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41화 (341/1,021)

#341.

‘아무리 봐도 특별한 점은 없는 친구인데…….’

다들 침묵만 한 채 입을 다물고 있자 강준석은 부담스러워서 힐끗 민상수 부장을 쳐다보았다.

민상수 부장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저기 부회장님…….”

“아, 미안, 이거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딴생각만 한 것 같아.”

“아닙니다.”

“우선 술이나 한 잔 받게.”

최문경 부회장은 술 따라준다는 핑계로 일단 분위기를 전환했다. 그는 가벼운 호구조사를 시작으로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다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정말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삼수로 대학에 들어가서 학비 때문에 잦은 휴학을 했다. 그 덕분에 29살, 한국 나이로는 30살에 사회에 나왔다.

그나마 학벌과 성적이 좋아서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아도 과연 위로 더 올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강준석은 간단하게 대답하면서도 영문을 몰라서 눈치만 봤다. 그가 아무리 최민혁 눈에 들었다고 해도 KM 그룹 부회장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아니, 이런 상황 자체가 비상식적이었다.

도대체 신입 사원을 왜 부회장이 직접 불러서 술자리를 같이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그 기획안이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일까?’

최문경 부회장이 때마침 입을 열었다.

“자네도 최민혁 실장을 만났나?”

“아, 며칠 전에 봤습니다.”

“그래?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가 없을까? 아, 큰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민혁이 이놈이 내 조카라서가 아니라 사실 매사에 공격적이야.”

“아, 그게…….”

강준석은 그제야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아직 신입 사원으로 KM 그룹 내에 경영권 갈등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최민혁 실장 첫인상이 워낙에 강렬해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민상수 부장의 따가운 눈총을 받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 친구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아니, 민혁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신입 사원을 만나러 안산 공장까지 내려왔겠나? 비록 내 조카이기는 하지만 KM 그룹 기획실장이야. 바쁜 친구라고.”

망설이던 강준석도 마냥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사실은 이번 신입 사원 교육 과정에 올린 기획안이 채택되었습니다.”

“기획안? 정확히 어떤 내용인가?”

집요한 최문경 부회장의 태도에 강준석은 잠깐 머리를 굴렸다. 최민혁 얼굴을 떠올리자 아차 싶었다. 자신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큰일이었다.

“그냥 미국에서 일어나는 IT 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낸 기획안일 뿐입니다. 대학 리포트처럼 짜깁기한 내용으로 특별한 점은 없습니다.”

“좀 볼 수가 있겠나?”

“네? 지금은…….”

민상수 부장이 슬쩍 나서서 기획안 카피본을 내놓았다. 정확히는 신입 사원 교육 강사를 통해서 챙긴 자료라는 점은 말하지 않았다.

“이거 맞지? 기획 팀 통해서 얻은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아, 네.”

최문경 부회장은 기획안을 받아서 냉큼 살폈다. 권재홍 비서실장도 옆에서 슬쩍 같이 확인하면서 확인했다.

두 사람 다 최민혁 실장이 워낙에 주의할 인물이라서 그가 인정한 기획안에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곧 인상을 찌푸렸다.

MP3도 그렇고, IT란 말 자체는 알아도 기획안 가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드문드문 언급된 부분은 간혹 IT 기사에서 나오는 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욱이 두 사람은 전공이 반도체 패키징 분야 쪽이라서 이 분야는 더 생소했다.

“…한번 설명을 해보게.”

강준석은 올 것이 왔다 싶었지만, 요식적인 설명만 쭉 이어갔다. 단순히 문맥 의미가 아니라 본인이 알고 있는 사실만 인용했다.

실제로 이 내용은 큰 의미가 없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다 빠져 있었다. 정확히는 강준석도 며칠 전에 그 의미를 알았고, 기획안에는 넣지도 않았다.

그러니 두 사람은 서로 곰곰이 생각한 후에 시선을 교환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저도 특별한 의미를 두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미국 IT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토대로 짜깁기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 다른 특별한 것은 없고? 아니 일테면 최 실장이 따로 한 이야기는 없어?”

