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52화 (352/1,021)

#352.

“국내 시장이라…….”

“홍보나 마케팅이 없이 대리점을 통해서 뿌리는 겁니다. 그렇게 한다면 MP3 사용자가 알아서 입소문을 낼 겁니다. 그런 전략이라면 음반 업체도 우리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협상이 된다면 우리가 유리합니다.”

사실 MP3 플레이어 자체는 저작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MP3 파일을 돈 주고 샀다면 문제가 생길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음반 업체가 음원을 MP3 형태로 팔지 않고 있다.

주로 파는 것이 카세트테이프나 CD와 같은 형태였다.

이들 업체 입장에서 과연 프로그램인 MP3을 사용자가 돈을 주고 살까 하는 의구심이 있다. 대기업에서 복제 방지 장치를 넣어도 소용이 없었다.

따라서 지금 돌고 있는 MP3 파일 대다수가 불법 파일이다.

그 불법 파일을 플레이할 수 있는 장치인 MP3 플레이는 논란의 소지가 된다.

민혁이 기억하고 있는 MP3 플레이어가 수억 대씩 팔리고, 정식 MP3 음원이 흔한 세상과는 상황이 좀 달랐다.

“흠.”

최민혁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크게 반박하지 않았다. 인생 1회차가 그랬으니까. 아마 초기 판매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긴 국내 불법 파일은 일상이니까. 생각해 보면 국내 MP3 시장이 어느 정도 성공한 것도 그것 때문일 수가 있어. 그리고 실제로 시장에서 MP3가 나오면, 그때부터 음원 시장이 활성화가 될 수도 있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리다.

어쩌면 예상보다는 매출 자체는 크지 않을 수도 있었다.

후발업체가 이 MP3를 보고 달려들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되겠지.’

그런데 그 흐름 자체가 가지는 영향력이 있었다.

바로 MP3 플레이어가 흐름 자체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결국 누군가 손해를 보면서 MP3 플레이어를 시장에 출시해서 일단 방아쇠를 당겨야 했다.

이런 일이 싫었던 최민혁은 한 방 크게 해먹으려고 했다.

그래서 질질 끌었으니까.

문제는 지금과 같은 방식이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일단 저질러 놓고, 음반 업체와 협상을 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런데 윈도우를 보더라도 초반에는 대박을 치지 않았다.

‘역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까?’

최민혁은 힐끗 다른 사람 의견을 들어보았다. 그런데 대다수가 조성돈 팀장 의견에 수긍했다. 그는 묵묵히 의견을 들은 후에야 입을 열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겁니다.”

조성돈 팀장도 순순히 인정했다.

“이해관계가 대립하니까요. 특히 나라별로 저작권 문제가 다릅니다. 그 부분은 해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국내 시장을 시작으로 그 부분을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그런 문제를 협상할 여지는 많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굳이 계획한 마케팅이나 영업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제품을 판매해서 음반 업체 반응을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시장에 나온 MP3를 본다면 우리 KM 전자에 대해서 갑질을 일삼지는 못할 겁니다. 특히 한국 시장이 좋은 테스트 배드가 될 겁니다.”

최민혁도 인생 1회차 기억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었다. 같은 흐름이지만 다른 부분은 있다. 바로 원천 기술 자체를 이미 자신이 다 확보한 것이다.

‘필요하다면 베끼기 업체를 상대로 일단 소송을 걸면 되니까.’

다만 또 다른 리스크를 떠올렸다.

‘하긴 자칫하면 이번 일이 우리 큰 아버지에게 반격의 기회를 줄 수도 있어. 미적거리기보다는 차라리 먼저 공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런데 낸드 메모리 공급은 문제가 없는 거죠?”

“일단 오성 전자에게 확인한 바로는 40~50만 개 정도는 당장에라도 공급이 가능합니다.”

“오성 전자 반응이 빠르네요.”

“그쪽에서도 64MB 낸드 플래시 가능성을 높이 보고 있습니다.”

“MP3 양산 문제는 어때요?”

최병연 팀장이 슬쩍 나섰다.

“양산을 준비하면서 확보한 공장에서 월 10만 대 정도는 생산할 수 있습니다. 초도 물량 2만 대는 이미 양산이 끝나 있습니다. 이미 모든 준비는 다 끝난 상황입니다.”

