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59화 (359/1,021)

#359.

“지금 이곳에서의 경험이 앞으로 일할 기획실 업무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전 이런 기회를 준 최민혁 실장님을 존경합니다.”

천경구 과장으로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권우영의 반응이다.

최소한 기획 팀을 지원한 입장에서 기획 팀이 아니더라도 본사 쪽으로의 발령을 보통 원한다. 공장 설비는 아예 질색하는 것이 당연하다.

‘세뇌라도 받은 건가? 이, 무슨 사이비 신도도 아니고, 이게 뭐람…….’

“…….”

천경구 과장은 완전히 미친놈을 보듯이 권우영을 쳐다보았다.

보직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대기업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중견기업 티를 벗어난 KM 전자가 할 일은 아니었다.

그는 권우영의 푸념을 들으면서 혀를 내둘렀다.

“생산 중에 제품 불량이나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되지 않아?”

“회사 말로는 제품에 불만이 많다고 합니다. 수율이 너무 낮아서 KMP-01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천경구 과장은 전혀 예상도 못 한 반박에 깜짝 놀랐다. 생각도 못 한 정보를 얻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킨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정말이야?”

“네. KMP-01 수율 관련해서는 철저하게 보안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같은 질문은 사양해 주십시오.”

마치 육군 사관생도 모습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각이 진 대답.

단 한 치의 틈도 없었다.

얼마나 진지한지 질문을 한 천경구 과장이 오히려 미안했다.

“어, 미안.”

“사과 받겠습니다. 전 KM 전자와 최민혁 실장님에게 충성을 다짐했습니다. 그 어떤 의심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권우영은 겉보기와는 달리 진지한 얼굴로 KMP-01의 문제점을 늘어놓았다.

단순히 생산만이 아니라 부품 수급 일정 차질도 거론했다.

천경구 과장은 충격적인 사실에 수첩에 빠르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계, 계속해 봐.”

권우영은 천경구 과장의 행동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살짝 봤다가 KMP-01에 관한 소설을 말했다.

그런데 이 내용이 정말 그럴듯했다.

정확히는 권우영의 표정 연기가 압도적이었다.

그는 중간에 어떤 불만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다른 신입 사원도 비슷했다. 그들 역시 KMP-01을 보고 나서는 꽤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입 직원 중에는 PC 통신을 하는 이도 있었는데, KMP-01의 인기를 안 것이다.

천경구 과장은 스파르타식으로 신입 사원을 막 굴리는 KM 전자의 행보에 혀를 내둘렀다. 아니, 정확히 신입 사원을 부품처럼 사용함에도 보이는 사원들의 반응에 기가 찼다.

덕분에 KMP-01의 문제점을 쉽게 검토할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권우영의 태도였다. 그는 천경구 과장이 생산 라인 쪽으로 들어가서 KMP-01을 살필 수가 없도록 막았다.

권우영이 노골적으로 그가 KMP-01을 만지려고 하면 방해를 했기 때문이다.

웃기는 사실은 동행한 박재광 과장이나 이수연 대리는 막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 이거 만지면 안 됩니다. 지문 묻습니다.”

천경구 과장은 두 사람이 천경구 과장을 비웃으면서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입술을 악물었다.

‘이 새끼가 정말 너무하네.’

“…잠깐 보는 것도 안 돼?”

“안 됩니다!”

‘이게 정말 해보자는 건가.’

단호한 권우영은 아예 몸으로 천경구 과장 행동을 막아버렸다. 합기도 5단의 덩치가 몸으로 막 밀어붙이니, 천경구 과장은 질질 밀릴 수밖에 없었다.

“…….”

천경구 과장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다른 이들의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을 받은 이들은 다들 바쁜 걸음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심지어 박재광 과장은 배를 잡고 웃으면서 공장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사람 차별 너무 심한 것 아냐?!”

“죄송합니다만 전 원칙대로 할 뿐입니다.”

