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
조동길은 대리점 사장을 무시한 채 제품 표면에 적혀 있는 간단한 설명문을 읽었다.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가 않았다.
PC와 연결해서 MP3를 받은 후에 기기에서 바로 음악을 들을 수가 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정말 달랑 이것만으로 MP3 파일을 들을 수가 있는 겁니까?”
“잠깐만요.”
참다못한 대리점 사장이 결국 KM 전자 영업 팀에 전화를 걸려고 했다.
조동길은 황당한 얼굴로 대리점 사장을 말리다가 문득 가격표를 확인했다.
“가만 이거 가격이 29만 원이에요?!”
어른 손바닥보다 작은 제품 가격이 무려 30만 원에 가까운 것에 기겁했다. 아마 다른 회사 제품이었다면 관심을 끊었을 것이다. 그런데 콜린스를 만든 KM 전자 제품 인지도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대리점 사장이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낸드 메모리가 무려 64MB나 되었기 때문이다.
“메모리 용량은 진짜 크네요.”
화를 내던 조동길도 디자인과 무게에 깜짝 놀랐다. 그는 내심 갈등하다가 29만 원을 주고 MP3를 그 자리에서 구매했다.
그 자리에서 KMP-01을 꺼내 보았다.
손에 가볍게 들어가는 가벼운 무게와 두께에 혀를 내둘렀다.
디자인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블랙 톤의 고급스러운 외양은 소니 제품을 가볍게 넘어섰다.
특히 마감 재질은 다른 전자 제품과는 격 차이가 심했다.
“우와, 이거 끝내준다. 역시 콜린스를 만든 KM 전자는 뭔가 다르네요.”
대리점 사장조차 옆에서 혀를 내둘렀다. 그 역시 아침에 물건을 받기는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던 물건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 인간은 물건 팔 생각이 있는 거야? 최소한 설명은 해줘야 할 것 아냐!’
설명은 다름 아닌 손님인 조동길이 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서 MP3와 연결했다. 시리얼 케이블을 연결하는 것만으로 윈도우 상에 메시지가 떴다.
[KMP-01 툴을 내려받으시겠습니까?]
‘OK'를 클릭하자 다운과 동시에 자동으로 툴이 설치가 되었다.
설치 후에 화면에 뜬 것은 마치 유닉스의 'X-WINDOW'와 유사한 창이었다. 툴 외양은 윈도우95보다 더 보기가 좋았다.
더 놀라운 것은 프로그램 안정성이다. 그 흔한 버그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PC 툴에서 KMP-01을 완벽하게 관리했다.
심지어 이걸 데이터 저장 용도로 사용해도 되었다. 아직 64MB 낸드 메모리는 아직 시중에 나오지 않은 까닭이니, 이것만 해도 놀라운 것이었다.
KMP-01은 제품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응용 프로그램까지 포함해서 모든 면에서 완성도가 대단했다.
“…와아, 이거 장난 아니다.”
조동길은 입을 딱 벌린 채 KMP-01 툴을 살폈다.
그런데 굳이 자세한 사용법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시작과 동시에 간단한 튜토리얼 영상이 있었는데, 그냥 윈도우로 MP3 파일을 클릭해서 옮기기만 하면 되게 되어 있었다.
그는 사용자 설명서대로 자신이 냅스터 통해서 구한 MP3 파일을 카피했다. 3MB 기준이라서 17개 파일을 집어넣었다.
카피 속도는 제법 느려서 좀 기다려야 했다. 견디다 못해서 중간에 파일 전송을 끊었다.
조동길은 카피가 끝난 후에 이어 잭을 귀에 꽂고 파일을 플레이시켰다. 그저 중간에 있는 키를 밑으로 살짝 누르기만 하면 되었다.
곧 그의 귀를 가득 채운 것은 이어잭을 통한 부드러운 음악 소리다.
“대박!”
조동길이 경악한 것은 가벼운 무게 때문이다. 카세트 플레이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주머니에 넣고 폴짝폴짝 그 자리에서 뛰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원한 바로 그 MP3 플레이어였다. 일본의 흉기에 가까운 카세트 플레이어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은 물건이었다.
“…….”
대리점 사장도 신기한 눈으로 KMP-01를 살피다가 바로 KM 전자 쪽에 전화를 걸어서 추가 물량을 요청했다.
그는 물량을 요청하다가 지나가는 다른 사람이 모여들자 곧 수량을 바꾸었다.
