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60화 (360/1,021)

#360.

MP3 폰이 나오자 음원 저작권 단체는 전국적으로 모여서 대책 회의를 했고, 오성 전자에 대한 압박을 시작했다.

심지어 이들 단체는 문화관광부를 압박해서 오성 전자와 LC 텔레콤을 상대로 MP3 폰 출시를 막았다.

실제로 이들이 움직여서 한 수단 중의 하나는 음원 공급의 중단이다.

이런 시민 단체의 움직임은 오성 전자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결국 오성 전자는 대안으로 저작권 보호 장치를 내장하고, 무료 파일은 3일 정도만 사용할 수 있도록 설정까지 했다.

저작권 단체는 고만고만한 업체를 건드리기보다는 오성 전자를 타깃 삼아서 투쟁으로 나서려고 한 것이다.

최민혁은 굳이 그런 진흙탕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서 굳이 홍보와 마케팅을 하지 않은 것이다.

다행인 일이라면 이번엔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

KM 전자는 오성 전자와 LC 텔레콤과는 달랐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중견기업 이미지가 남아 있는 터라 이들 음원 관리자 단체가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들 단체도 아직은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MP3가 자신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줄 것인지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당장 국내 모든 음반 대리점이 영향을 받겠지. 매출이 계속 하락할 테니까. 시간이 가면 결국 음반 대리점 중에 문 닫는 업체도 생길 거야. 아직 티가 나지 않아서 침묵할 뿐일 거고.’

최민혁은 혹시라도 있을 음반 업체의 반발 때문에 고민 중이었으니, 지금 권태성 실장 방문은 전혀 예상한 바가 아니었다.

깊은 사색에 빠진 최민혁.

그 모습에 권태성 실장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버럭 소리쳤다.

“MP3 특허 라이센스를 말하는 겁니다. 정말 모르고 하는 말입니까. 아니면 나중에 가서 MP3 관련 제품이 출시가 되고 나서 고소할 겁니까?!”

“아, 특허 말입니까?”

최민혁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아는 오성 전자는 새로 만들어진 시장에 뛰어드는 이들이 아니다. 오성 전자는 이미 중견기업이 시장을 만들어두면, 뒤에 슬그머니 뛰어들어서 그 시장을 먹는 기업이었다.

“벌써 오성 전자가 벌써 MP3 플레이어 시장에 관심을 둔 겁니까?”

“고작 3주 남짓한 시간 동안에 20만 대가 팔린 것으로 압니다. 후일의 외국 시장까지 고려하면 최소한 1,000만 대의 시장입니다.”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그렇게까지 시장이 확인된 것도 아닙니다.”

알고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얼렁뚱땅 넘어가려 한 말인지 권태성 실장은 최민혁의 의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 우리 오성 전자를 바보로 아는 것은 아니겠죠?”

“그건 아니에요. 다만 오성 전자의 보통 행보와는 달라서 하는 말이죠.”

“…후발 주자로 따라가는 것을 말하는 겁니까.”

“네. 오성 전자는 보통 그러잖아요. 중소기업이 고생해서 시장 만들면, 뒤에 슬그머니 뛰어들어서 싹 다 잡아먹죠.”

“KM 전자가 그런 고만고만한 중견기업입니까? 우리 오성 전자가 뒤통수치면 그냥 맞고 조용히 있는 기업입니까? 그런 일이 없었어도 이제까지 잘만 우리 오성 전자를 괴롭히지 않았습니까?”

“흠.”

최민혁도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권태성 실장도 바보가 아닌데, 이제까지 당한 일을 기억 못 할 리가 없었다.

오성 전자도 이미 콜린스 덕분에 크게 한 번 대였다. KM 전자가 또 자기만의 장벽을 쌓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우리 오성 전자를 계속 엿 먹인 분이 최 실장님 아닙니까. 최 실장님이 한 콜린스가 그 대표적인 제품입니다.”

“그렇습니까?”

최민혁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권태성 실장의 반응에 혀를 내둘렀다. 그 자신 때문에 오성 전자의 움직임이 아주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말린다고 해서 들을 것도 아니고, MP3 특허라.’

