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61화 (361/1,021)

#361.

“그래요. 까짓것 제가 크게 양보해서 대당 2만 원으로 합시다. 아, 그 밑으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권 실장님도 이걸 인정하셔야 해요. 그리고 계약금으로 300억은 주셔야 합니다.”

선심을 팍팍 쓰는 듯한 최민혁.

처음에 협상 금액이 3만 원부터 시작했다면 2만 원 이하로 결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작 금액이 5만 원이라서 권태성 실장도 반박하지 못했다.

심술이 가득한 최민혁 실장의 얼굴을 봐서는 지금까지 한 이야기도 다 엎어서 다른 금액을 부르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그런데 대당 특허료 2만 원도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었다.

당장 이 시점에서는 얼마 되지 않지만 MP3 플레이어 매출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는 그 규모가 산더미처럼 커진다.

권태성 실장도 여기서 괜히 더 최민혁 실장을 자극할 바에야 일단 순순히 수긍했다. 대신 다른 옵션을 걸고넘어졌다.

“…대신 다른 멀티미디어 제품에도 같이 적용하겠습니다.”

하지만 최민혁은 냉큼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건 좀 다른 문제에요.”

권태성 실장은 ‘그건 좀 다른 문제’란 말에 몸을 움찔 떨었지만, 왠지 반박하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협상안으로 내놓은 금액이라 봤다.

그리고 2만 원대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충분히 포용할 금액이다.

실제로 MP3에 들어가는 부품 단가를 감안하면 여전히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곧 법무 팀이 나서서 특허료 계약 문건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가서는 계약이 더 어려워질 거야. LC 전자 같은 다른 대기업이 나서기 전에 먼저 사전 정지 작업을 할 필요가 있어.’

최민혁 역시 오성 전자와 특허료 계약을 진행한 것에 크게 만족했다. 그 역시 차라리 사전에 특허 관련해서 가이드라인을 정해놓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내부 검토는 더해봐야겠지만 이 정도 선이 좋을 것 같아.’

오성 전자에 일방적으로 많은 특허료를 걸 수 없는 이유는 협상할 기업이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도 고려해야 하므로 무리한 특허료를 책정할 수는 없었다.

일단 오성 전자와 협상이 된다면 다른 기업도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거부하기는 어렵다. 당장 오성 전자와 경쟁을 해야 하니까.

‘어차피 다른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과도 협상해야 하니까. 소니를 비롯한 일본 대기업, 미국 대기업도 마찬가지잖아. 이걸 이용하면 LC 전자 쪽에 제안할 새 LCD 생산 협상도 쉽게 갈 수가 있어. 차라리 잘된 셈이야.’

* * *

임권수 부장은 KM 전자와 진행되는 특허료 협상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는 오성 전자가 이런 식으로 한 걸음 물러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오성 전자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것은 아니었다.

오성 그룹 윗선에서는 차라리 KM 전자를 압박하거나 협박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들 역시 권태성 실장의 특허 협상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KM 전자를 압박하다가 만약 최민혁 실장과 관계가 틀어질 경우다.

다른 대기업과는 달리 지랄 같은 최민혁 성격을 잘 아는 오성 그룹은 최민혁이 이번 일을 명분 삼아서 보복할 것이라는 모르지 않았다.

그때 가서는 최민혁이 특허료를 얼마나 부를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KM 전자는 이제 더 이상 망해가는 그 KM 전자도 아니었고, 어지간한 대기업보다 현금을 무지막지하게 들고 있는 기업인 것도 문제였다.

그 현금이 이젠 KM 전자와 벨린 투자 내에 쌓여만 가는 현금성 자산이 전부가 아니라 이제 KM 전자의 총 현금 보유액이 어떻게 되는지 누구도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특히 KMP-01 출시 덕분에 캐시카우가 늘어난 지금 시점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은행, 국세청, 증권 감독원, 검찰을 모두 다 동원한다고 해도 과연 최민혁 실장을 압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요즘 한국에 있는 대부분 은행장이 KM 전자 최민혁 실장실에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드는 상황인데, 과연 KM 전자를 굴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이게 오성 그룹 기획조정실의 검토 결과였다.

