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62화 (362/1,021)

#362.

“그 MP3 말이야. 추가 생산을 하고 있다고 하던데, 문제는 없어?”

“MP3 생산 공장을 아예 따로 만들었습니다. 기존 신입 인력 321명 중에 일부를 그 공장에 할당해서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

최문경 부회장은 ‘321명’ 신입 사원에 대한 기억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다 떨거지라고 생각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최민혁이라고 해도 그들을 데려가서 고작 콜린스 생산에만 쓸 것이라 봤다.

그런데 느닷없이 신제품 생산 설비에 그들을 투입할지는 몰랐다.

그는 신입 사원이 교육 과정에서 보여준 그 모습을 떠올리자 치를 떨었다. 계속 머리를 굴리다가 한 가지 방안을 떠올렸다.

“가만, 아니, 저작권 단체에서는 이대로 눈뜨고 보고만 있어? MP3 플레이어 판매가 늘어날수록 음반 대리점 매출이 격감할 텐데?”

“당장은 눈에 띄는 변화가 없습니다. 애초에 MP3 사용자는 음원 CD 자체를 사들이지 않으니까요. 이 시점에서 KM 전자를 공격할 명분이 없습니다. 더욱이 KM 전자가 오성 전자 같은 대기업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최민혁 그놈이 오성 전자보다 더 위험이 된다는 것도 몰라?”

“아무래도 KM 전자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막을 잘 모르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내막을 알아도 문제다. 지금 당장은 KM 전자를 걸고넘어지기 어렵다. 오히려 그랬다가는 일반 시민의 따가운 눈총만 받는다.

“쯧.”

최문경 부회장은 혀를 찼다. 그가 보기에는 지금이 그들에게 최고의 기회였다. 지금이라면 KMP-01 판매를 막아설 수가 있기 때문이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최문경 부회장 눈치를 봤다.

“불법 MP3 파일이 탑재된 기기도 아닌데, 생산 자체를 막기는 힘든가 봅니다. 만약 오성 전자가 MP3를 출시했다면 어느 정도 행동이 가능하지만, KM 전자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렇겠지.”

지금은 KM 전자와 오성 전자의 덩치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사업은 장난이 아니다.

초기 반응이 좋다고 미친놈처럼 달려들 수는 없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면서 손을 써도 늦지 않다.

하지만 그는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었다.

‘최소한 민혁이 이놈이 무슨 생각인지 알아봐야겠어.’

답은 간단했다.

직접 만나서 물어보면 된다.

문제는 조카 최민혁이 과연 순순히 대답할 것 같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얼마 전에 아버지 최용욱 회장이 한 이야기를 떠올렸고, 최용욱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최용욱 회장은 말이 곱지가 않았다.

[…갑자기 웬 전화냐?]

[아니, 아들이 아버지에게 전화하는 것도 이상합니까?!]

[흠, 아니다. 알겠다. 괜한 소리 말고, 왜 전화한 거냐?]

최문경 부회장도 고루한 아버지 태도에 화가 났지만 참았다. 지금 아버지와 싸워서 이득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전 골프장에서 제수씨 이야기하셨는데, 이번 기회에 같이 식사나 했으면 합니다.]

최용욱 회장은 장남이 정미선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안다. 그는 장남 제안을 아예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 제안을 가볍게 생각할 수 없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네. 아버지 이야기 듣고 나서 많이 생각했는데, 이대로 둘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민혁이를 집안으로 들여온 것은 저 아닙니까. 그러니 이번 기회에 제수씨와 함께 초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의도는 잘 모르겠다만 그게 맞는 일이지. 나야 나쁜 것이 없으니, 일정은 내가 정하거라.]

[알겠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전화를 끊고 나서는 심호흡부터 했다. 그 역시 좋아서 한 전화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미선을 끌어들이면 최소한 최민혁과 이야기를 쉽게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권 실장, 들었지?”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내가 직접 갈 테니, 문제가 없도록 해. 아, 영화 찍는다고 했으니, 나머지는 자네가 알아서 해.”

“…알겠습니다.”

* * *

영화 ‘하이에나’는 이제 한창 막바지 작업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최민혁이 한 협박 때문에 영화 앞부분 일부를 다시 찍어야 한다는 번거로운 점이 있었지만, 나머지는 순항했다.

