문제는 더 키우는 것 같아. 정말 조용히 살고 싶은 것은 맞나?”

“…이번 경우는 예외입니다. 이번 일만 끝내면 조용히 살 겁니다.”

“과연 그게 될까?”

“됩니다!”

최민혁은 냉큼 사장실을 나섰다. 그는 따가운 두 사람의 시선을 받았지만 무시했다. 솔직히 조용히 살고 싶은 일에는 할 말이 많았다.

‘사실 우리 첫째 큰아버지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어. 당장은 계속 벼랑 끝으로 몰아넣어야, 첫째 큰아버지에게 대규모 차입금 바람을 넣은 세력을 끌어낼 수가 있으니까.’

* * *

오영근 사장은 최민혁이 한 제안을 순순히 수긍했는데, 직접 기자 몇 사람을 KM 전자로 불러 MP3 관련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이 인터뷰 기사는 곧 언론을 통해서 외부에 알려졌다.

KM 전자는 저작권 보호를 위해서 얼마든지 저작권료를 낼 계획이란 점을 분명히 밝혔다.

[지금 정해진 가격은 한 곡당 1,000원입니다. 이 금액을 기준으로 저작권자에게 이익을 배분할 예정입니다. 따라서 KMP-01은 그 어떤 불법적인 행위를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KMP-01의 툴이 불법 MP3 파일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다.

당연히 최문경 부회장, 오성 전자, LC 전자, 대운 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사냥개 언론을 이용해서 맹렬하게 오영근 사장을 맹비난했다.

안 그래도 MP3 관련 저작권 문제 소송으로 시끄러운데, 여기에 기름을 뿌린 형국이었다.

물고, 뜯는 모양세가 꼭 불신 지옥을 떠올리게 했다.

최민혁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정확히는 이 공격 자체가 최민혁 실장을 노리는 것이었다.

그러니 최민혁이 어디로 간 것인지 관심이 있는 사람이 설사 있다고 해도 직접 나서서 조사하는 곳은 드물었다.

다만 집요한 한 사람은 달랐다. 바로 안지연이다. 그녀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스토커처럼 계속 전화를 걸었다.

최민혁은 정략결혼 덕분에 제법 돈을 챙긴 것이 미안해서 전화를 받았다.

[최민혁입니다.]

[정말 너무하네요. 어떻게 전화 한번 해주지 않으세요?]

[아, 요즘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빴습니다. 신제품 개발 출시 이후에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신제품 출시란 말에 안지연은 계속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녀 역시 KMP-01을 디자인 별로 3개를 구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화 한 통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좀 심한 것 같아요.]

사실 최민혁 성격에 제가 왜 그쪽에 전화를 해야 합니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안지연 때문이 아니라 안 회장 때문이다.

두 사람 관계를 끝내더라도 좋게 마무리하는 것이 좋았다.

‘64MB 낸드 메모리 공급도 문제지만 128MB 낸드 메모리 공급도 신경 써야 하니까. 어쩔 수 없네. 그래, 다 막대한 돈이 걸린 거잖아. 미남계라고 생각하자.’

[그런데 제가 진짜 바쁩니다.]

[어디 외국이라도 가나 보죠?]

[네.]

[어? 진짜에요?]

[이틀 후에 항공편으로 미국에 갑니다. 저 정말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빠요.]

[하면 언제 시간이 나요?]

[당분간은 좀 어려울 겁니다. 상황에 따라서 미국 체류 기간도 늘어날 수 있고, 때에 따라서 유럽 쪽도 가봐야 합니다.]

[…진짜 바쁜가 보네요.]

[네.]

잠깐 침묵이 감돌았다. 안지연도 막상 자존심 때문에 화를 냈지만, 최민혁 실장 위치가 위치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녀는 오성가 막내딸답게 오빠 안재운이 요즘 얼마나 바쁜지 잘 안다. 특히 위성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안재운은 일주일에 두 번꼴로 외박도 했다.

그녀는 결국 머리를 굴리다가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다. 아니, 한 가지 방법은 있었다. 그녀 자신이 직접 가면 된다.

[…하면 공항에서 만나는 것은 안 돼요? 사실 할 말이 좀 있어요.]

최민혁도 잠깐 고민했다. 그는 딱히 이 일이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이 미국에 가는 것을 가지고 안지연이 동네방네 소문낼 것 같지는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그 명분으로 차버리면 되니까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공항에서 만나는 것으로 하죠.]

[네!]

최민혁은 한층 밝아진 안지연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로서는 안지연 행동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략결혼 목적으로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감정을 주고받고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여자 마음은 알 수가 없네.’

* * *

안지연 역시 처음에는 정략결혼 때문에 최민혁을 만났다.

그녀는 그때만 해도 최민혁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민혁을 만나면서 다른 사람과는 많은 점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표적인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최민혁은 그녀 자신의 재산 따위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안건민 회장이 막내딸에 증여한 주식은 이미 수천억을 넘어갔다. 증여 재산만 놓고 본다면 안재운보다 더 많았다.

물론 그녀가 그 재산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는 해도 가볍게 볼 일은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오성 계열사 부장 정도는 간단히 목을 잘라 버릴 힘은 있었다.

그러니 그 어떤 남자도 안지연, 자신의 정체를 알면 태도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재산을 노리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아니, 많았다.

