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28화 (328/1,021)

#328.

아니, 그 이상이었다.

1,500원 시절에 최민혁을 엿 먹이기 위해서 사들인 주식 지분은 5%, 30,000원 가격으로 폭등할 때 추가로 1% 사들여서 모두 6% 지분이다.

200만 주에 가까운 물량이다.

당시만 해도 30,000원 주가도 많이 올랐다고 부담스러워 했다. 현재 KM 전자 주가는 무려 18만 원이다. 무려 3,600억이나 된다.

장승일 실장도 최두진 사장의 투자 이력을 뒤늦게 확인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나서서 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최용욱 회장에게 다시 보고했다.

“허허, 이 친구가.”

“제가 확인해 본 바로는 최두진 사장님은 최민혁 실장님에게 주식을 매각한 후에 차명으로 지분을 사들였습니다. 딱히 투자 목적이 아니라 이 지분으로 최 실장님을 압박하려 한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냥 운이 좋아서라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나도 그렇게 해야 했어.”

처연한 최용욱 회장의 탄식.

그는 고작 5천억 차입금을 얻기 위해서 별짓을 다하고 다녔다. 은행을 비롯한 아는 정치인 쪽에도 뇌물을 먹였다.

그런데 정작 최두진 사장은 주식으로 운 좋게 3,600억을 벌어들였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재수 없었다고 생각해야지.”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 사장님도 이 정도 이익을 봤으니, 회장님의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 민혁이 그 녀석을 불러와.”

“알겠습니다.”

* * *

최민혁은 최용욱 회장에게 받은 제안에 고개를 갸웃했다.

“할아버지 말씀은 최두진 사장에게서 KM 산업 지분 6%를 얻으란 말이군요.”

“그래. 최 사장에게 내가 말해두마. 그 친구 차명으로 보유한 물량도 꽤 있어서 다른 사람 눈총을 받지도 않을 거다.”

최민혁은 딱히 최용욱 회장 제안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최용욱 회장에게 지분을 받기만 하면 된다.

‘지금은 어차피 우리 첫째 큰아버지를 흔들 목적으로만 사용하면 되니까. 솔직히 나머지 지분은 IMF 이후에 천천히 챙겨도 늦지 않아.’

다만 그도 최용욱 회장이 KM 산업 지분을 얼마나 가졌는지 그게 궁금했다.

“혹시 최두진 사장님 지분 일부는 할아버지 차명 지분 물량입니까?”

“…그게 중요하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최두진 사장 명의로 지분을 숨겨뒀을지는 예상을 못 했습니다.”

최용욱 회장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민혁이 네가 많이 컸다는 것은 나도 인정하마. 하지만 이 할아비를 가볍게 생각하지는 말거라.”

‘당연히 아닙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할아버지가 꿍쳐둔 비자금을 염려하는 겁니다. 그 돈이 첫째 큰아버지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고 싶습니다.’

묻고 싶은 것은 많았다.

그런데 최민혁은 자신이 저 정보를 알아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최용욱 회장이 집안의 화목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최민혁은 이전과는 달리 최용욱 회장이 그렇게 커 보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굳이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번에 얻은 이익만으로도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최용욱 회장도 그 점을 인정했는지 망설이다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최근 주식을 좀 판 것으로 안다. 그 돈으로 뭘 할 생각이냐?”

“생각 중입니다.”

“…혹시 다른 용처가 없다면 나에게 맡겨두는 것은 어떻겠냐?”

최민혁은 한동안 최용욱 회장을 째려봤다. 민망한 최용욱 회장은 슬쩍 최민혁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할아버지도 그 돈에 욕심이 나십니까?”

“난 그런 적 없다.”

“제가 어렵게 번 돈입니다. 알아서 잘 관리를 할 겁니다.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글쎄다.”

그런데 정작 욕심을 보인 것은 바로 장승일 실장이었다. 그는 두 사람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면서 티를 내지 않았지만 돈 이야기에는 좀 달랐다.

무려 1조 원.

상상을 초월한 금액이었다.

더욱이 이 돈의 출처는 대부분 외국인 투자자가 가져온 달러였다. 1조가 넘는 돈이 단기에 한국 증권가로 몰리면서 원달러환율이 출렁였다.