특히 최민혁이 투자한 자금 덕분에 영화 촬영에 별다른 불협화음도 없었다.

하지만 심진모 감독은 정미선 눈치 때문에 영화 촬영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주연 최재현 역시 정미선을 황녀 대우하듯이 조심스럽게 찍었다.

그 덕분에 영화 ‘하이에나’ 이미지는 많이 변질되어서 조금 이상하게 변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오히려 이런 변화 덕분에 영화가 로맨틱하게 변했다.

남녀 모두 영화를 부담 없이 볼 수 있을 정도로 변해 버렸다.

‘잘될지 모르겠네.’

하지만 심진모 감독과 최재현 두 사람은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들 역시 KM 전자의 행보를 유심히 본 덕분에 KMP-01이 대박 친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이왕 하는 김에 KM 전자 측에 요청해서 광고 계약했다.

영화에 KMP-01을 은근슬쩍 집어넣어서 수정한 것이었다.

덕분에 정미선은 공주 대우를 받으면서 영화를 찍었다.

그녀는 그 흔한 스트레스도 받지 않아서 오히려 얼굴이 활짝 폈다.

심진모 감독은 오늘도 식은땀을 닦으면서 정미선 눈치를 봤는데, 걱정했던 대로 갑자기 영화 촬영장 근처로 몰려오는 차량 때문에 깜짝 놀랐다.

혹시 최민혁 실장이 방문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허겁지겁 뛰어갔다.

역시 차량에서 내린 이는 최고급 양복을 걸친 슈트 군단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이 경호원과 수행원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최민혁 때문에 KM 전자 고위 경영진 얼굴을 익혀 두었다.

“…최문경 부회장님?!”

“심진모 감독님입니까. 반갑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정중하게 심진모 감독 손을 잡았다.

“아, 네, 바, 반갑습니다. 혹시 오늘 여기에 방문하신 것은…….”

“제 제수씨가 영화 찍는다고 고생하는데, 한번 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 그렇죠.”

심진모 감독은 크게 당황했다. 일전에 다양한 사람이 촬영장을 찾았지만, 최문경 부회장 일행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심지어 가져온 밥차 규모도 컸다. 여기 촬영장 스텝이 다 먹고도 꽤 남을 정도였다.

그는 최민혁 실장을 만났을 때보다 더 큰 부담을 느꼈고, 냉큼 정미선이 쉬고 있는 차량에 최문경 부회장을 안내했다.

정미선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차량에서 쉬다가 나왔다.

촬영장 스텝은 최문경 부회장이 가져온 밥차에서 최고급 호텔에서 만든 음식을 보면서 탄성을 토하고 있었다. 그들은 뒤늦게 정미선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했다.

정미선은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한 일이지만 정도가 심한 모습에 혀를 내두른 채 최문경 부회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그녀도 최문경 부회장 앞에선 말을 더듬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최문경 부회장은 여전히 다가가기 힘든 존재였다. 하지만 오늘 최문경 부회장은 과거 그 모습이 아니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오히려 호탕한 웃음을 지으면서 편하게 말했다.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지난 일을 덮으려고 노력했다.

“제가 일이 바빠서 제수씨를 챙겨주지 못했네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말도 반 공대였다.

정미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도 최문경 부회장의 행동을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도 되는 양, 입을 열었다.

“이번 주 금요일에 가족끼리 같이 식사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제수씨도 바쁘지 않다면, 같이 그 자리에 참석했으면 합니다.”

정미선은 부담스러웠지만 차마 겉으로 내색하지는 못했다.

“아, 무, 물론이죠. 하, 하지만 괜히 제가 끼어들어서 분위기만 해치는 것이 아닐까요?”

“과거 일 때문에 서먹서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언제까지 가족끼리 그럴 수는 없어요. 지금이라도 화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음, 아, 알았어요.”

“그럼 꼭 오는 걸로 알겠습니다.”

“하아, 그렇게 할게요.”

그녀도 그 고루한 최문경 부회장이 저렇게 저 자세인데, 매정하게 거부할 수는 없었다. 다른 것을 떠나서 최민혁 때문이기도 했다.

‘참, 민혁이가 눈치 볼 필요가 없다고 했지?’