그녀 경호원이 알아서 손을 썼기에 제대로 그 숫자를 모를 뿐이다.

안지연은 덕분에 최민혁과 만나서 평범한 남녀의 데이트를 만끽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콜린스 신화와 같은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최민혁은 아예 자신을 돌 취급한다는 거다.

안지연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친구들에게 가끔 질문도 했다.

“내가 남자에게 그렇게 매력이 없을까?”

“지연아, 어떤 미친놈이 그런 소리를 해? 어떤 남자라도 널 거부할 수는 없어.”

단순히 재산 때문이 아니다. 털털한 그녀의 성격은 재벌가와는 많이 달랐다. 가끔 자기 고집을 보일 때를 제외하고는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았다.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에 그녀 정체를 몰라서 뒤를 따라다니는 남자도 제법 많았다.

결국 최민혁 실장은 일반적인 다른 남자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녀가 그걸 실감한 것은 바로 KMP-01이 발표된 후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최민혁에 관심이 많았기에 KMP-01이 나오자 냉큼 3개를 샀다. 그리고 충격 받았다.

그녀는 MP3를 사용하면서 이런 기기를 본 적이 없었다.

알고 보니 세계 최초 MP3 플레이어였다.

‘도대체 민혁 씨는 어떻게 이런 제품을 기획할 수가 있었을까?’

안지연은 그때야 최민혁이 일반 보통 남자, 아니, 어지간한 재벌 남자와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왜 아버지가 굳이 어린 자신의 짝으로 최민혁을 선택했는지 알았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최민혁과 연락이 뜸해졌다.

차라리 정략결혼이라는 명분으로 최민혁을 압박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세상 무서울 줄 모르는 남자 최민혁을 어떻게 해서라도 길들이고 싶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아버지 안건민 회장 태도다.

처음에는 정략결혼을 밀어붙이나 싶었는데, 요즘은 뜸했다.

차라리 안건민 회장이 강제로 최민혁 실장을 만나라고 했으면 했다.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내가 남녀 관계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할 문제다.”

그녀가 말을 반복할 필요가 없었다.

오랜만에 식사를 같이 하던 오빠 안재운이 먹던 밥을 뱉어내고 말았다.

그는 계속 기침을 하면서도 안건민 회장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민망한 안건민 회장은 냉큼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기가 차네. 아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빠가 저러는 것일까?’

한국에서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아빠의 태도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안지연은 결국 스스로 최민혁에게 계속 전화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때 끼어든 사람이 있었다. 바로 고등학교 선배로 지금은 한국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장준석 선배였다.

장준석 선배와는 고등학교 시절에 선후배로 동아리 모임에서 만났다. 그는 어지간한 연예인 못지않은 외형에, 만능 스포츠맨이다. 성적도 최상위라서 한국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와는 고등학교 시절에 연인처럼 가깝게 지내기도 했다.

장준석이 잘 다니는 한국대에 휴학계를 내고 갑자기 미국에 어학연수를 간 것은 유학 때문이다.

그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안지연의 집안에서 나온 유학 이야기를 들은 후에 사전에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안지연 입장에서는 장준석의 행동은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덕분에 얼마 전에 어학연수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장준석 선배가 계속 만나자는 연락을 해오자 고민했다.

얼마 전에는 이원여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준석 선배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주변 지인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다.

만약 최민혁을 알지 못했다면 정말 기뻐했을지도 몰랐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안지연은 장준석이 좀 낯설게 느꼈다. 이유는 잘 몰랐다. 그녀는 그래서 시간을 좀 달라고 부탁했다. 알았다고 하며 떠난 장준석은 여전히 그녀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계속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그녀는 그때서야 선배 장준석이 자신을 정말 사랑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돈을 좋아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아니, 본심은 차라리 장준석과 관계를 끊고 싶었다.

그녀는 그래서 최민혁에게 계속 전화를 건 것이었다.

안지연은 최민혁 허락을 받자 장준석 선배에게 전화해서 공항에서 보자고 약속했다.

그녀는 장준석 선배가 환호하는 것을 봤지만,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 최민혁을 보자 자기 마음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민혁 씨, 정말 실망이에요.”

감정이 듬뿍 담겨 있는 말에 최민혁이 오히려 크게 당황했다. 그는 미국에서 해야 할 일정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던 것이다.

“제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그래요.”

“아무리 그래도 만나는 여자에 대한 기본 매너는 있어야 하잖아요.”

그도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그녀가 한 전화 10통 중에 받은 것은 고작 1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기 내심을 밝히지도 않았다.

“미안해요.”

그는 계속 애교를 떠는 안지연의 모습이 오히려 어색하기만 했다.

아니, 뒤늦게야 안지연이 자신의 자존심을 모두 다 내놓은 것을 깨달았다.

‘…이건 곤란해.’

사실 두 사람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일방적인 관계가 되어서 안지연이 실연의 아픔을 겪으면 그건 좀 곤란했다.

안건민 회장이 그걸 알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던 것이다.

아니, 최민혁은 안건민 회장이 무섭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담스러운 것은 또한 사실이다. 안 그래도 좁은 인맥을 넓혀야 하는데, 굳이 그나마 아는 지인과 원수지간이 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적당히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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