증권감독원이나 검찰 쪽에서도 최민혁을 내사하면서도 직접 건드리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한 이유다. 그들도 영문을 몰라서 최민혁을 감히 건드리지 못한 것이었다.

뒤늦게 KM 전자 주가의 원인을 알고 나서는 오히려 KM 전자 주식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는 주가가 18만 원이나 되어서 쉽지도 않았다.

최용욱 회장은 최민혁의 고집을 읽고 나서는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적은 돈이 아니다. 더욱이 네 나이를 고려하면 솔직히 불안하구나.”

“걱정하지 마시죠. 돈을 쓸 곳은 이미 딱 정해져 있으니까.”

“MP3 말이야?”

“그것도 있고, 다른 것도 많습니다. 돈이 필요해서 주식을 판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할아버지도 일찍 욕심을 버리기 바랍니다.”

최용욱 회장도 MP3 상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기에 더 질문하지 않았다. 메모리 계약 수량만 봐도 MP3 사업에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가 없자 손자 최민혁을 다시 한번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아이와는 잘 되어 가느냐?”

“뭐, 서두를 일은 아닙니다. 이제 겨우 알아가는 사이 아닙니까?”

“하지만 너희 두 사람은 결혼을 전제로…….”

“그렇다고 마음이 없는 사람과 결혼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 그렇게는 못 합니다.”

똑 부러진 대답.

정략결혼이라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저렇게 똑 부러지게 대답한 것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불행히도 최용욱 회장은 최민혁에게 갑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최용욱 회장은 신규 인력 채용 문제에 대한 대안을 내놓은 최민혁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 그래.”

최민혁은 혼사 문제는 자신이 결정할 것이란 점을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했다.

“그래도 할아버지 제안이라서 만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제 의사를 굽힐 생각은 없습니다. 제 아내는 제가 결정합니다.”

“…알겠다.”

매몰찬 대답에도 최용욱 회장은 장남 최문경을 대하듯이 손자 최민혁을 채근할 수는 없었다. 가면 갈수록 최민혁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새삼 자신이 호랑이 새끼를 키운 것이 아닌가 번민했다. 하지만 이미 최민혁은 자신의 손에서 벗어난 지가 오래였다.

벨린 투자에서 가지고 있는 KM 전자 주식의 일부만 팔았는데도, 벌써 1조 원을 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 돈이면 KM 그룹을 자신이 원한 계획대로 풀어갈 수도 있었다.

‘후유, 내가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된 건지.’

“그래. 혼사 문제는 알아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너의 제안에 대해서 나도 많이 생각해 봤다. 그런데 문경이 문제도 있으니, 두진이에게 있는 지분을 넘겨받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최두진 사장님이 순순히 그 제안을 받을까요?”

“받을 거야. 어차피 다음에 내가 가진 지분을 최 사장에게 넘겨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 * *

KM 전자 주가는 조정장에 있었지만, 주가 상승세는 멈추지 않았다.

KM 전자 주식을 가진 이들 대다수는 이런 KM 전자의 주가에 혀를 내둘렀다.

최두진 사장도 이런 KM 전자 주가가 황당했다. 그 역시 KM 전자 주가가 이 정도로 폭등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좋지 않은 일도 있었다.

“형님, 제발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청주 쪽에서 사채업을 하던 동생 최주민이 매일 같이 자신을 찾아와서 울부짖었기 때문이다.

자기 아내를 따라서 충북 청주 지역으로 내려갔다. 한때는 잘나갔다. 자신보다 오히려 자산이 몇 배나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덕산그룹이 부도가 나 막대한 손실을 본 이후는 달랐다.

그 이후로는 내리막을 걸었다.

명절에 만나면 늘 돈을 조심하라고 경고했지만, 동생은 자신의 충고를 받지 않았다.

최두진 사장은 얼마 전까지는 아들 김현우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제는 매달리는 친동생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주민아, 나도 상황이 넉넉하지는 않아. 네 일을 도와줄 상황이 아니야.”

“형님, 제발 이번 한 번만 부탁합니다. 만약 삼익 건설이 이대로 무너지면 전 끝장입니다!”