장기적으로 보면 오성 전자에도 특허 라이센스를 팔아야 한다. 당장은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MP3 원천 특허 라이센스를 말하는 것 같은데, 너무 성급한 거 아닙니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아직 MP3 관련 제품 시장이 이제 막 열리는 시점이에요. 이런 시기에 정확한 협상을 할 수 있을까요? 권 실장님은 최소한의 로열티를 내세울 거고, 저는 최대한의 로열티를 요구할 것 아닙니까.”

권태성 실장도 MP3 관련 원천 특허 소송이 끊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최민혁의 표정 봐서는 아예 작정한 것 같았다.

‘하긴 MP3 원천 특허 소유자인 톰슨 멀티미디어, 브라운호퍼 연구소라고 해도 소송을 걸 수도 있어. 심지어 시즈벨이라면 수천억을 요구하고도 남아.’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지금은 곤란해요.”

최민혁은 계속 내부적인 협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했다.

권태성 실장은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자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저도 내부적으로 이야기해 보죠.”

* * *

권태성 실장은 1차 협상을 통해서 최민혁 실장이 가진 꿍꿍이를 확인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아예 오성 전자를 작정하고 노린다는 것을 확신했다.

‘아니, 우리만이 아니야. 다른 대기업도 전부 다 해당이 되겠지.’

국내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특허료만 해도 수백억, 아니, 수천억이 넘는다. 아마 해외 기업까지 다 합치면서 천문학적인 금액일 터였다.

“…소름이 다 끼치네.”

임권수 팀장은 머리를 들지도 못했다.

“죄송합니다. 사전에 알았다면 핵심 특허 몇 가지는 우리가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그걸로 협상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인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최 실장이 그러지 못하도록 손을 썼잖아.”

“죄송합니다.”

오성 전자 기획 팀은 다들 권태성 실장에게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임권수 팀장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였다.

MP3 원천 특허 이슈는 KMP-01 판매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커진다.

오성 그룹 윗선에서도 이런 사실을 안다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대놓고 질책하지 않아도 인사 고과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 쉽게 말해서 앞으로 진급은 어렵다는 이야기다.

회의에 모인 이들은 새삼 최민혁 실장의 간교한 계획에 치를 떨었다. 그들도 뒤늦게야 자신들이 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권태성 실장은 이를 악물었다.

“일단 지금 협상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어. 필요하다면 다른 사업부 쪽에도 계속 자문해 봐. 플랜 A가 안 되면 플랜 B라도 마련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 * *

오성 전자 인력풀이 멍청한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난다 긴다 하는 인재들이다. 다만 이들은 원천 기술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취약했다.

그나마 오성 전자가 미는 제품이라면 관련 특허를 출원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MP3처럼 세상에 전혀 없던 물건의 원천 특허를 볼 수 있는 시야는 그렇게 좋지가 않았다.

그건 오성 전자 기획 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미 익숙한 항로를 다듬는 작업은 잘해도 아예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능력은 취약했다.

나름의 노력을 해봐도 새로운 답을 찾지 못했다.

권태성 실장은 뒤늦게야 MP3 관련 특허가 막상 자신이 제품을 사용해 봐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KMP-01이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면 그 의미를 몰랐으리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덕분에 최민혁과 다시 만나 2차 협상을 하면서도 최민혁 눈치를 계속 봤다. 이제까지는 우려였지만 최민혁 태도만이 아니라 MP3 원천 특허 가치를 봐서는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특허료는 어느 정도를 생각합니까?”

“아직 내부적인 검토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검토는 언제 끝나는 겁니까?”

최민혁 실장은 예상대로 또 딴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건 저도 확신할 수가 없어요. 이 MP3가 응용되는 분야가 생각보다 광범위하더군요. PDA를 비롯한 모바일, 심지어 자동차 산업에도 적용됩니다.”

“…이 자리에서는 답을 해주지 않으실 겁니까?”

최민혁은 피식 웃으면서 일단 전화로 조성돈 팀장을 호출했다.

조성돈 팀장은 이미 이런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MP3 관련 특허를 가져왔다. 칩, 소프트웨어, 디자인, 기구를 포함한 모두 2,000건이 넘는 특허 목록이었다.