그제야 상황이 정말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강준석은 잠깐 멈칫했다. 그는 자신이 마치 검찰에서 취조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최문경 부회장 앞이라서 내심을 말하지 않을 뿐이다.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아예 작정하고 거짓말을 시작했다.

“솔직히 이제 갓 졸업한 제가 아는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미국 IT 산업과 관련된 기사를 보고 적당히 짜깁기한 것에 불과합니다. 최민혁 실장님도 그런 점을 확인했습니다.”

“그게 다라고? 그런데 자네 기획안이 채택되었다고? 설마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절대 아닙니다.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제 학점도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닙니다. 솔직히 KM 그룹에 합격한 지금도 잘 믿기지 않습니다.”

구질구질한 이야기는 실제로 강준석 삶과 다르지 않았다.

프로필에도 그렇게 나와 있으니까.

거기에 강준석 연기력도 제법 괜찮았다.

할리우드 뺨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볼 만한 연기였다.

“알겠네. 오늘 이야기는 잘 들었어. 앞으로 KM 전자, 아니 KM 그룹을 위해서 열심히 해주게나.”

“알겠습니다.”

부담스러운 강준석은 도망치듯이 밖으로 나가 버렸다.

최문경 부회장은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권 실장, 자네 생각은 어때?”

“그게 좀…….”

“괜찮아, 말해봐.”

하지만 이미 최민혁 실장에게 지긋지긋하게 당해본 권재홍 비서실장도 막상 신입사원 교육을 간과했다가 석연치 않은 점을 보자 확답하지는 못했다.

최민혁 실장에게 그렇게 당한 경험 때문인지 촉으로 뭔가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막상 말을 하려니, 또 그게 뭔지 몰랐다.

코가 간질간질해서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이 짜증스럽기만 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강준석 그놈이 거짓말한 것 같지는 않아?”

“강준석이 거짓말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제 갓 입사한 친구지 않습니까. 설마 최 실장이 저런 친구에게 자기 비밀을 다 떠벌리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지.”

최문경 부회장도 막상 권재홍 비서실장을 믿을 수가 없어서 여기 안산 공장까지 내려왔지만 특별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때문에 강준석 기획안을 수십 차례나 확인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모르니까. 비서실 동원해서 최대한 이 기획안을 검토해 봐.”

최문경 부회장은 잔소리를 더할까 하다가 권재홍 비서실장 얼굴을 보자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 직접 와서 보고서야 뭔가 좀 찜찜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일을 잘 보면 별것 아닌 것 같더니 결과적으로 나중에 가서 뒤통수를 거하게 맞았던 것이다.

“권 실장, 잘 좀 하자!”

“…알겠습니다.”

민상수 부장은 한숨을 내쉰 채 조용히 두 사람 뒤를 따랐다. 그는 자신이 신입 사원이 낸 기획안을 검토해야 하는 이 상황이 정말 어이가 없었다.

‘미치겠다.’

* * *

최민혁은 최문경 부회장이 안산 공장에 내려가서 강준석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혀를 찼다.

“준석 씨가 보고했다고요?”

조성돈 팀장도 난감했다.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갑자기 부회장이 공장까지 찾아와서 자신을 불렀으니, 당황할 만한 상황입니다.”

“우리 큰아버지가 진짜 끝내주죠?”

“설마 신입 사원을 직접 만나서 일일이 물어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 분이에요. 집요한 면만 놓고 보면 역대급 스토커죠.”

인생 1회차 기억을 떠올린 최민혁은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물론 그도 감옥에서 나온 후에 잘나갈 때면 최문경 부회장이 악착같이 자신의 뒤를 캐고 다녔다.

그렇게 모은 약점을 이용해서 계속 자신을 압박했다.

흔히 드라마에서 나오는 조폭 이야기보다 더 끔찍한 일이다.