실제로 공장 라인 내에 외부 사람이 간섭할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KM 그룹 기조실에서 온 사람을 상대로 막는 것은 도가 지나친 것이었다.

천경구 과장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다른 직원을 호출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지시를 받아서인지 권우영 일에 끼어들지 않았다.

“죄송합니다만 이 공장 라인 출입 통제하는 책임자가 권우영 씨입니다.”

“아니, 신입 사원에게 무슨 책임자 자리를 맡깁니까?”

“공장 내부 지침이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자 권우영은 마치 로보캅처럼 철저하게 천경구 과장 동선을 막아버렸다. 그는 심지어 천경구 과장 팔목을 꽉 잡은 채 질질 끌고, 인천 공장 외각을 빙빙 돌기만 했다.

천경구 과장은 덕분에 MP3 관련 정보를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었다.

“야, 이거 놔!”

“정말 죄송합니다만 저도 지시를 받은 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권우영은 천경구 과장의 압박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비록 강준석에게 밀리기는 했지만, 그 역시 나름 자기 능력을 믿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역설적인 사실은 천경구 과장도 권우영의 앞뒤 꽉 막힌 태도에 그가 한 말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봐도 권우영이 거짓말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놈이 한 말은 최소한 거짓말은 아닐 거야.’

* * *

임권수 부장은 천경구 과장 연락을 받고 나서는 그가 조사한 내용을 받았다. 다만 그는 KMP-01 수율이 심각하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판매되는 KMP-01 중에 불량이 문제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천 과장, 이거 정말 맞아?”

“확실합니다. 제가 공장에서 직접 확인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소비자 반응 중에는 클레임을 거는 이가 거의 없어.”

“최 실장이 숨겼겠죠.”

“정말 그럴까?”

“상식적으로 이번이 첫 생산 아닙니까. 불량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아니, 오성 전자도 이건 피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임권수 부장은 꼭 오성 전자가 아니더라도 KM 그룹에 있을 때 다양한 불량을 접했다. 불량이 없는 제품은 있을 수가 없다. 그것도 생산을 막 시작한 시점이라면 말이다.

‘하긴 콜린스 역시 처음에는 불량이 제법 있었어.’

그는 그렇다고 천경구 과장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이미 최민혁 실장에게 크게 당한 터라 KMP-01 양산 문제점을 처음부터 다시 살폈다.

하지만 그는 뜻밖에도 KMP-01 불량과 관련해서 의미 있는 정보를 찾지 못했다.

결국 천경구 과장이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다른 의도로 보고했다는 의미다. 아니, 만약 천경구 과장이 잘못된 정보를 얻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천 과장 이 새끼가!’

차라리 천경구 과장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것보다 못 했다.

최민혁 실장에게 당한 일이 어디 한 번 두 번인가.

이번에도 최민혁 실장의 꼼수가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권태성 실장을 찾아가서 자신이 조사한 결과를 보고했다.

“생산 쪽은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받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또 최 실장이 수작을 부린 것 같습니다.”

“…확실한가?”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부린 수작이 어디 한두 번입니까. 이번 일도 그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천 공장 내의 보안도 안산 공장 못지않을 겁니다.”

“난 확실한 정보가 필요해.”

“상식적으로 이 KMP-01 크기나 부품 개수를 보십시오. 워낙에 들어가는 부품이 작고, 사이즈가 작아서 불량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권태성 실장 안색은 평소보다 더 굳어 있었다.

“…최 실장이 미리 알았다면 그럴 수도 있어. 후유, 골치네.”

“차라리 낸드 메모리를 이용해서 압박하는 것은 어떨까요?”

“도시바 측에서도 물량을 공급하고 있어. 아마 부품 수급으로 시비 걸면, 도시바 쪽으로 물량을 다 돌리고도 남아. 설마 그런 사실까지 몰랐어?”

“그게 사실입니까?”

