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40화 (340/1,021)

#340.

김정현은 최문경 부회장 눈치를 봤다. 뒤늦게 최문경 부회장이 이 자리에 온 것도 이 질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술잔을 따라주면서 털털하게 말했다.

“그 친구도 참 긴장을 많이 하는군. 자네는 내 사람이야. 그러니 쓸데없이 고민하지 말고, 자네가 본 것만 말해봐.”

“알겠습니다. 그게 사실은…….”

이번 신입 사원 성과에 따른 보상이 대리 승진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이 대리 승진이 단순히 그냥 승진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승 팀은 신입 사원 교육을 받고 나서 팀에 배치될 때도 기회를 다시 보장받았다. 자기 능력만 인정을 받는다면 초고속 승진도 가능했다.

“…설마 대리 승진 말고, 추가로 다시 보상을 받는다는 소리야?”

“어제 기획 팀에서 추가로 언급한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신입 교육이 교육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디어가 현실성이 높다면, 따로 팀을 만들어서 끝까지 진행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성과에 대한 보상은 따로 받습니다.”

“신입 사원이 낸 아이디어를 가지고 밀어주겠다는 소리야?”

“네. 그렇게 밝혔습니다.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회사 입사 후에도 밑바닥 생활을 할 필요 없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가 있습니다.”

흥분한 김정현은 최문경 부회장 얼굴이 점점 붉어 가는 것도 간과한 채 떠들었다.

그리고 그의 말 중에는 놀라운 것도 있었다.

“기획 팀에서 한 팀은 아예 따로 빼갔다고?”

“교육 중에 기획팀이 와서 강준석 팀을 모두 빼갔습니다. 솔직히 좀 억울했습니다. 성적만 놓고 보면 저도 지지는 않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김정현 주장을 패스했다.

“그놈들은 어디로 갔어?”

“…그쪽 팀에 아는 애들 이야기로는 지금 안산 공장에 있다고 합니다.”

“안산 공장?”

최문경 부회장은 힐끗 권재홍 비서실장을 쳐다보았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크게 당황했다. 그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김정현은 그제야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눈치를 봤다.

최문경 부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 중에 아는 이들은 있어?

“다른 이들은 잘 모르는데, 강준석, 권우영은 좀 압니다.”

“강준석? 그 친구는 뭐야?”

“삼수한 친구로 나이가 꽤 많습니다. 딱히 특별한 점은 없는데, 이번에 뽑혀가서 이상한 소리가 많이 나오는 친구…….”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았다.

“알았네. 수고했어.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으면 비서실에 연락해. 성과에 따른 보상은 따로 해줄 테니까. 뭐, 대리 진급이 될 수도 있어.”

“아, 알겠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정현도 자기 일이 스파이 행위라는 것을 알았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에게 눈도장을 찍은 것으로 만족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다른 것을 떠나서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사원 애들을 모으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민혁이 이놈이 뭘 할 생각인 걸까?’

* * *

최문경 부회장 딴에는 나름 조심스럽게 행동했다고 하지만 부회장이 다녀갔는데, KM 전자 내에 입소문이 안 날 리가 없었다.

기획 팀은 이 정보를 얻기가 무섭게 최민혁에게 보고했다.

최민혁은 유심히 강준석 팀 움직임을 살피다가 본사로 돌아왔다.

“오성 그룹 연수원에 우리 첫째 큰아버지가 방문했다라…….”

조성돈 팀장도 뒤늦게 파악한 정보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공식적인 방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교육 강사 몇 사람과 신입 사원 몇 사람과 가볍게 인사한 것이 전부입니다.”

이미 김명준 과장에게 따로 보고를 받았다. 정확히는 김정현을 조사한 것이 아니라 최문경 부회장 동선을 쫓다가 알았다.

굳이 그런 내용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321명이나 되는 인원을 보냈는데, 그냥 두고만 봤겠습니까. 사전에 연락해서 손을 봐둔 친구가 있을 겁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습니까?”

“아니, 우리 첫째 큰아버지는 그러고도 남습니다. 최훈열 전무나 김현우 상무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안 그런 분이 아니죠. 안산 공장 노조 쪽에도 계속 손을 쓴다는 것도 증거고요.”

“…하면 어떻게 할까요? 제가 직접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최민혁도 잠깐 곰곰이 생각했다. 인생 1회차에서 최문경 부회장이 얼마나 집요하게 자신을 감시했는지 직접 경험했다.

하물며 인생 2회차에서 자신은 KM 그룹에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최문경 부회장이 이제는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마세요. 이제는 그런 단계는 지났으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검찰이나 증권 감독원도 우리 KM 전자의 차세대 제품이 뭔지 압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첫째 큰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요. 우리 내부 사정을 아는 것도 시간문제에요.”

최민혁도 문득 자신이 말을 하고서야 보안이 그만큼 철저했나 싶었다.

그런데 조성돈 팀장은 그 부분에 대해서 넌지시 말해주었다.

“특허 매입 계약을 체결할 때 굳이 자세한 내막을 밝히지 않은 것은 그냥 뒀습니다. 애초에 MP3 특허에 대해서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특허를 봐도 모르니까요.”

“흠, 그래요?”

조성돈 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회사 정보를 외부에 알릴 이유는 없으니까요. 톰슨 같은 경우에는 예외이기는 하지만 나머지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렇군요.”

최민혁은 혀를 찼다. 그는 뒤늦게야 MP3 정보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 이유를 찾았다.

“그렇다고 쳐도 다른 직원이 아직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신기하네요.”

“최근 실장님의 행보가 그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마 그런 이유도 있을 겁니다. 괜히 정보가 새나갔다가 자신이 찍히면 앞으로 미래가 암울하니까요.”