조성돈 팀장도 평소와는 달리 걱정스러운 눈으로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이대로 그냥 두실 겁니까?”

“강준석 씨 성향은 알았으니, 굳이 이대로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죠. 다만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에요. 우리 첫째 큰아버지는 정말 집요한 분이에요.”

최민혁은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최문경 부회장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지금 일도 따지고 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이현탁 과장이나 오상현 과장 실력은 좋아. 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부분에는 한계가 역시 있어.’

특히 MP3 OS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최고였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는 못했다.

‘대한민국 최고가 될 수는 있어도 세계 최강으로는 부족해.’

최민혁은 결국 이 두 사람과 경쟁 관계이면서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최문경 부회장 시선을 흔들어 놓아야 한다는 전제도 필요했다.

‘인재라…….’

고민을 거듭하던 최민혁은 인생 1회차 기억에서 세 사람의 행적을 떠올렸다. 미래에는 독보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재지만 지금은 이제 막 회사에 들어간 이들이다.

최민혁은 그 이름을 적은 메모를 김명준 과장에게 내밀었다.

“이 친구들을 한번 조사해 보세요. 지금은 미국 NextOS사 직원일 겁니다. 아, 그리고 벨린 투자를 방문할 거라고 우영민 부장에게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김명준 과장은 고개를 갸웃한 채 실장실을 나섰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우리 첫째 큰아버지가 인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네요. 그래서 그 일을 한번 부추겨 볼 생각입니다. 거기에 주식으로 돈 좀 벌었으니, 이제 투자도 좀 하고요. 건물과 오피스텔을 사들일 생각입니다.”

“부동산 투자 말입니까? 혹시 강남 쪽에 투자하실 생각입니까?”

“아뇨.”

“그러면 어디에 투자하시려고요?”

“실리콘 밸리죠.”

“네?”

땅값이 살인적인 실리콘 밸리의 건물이 얼마나 비싼지 잘 아는 조성돈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민혁이 도대체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방긋 웃었다.

“우리 첫째 큰아버지가 알아봐야 돈이 없어서 미국 부동산을 살 수가 없죠. 그러니 조 팀장님도 한 번 자리를 알아보세요. 필요하다면 우리 회사 직원에게도 미국 생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니까.”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왠지 이번 일은 최문경 부회장을 곤란하게 하려고 진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다가 또 그게 다가 아닐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악동 같은 최민혁 미소를 보니 더욱 정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 * *

우영민 부장은 최근 벨린 투자 규모를 줄이면서 조용히 지냈다. 굳이 그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KM 전자 투자의 초대박 때문에 주목을 받아서 몸을 사렸다.

국세청, 증권 감독원, 금감원을 비롯한 경제와 관련된 부서가 전부 벨린 투자를 지켜보았기에 투자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굳이 하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최민혁 실장 지시도 있어서 한동안 숨었다.

그런데 드디어 최민혁 실장에게 연락을 받자 흥분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다만 실리콘 밸리 건물 매입과 새로운 회사 벨린 소프트 설립이란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에 한몫 단단히 챙겼으니,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 장소가 미국 실리콘 밸리일 지는 몰랐다.

우영민조차 억 소리가 나오는 실리콘 밸리 건물 가격을 알아보고는 혀를 찼다. 조 단위 현금이 벨린 투자 내부에 있어도 왠지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그래도 최민혁 지시가 있기에 매입 가능한 건물을 확인했다. 물론 벨린 소프트 설립은 그다지 어렵지가 않았다.

애초에 벨린 투자 자체가 다국적 기업으로 미국에도 법인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부동산 정보를 얻기는 어렵지가 않았다.

최민혁은 우영민 부장이 추천 건물 리스트 중에 한 건물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팔로알토 네트윅스 본사 건물이라…….”

“본사 건물은 8층 건물 3동, 2층 1동을 포함해서 모두 4개 건물입니다. 총 대지면적 12에이커로 나쁘지 않습니다.”

“가격은 1억 5천만 달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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