“애초에 64MB 낸드 메모리는 도시바와 공동으로 연구를 시작한 일이잖아.”

권태성 실장은 이미 최민혁 실장에게 당한 적이 많아서 이번 일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콜린스 때와는 또 다르군.’

그는 결국 고민을 거듭한 끝에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다.

이번 KMP-01은 콜린스보다 더 많은 장벽을 쌓고 있었다.

오성 전자 아닌 그 어떤 회사라도 지금은 막대한 현금을 회사 내에 쌓아놓고 있는 KM 전자와 싸울 수는 없었다.

괜히 최민혁 실장을 공격했다가 오히려 그걸 빌미로 MP3 관련 특허 라이센스조차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최 실장이라면 그보다 더한 짓을 할 사람이니까.’

권태성 실장은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내는 것보다는 최민혁 실장을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잠깐 만나서 MP3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사이에 만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아, MP3 관련 협상이라면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어차피 다른 업체와도 만날 생각이었습니다.]

최민혁 실장 반응은 쿨했다. 그는 연락을 받자 언제라도 찾아오라고 한 것이었다.

* * *

다시 만난 최민혁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살도 좀 쪘고,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도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호신용 무술을 제법 익히면서 건강이 과거에 비할 바가 없이 좋아진 것이었다.

더욱이 큰 스트레스도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최민혁 실장과 반대편에 선 이들이었다.

당장 권태성 실장만 해도 최민혁이라면 치를 떨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민혁과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최 실장님,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 권 실장님은 잘 지내고 계시죠?”

“실장님 덕분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누가 보면 제가 오성 전자를 협박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잘 알면서 그러십니다.”

최민혁은 권태성 실장이 자기 눈치를 보는 것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그는 천경구 과장을 이용한 작업이 실패했다는 것을 금방 느꼈다.

‘그래서 이렇게 만나자고 한 것이겠지?’

다만 그는 아쉬울 것이 없었다.

애초에 MP3 플레이어 계획에서 핵심은 바로 MP3 원천 기술 특허였다.

아마 MP3 원천 특허에 대한 사실을 안다면 오성 전자 실무진 선에서도 고작 특허 정도라고 묵살할 확률이 높다.

그런데 MP3 플레이어가 시장에 나오는 경우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MP3 원천 기술이 돈이 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오성 그룹 경영진이 MP3에 관한 조사를 다시 한다. 그들이 MP3 원천 특허가 돈이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권태성 기획실장이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오성 그룹 사장단 회의에 끌려가서 또 갈굼을 당할 수가 있다.

그에게 이건 콜린스 사태보다 더한 악몽이었다.

최민혁은 권태성 실장 입장을 떠올리면서 달달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진짜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이건 너무 합니다. KM 그룹과 오성 그룹 사이에 혼사 이야기도 오가는 관계이지 않습니까.”

“혼사 이야기라? 금시초문입니다.”

“네?”

“남녀끼리 만난다고 해서 결혼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에요. 설마 남녀가 만나면 무조건 결혼해야 합니까?”

“그, 저, 아…….”

크게 당황한 권태성 실장은 설마 최민혁 실장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최민혁은 단호했다.

“자꾸 언론에서 떠드는 가짜 뉴스를 너무 맹신하지 마십시오.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

권태성 실장은 처음에 흥분했던 마음을 곧 가라앉혔다. 그는 이미 최민혁 실장이 정략결혼설이나 콜린스 매각설을 이용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했다.

다만 그걸 직접 최민혁 입을 통해서 확인했을 뿐이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너무하십니다!”

“혼사 문제는 신부 손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최민혁은 사실 권태성 실장의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어리둥절했다. 그는 권태성 실장이 직접 자신을 찾아올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진짜 걱정한 것은 바로 음원 저작권 단체다.

인생 1회차 기억으로 MP3와 관련해서 이들 업체가 단체로 움직인 적이 있었다.

‘바로 MP3 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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