결국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에서도 최민혁 실장과 대립하는 것은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기획실 회식 자리에서 임권수 부장은 지금 상황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제가 아는 오성 전자인지 솔직히 의심스럽습니다. 고작 KM 전자 하나 제대로 압박할 수 없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

권태성 실장도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소주잔만 들이켰다. 다른 기획 팀 역시 다들 꿀 먹은 벙어리였다.

이번 일 덕분에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에서 말이 많이 나왔다.

특히 이번 일을 담당했던 직원에 대한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당장 잘리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회사 생활이 생각보다는 더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반골 기질이 다분한 임권수 부장은 기획 팀을 대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 불만을 토로했다.

“싸움을 해보지도 않고, 이렇게 꼬리를 마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차라리 한판 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MP3 플레이어 특허였다면 상관이 없을 거야. 하지만 원천 특허 때문에 안 돼. 이미 우리 쪽의 다른 계열사 쪽에서도 검토에 들어갔는데, 엮인 쪽이 너무 많아. 당장 우리 오성 전자 내에서도 말들이 나오고 있으니까.”

그랬다.

몰랐으면 넘어갔을 일이다. 실제로 인생 1회차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최민혁이 MP3 관련 특허를 다 들고 있었다. 그 특허권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소송을 건 경우와 상황이 전혀 달라진 것이었다.

“…혹시라도 자기 사업부 쪽에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해서 최민혁 실장과 대립을 반대하는 겁니까. 차라리 그냥 정략결혼이나 더 밀어붙이자는 개소리도 하고요?”

웃기는 사실은 다들 최민혁 정략결혼설을 지지하는 의견이라는 것이다. 이전에는 안건민 회장이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신의 한수라고 하는 소리도 있었다.

“임 부장도 잘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해?”

“하면 이대로 계속 질질 최민혁 실장에게 끌려가는 것을 두고 보자는 겁니까?”

“다른 대안을 찾아봐야지. 최민혁 실장을 싫어하는 최문경 부회장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고, 일단 직접적인 갈등은 자제하는 것이 좋아. 그게 그룹 윗선의 암묵적인 방침이니까.”

아이러니한 사실은 또 있다. 권태성 실장이 중간에서 계속 조율을 한 덕분에 사전에 이런 사실을 안 점은 오히려 높이 평가받았다.

만약 최민혁 실장의 정체를 몰랐다면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에서도 움직였을 것이고, 그때는 갈등이 극에 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였다면 최민혁 실장과 관계를 봉합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금을 소요해야 했을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권태성 실장은 굳이 서둘러서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그는 요즘 자다가도 무궁화 위성 퓨즈 사건의 악몽에 벌떡 일어났다. 꿈속에서는 무궁화 위성이 폭발한 것이다.

그는 이런 자잘한 일 때문에 최민혁 실장과 대립을 피했다.

“하.”

임권수 부장은 싸움하기 전에 벌써 꼬리부터 내리는 오성 그룹 반응에 기가 찼다. 그로서는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그는 KM 전자 덕분에 KM 그룹이 부상하는 것을 보자 질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소주를 연달아서 마신 후에 이를 악물었다.

‘씨팔, 나는 절대로 포기 못 해!’

* * *

임권수 부장은 결국 천경구 과장을 만나서 KM 그룹 최문경 부회장도 이 사실을 알고는 최민혁을 견제하도록 정보를 흘렸다.

“저, 정말입니까?”

“어, 우리 천경구 과장도 안 믿기지? 나도 기가 막힌다니까. 내가 아는 그 오성 전자를 다니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우니까.”

“아무리 그래도 설마 최민혁 실장에게 오성 전자가 꼬리를 만다는 겁니까?”

“아직 내가 한 말을 이해 못 하네. 오성 전자가 아니라 오성 그룹이야.”

“그건 정말 말도 안 됩니다.”

오성 그룹이 경쟁사를 죽이기 위해서 사용한 악랄한 방법은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폭력 조직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은행을 통한 자금 압박이나 아니면 제품을 베끼는 방법과 같은 교묘한 방식이다.

심지어 이 작업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루어진다.

자금, 인력, 기술을 이용한 이 압박에 어지간한 중견기업도 견디기 어렵고, 그건 대기업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오성 전자는 절대갑이었다.