[KMP-01 추가 물량 좀 부탁합니다. 20대, 아니, 100대를 보내주세요. 아, 까짓 것 그냥 200대로 합시다.]
* * *
조동길이 MP3 파일 공개 토론장에 올린 KMP-01은 처음에는 관심을 받지 못했다. 정확히는 이게 뭐하는 물건인지 몰라서다.
기존 카세트 플레이어에 익숙한 세대는 MP3 플레이어가 정확히 뭐하는 물건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동길은 꽤 열정적인 PC 통신 유저다. 그는 이번 사태를 일으킨 음반 업체를 미워했다. 그래서 그들 엿 먹으라고 이 MP3 플레이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추가했다.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입니다. 아니 국내 KM 전자에서 최초로 이 제품을 만들었지 뭡니까. 이거 진짜 대단합니다!]
뒤늦게야 다양한 의견이 달렸다.
[이거 진짜 MP3를 플레이어할 수 있는 기기 맞습니까?]
[아, 맞다니까요. 아니, 사진까지 올렸는데, 이해를 못 하네. 요즘 아침에 조깅이 즐겁다니까요. 이건 무게가 신용카드 3~4장 무게라서 뛰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음질도 죽여줍니다. 노이즈 하나 없다니까.]
[…….]
답은 없었다.
전혀 생판 보도 못 한 제품이 떡하니 나왔기 때문이었다.
웃기는 사실은 신제품이 나왔는데 그 흔한 광고 하나 없었다.
그냥 제품 하나만 떡 하니 던져 놓고 그게 다였다.
결국 견디다 못한 한 사용자가 KM 전자와 대리점에 전화를 걸었다. 간단히 대답만 듣고는 어이가 없어서 불만 댓글을 남겼다.
하지만 MP3 토론장을 찾은 다른 이들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그들은 열렬한 불법 다운로드의 맹신자였다.
사실 인터넷을 통해서 팝송 MP3 파일을 받아도 일상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갑자기 그 MP3 파일을 사용할 수 있는 기기가 나왔던 것이다.
[이거 아무래도 용산에 한번 찾아가 봐야겠어요.]
[전 KM 전자 대리점에서 샀습니다. 그런데 빨리 가야 할 거에요. 제가 간 대리점은 이미 물량이 다 팔렸다고 하니까.]
[제가 간 대리점도 전량 다 동났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용산 상가를 찾았는데, 거기도 분위기가 이상해요. 가는 곳마다 다 품절이니까요. 그래도 가까스로 하나를 구입했습니다. 아니, 제품에 만족해서 누나 주려고 하나 더 구입했죠. 제품 완성도는 최고입니다!]
* * *
서울 강남구 KM 전자 대리점 강주옥 사장은 어이가 없는 얼굴로 KM 전자 김윤형 대리를 쳐다보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이게 정확히 뭐하는 물건인지는 설명을 해줘야 할 것 아닌가?”
김윤형 대리도 당황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는 아침에 출근하자 받은 지시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그냥 대리점에 전시만 하면 됩니다.”
“허, 그 친구가 정말 너무하네. 아무리 콜린스가 잘나간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잖아. 그냥 물건 300개를 받으라니. 더욱이 이거 가격도 낮지가 않아. 다 해서 9천만 원 상당의 물건이잖아.”
“재고는 우리 회사에서 다 거둬들여 갈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인가? 혹시 꼼수는 아니겠지? 콜린스 끼워 넣기는 하지 마.”
“아, 걱정 마세요. 일단 매장에 전시만 해주세요.”
“허, 답답하네. 도대체 이 물건 용도는 뭔가?”
“MP3 플레이어입니다.”
“MP3 플레이어라니, 그게 뭔데?”
“카세트 플레이어 대응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
고개를 갸웃한 강주옥 사장은 더 크게 김윤형 대리를 구박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콜린스 사건 때에 괜히 무리하다가 안 좋은 꼴만 당했기 때문이다.
다만 KM 전자 영업 팀 행보가 너무 어이가 없었다.
“신제품으로 나온 것 같은데, 굳이 이런 식으로 할 필요가 있어? 최소한 홍보할 수 있는 뭔가 제공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상관없습니다. 안 팔리면 안 팔려도 괜찮으니, 그냥 전시만 해주세요.”
“알겠네.”
옥신각신하던 두 사람은 결국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다.