“나도 손해가 커. 네 권유를 받아서 삼익 건설에 지금까지 퍼부은 투자 금액만 100억이 넘어.”

무릎을 끊을 채 눈물을 줄줄 흘리는 최주민은 절박했다. 그는 최두진 사장 양손을 붙잡은 채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요. 설마 이대로 그 돈을 다 날릴 생각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번에도 한 번 도와줬지 않습니까.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다시는 형에게 이런 식으로 도와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다.”

많은 채무자의 말로를 경험해 본 최두진 사장은 동생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 KM 전자 주가 폭등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최주민 요구를 들어줬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KM 전자에 투자한 돈이라고 해봐야 고작 100억이 채 안 된다. 그런데 현재 주식 가치 대비 무려 3,600억에 달했다.

같은 100억을 투자했는데, 한쪽은 억지로 투자해서 깡통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한쪽은 자기 지분마저 강탈당한 후에 보복하려고 몰래 꿍쳐둔 주식이 초대박을 쳐버린 것이다.

투자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수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직접 경험하자 이제는 세상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였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삼익 건설은 최악의 투자처였다.

“덕산그룹 부도 때문에 충북투자금융이 부도났고, 충북상호신용금고로 불법 대출 때문에 문제가 많아. 진천의 상창금고도 말이 나온다.”

“그건 일시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흥업금고가 충북은행에 인수되었습니다. 정부에서 이 일을 가만히 지켜보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황이 달라. 정부에서 손실을 보전해 주지는 않을 거야. 대주주의 불법 대출이 문제가 된 것이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만 버티면 됩니다. 익산 건설의 숨통이 트이기만 하면 자잘한 문제는 다 해결이 됩니다.”

“자잘한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혀, 형님, 정말 너무하세요. 이번에 주식 투자로 수백억, 아니 수천억을 벌었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친동생에게 이렇게 야박하게 구실 겁니까?!”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KM 전자 지분을 몰래 매입한 사실은 아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설마 현우 이놈 짓은 아니겠지?’

“…그 소문은 어디서 들은 거야?”

“제가 그 정보를 어디서 들었는지가 중요합니까. 제발 이번 한 번만 도와주세요!”

“흠.”

최두진 사장은 눈물, 콧물을 흘리는 동생 모습에도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기 정보를 동생이 어떻게 안 것인지 의아했다.

짜증 나는 사실은 지금 자신은 동생을 피해서 경기도 양평의 별장에 와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주민은 여기까지 찾아와서 매달린 것이었다.

“내 대답은 변함없다.”

“형님, 정말 너무하십니다!”

* * *

최주민은 최두진 사장 별장에서 떠난 후에 서울로 도착하기가 무섭게 김현우 수석 부장에게 전화해서 한 술집에서 만났다.

김현우 수석 부장은 우울한 얼굴로 술잔만 들이키는 최주민 눈치를 봤다.

“실패했습니까?”

“그래, 안 된다고 하더구나.”

“하지만 KM 전자 주식으로 재미를 단단히 봤을 텐데, 안 도와준다고 합니까?”

“정확한 금액을 모르잖아. 그냥 수백억 이익을 보지 않았냐고 말했지.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더라. 젠장, 지독하더라.”

“하긴.”

김현우 수석 부장은 작은아버지 술잔에 술을 따라주면서 눈치만 봤다. 그도 최두진 사장이 KM 전자 주식으로 재미를 본 사실을 우연히 알았다.

정확히는 재산 상속을 대비해서 최두진 사장 재산을 조사하는 중에 안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최두진 사장 눈 밖에 벗어난 터라 조심했다.

굳이 최주민을 도와준 이유는 최주민 도움을 얻으면 다시 아버지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최주민 역시 얼마 전까지 최두진 사장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김현우 수석 부장의 도움을 얻는다면 최두진에게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봤다.

실제로 KM 전자 주식은 좋은 정보였다.

“그런데 KM 전자 주식으로 도대체 얼마나 이익을 본 거야?”

김현우 수석 부장은 최주민 눈치를 보다가 불과 어제 안 정보를 공개했다.

“원래 가진 지분은 20%가 넘었을 겁니다.”

“20%라면……. 700만 주가 넘는다는 소리잖아. 그렇다면 1, 1조가 넘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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