그런 그들이 최민혁 실장이 무서워서 싸워보기도 전에 꼬리를 말다니.

천경구 과장은 아무도 자신 말을 믿지 않을 것 같아서 꼼꼼하게 질문했다.

임권수 부장도 짜증스러웠지만, 묵묵히 묻는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이건 내 의견이 아냐. 우리 권태성 실장 의견도 아냐. 오성 그룹 가장 윗선에서 나온 판단이야. 그러니 쓸데없는 의심은 말아.”

“정말 방법이 없는 겁니까?”

“어,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MP3 원천 특허의 원래 소유자는 다양했어. 프랑스의 톰슨 멀티미디어도 있고, 독일의 브라운 호퍼 연구소도 있어. 심지어 이탈리아의 시즈벨도 빼놓을 수가 없어. 아마 이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원천 특허를 가지고 협박을 할 놈들이야.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이 특허를 전부 다 한 손에 쥐고 있어. 그러니 어떻게 싸워?”

“…….”

천경구 과장은 한동안 술을 퍼마시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겠네.’

* * *

천경구 과장은 임권수 부장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사내 정치와 술수라면 알아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도 최민혁 실장에게 질려 있다는 것을 깨닫자 결국 안면이 있는 비서실 2팀장 민상수 부장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민상수 부장은 밑에 사람에게는 큰소리를 쳤지만 윗사람에는 꼬리를 마는 성격이다. 그는 천경구 과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일단 확인해 본 후에 곧바로 권재홍 비서실장에게 보고했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민상수 부장에게서 KM 전자와 오성 전자 사이에 진행된 특허료 협상을 듣고 나서는 한동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도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괜히 민감한 시기에 이런 정보를 가지고 미적거리다가 최문경 부회장에게 어떤 꼴을 당할지 알 수가 없어서 바로 부회장실을 찾았다.

“설마 권태성 실장이 이렇게 어이없는 계약을 진행하려 할지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도 과거 최민혁 실장에 대한 집착에 빠져 있을 때와는 달랐다. 그는 KMP-01의 충격적인 반응을 기억했다.

“오성 전자라고 해서 뾰쪽한 수가 없잖아. 만약 민혁, 그놈이 정식으로 소송을 걸면, 오성 전자도 MP3 플레이어를 생산하다가 공장을 멈추어야 해. 그런 꼴을 당할 수는 없겠지.”

“설마 최 실장이 그렇게까지 할까요?”

“민혁이 그놈이라면 그보다 더한 짓도 할 거야. 권 실장은 지난 일을 벌써 다 잊은 거야?!”

“그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성 전자라면 최민혁 실장을 최대한 견제하고, 압박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도대체가…….”

“아니, 어쩌면 우리가 민혁, 그놈을 너무 과소평가했을 수도 있어.”

최문경 부회장은 과거처럼 조카 최민혁 능력을 비하하지 않았다. 과거에 그는 콜린스 대박은 KM 전자가 가지고 있는 저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콜린스를 개발한 사람은 최구만 과장이었으니까.

‘난 민혁이 그놈이 KM 전자 과실을 잘 요리했다고만 생각했어. 그런데 KMP-01은 이야기가 좀 달라.’

그로서는 솔직히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민혁이 도대체 어떻게 KMP-01을 기획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이전에 유럽에 간 것도 MP3 원천 기술 매입 때문이었을 거야. 그 일도 지금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톰슨 멀티미디어 같은 곳에서 아무리 다급해도 특허를 팔 이유가 없잖아?”

“하긴 그렇게 생각하면 브라운 호퍼 연구소는 그들 특색이 있어서 넘어간다고 해도 시즈벨 경우는 정말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자들은 특허를 가지고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민혁이가 그놈들과 협상해서 특허를 매입한 것을 가볍게 생각할 수가 없어.”

“…….”

권재홍 비서실장은 굳은 얼굴을 한 채 MP3 관련 보고서를 다시 살폈다. 보고서만으로는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하나씩 읽어가다 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MP3 디코더 칩이나 OS는 또 어떻게 개발을 한 것일까?’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는 최문경 부회장은 흥분을 가라앉히기는 했지만, 속이 타들어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역시 부회장실에서 담배를 문 채 침묵했다. 돌아가는 상황이 아주 엿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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