“새로운 OS 이미지는 문제가 없고요?”

“가장 단순한 보급형 모델인 KMP-01 모델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KMP-01은 작은 TN LCD가 들어가 있는 모델인데, 스위치 구성도 아주 간단했다.

최민혁도 MP3 플레이어에 이런저런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미적거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끼다가 진짜 똥 되니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미 판매 가능한 물량도 있고, 양산은 가능하다는 이야기군요. 그러면 이렇게 하죠. 지금 찍어 놓은 2만 대를 콜린스 대리점 통해서 판매하는 것으로 합시다. 대신 마케팅이나 영업은 없습니다. 일단 반응을 보고 나서 그다음 대응을 하는 것으로 하죠. 특히 음반 업체를 주시해서 사전에 시나리오별로 대응책을 마련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의 참석자 중에 반대는 없었다. 그들 중에는 최민혁이 왜 미적거리는지 오히려 불만인 이들도 있었다. 그와중에 이번 회의에서 오히려 지금까지 최민혁이 미적거린 이유가 드러났다. 그래서 다들 최민혁 실장을 다른 눈으로 쳐다보았다.

다만 다들 갑작스러운 지시에 회의에서 일어난 이들은 다급하게 움직였다.

갑작스러운 지시에 생각보다는 준비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최병연 팀장은 미국에 있는 오상현 과장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고, 다른 팀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도 예상과 달라진 일정에 뒤늦게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하지만 딱히 갑작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미 정식 판매를 위한 물량은 어느 정도 준비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최민혁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이전처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인생 1회차 시나리오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 지 이제 감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나도 할 만큼 했어. 이제 주사위를 던졌으니, 반응을 볼 수밖에 없어. 아마 우리 첫째 큰아버지는 이 KMP-01을 보는 것만으로 정신 줄을 놓을 거야. 그 틈을 이용해서 차세대 MP3에 대한 준비도 진행해야겠어.’

* * *

갑작스러운 최민혁 지시에 각 팀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판매를 위한 사전 준비를 다 끝내 놓았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오히려 최민혁 실장이 시간을 끌면서 나올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팀별로 리스크가 생각보다는 많았다.

특히 칩, OS, 하드웨어에 자잘한 버그는 많이 존재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민혁이 질질 끈 덕분에 그 문제를 완벽하게 보완했다.

다만 법무 팀은 음반 업체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에 대해서 철저한 준비를 시작했다. 내부적으로 저작권과 관련해서 자문하기도 했다.

제일 황당한 사람은 바로 크레이그를 비롯한 세 사람이다. 그들은 KMP-01 OS에 대한 포팅 작업과 동시에 양산 작업을 병행해야 했다.

벨린 소프트 입사와 동시에 월화수목금금금 생활을 해야 했다.

실리콘밸리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상황을 직면한 것이었다.

“아, 미치겠네!”

크레이그 행크스는 특히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작스러운 월급 인상이 공짜는 아닌 셈이었다.

이상현 과장도 어이가 없기는 매한가지다. 그는 갑작스러운 TN 타입의 KMP-01 양산 진행에 황당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는 프로젝트 일정 때문이 아니라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랬다가 저랬다 끝이 없어. 처음부터 그냥 계획대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는지.”

하지만 매사에 불만이 많은 이현탁 과장은 오히려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이번 일에 대한 성공을 확신했다.

“잘될 겁니다.”

오상현 과장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딱히 바뀐 것도 없는데,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이현탁 과장은 자신의 노트북을 슬쩍 보여주었다. 화면 안에 떠 있는 것은 PC 통신의 한 토론장 게시판이었다.

“이게 뭐죠?”

“당장 MP3 파일이 직면한 문제죠. 그런데 사용자 반응이 생각보다 맹렬해요. 이들 모습이 바로 KMP-01 판매 대수일 겁니다.”

“…….”

오상현 과장은 흥미로운 눈으로 PC 통신 게시판을 물끄러미 살폈다.

‘MP3 다운로드 반응이 장난 아니구나.’

* * *

연초에 국내 PC 통신 공개 자료실에도 MP3 음원 파일이 올라왔지만 그렇게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MP3 표준 자체가 개발된 것은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4대 PC 통신망에 올라오는 것도 개인끼리 파일을 주고받는 정도였다.