하지만 이 일은 민혁이 말대로 할 수는 없다.

가족끼리 남처럼 평생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최씨 일가 가족 구성원이 되는 것은 마음 깊숙이 숨겨둔 소망이기도 했다.

다만 그녀는 최문경 부회장이 자리를 떠난 후에 냉큼 아들 민혁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 있었던 일을 밀고했다.

[민혁아, 미안하다. 나 때문에 괜한 일이 만들어나 싶어.]

하지만 최민혁은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밝은 어조로 툴툴거렸다.

[그런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첫째 큰아버지 성격은 뻔하니까. 그냥 가족 식사 모임 초대받았다고 간단하게 생각해요.]

[그러니?]

[복잡한 사정은 엄마가 몰라도 돼요. 그냥 가서 식사 잘하면 됩니다. 그쪽에서 챙겨주면 그건 그냥 받아들이면 되고요.]

[그래, 알았다. 그런데 정말 고맙구나.]

[뭘 그런 소리를 다 하고 그래요.]

그녀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최문경 부회장의 행동을 곱씹으며 혀를 내둘렀다. 최민혁이 한 말을 잘 생각해 보면 뭔가 다른 일이 있나 싶었다. 다만 그녀도 그것까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녀는 파이팅 포즈를 취한 채 오늘도 영화 촬영에 집중했다.

“감독님, 전 준비되었어요!”

“네!”

심진모 감독을 비롯한 촬영 스텝은 정미선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촬영 스텝 일부는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툴툴거렸다.

“젠장 누가 감독인지 모르겠네.”

* * *

저녁 식사 가족 모임은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피아니스트도 초대했고, 정원 일부분은 마치 결혼식 행사장 같았다.

최용욱 회장 입가에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의 장녀 최영란, 차녀 최지연, 막내 최정수도 자리했다.

감옥에 간 둘째 최훈열 전무의 아내 김여정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최민수는 눈치를 보면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는 최민혁에 당한 것 때문에 정신적으로 꽤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셋째 최동영 상무와 그의 아내 조희정도 아들과 같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두 사람 역시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담소를 나누었다.

정미선은 이런 가족 분위기가 어색해서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최민혁이 보다 못해서 정미선 손을 잡은 채 정원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그를 알아본 사람은 다름 아닌 최용욱 회장이었다.

“오, 민혁이 왔구나. 막내 며늘아기야, 반갑다. 오늘은 편하게 이야기나 하자꾸나.”

“아버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정미선의 얼굴은 분위기 때문에 살짝 상기되었다.

사실 최병문이 있을 때 그녀가 가장 원하던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병문이 죽은 이후에 세상에서 아주 동 떨어지고 말았다.

한때는 죽고 싶었다.

정신적인 고통이 심했기에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았다.

그 대상 중에는 최용욱 회장도 있었다. 그때는 마치 악마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인자하게 변해 있었다.

그녀도 자리에 앉으면서 이 상황이 아들 민혁 덕분이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가족 대다수가 최민혁을 복잡한 눈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대상에는 최용욱 회장 역시 빼놓기 어려웠다.

“이번 KMP-01 출시 축하한다. 아주 제대로 터뜨렸더구나.”

“감사합니다.”

“아니, 이건 내 진심이다. 나도 KMP-01을 과소평가했어. 그렇게 대단한 물건인 줄은 몰랐다.”

“저 역시 비슷합니다. 시장 반응이 확실치 않아서 출시일을 계속 늦추었습니다. 이번 반응은 운이 많이 따랐다고 봅니다.”

“운만은 아니겠지. 아니, 설사 운이라고 해도 그건 역시 실력이야.”

하지만 KMP-01 대박은 절대로 운 따위가 아니었다. 최민혁이 이제까지 촘촘하게 사전 준비해 놓은 프로젝트의 결과였다.

만약 그중에 한 가지인 냅스트가 없었다면 이런 반응을 일으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 PC 통신 자료실에 있었던 MP3 대부분 출처가 바로 냅스트였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당연히 그런 점을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녀석, 이건 내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내가 아는 지인은 다들 같은 소리를 하니까.”

최용욱 회장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손자 최민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역시 KMP-01 시제품을 봤다. 다만 시장 반응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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