강주옥 사장은 곧 직원을 시켜서 출입구 쪽에 KMP-01를 전시했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온 이들은 의외로 KMP-01를 바로 알아봤다.
그들은 당당히 샘플을 봤으면 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강주옥 사장은 어쩔 수 없이 제품 하나를 꺼내서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잠깐 KMP-01를 만지다가 한쪽에 놓인 노트북에 연결하고는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말았다.
그들은 이미 PC 통신 MP3 토론 게시판에서 MP3 파일에 대해 알고 있어서인지 금방 KMP-01 가치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건 곧 뒤를 따라서 들어온 다른 고객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도 PC 통신 게시판 통해서 입소문을 듣고 이 대리점을 찾았기에 KMP-01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 바로 제품을 구입했다.
김윤형 대리가 대리점을 나가기도 전에 팔린 KMP-01 물량은 무려 20개에 이르렀다.
그런데 우르르 다시 몰려온 사람은 여전히 KMP-01을 찾았다.
[사장님, 여기 KMP-01 재고 있습니까?]
강주옥 사장은 잠깐 김윤형 대리를 붙잡았다. 그는 심각한 눈으로 대리점 안으로 들어온 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아차 싶었다.
“이봐, 김 대리, 저거 물량 더 못 받아?”
“아, 그건 안 됩니다. 초도 물량이 고작 2만 대 물량이라서 대리점마다 할당된 물량이 정해져 있습니다.”
“아 그 친구도 참, 솔직히 여기 강남 대리점이 어디 다른 대리점하고 같아? 300개 정도로는 안 돼, 적어도 1,000개 물량을 더 내놔.”
“그게 좀…….”
김윤형 대리도 머리를 긁적이면서 할당된 물량을 살피다가 어쩔 수 없이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물량조차 불과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다 동나 버렸다.
“김 대리, 천 개 더, 아니다, 기분이다. 이천 개를 보내줘!”
“아, 진짜 재고 없다니까요.”
김윤형 대리는 결국 도망가다시피 대리점을 떠나고 말았다.
강주옥 사장은 벌써 PC 통신 게시판 통해서 정보를 안 이들 때문에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문의 숫자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콜린스 하나로 그 난리를 치더니, 이번에는 MP3로 또 대박을 친 거야?’
* * *
영업 팀장 김부영은 최민혁 실장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크게 당황했다. 그도 조성돈 팀장 덕분에 뒤늦게 최민혁 실장이 뭘 걱정하는지 알아도 선뜻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국에 잠깐 갔다 오더니 태도를 바꾸어서 갑자기 KMP-01를 시장에 내놓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존 영업 직원을 총동원해서 부랴부랴 시키는 대로 했지만 이게 무슨 도깨비장난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경환 차장은 좀 달랐다. 그는 PC 통신 사용자이기에 최근 공개 자료실에서 일어난 사태를 잘 알고 있었다.
“부장님, 아마 실장님께서는 이 저작권 문제 때문에 고민했을 겁니다.”
“4대 PC 통신사가 공개 자료실에 있는 MP3 파일을 다 지웠다고?”
“네. 그것 때문에 지금 통신 동호회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습니다. 아니, 아무런 경고도 없이 그냥 다 삭제했으니까요.”
“음반 업체가 협박했군.”
“그렇지 않고서야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죠. 아마 실장님도 이 문제 때문에 출시를 늦춘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러면 지금은?”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일단 사용자가 이 제품을 보고 난다면 상황이 달라질 거라고 본 것 같아요.”
“…….”
김부영 부장도 그제야 혀를 찼다. 그 역시 국내 저작권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아예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본인조차 불법 프로그램을 PC에 깔아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도 최소한 홍보 팀이나 마케팅 쪽에는 이야기해야 할 것 아냐. 그쪽도 전혀 상황을 몰라. 갑자기 이러는 것이 어디 있어?”
“아무래도 음반 업체 눈치는 있으니까요.”
“그렇다는 이야기는…….”
그도 그제야 지금 상황을 깨달았다. 다만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소비자가 그 정보를 모르는데, 팔릴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 그래도 최소한의 홍보를 해야 할 것 아냐. 물건만 던져주면, 그 어떤 대리점 사장이 좋다고 하겠어. 제품 팔 생각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잖아.”
그런데 마침 걸려온 전화. 서울 강남구 미래 대리점의 강주옥 사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