그런데 상황이 바뀐 것은 바로 미국에서 냅스트가 활성화되면서다.

특히 미국 대학을 중심으로 MP3 교환이 활성화되면서 국내에도 영향을 주었다.

국내 유저들이 팝송과 관련된 파일은 냅스트에서 받아서 PC 통신 공개 자료실에 올린 것이었다.

저작권 인식이 전혀 없는 국내 사용자는 이 파일을 이곳저곳에 다 퍼뜨렸다. 냅스트에서 도는 파일이 PC 통신망에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미국 팝송과 같은 파일이 중심이었지만 곧 국내 노래도 빠르게 올라왔다.

용산 전자 상가에서는 이 MP3 파일이 컴퓨터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MP3가 든 대량의 CD 파일을 작정하고 뿌렸다.

PC 판매할 때 옵션으로 끼워서 고객을 유혹한 것이었다.

이런 MP3 파일이 미국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퍼져갔다.

사실 이런 부분은 최민혁 인생 1회차와는 시기적으로 대폭 빨리 일어난 현상이었다.

MP3 음원 파일 문제가 무려 2년을 더 빨리 단축해서 일어난 것이다.

덕분에 용산 전자 상가에서 MP3 수백 곡이 포함된 CD가 음성적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결국 이 MP3 파일 저작권 침해 논란이 수면으로 부상했다.

한국 음반 업체는 즉각 이 문제를 가지고 관련된 용산 상가 업체와 4대 PC 통신을 상대로 법적 소송에 들어갔다. 그 다음은 4대 PC 통신이었다.

결국 4대 PC 통신은 공개 자료실에 MP3 파일을 모조리 삭제했다.

황당한 것은 PC 통신 이용자 반응이다. 그들은 MP3 되살리기 토론실까지 만들었다.

[아니, 개인끼리 하는 자료 교환도 문제가 되는 거야?!]

이 토론 게시판지기 조동길은 한국 PC 통신 본사까지 찾아가서 시위했다.

[갑자기 이러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제재를 하더라도 기회를 줘야 할 것 아닙니까? 설마 당신네 PC 통신이 아니면 MP3 파일을 구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실제로 방법은 많았다.

인터넷을 통해서 얻는 방식도 있다.

다만 다양한 형태의 국내 음원 파일을 구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조동길은 PC 통신 업체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에 분노했다.

그런 그가 용산 내의 대리점을 찾은 것은 TV 구입 때문이다.

입소문이 돌고 있는 콜린스를 한 대 사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거기서 본 것은 바로 세 가지 색 타입의 MP3이었다.

“이게 뭐죠?”

용산 콜린스 대리점주 안재갑도 난감한 얼굴이었다.

“콜린스 측에서 일단 샘플을 보내기는 했는데, 저도 잘 모릅니다.”

콜린스 영업망 통해서 받은 MP3 샘플은 고작 10개에 불과했다.

웃기는 것은 KM 전자 영업 팀 반응이다. 담당자도 약간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준 것이다.

[안 팔아도 되니까, 일단 전시해서 소비자 반응만 알려주세요.]

이게 다였다.

아니, 제품을 팔면서 그 흔한 팸플릿 하나도 없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제품을 훅하고 던져 놓은 것이다.

“사장님, 이게 뭐예요? 아니 제품을 팔면서 아무런 소개가……. 어, 가만 이거 좀 이상하네."

조동길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 다른 소비자라면 이 제품 가치를 바로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불법 MP3 파일을 컴퓨터 하드에 산더미처럼 가지고 있었다.

특히 팝송 경우는 파일 숫자가 수천 개는 넘어갔다.

간혹 걸어 다니면서 이 MP3 파일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제품은 없었다.

그런 조동길이기에 제대로 된 설명이 없는 MP3 플레이어 KMP-01 모델에 대해서 뒤에 간단한 설명만으로 그 의미를 파악했다.

“어라? 이거 정말 MP3 파일만 넣으면 플레이 되는 겁니까?”

“…그게 좀.”

“하, 사장님은 지금 이 물건을 팔 생각이 있는 겁니까?”

“팔기는 팔아야죠.”

“됐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