최민혁조차 고개를 갸웃했다.

“…2,000건이 넘습니까?”

조성돈 팀장도 곤혹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임기석 부장이 실장님 지시를 받아서 계속 특허를 매입한 덕분입니다.”

“그런가요?”

그도 혀를 내둘렀다. 자신이 지시를 내리기는 했지만, 적당히 하라고 한 적은 없었다. 고지식한 임기석 부장은 지시받은 대로 MP3 관련된 특허를 죄다 매입했다.

그중에는 생각도 못 한 특허도 제법 있었다.

“…….”

권태성 실장과 같이 간 오성 전자 법무 팀은 구체적인 특허 목차를 확인하면서 눈살부터 찌푸렸다. 무려 2,000건이 넘는 MP3 특허에 질린 것이었다.

오성 전자 역시 한 해에 수많은 특허를 출원하기는 한다.

하지만 단일 품목으로 이렇게 많은 특허를 내놓은 오성 사업부, 아니, 오성 계열사는 흔치가 않다.

심지어 아직 시장도 만들어지지 않은 영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오성 전자 법무 팀은 이 특허를 피할 방법이 있나 고민했지만, 대안은 없었다. 권태성 실장 시선에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권태성 실장은 특허 목차에 혀를 내두르는 최민혁 실장에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설마 MP3 시장을 KM 전자 혼자 다 먹겠다는 것은 아니겠죠?”

최민혁은 생각도 못 한 특허 목차를 체크하면서 비아냥거리는 권태성 실장 태도에 쓰게 웃고 말았다.

“그건 아닙니다. 이 특허 문제는 교통정리를 할 겁니다. 고생해서 개발한 겁니다.”

“그러면 다른 기업에도 기회를 주실 겁니까?”

“당연하죠. 다만 우리가 투자한 것이 있으니, 공짜로는 곤란합니다.”

“…특허료를 지금 이 자리에서 정할 수 없다면 대략 어느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까?”

“특허료라…….”

최민혁도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민했다. 대충 그린 그림은 있지만 아직 확실히 정한 바는 없었다. 그 역시 오성 전자가 이렇게 적극 나설지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굳이 이 일을 오래 끌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MP3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사실 이 특허 리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원론적으로 특허료를 계산하면 답이 안 나오겠죠. 마구잡이로 특허료를 책정해서 MP3 산업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대당 특허료를 10만 원씩 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10만 원’이란 말에 권태성 실장도 움찔 몸을 떨었다. 그가 아는 최민혁 실장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오성 전자 법무 팀 직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보자 피식 웃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MP3 특허 풀 전체를 라이선스화할 생각입니다. 특허료는 대당 5만 원 정도가 어떨까 싶습니다.”

“…5만 원이라.”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고 권태성 실장은 주장하고 싶었지만 자신 앞에 놓인 2,000건이 넘는 특허 리스트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국내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나온 MP3 관련 모든 특허는 이 특허 풀 안에 거의 다 담겨 있었다.

5만 원이라고 해서 무조건 작다할 수는 없었다.

당장 MP3 플레이어 특허만으로 1~2만 원 가치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권태성 실장은 최민혁의 두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한 채 별다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실장님도 제조업 순이익이 낮다는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만약 대당 특허료를 5만 원으로 정한다면 우리 이익이 이 사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갑니다.”

그는 특허 리스트 보고서를 흔들면서 인심 썼다는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그건 알죠. 확실히 제조업이라는 한계가 있죠.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4만 원까지 해드리죠. 이 특허 풀을 전부 다 쓸 수 있습니다.”

“…4만 원도 너무 많습니다. 우리 오성 전자는 해외 시장까지 다 포함하면 2~3년 안에 적어도 5~6백만 대 이상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최민혁도 그런 점은 순순히 인정했다. 아니, MP3 산업이 보다 2~3년 빠르게 출발했으니,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좋습니다. 제가 많이 양보하죠. 3만 원으로 하겠습니다.”

“조금만 더 양보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실장님도 MP3 사업이 빠르게 커지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우리만 이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회사도 있습니다. 그런 규모를 좀 감안해 주십시오.”

최민혁은 마치 자신이 크게 양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툴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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