“하하하, 그런가요?”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가 딱히 원한 것은 아니지만 나쁜 것도 아니었다.

조성돈 팀장은 이보다 다른 점을 걱정했다.

“그런데 최 부회장이 만약 안산 공장을 간다면 강준석 팀까지 모두 만나지 않을까요? 그건 그대로 두실 겁니까?”

“차라리 잘된 셈이죠. 과연 얼마나 의지가 있는 친구인지 한번 지켜봅시다. 이번 관문만 합격한다면 그만큼 믿을 만하지 않겠어요?”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새삼 최민혁의 용병술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그도 뒤늦게야 최민혁이 뭘 원하는지 조금씩 눈치를 챘기 때문이다.

‘당장 기획 팀 분위기도 달라졌으니.’

* * *

강준석은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도 사람이라서 걱정은 많이 했다. 자신이 과연 일을 끝까지 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건 권우영도 똑같았다. 그 역시 자세한 내막을 듣고 나서야 부담을 느꼈다.

“준석아, 우리 정말 이거 할 수 있을까?”

“해야지.”

“하지만 네가 준 자료를 기준으로 찾아보니, MP3에 맞는 LCD가 없어. 거기에 핸드폰 LCD를 붙일 수는 없잖아?”

“휴대폰 LCD로는 어렵겠지.”

단순히 전화번호 정보가 핵심인 휴대폰 LCD는 정보 전달 매체가 되기에는 많은 점이 부족했다.

특히 소프트웨어 팀에서 보여준 게임과 MP3 플레이어의 강점을 살리지 못했다.

응답 특성이 느린 점을 포함해서 너무 많은 문제가 있었다.

가장 큰 것은 역시 물결무늬다.

화면을 살짝 누르기만 해도 LCD 액정 화면이 밀리는 현상이 큰 문제였다.

이 문제는 LCD 업계에서도 더 나은 대안을 고안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개발하는 중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보 처리를 위한 기반 환경이 너무 부족했다. 그건 자신조차 어떻게 해야 할 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강준석 자신이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대안은 없었다.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이 시점에서 당장 포기했을 것이다.

“세상에 불가능한 것은 없어.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담담한 강준석의 말에 권우영은 혀를 내둘렀다. 강준석이 보통 고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그래. 난 언제나 내 편이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어떻게 해서라도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고맙다.”

“별소리를 다 하네. 우린 한 팀이잖아.”

“그렇지.”

강준석은 새삼 권우영의 위로로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그도 소형 LCD 한계점을 다시 돌이켜 보자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그의 핸드폰이 울린 것은 딱 그 시점이었다.

[강준석입니다. 네? 아, 안녕하세요. 지금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누구야?”

“갔다 와서 말해줄게.”

강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도대체 그룹 비서실의 민상수 부장이 왜 자신을 만나자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이 기획안 때문은 아니겠지?’

* * *

강준석은 괜한 오해를 줄 수도 있어서 권우영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안산 공장에서 나오자 택시를 탔다.

‘정말 KM 그룹 본사에서 내 기획안에 관심이 있는 것일까? 그게 말이 돼? 황당하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불과 며칠 전에 본 사람이 KM 전자 오너인 재벌 3세 최민혁 실장이었다.

그런데 그다음에 연락한 사람이 KM 그룹 비서실 직원이라니.

‘영문을 모르겠네.’

택시가 도착한 장소는 안산에서도 꽤 유명한 일식집이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일반인은 들어가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운치가 있었다.

다행히 입구에는 민상수 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가 강준석인가?”

“아, 네, 맞습니다.”

“난 KM 그룹 비서실 2팀장인 민상수야.”

“아, 안녕하세요.”

정중한 인사에 민상수 부장은 강준석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 자네는 사회생활을 잘할 것 같아.”

“아닙니다.”

“아니, 인사하는 자세부터가 달라. 사람이 눈치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저에게 연락하신 겁니까?”

“부회장님께서 자네를 보자고 한 거야.”

“네? 부, 부회장님이요?”

경악한 강준석은 크게 당황했다. 그도 비서실이 아니라 최문경 부회장이 직접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다 이유가 있으니, 연락을 한 것 아니겠나. 괜히 부회장님 앞에서 질문 따위는 하지도 마. 그냥 질문하면 필요한 답만 하면 되는 거야.”

“…알겠습니다.”

옆에 동행한 민상수 부장은 시간이 갈수록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최문경 부회장 앞에서 괜한 사고를 쳤다가는 앞으로 사회생활 끝이라는 협박은 덤이었다.

“KM 전자가 완전히 계열이 분리되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가 않아. KM 전자도 엄연히 KM 그룹 계열사야. 즉 우리 부회장님이 인사 권한까지 다 있다는 소리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늦은 군 생활 덕분에 눈치가 빠른 강준석 팀장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가 결코 좋은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도통 이해할 수가 없네.’

* * *

구석진 방 안에는 이미 최문경 부회장과 권재홍 비서실장이 앉아 있었다.

강준석은 넙죽 인사부터 한 후에 조심스럽게 그들 맞은편에 앉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흥미로운 눈길로 강준석을 힐끗 살폈다. 그는 조금 전에 봤던 강준석 프로필을 떠올린 채 고민에 빠졌다.

‘프로필로만 보면 정말 별것 없는 친구야. 그런데 민혁, 이놈은 왜 이 친구에게 관심을 보인 것일까? 영문을 모르겠네.’

강준석이란 이름을 알자 다시 그룹 비서실이 조사에 들어갔다.

그룹 인사 팀에서 강준석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아무리 프로필 내용을 돌아봐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는 은근히 짜증이 났다. 자신이 이런 일까지 일일이 확인해야 싶었다.

권재홍 비서실장도 썩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그 역시 강준석 프로필을 수십 차례나 확인한 후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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